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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라 Nov 24. 2021

빵점입니다.

글 쓰는 바리스타


카페 출근 첫날이 다가왔다.


파트타임으로 일하게 되었지만 그 시간만큼은 전문적인 바리스타이고 싶었다. 일단 옷차림부터 신경을 썼다. 바리스타라면 흔히 떠오르는 흰 셔츠에 검정 바지를 입었다. 반듯한 차림을 하고 출근을 하니 생기가 돌았다.

앞치마도 멋진 스티치가 들어가고 주머니가 여러 개 달린 것으로 준비했다. 여러 카페를 다닐 때면  직원들의 앞치마가 멋있어 보였던 기억을 되살려 구매했다. 그런데 앞치마가 너무 커서 입을 수가 없게 되었다. 할 수 없이 시험 준비 때 사용했던 것을 쓰기로 했다. 

동영상으로 아메리카노 추출과 카페라테 만드는 법을 익히고 자신감에 찼다. 라테 연습을 할 우유 1000ml 들고 카페로 갔다. 오랜만에 하는 출근은 기분 좋은 긴장감을 주었다.     


맛있는 커피를 내릴 생각만 했는데 카페의 전반적인 일을 배우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계산기 포스도 난생처음 다뤄보는 것이라 연습이 필요했다. 메뉴가 어디에 있는지 한참을 눈으로 헤맸다. 30여 가지가 넘는 메뉴 레시피는 뜨거운 것과 차가운 것을 구별하여 하나하나 익혀야 했다.  우리 카페는  프랜차이즈 카페에 비하면 메뉴가 그렇게 많다고 할 수 없는데 나에게는 벅찼다.


본격적으로 에스프레소를 추출할 시간이 다가왔다. 뇌의 모든 능력을 총동원하여 기억력을 끄집어냈다. 원두를 포터 필터에 받아, 탬핑을 하고 추출을 했다. 포터 필터를 기계에 맞추는 것이 서툴렀지만 다행히 추출의 결과물은 나쁘지 않았다. 조금 으쓱했다. 그런데 문제는 카페라테였다.

다른 카페를 다닐 때 카페라테를 주문하고 나면 항상  맛과 스팀이 잘됐는지, 아트는 수준급인지  평가를 서슴지 않았던 기억이 났다. 스팀이 그저 내 맘 같이 훌륭하게 나와 줄 것이라고 믿었다.


우유에 공기를 주입하는 순간 커다란 기계음과 부글거리며 올라오는 거품에 당황했지만 이 정도면 괜찮지 않을까 했다. 그럴 리가 없다. 사장님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아 이렇게 되면 안 되는데…….”


나는 선수를 쳤다.


“왜요 빵점인가요?”

 

“네 빵점!!”      


사장님의 농담처럼 건넨 말을 웃어넘기며 다시 잘해보려고 했는데 그때부터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반복되는 스팀의 실패에 나는 그만 기가 죽고 말았다. 손이 떨리면서 마음은 더 초조해지고 사장님의 굳어지는 표정과 말투까지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다.

몇 번의 우유 스팀을 연습하고 에스프레소 위에 하트를 그려 보기로 했다. 손이 더 떨렸다. 하트가 그려지다 말고 찌그러졌다. 그다음 하트는 오리 궁둥이 모양, 사과 모양 등 중구난방이다. 사장님 눈치가 보였다.


음료를 익히는 동안 간간히 손님이 다녀갔다. 사장님이 응대를 했지만 나도 옆에서 '어서 오세요!' 나 '맛있게 드세요.' '안녕히 가세요.' 이런 말들을 거드는데 조금 어색했다. 빨리 익숙해져야겠다.


라테아트 연습은 숙제로 남게 되었다. 집에 가서 메뉴도 숙지하고 라테 연습까지 해야 된다고 생각하니 머리가 아팠다. 스팀과 아트는 차차 실력을 키워가기로 하고 마감하는 방법을 배웠다. 마감이라도 잘해야겠다는 생각에 열심히 노트에 메모를 했다. 마감을 혼자 할 수 있겠냐며 사장님은 갑자기 퇴근했다.      


문 닫을 시간이 다 되어가서 정리를 하고 있는데 손님이 들이닥쳤다. 혼자 맞는 첫 손님이다. ‘제발 쉬운 걸로’ 마음속으로 외쳤다. 다행히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잔을 시켰다. 나도 모르게 ‘감사합니다.’라는 말이 크게 나왔다. 에스프레소가 추출되는 동안 컵에 얼음을 준비했다. 서투른 솜씨에 컵에서 넘친 얼음이 바닥으로 떨어져 박살이 났다. 부서진 얼음을 급하게 발로 밀어 버리고 음료를 준비했다. 손님이 돌아간 뒤 바닥에 흥건한 물기를 닦으며 안도의 한 숨을 내쉬었다.  청소를 하고 마감을 했다. 전원을 모두 잘 껐는지 몇 번을 확인하고 문단속을 했다.


고작 3시간 일했는데 온 몸이 뻐근했다. 밤 퇴근은 하루 종일 일한 효과를 가져왔다. 오랜만에 온몸을 써서 일을 하고 나니 고단함이 밀려왔다. 어둠이 깊은 밤하늘에 기다렸다는 듯이 별들이 반짝반짝, 내 첫 출근을 응원해주는 것 같아 그나마 위로가 되었다.


실수를 용납하지 않으려는 모습, 조급하게 해내려고 서두르는 모습, 지적에 대해 금방 얼굴이 굳어지는 모습, 커피 하나를 만들면서 내 단면을 직시했다. 유연해지고, 너그러워진 줄 알았는데 그건 다 평온한 일상을 보낼 때의 모습이었다. 나의 못난 단면에 씁쓸하기도 했지만 힘들게 일하고 났더니 뿌듯하고 스스로가 기특하기도 했다. 앞으로 새로운 경험을 통해 성장해 가는 나를 발견하고 싶다.


나이가 든다는 건 상대방이 마음 상하지 않게 부드러우면서도 솔직한 마음을 이야기할 수 있고, 실수를 인정하고 고쳐나가며 소통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모두면에서 그렇지는 않지만 조금은 유연 해지는 것 같다.


모리사와 아키오의 소설
《무지개 곶의 찻집》


에 나오는 에쓰코 할머니처럼 커피 한 잔을 만들며 “맛있어져라, 맛있어져라,” 이렇게 속으로 기도하고 싶다.

이 소설은 카페를 방문하는 상처 입은 손님들에게 에쓰코 할머니가 치유의 커피를 선물하는 이야기다.

그 주문은 진짜 힘이 있고, 벼랑 끝에 선 사람들은 할머니의 커피를 마시고 위로의 눈물을 흘린다.




아직은 서툴지만 내가 기쁜 마음으로 준비한 커피를 마시고 카페에 오는 손님들이 위로받고 행복해지길 소원해 본다. 내가 만드는 음료에도 사랑의 힘이 넘쳐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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