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진강 벚꽃길
꽃들의 잔치로 세상이 들썩거린다. 여의도며 석촌호수, 연남동과 신촌 철길을 따라 눈부시게 핀 벚꽃들 사이로 진달래 개나리가 어울리고 꽃집의 노란 프리지어도 다소곳이 누군가를 기다린다.
몇 년 전에 광양 매화마을을 거쳐 구례 산수유 마을까지 여행을 했던 기억이 있다. 이번에 찾은 구례는 노란 산수유는 꽃잎을 떨어 뜨리고 벚꽃이 만개를 앞두고 있었다. 이 여행은 한 달 전 우연히 한 문우에 의해 추진되었고 주변이 봄나들이에 들떠있던 차에 나도 이때다 싶어 망설임 없이 손을 들어 합류했다. 문우가 여행을 계획하게 된 것은 예전에 함께 글을 쓰던 이가 화엄사 템플스테이에서 일을 하게 되면서 이루어지게 되었는데 어쩌다 보니 동행을 수필동아리에서 모집하게 되었고 운 좋게 배낭하나 슬쩍 들이밀어 꽃잔치에 초대받게 되었다.
봄이면 여기저기 만개하는 벚꽃을 제대로 보기란 의외로 쉽지 않다. 우리나라에 벚꽃 명소가 여럿 있고 수도권에서도 아름다운 군락지를 곳곳에서 볼 수 있지만 만개한 모습을 즐기려면 눈을 부릅뜨고 있어야 한다. 동네 벚꽃길도 며칠 깜박하고 나면 어느새 바람과 비에 후드득 꽃잎을 떨구고 만다. 축제에 맞추어 이동하면 차도 막히고 사람도 많아 사진 찍기도 어렵다.
마침 벚꽃이 만개한 삼월의 어느 월요일에 떠난 여행은 느긋하게 온전히 벚꽃을 즐기기에 제격이었다. 터널을 이룬 분홍 벚꽃나무 사이로 보이는 파란 하늘은 유독 선명하게 눈부시도록 아름다워 보고 또 보아도 감탄을 멈출 수가 없었다.
우리 일행은 열차를 타고 '구례구역'에서 내렸다. 뒤에 붙은 '구'는 무엇일까 하다가 서울의 어느 '구'처럼 행정구역인가 하고 생각했는데 이곳은 행정구역상 구례가 아닌 순창이고 구례가 시작되는 입구라 입'구'자를 써서 '구례구'라 부른다고 한다.
가이드는 구례는 아홉 번 정도는 다녀가야 그 맛을 모두 즐길 수 있어서 구례구라며 너스레를 떤다. 하루종일 벚꽃에 취해 다니다 보니 어느새 구례의 아름다움과 인심에 빠져들어 진짜 아홉 번 와야 하는 체면에 걸려든 듯했다.
7인승 '구례올레'를 이용해서 여행을 시작했다. 구례올레는 구례구청에서 관광객에게 가이드와 차량을 연결해 주는 서비스다. 차를 타고 섬진강 둘레길에 들어서자마자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기차에서 내려 오분 정도 달렸을까, 잠깐 멈춰서 시진을 찍어야겠다고 졸라댔다. 가이드는 아니 벌써 그렇게 놀라시면 안 된다고 하면서 못 이기는 척 갓길에 잠시 차를 세워주었다. 섬진강 줄기 따라 늘어선 벚꽃들, 파란 하늘 아래 하얗게 지붕을 이룬 꽃들을 마음에 담을 새도 없이 바쁘게 셔터를 눌렀다.
지난주에 기온이 올라 황사가 말썽이었는데 잠깐 동안 다시 내려간 온도에 하늘은 선명한 얼굴을 드러냈다. 아침의 차가운 공기가 오히려 반가운 이유였다. 끝없이 지붕을 만들며 늘어선 벚꽃길 풍경은 몽롱할 정도로 황홀했다.
구례 벚꽃 길은 그 길이가 300리라고 한다. 300리면 120km쯤 된다고 하는데 짐작도 할 수 없게 '정말 길고도 길구나'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당분간 벚꽃이 질 때까지 집 앞 벚꽃만 보아도 구례가 떠오를 것이고 찬란했던 구례의 풍경을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내년 봄이 되면 또 가고 싶어 지겠지, 일주일도 안되어서 그런 생각을 한다. 갈 곳도 많고 볼 것도 많은 시절인데 말이다.
안양 충훈부에도 벚꽃이 어제와 다르게 더 활짝 함박웃음을 짓는다. 아파트를 배경으로 곳곳에 자태를 뽐내는 벚꽃들도 황홀하기 그지없다. 지난주에 다녀온 구례여행이 꿈결 같기만 하다. 벚꽃 아래서 구례의 시간을 떠올리며 커피를 마시고 있는데 운동을 하던 할머니 두 분이 대화 끝에 이렇게 외친다.
"인생은 고난이여! 고난이리고! 근데 꽃이 이렇게 이쁘잖아! 그 맛에 사는 거지!"
이러니 저러니 해도 참 좋은 시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