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보라 Nov 23. 2021

사장님 알바 안 필요하세요?

            글 쓰는 바리스타


나는 내성적이지만 호기심이 많아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것을 좋아한다. 다른 사람이 쉽게 할 수 있는 일에 큰 용기를 내야 하기도 하지만 두려움을 넘어 나아간다.


결혼 후 첫째 아이 임신 8개월까지 열심히 직장 생활을 했다. 내가 한 일은 주로 사무직이었다. 출산과 동시에 사회생활을 마감했다. 네 살 차이가 나는  둘째 아이를 출산하고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할 때까지 10여 년은 집에서 육아에만 전념했다. 큰 아이가 초등학생이 되고 둘째는 어린이집에 가고 나니 시간적 여유가 생겼다. 다시 일을  해보고 싶어졌다. 겸사겸사 양육에 도움이 될 만한 것들을 찾아다녔다.  독서지도, 북 아트, 동화 구연, 수학 등을 배우고 자격증을 취득하며 열심히 살았는데 막상 일로 연결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러다가 지인을 따라 시립도서관에서 자원봉사를 하기 시작했다. 아이에게 그림책도 읽어 주고 학습에 도움이 될 만한 것들도 배울 수 있었다. 그렇게 시작한 자원봉사 활동  지역 아이들에게 책도 읽어 주고 인형극 등의 공연도 선사해 주었다. 봉사 활동을 하면서 좋은 기회에 도서관에서 파트타임으로 일도 하게 되었다.

도서관은 진상 민원도 드물었고  힘들게 하는 상사도 없었으며, 모든 것이 참 좋았다.


무료로 들을 수 있는 문화강좌도 많았는데 그중에서 수필 수업을 들으며 글도 쓰게 되었다. 몇몇 백일장에 참여해서 상을 받게 되면서 글쓰기에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다. 자원봉사와 글쓰기로 보람을 얻고 자아실현도 했다. 게다가 경제적 여유까지 얻을 수 있는 도서관에서의 생활은 금상첨화였다.


갑작스럽게 닥친 코로나 팬데믹은 이런 모든 것을 나에게서 빼앗아 갔다. 봉사활동은 중지되었고, 일의 계약 기간도 끝나면서 모든 것이 멈춰 버렸다. 아이들은 집에서 온라인 수업을 했고  가족이 집 안에서 함께 지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산책하고, 지인들과 커피를 마시고 아이들 밥 해주는 에 지쳐가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편안함에 젖어들고 있었다.


코로나가 터지기 전 바리스타 자격증을 취득해놓았었다. 노후에 대한 대비책이기도 했는데 카페 창업은 너무 막연했다. 이것저것 많은 자격증에 바리스타 자격증 하나 더 추가했을 뿐 달라진 것은 없었다.

동화구연에서 만난 한 언니가 동네에 카페를 차렸다는 소문에 찾아가 보았다. 동화구연을 힐 때는 수줍음 많은 언니였는데 혼자서 카페를 운영해 나가는 모습이 멋지고 대단해 보였다. 친분이 두터운 것은 아니었지만 커피를 마시러 가면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게 되었다. 이런 카페는 어떻게 차리냐고 물으니 아르바이트를 먼저 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했다. 혹시 나를 아르바이트로 써 줄까 했지만 혼자서도 충분한 모양이었다.


그때부터 카페 아르바이트를 생각했다. 자격증 있는 사람은 왜 그렇게 많은지 주위에 부딪히는 사람마다 바리스타 자격증을 가지고 있었다. 카페에 취업하거나 카페를 차리는 것도 자격증과는 전혀 상관이 없었다. 중요한 것은 자격증이 있어도 취업이 어렵다는 것이다. 이력서를 내려니 나이가 걸렸다. 오픈. 마감 경력 알바를 많이 뽑았다. 경력도 없이 나이 많은 사람을 누가 쓸까 싶어서 이력서를 내는 것이 망설여졌다.


