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3.02. 일요일의 기록
1. 클린컵
첫 모금부터 그 후미까지 맛이 깔끔한 커피를 클린컵이 좋다고 말한다. 커피 일을 하며 커피 맛을 평가하고 구별하는 게 참 어려웠다. 같은 원두도 로스팅 날짜, 분쇄도와 원두 투입량, 물 온도, 추출량, 심지어 기온과 습도 등 다양한 요인에 따라 다르게 느껴진다. 혀가 둔하다 보니 남들보다 커피를 더 많이 마시며 커피 맛을 공부해서 역류성 식도염을 앓기도 했다.
그래도 계속 마시다 보니 좋은 커피가 뭔지는 알겠다. 좋은 커피란 다음 한 모금이 기다려지고 계속 입에 대고 싶은 커피. 눈살 찌푸려지지 않고 꿀떡꿀떡 넘어가 단숨에 들이켤 수 있는, 처음부터 끝까지 깔끔한 커피이다.
커피에는 신맛과 단 맛, 쓴맛이 있다. 추출할 때도 신맛, 단 맛, 쓴맛의 순서로 추출된다.
사람과의 만남도 신맛과 단 맛, 쓴맛의 순서로 느껴진다. 처음엔 낯선 신맛에 낯을 가리다가도 계속 만나다 보면 그 사람의 단 맛에 매료된다. 그러다 쓴맛처럼 인상 찌푸려지는 순간도 있을 것이다. 만남과 이별은 달콤 쌉싸름한 추억을 남긴다. 좋은 커피는 이별의 순간마저 여운이 길다.
신맛, 단 맛, 쓴맛의 밸런스는 각기 다를지라도 좋은 커피는 항상 클린컵이 좋다. 편하게 즐길 수 있는 커피, 다음 한 모금이 기다려지는 커피.
사람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편하게 대할 수 있는 사람, 다음 만남이 기다려지는 사람이 있다. 좋은 커피가 클린컵이 좋듯, 좋은 사람도 클린컵이 좋다.
나 또한 클린컵이 되고 싶고, 클린컵과 함께 하고 싶다. 좋은 커피와 좋은 사람에게선 좋은 향기가 난다.
2. 선암사 낙엽들은 해우소로 간다
생두를 로스팅할 때, 일정 시점이 지나면 팝콘처럼 터지는 소리를 낸다. 크랙이라고 한다. 크랙이 터진 생두는 부피가 커지고, 기름이 좔좔 흐르면서 우리가 아는 원두가 된다. 같은 생두도 크랙이 터진 시점과 그 이후에 얼마나 더 볶는지, 화력을 어떻게 주는지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살다가 크랙 한 번 안 터지고 살아온 사람 없다. 스트레스 안 받는 사람 없고, 힘들지 않은 사람 없다. 클린컵한 사람은 그 크랙을 통해 성장한다. 클린컵한 사람은 다른 사람을 즐겁게 만들고, 언제나 그와의 만남이 기다려진다.
반면 크랙의 순간을 한참 지나 태워버린 원두도 있다. 태운 원두는 쓴맛이 강하다. 쓴맛은 대체로 인상을 찌푸려지게 만든다. 크랙을 통해 성장하지 못하고 크랙을 자격지심으로 여기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나이가 어릴수록 쓴맛을 더 강하게 느낀다고 한다. 실제로 쓴맛을 느끼는 미각 수용체가 어릴수록 더 많은 것이다. 반면 나이가 들수록 쓴맛에 둔해진다. 쓴맛에 대한 미각 수용체가 감소하는 것이다. 인생의 쓴맛도 어릴수록 민감하게 다가온다. 어렸을 땐 힘든 일이 생기면 세상 무너지는 기분이 들었던 적도 있다. 반면 나이가 들수록 쓴맛에 익숙해지고 스트레스에 유연해진다.
나는 정호승의 '선암사 낙엽들은 해우소로 간다'라는 시를 좋아한다. 나이가 든다는 건 낙엽이 왜 떨어지는지를 아는 일이다. 어른이 되어갈수록 떨어지는 기분을 이해하게 된다. 바닥에 떨어진 낙엽들은 해우소에 모여 썩어간다. 썩은 낙엽은 비료가 되어 흙과 함께 봄을 즐긴다. 썩지 못하고 말라버린 낙엽은 봄날의 소중함을 알지 못할 것이다.
정호승도 '낙엽이 왜 낮은 데로 떨어지는지를 아는 사람을 사랑하라'고 말한다. 그는 '낙엽으로 떨어져 썩을 수 있는 사람을 사랑하라'고 한다.
누군가는 내게서 낯선 신맛을 느끼고, 누군가는 유쾌한 단 맛을 느낀다. 나의 부정적인 모습도 결국 나를 이루고 있는 크랙의 흔적이다.
내 삶의 바닥도, 내 삶의 크랙도, 나의 쓰디쓴 모습도 살다 보면 낙엽으로 썩어 자양분이 된다.
첫 만남부터 그 끝까지 긍정적인 사람. 나는 클린컵이 되고 싶다. 그리고 클린컵을 사랑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