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1.16. 목요일의 기록
기대하지 않으면 실망하지 않는다. 해가 갈수록 기대하지 않는 법을 배운다. 그래서 이젠 기쁜 일이 있어도 어린 시절만큼 폴짝폴짝 뛰며 기뻐하는 법을 까먹었다.
1. 사랑의 실패
첫사랑 시리즈는 글쓰기 모임에서 두 번 선보인 적이 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난 첫사랑이 있었다. 이성을 좋아한다는 감정을 처음 느끼게 해 준 그녀.
물론 첫사랑은 실패했다. 0고백 1차임. 이후로도 나는 무수한 0고백 1차임을 견디며 사랑의 아픔을 감당해야 했다. 사랑이라 쓰고 아픔이라 읽는다. 썸인 줄 알았지만 나만 썸이었던 순간들, 다섯 번의 소개팅에 출전했지만 타율은 2할, 나를 키운 건 8할이 실망이었다. 나만 좋았나 보다. 숱한 여성들이 나와 첫 데이트를 한 이후에 연락이 두절되거나 실종되었다.
하지만 "사랑하라,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뜨거운 여름밤은 가고 남은 건 볼품없지만 또다시 찾아올 누군갈 위해서 사랑의 자리를 남겨놔야지.
그러나 이젠 누군가를 만나도 기대가 되지 않는다. 어차피 난 2할 타자이니깐.
2. 취업의 실패
구직 활동을 할 때도 서류에서부터 광탈한 적이 많다. 채용도 소개팅과 같이 프로필 사진과 스펙에서부터 시작된다. 읽을지 안 읽을지도 모를 나의 경력과 성장 과정, 성과, 목표 달성의 경험 등을 창작한다. 나라는 인간을 해부하여 낱낱이 드러내되 장점 같은 단점을 적절히 버무려 곳곳에 숨겨둔다.
그렇게 열심히 써도 서류에서 광탈한다. 매번 아쉽고 함께하기 어렵다는 숱한 회사들. 나는 항상 아쉽지만 함께 할 수 없는 사람일 수밖에 없었던 걸까.
불합격 문자를 통보받음과 동시에 다른 회사에 이력서를 넣는다. 종종 면접까지 진행되는 회사도 있었지만 타율은 1할을 넘기지 못했다. 9할 이상의 실망을 토대로 합격이란 결과에 기대하지 않는 법을 배웠다.
어차피 떨어질 거 면접 연습이나 하고 오자, 라는 생각으로 지금 회사 면접에 갔다가 덜컥 합격해서 지금 4년째 일하고 있다. 사람 일 모르는 거다.
3. 말이 앞서는 사람
진짜 멋쟁이는 말보다 행동이 앞선다. 나는 행동보다 말이 앞선다. 그래서 지키지 못할 약속도 많이 했다. 나란 사람의 그릇의 크기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며 살았다.
내가 호언장담한 말들은 사실 내 능력을 벗어나는 경우가 많았다. 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약속한 게 아니라, 내가 되고 싶은 이상향을 약속한 것이다.
내가 할 수 없는 것들을 약속하며 나 자신을 속였지만 결국 그 약속을 지키지 못했을 때, 나는 나 자신에게 실망하고 자괴감에 빠진다. 자괴감은 나를 좀먹는 벌레와 같다. 자존감이라는 기둥을 좀먹고 구멍 내어 나를 무너뜨린다.
이제는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구분하는 법을 배웠다. 무작정 내가 노력하면 되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환상도 가지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이제는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더 많아지는 것 같다. 이것도 할 수 없고, 저것도 할 수 없다. 나는 내 그릇을 아니깐 쉽게 도전을 하지도 않는다. 쉽게 도전하면 어차피 얼마 못 가 포기하고 나 자신에게 실망할 것을 아니깐.
4. 시절인연
삶이 힘들 때, 유튜브로 법륜 스님의 즉문즉설을 자주 봤다. 법륜 스님은 삶에 집착하지 않는 법을 가르쳐준다. 그는 최선을 다하되 결과에 연연하지 말라고 한다. 내가 통제할 수 있는 범위와 통제 바깥의 영역들을 분간할 줄 알아야 한다. 내가 통제할 수 있는 범위 내의 영역은 최선을 다하되, 어떤 결과는 종종 내 노력과 상관없이 통제할 수 없는 범위로 들어가 버린다. 결과에 집착하게 되면, 나는 내가 통제할 수 없는 모든 것에 집착하며 스트레스를 받게 되는 것이다.
0고백 1차임의 그녀들과 나를 떨어뜨린 무수한 회사들은 사실 나와 인연이 아니었던 것이다. 내가 자괴감에 빠지며 헤어졌던 여자친구도 나와 그때 당시엔 인연이 아니었던 것이다.
시절인연이란 말은 모든 인연은 때가 있다는 말이다. 내가 조금 더 노력했으면 됐을 텐데라는 후회도 이미 지나간 일이고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영역이다.
내가 통제할 수 있는 현재의 나를 돌보고 최선을 다하자.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며 살자. 그러다 보면 때를 알고 찾아오는 인연이 생길 것이다. 실망이란 말은 희망을 잃고 비어있는 느낌을 준다. 스스로에게 실망하고 자괴감에 빠질 때마다 희망을 잃은 빈 구멍을 다시 희망으로 메우는 작업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