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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라 Jan 19. 2023

설거지에 대한 몇 가지 생각

일상에세이

사진 픽사베이




J 작가의 ‘접시를 깨뜨리자’를 읽고 나서 수필 동아리 회원들은 서로의 단상을 나누기 시작했다.


‘접시를 깨뜨리자’는 작가가 오랜 직장 생활을 그만두고 친정 엄마와 함께 살면서 겪게 되는 집안일 적응기를 설거지를 통해 위트 있게 풀어냈다. 옛 가수의 노래가사를 차용해 “접시를 깨 드리자 접시를 깨뜨린다고 세상이 깨어지나.”라고 신나게 외치고 있다.


작가는 설거지가 빨리 헤치어야 할 일, 중요하지 않은 일, 시간을 빼앗기는 일이라고 생각하며 서두르고 급하게 하다 보니 그릇의 이가 나가기도 했다고 한다. 이런 이야기에 단상을 나누는 이들은 하나 둘 자신만의 설거지에 대한 철학을 풀어내기 시작했다.


자신이 생각하는 설거지는 하나의 ‘명상 시간’이라고 말하는 이가 있다. 그릇을 깨끗이, 천천히, 꼼꼼하게 닦으면서 생각에 잠기고 깨끗한 그릇에 밥을 먹을 가족을 생각하는 기쁨으로 힘든 줄 모른다고 한다. 도리어 그릇을 닦는 시간은 바쁜 일상에서 쉬어가는 시간이라고 한다.


어떤 이는 설거지를 하는 동안 꼿꼿이 발을 세우고 있으면 오늘 하루의 운동량을 채우게 된다고 한다. 설기지도 하고 운동도 하며 가족을 위해 기쁨으로 일하니 일석삼조이상의 효과를 보고 있다고 한다. 이런 이야기를 듣고 있잖니 내 머릿속도 한 때는 설거지를 기분 좋게 했던 기억으로 돌아가 본다.


온갖 재료들을 모아 다양한 요리를 선보이고 기쁨을 얻는 것보다 깨끗하게 그릇을 닦는 것을 편하게 생각했던 때가 있었다. 여러 사람이 모인 곳에서도 식사가 끝나면 벌떡 일어나 그릇을 치우고 설거지를 하는 것이 어렵거나 힘들지 않았다.


그런데 그것도 몇 십 년째 하다 보니 조금은 지겨워졌다. 몸이 예전 같지 않아서 일수도 있다. 조금만 설거지를 하고 나면 어깨며, 허리가 쑤시니 가득 쌓인 설거지는 마음을 힘들게 했다.

그래서 몇 가지만 설거지거리가 생겨도 바로바로 닦아서 처리하곤 한다. 식기세척기가 있어도 사용해버릇하지 않아서 그런지 모아두는 것보다 그릇이 하나이든, 컵이 둘이든 바로 닦아 놓는 것이 덜 힘들고 지치지 않는다. 이렇게 닦아 놓은 그릇들에 팔팔 끓인 물을 한 번 부어주면 온 세상이 모두 깨끗해지는 것 같고 뽀득거리는 그릇의 느낌이 좋기도 하다.



사진 픽사베이




우리는 설거지에 대한 이야기를 읽으며 내 삶의 설거지를 생각하며 모두 철학자가 된다. 느끼고 깨닫고 마음을 살피고 서로를 알아간다. 누군가에게는 귀찮은 일이 다른 이에는 쓸모 있는 일이 되고, 그래서 그 일이 귀찮았던 사람은 귀찮은 일에 대한 쓸모를 찾아볼 생각을 하게 한다. 함께 글을 쓰고 나눈다는 것은 이런 기쁨을 맛보기 위함이 아닐까?


사사로운 것들, 그까짓 것들로 치부되어 버리는 일, 우리는 그런 일에서 마음을 터놓고 마음을 나누고 기쁨을 얻는다. 글을 쓴다는 것은 거창할 것도 없이 별거 없는 하루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기도 하고 숨어 있는 아름다운 것들을 찾아내기도 한다. 혼자 쓸 때는 심오함이 없는 내 글에 스스로 부끄러워하기도 하지만 나눌 때 농익는 맛이 느껴진다. 새삼 글쓰기가 좋아지는 시간이었다.


오늘도 쓰길 참 잘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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