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냄새를 맡으며 천천히 걷습니다. 언제 다시 오게 될지 모르니 아쉽습니다. 서가 사이로 비추는 햇살, 작은 창문으로 보이는 나뭇잎이 벽에 걸린 액자 속 그림 같습니다. 책상에 앉은 사람들, 책을 찾는 사람들 사이로 추억을 되새깁니다. 처음 도서관에 출근해서 근처 산책을 하다가 비밀의 숲 같은 곳을 발견했을 때가 떠오릅니다. 나무 계단을 올라 조그만 언덕을 오르니 작은 숲 속 도서관이 있고 운동기구들이 있었지요. 철봉에 매달려도 보고, 흙길을 걸어도 보았습니다. '사서'라는 직업을 만나고 도서관에서 일한 것이 비밀의 숲을 찾은 것처럼 신기한 경험이었습니다. 초록잎들 사이로 비추는 햇살과 바람과 진달래꽃을 즐기던 곳. 이제 조금 알 것 같고 이제 조금 마음을 나눈 사람들이 있는 도서관의 생활이 마무리됩니다.
11개월이라는 시간이 어느덧 끝나가고 계약이 종료됩니다.
떠나는 사람의 선물을 받고 어리둥절했던 것이 얼마 전인 것 같은데 벌써 저도 선물을 준비할 때가 됐습니다. 이곳에서는 근무가 완료되는 사람이 남아있는 사람에게 커피 한 잔씩 돌리는 것이 관례처럼 내려오고 있습니다. 커피 대신 다른 것을 선물하기도 합니다. 어떤 이는 차를 사기도 하고, 어떤 이는 손수 만든 공예품을 선물로 주고 떠났습니다. 특별한 선물을 하고 싶었던 저는 인터넷을 검색하다가 답례품을 발견하게 됐습니다. 결혼식이나 돌잔치에 온 손님에게 주는 답례품처럼 남은 사람에게 곱게 포장한 선물과 편지를 전한다면 기분 좋을 것 같았습니다.
마지막 출근 날, 커다란 쇼핑가방에 선물을 가득 담고 출근했습니다. 섭섭함인지 슬픔인지 아쉬움인지 시원함인지 알 수 없는 감정들이 뒤섞여 울컥거렸습니다. 아무렇지 않은 척 평소처럼 짐을 내려놓고 책상에 앉았습니다. 마지막으로 프로그램 로그인을 했습니다. 대출 반납을 하고 책을 정리했습니다. 서고에 책을 찾으러 가고 상호대차 업무를 했습니다. 점심을 먹고 산책을 하고 저녁근무 준비를 했습니다. 주간 근무자의 퇴근 시간이 다가왔고 선물을 하나씩 나눠주었습니다. 층마다 근무하는 한 사람 한 사람을 찾아가 인사를 건넸습니다. 저녁이 되어 주간근무자들이 모두 퇴근하고 나니 도서관은 조용해졌고 좀 더 쓸쓸해졌습니다. 이제 인사할 사람도 없고 허전한 마음으로 혹시나 올지도 모를 사람을 기다렸습니다. 한 달 전 먼저 떠난 선생님이 근무종료일에 맞춰서 꼭 와주겠다고 했는데 바쁘게 지내다 잊어버렸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어둑어둑해질 무렵이 되어서 정말로 방문해 주었습니다. 너무 기뻤습니다. 마지막 상호대차 발송책을 가방에 넣고, 서고를 잠그며 업무를 마무리했습니다. 그리고 환송해 주는 선생님들의 인사를 받으며 평소처럼 시간에 맞추어 퇴근했습니다.
어색함과 긴장감이 가득했던 시간을 지나 숱한 시행착오와 예상치 못한 질문에 당황하던 순간까지 모든 것이 즐거운 추억으로 남았습니다. 낯선 책의 바다에서 허우적거리며 마음의 소란함으로부터 해방되었던 시간들이었습니다. 헤엄을 익히기 위해 집중해야 했고 덕분에 마음은 평화로울 수 있었던 시간. 파도처럼 밀려왔다 사라지는 책들과의 씨름이 오히려 잠시 숨을 고르게 해 주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딘가에 꽂혀 있을 아쉬움의 책갈피를 곧 다시 찾으러 오고 싶습니다.
초보 사서의 나날들에 안녕의 인사를 건네며, 모든 순간과 스쳐간 사람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유난히 뜨거웠던 한 여름의 햇살로부터 나를 보호해 주었던 천국 같은 도서관에서 쿨한 도캉스(도서관바캉스) 잘 보냈습니다.
초보사사의 일기를 읽어 주시고 응원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