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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라 Feb 17. 2023

라면 다 너 때문이다


라면 하면 여러 가지 떠오르는 장면들이 많지만 분식점  플라스틱 그릇에 파가 송송 올려진 라면이 떠오른다. 지금은 언제라도 끓여 먹을 수 있지만 되도록 자제하다 보니 생각만 해도 군침이 돈다. 특히 한 밤중에 출출해지면 더 맛있을 것만 같은 라면 한 그릇이 생각나는 건 어쩔 수 없다.



밤에 먹는 라면 한 그릇


학원에서 늦은 밤 귀가하는 아이의 카톡

'엄마! 편의점에서 왕뚜껑 한 사발 사갈까요?'

이런 유혹에는 안 넘어갈 수가 없다.

아이들이 라면 먹는 것을 말려야 하지만 오히려 내가 그 유혹에 약하다. 

왕뚜껑이나 사발면 같은 컵라면도 맛있고 아이들은 불닭 종류를 좋아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라면은 역시 끓여 먹는 봉지라면이 제맛이다.




남편은 가끔 라면을 끓여 먹게 되면 뭔가 추가해서 아주 맛있는 라면을 만들어 주겠다고 하는데

나는 그냥 봉지에 담긴 그대로 끓인 라면이 제일 맛있다. 거기에 계란 한 개를 풀어 고, 파를 송송 썰어 넣으면 최고로 맛있다.


아이가 고등학생이 되면서 학교와 학원을 오가는 스케줄이 빡빡하다 보니 끼니를 밖에서 대충 때울 때가 많다. 학교 주변에 마땅한 음식점이 없기도 하고 해서, 대부분 분식이나 편의점 음식을 많이 먹게 된다. 특히 라면을 좋아해서 자주 먹는다고 한다. 그러면 난 오늘은  먹었는지 물어보고 라면이라고 하면 그래도 이왕이면 건강한 것으로 먹으라고 잔소리를 하고 만다.


"아 왜 자꾸 짜증이 나지? 아 짜증 나!"

우리 집에서 성격 좋기로 인정받은 둘째 아이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가 심상치 않다. 방학을 맞았지만 조금 있으면 고등학교 2학년이 되고 그 부담감이 밀려오나 보다 싶으면서도 나도 모르게 하지 않아도 될 이야기를 하고 말았다.


"음.. 그냥 짜증이 나는 건 몸이 건강하지 않다는 건데! 잘 먹어야 해 라면 좀 그만 먹고."

"엄마! 지금 이 짜증이 나한테 문제가 있다는 거야? 그렇다고 말하는 거야?"

"엄마는 뭐든지 라면이 문제라고 하지. 아까 온 카톡 때문에 그렇다고!"


순간 나는 뭔가 말을 잘못했다는 것을 알았다.

뭔가 화가 나게 하는 원인이 있었던 모양이다.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이유가 있어서 짜증이 나고 있다는 것을. 그저 갑자기 밀려오는 감정의 기복인 줄로만 생각했다. 공부하기 싫어서 그러는 줄 알았다. 밖으로 나가서 걷고 운동도 하다 보면 스트레스를 날려 버릴 수 있을  거란 뻔한 이야기를 해버렸다. 아이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은 것이다.


평소 먹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심각하게 하고 있는 데다 간식으로 라면을 자주 먹는 아이가 걱정되어서 잔소리를 하게 된 것이다. 나는 그랬다. 얘기를 하다 보면 결국 모든 문제는 라면에게 있는 것만 같았다.



다 라면 때문이야!


다리가 아프다고 해도 라면 때문이야

유난히 피곤해하면, 라면을 자주 먹어서 그래

기억력이 떨어졌나 시험 볼 때 아는 문제를 틀렸다고 해도 라면을 많이 먹어서 그렇지 뭐

머리가 아프다고 해도 라면을 많이 먹어서 그래

나는 그렇게 생각했고 그렇게 말했다.


라면은 왜 건강하게 만들어지지 않은 것일까?

이렇게 후루룩 맛 좋고 입에 딱 달라붙는 맛인 데다 가격도 저렴하고 요리도 간편한데 몸에도 좋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런 생각들을 하며 라면을 핑계 삼았다. 어느 정도는 맞는 이야기이기도 하지 않은가?


한 번은 빵을 사러 갔다가 아이가 좋아하는 꿀 카스텔라를 샀다. 식탁 위에 올려놓았더니 불닭과 아주 잘 어울릴 것 같다며 밤참으로 또 라면을 먹는다. 그러고 보니 내가 생각해도 매운 라면 한 입 먹고 달콤하고 부드러운 카스텔라를 먹으면 그야 말고 환상 궁합일 것만 다. 제주도에 가서는 처음 보는 라면을 발견하고 신기해서 여행가방에 넣어 왔다. 끊을 수 없는 라면 사랑이다.



제주라면


꼬마 김밥과 제주 구엄닭 라면


라면!  높은 열량에 비해 영양소는 부족하니 많이 먹는 것은 좀 삼가야겠지만 꼬마 김밥과 먹는 라면 참 맛 좋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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