취직은 못하고 동네 골목길 카페만 탐색하고 다녔다.  작고 예쁜 카페가 골목마다 숨겨져 있었다. 그중에서도 동네에서 소문난 로스팅 카페가 있었다. 커피 맛이 기대 이상 좋기도 하고 가격도 저렴해서 아침마다 커피를 사려는 사람들이 줄을 섰다. 나도 한때 자주 들렀는데 커피 한잔을 사기 위해 한참을 기다리기도 하는 것이 싫어서 다른 곳을 탐색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근처에서 마음에 드는 한 카페를 발견했다.


오픈 한 지 얼마 안 된 카페였는데 조명이 돋보이는 감성적 인테리어도 좋았지만 무엇보다 맛 좋은 커피가 마음에 들었다.  커피맛이 좋다며 사장님한테 말도 걸어보고 자연스럽게 친분을 쌓아갔다. 어느덧 단골이 되었다. 산책 후에 카페에서 카페라테 한 잔을 마시는 것이 일과가 되었다. 내가 원하던 인테리어와 좋은 커피 맛, 그리고 가게의 크기도 딱 마음에 들었다. 이런 카페라면 한 번 해  볼만할 것도 같았다. 이런 내 생각을 비치면 지인들은 한 번 해보지 그러냐고 나를 부추겼고 나도 뭔지 모를 자신감에 빠졌다. 일을 배우고는 싶은데 여기서도 아르바이트를 쓸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슨 용기에서 인지 카페에 갈 때면 농담을 자주 던졌다.

‘사장님 알바는 안 쓰세요?’     

    

그러던 어느 날 오후에 혼자 카페에 들렀다. 카페는 한산했다. 사장님이 기다렸다는 듯이 잠시 시간이 있냐고 물었다. 진짜 아르바이트를 할 생각이 있냐는 것이다. 순간 당황했다. 마음의 준비가 필요했다. 막상 일을 하게 된다고 생각하니 여러 가지가 걸렸다. 사람을 잘 상대할 수 있을까? 음료는 잘 만들 수 있을까? 이상한 손님을 만나면 어떻게 하지? 등등.

일을 배워보고 싶다는 열망이 강하게 자리 잡고 있었으니 일단 하루만 생각해 보겠노라고 했다. 그렇게 애걸을 해 놓고는 막상 기회가 오니 두려움이 생겼다. 오랫동안 집에만 있었던 대다가 주로 사무직으로 일했기 때문에 서비스직을 잘 해낼 수 있을지 걱정이 되기도 했다. 수습 기간 동안 혹시라도 사장님 마음에 들지 않으면 스스로 그만 둘 생각까지 했다. 동네 단골 카페 취직이라니, 사장님도 나도 서로 불편해질 수도 있는 일이었다.  사장님이 나이를 묻고는 자신보다 많다는 것에 조금 놀라기는 했지만 문제없다고 했다. 주부들과 일해봤는데 오히려 더 열정적이고 성실하다는 것이다.


밤새 생각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에 일단 부딪혀보기로 결정했다. 동네 카페에서의 알바를 혹시나 반대할까 싶었던 남편과 아이들도 흔쾌히 찬성해 주었다.


그리고 그다음 주부터 바로 출근을 하게 되었다. 내가 원한 시간은 상쾌한 공기를 마시며 골목길을 커피 향기로 가득 채우는 낭만적인 카페 오픈이었다. 아침마다 마시던 커피 값도 아끼고, 돈까지 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런데 사장님이 필요로 하는 시간은 오후 마감시간이었다.


저녁 6시부터 9시까지 음료 주문이 끝나고 나면 홀과 커피머신을 청소하고 쓰레기통을 비운 뒤 문단속을 하는 것이었다. 뭔가 처음부터 빗나가는 느낌이었다. 인생이 내 마음대로 되어가지 않는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다.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는 건 정말 멋진 일이네요.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 일어나는 걸요. "    

< 백영옥 "빨간 머리 앤이 하는 말"중에서 >


빨간 머리 앤의 말처럼 내가 계획한 대로 되지는 않았지만 어쩌다가 생각만 하던 카페 알바를 시작하게 되었으니 생각지도 못한 멋진 일들이 펼쳐질 것이라 기대해 본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