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친정에 가는 길이다. 전철을 타고 친정까지는 경기도의 남쪽에서 서울을 지나 경기도의 북쪽까지 가야 한다. 2시간여쯤 걸린다. 서울역까지는 ktx를 타기로 한다. 커피를 들고 열차에 오르기만 해도 여행하는 것처럼 설렘이 찾아온다. 생각에 잠길 틈도 없이 잠깐의 시간 동안 열차잡지를 보느라 신이 났다. 전국 곳곳의 아름다운 풍경을 보고 있으니 우리나라도 참 좋다는 감탄이 절로 나온다.
서울역에 내려 지하철로 갈아탄다. 바쁘게 출근하는 사람들 틈에 끼여 20대의 기분을 느껴본다. 30여분 지나고 나니 출근시간이 지나서인지 자리가 하나 둘 났다. 여유롭게 자리에 앉아 책을 펼쳤다. 지하에서 지상으로 올라오면 더 이상 지하철이 아니다. 전철이 된다. 전철은 나에게 사색의 공간이다. 창밖으로 도시의 풍경들이 정겹게 펼쳐진다. 한강을 건널 때면 언제나 두근두근거린다. 푸르른 하늘과 강 위를 달리는 기차와 흐르는 물결이 이루는 풍경에 내 마음은 언제나 빠져든다.
어린 시절 살던 동네에는 마을버스가 다니지 않았는데 전철역까지 족히 십오 분 정도는 걸렸다. 아침에 감은 머리카락을 말리는 둥 마는 둥 바쁘게 집을 나오다 보면 머리카락은 꽁꽁 얼었다가는 전철 안에서 금방 스르르 녹아내려 물이 뚝뚝 떨어지곤 했다. 한 시간 반 가량 꾸벅꾸벅 졸며 출근을 했다. 퇴근을 하고 친구들과 놀다 보면 어느새 막차시간이 다가오고 겨우겨우 집에 돌아와 누운 듯하면 어느새 다시 다음날 아침이 되어 있었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하루하루 열심히 달려가던 시간이었다.
전철 안에서 그때 그 공간으로 시간여행을 떠나본다. 스무 살 무렵 한 번은 전철에서 소매치기를 당한 적이 있었다. 그날은 보너스를 받은 날이어서 가방에 두둑이 현금봉투가 들어 있었다. 한 사람이 나와 자꾸 눈이 마주쳤는데 집에 돌아와 보니 가방지퍼가 얼려 있고 돈봉투가 사라져 있었다.
다음날 회사에 가서 보너스를 한 푼도 못써보고 잃어버렸다고 언니들에게 푸념을 늘어놓았다. 점심시간이 돼서 한 언니가 탕비실로 부르더니 돈봉투를 건네주었다. 조금씩 걷었다며 쓰라고 했다. 그 돈을 왜 받았는지 고맙다는 말은 잘 전했는지 생각이 희미하지만 고마운 마음에 아직도 가끔 울컥한다. 그때 정 많던 그 언니들의 따뜻함이 그립다. 전철을 타고 가다 보니 지나온 시간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마음을 따뜻하고포근하게 감싸주는 추억으로 시간 여행을 시켜주는 공간이다. 이런저런 일들이 자연스럽게 떠올라 빠져들다 보니 어느덧 목적지다.
가끔 혼자 전철을 타고 멀리 가고 싶어 진다. 기차를 타고 먼 도시로 갈 시간적 여유가 되지 않을 때는 전철을 타고 서울 한 바퀴만 돌아도 여행을 다녀온 기분이 든다. 전철 안에 있으면 잡다한 고민들이 사라진다. 추억에 잠겨 그리운 이들을 생각나게 하고 때로는 책에 집중할 수도 있고, 쓰고 싶은 글을 정리하기도 한다. 새로운 공간에서 다시 나를 집으로 데려다주는 전철은 여행에 동행한 다정한 친구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