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좋은생각 Sep 18. 2023

달과 흰개미와 우물

달과 흰개미와 우물 /  김휼

달과 흰개미와 우물


김휼


의혹의 눈빛이 따가운 나미브 사막


은밀히 풀의 목을 따는 우리는 사막의 킬러 들이다

사막에서 실패하는 죽음이란 없다고 여기는

나는 킬러들의 사수

달이 기울어지기 시작하면 밤의 갈피에 몸을 숨기고

구석진 어둠을 오려 복면을 한다


오늘은 월식

꼬리에 꼬리를 무는 방식으로 잡입하는 킬러들

타는 가슴속 목마름을 달래기 위해서라면

풀의 목숨은 한낱 순명의 회로일 뿐이라 여기며

강한 턱으로 밑둥을 자른 뒤

유유히 행렬을 빠져나간다


킬러들의 흔적이 아름답게 펼쳐진 요정의 원은

둥근 신의 발자국

가뭄 든 마음이 피워낸 사막의 우물


죽어야 사는 비밀을 그들은 어떻게 알아냈을까   

먹구름의 힘을 빌리지 않고 거사를 치르게 된 흰개미들

달을 향해 손을 흔든다


건기를 지나는 바람을 타고 킬러들의 행렬이 몰려온다


온갖 잡초가 무성해져

물 한 방울 고여 있지 않은 사막 같은 당신 마음속으로

쉿, 달이 기운다



.2023  아르코 발표지원 선정작

이전 06화 돌의 기분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