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보라 May 17. 2022

월요일에는 여행을 떠나요

여행, 월요일

 




이른 아침에 밥상을 차려 놓고 신발 끈을 단단히 묶은 다음 밖으로 나오는 것은 참 즐거운 일이다. 싱그러운 햇살 아래 연두색으로 반짝반짝 빛나는 나무들을 보고 상쾌한 공기를 마시며 버스 정거장으로 가는 길은 얼마나 상쾌한지 모른다.


봄꽃들의 색 색깔 피어나는 거리의 풍경은 그야말로 보고 또 보아도 감탄스럽기만 하다.

어느 집의 담장 옆을 지날 때면 언제나 나를 유혹하는 라일락의 향기는 놓치기가 아쉬워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어는 집 담장과 공원의 라일락



이렇게 좋은 날 이불속에서 나와 아침을 맞을 수 있다는 것은 감사하고도 기쁜 일이지만 그저 시간이 빨리 지나가기만을 바라는 곳으로 들어가는 것은 유쾌하지 만은 않다.

출근해서 오전 한동안 가만히 서 있어야 하는 일이 그렇게 지루할 수가 없다. 서서 운동도 해보고 시도 외워보고 머릿속으로 여러 가지 상상을 하거나 계획을 세워보기도 하지만 시간은 달팽이의 걸음 같기만 하다. 게다가 월요일엔 견디기가 조금 더 어려워진다.      


출근하는 사람 치고 월요병이 없는 사람은 없을 것 같다. 아이들도 일요일 저녁만 되면 학교 가기 싫다고 목청껏 외친다. 막상 가면 친구들도 만나고 나름 즐겁게 보내겠지만 주말에 실컷 뒹굴 거리다가 월요일 아침 일찍부터 일어나려면 그 고통이 얼마나 심할지 공감이 간다.


그래서 나는 월요일에 특별한 약속을 만들기로 했다.  친구들과 가까운 곳으로 여행을 떠나기도 하고 분위기 좋은 카페에서 커피 약속을 기도 한다. 때로는 혼자 평소에 가고 싶었던 장소를 찾아 나서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어디에 또 멋진 곳이 있지 않을까 발견해내는 재미도 가지게 되었다.     


오전 8시까지 출근해야 하는 괴로움, 조금 지루한 일을 헤치어야 한다는 고통이, 끝나고 나면 여행을 떠날 수 있다는 설렘과 기대로 한결 견딜 만해졌다. 봄꽃들이 살랑거리며 춤을 추니 나도 덩달아 마음이 들떴는지 4월이라는 계절에는 피어나지 않고 배길 수 없을 것 같다. 머리칼을 자꾸 간질이는 그 바람의 유혹을 어떻게 물리칠 수 있겠는가?   

  

그렇게 4월의 두 번째 월요일에 친구들과 첫 번째 여행을 떠났다. 행선지는 벚꽃이 한참 아름답게 핀 남산으로 정했다. 남산은 사람들로 가득했고 햇살은 따사로웠다.

예전에 월요일은 거리도 한가하고 식당에도 사람이 그렇게 많지 않았던 기억이 난다. 요즘은 어느 요일, 어느 시간, 어느 장소든 사람이 많다는 것을 느낀다.


서울로를 지나 남산으로 가는 길

 

지하철 1호선, 서울역에 내려  남산 둘레길 입구로 향했다. 주택가 언덕길을 올라가다 보니 벌써 숨이 차올랐다. 유명하다는 남산 돈가스 식당가에 도착했을 때는 점심식사를 하려는 사람들의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금강산도 식후경’인데 우리는 꼬르륵 소리가 나는 배를 움켜쥐고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으로 유명해진 계단길을 올라 팔각정이 있는 전망대에 도착했다. 서울타워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사람들을 구경하며 푸트 코트로 향했다.  

평범한 가락국수와 주먹밥, 닭튀김, 그리고 꼬막 비빔국수를 주문했다. 배가 고파서인지 예상외의 맛깔스럽고 깔끔한 식사에 감동하여 연신 감탄사를 내뱉었다.


한강과 서울 일대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곳에 듬직하게 자리를 잡은 남산은 분홍 빛 진달래와 노랑 개나리, 벚꽃과 초록 잎들이 어우러져 아름다웠다. 남산 둘레를 어슬렁거리며 걷다가, 정자에서 시원한 바람에 취해있다 보니 미처 먹지 못한 돈가스 생각이 났다. 남산에 와서 남산 돈가스를 못 먹고 간다면 많은 아쉬움이 남을 것 같다는 말들이 나와서 점심 먹은 것이 소화가 다 되기도 전에 우리는 또 식당으로 들어갔다. 배가 고프지 않은데도 돈가스는 바삭바삭 맛있었다. 배가 불러 남긴 몇 조각 돈가스는 돌아오는 길 내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이렇게 음식을 먹는 일에 빠져 계획했던 성곽 길 걷기는 잊어버리고 말았다.


김영하 작가가 [여행의 이유]에서      

"여행이란 본질적으로 여행의 성공이라는 목적을 향해 집을 떠난 주인공이 이런저런 시련을 겪다가 원래 성취하고자 했던 것과 다른 어떤 것을 얻어서 출발점으로 돌아오는 것"

이라고 언급했던 여행의 본질에 대한 말이 떠올랐다.          


우리가 남산으로 행선지를 정하게 된 것은 성곽 둘레 길 걷기의 시작으로 남산을 출발점으로 계획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정작 남산에 도착해서 음식을 먹는 즐거움과 풍경 속에서 쉬다 보니 성곽길 걷기는 잊어버리고 말았다.


나는 월요일이 시작되는 답답함과 불안함, 막연함에서 벗어나 때로는 함께, 때로는 홀로 나의 마음을 채울 매혹적인 일들을 찾고자 했고 하루를 잘 살아내고 싶은 그런 마음으로 작은 걸음을 떼었다. 걷다 보니 봄의 아름다움은 눈부셨고 우리는 더 가까워졌고 마음은 편안해졌다.


“여행은 모든 세대를 통틀어 가장 잘 알려진 예방약이자, 치료제이며 동시에 회복제이다.”


라고 한 대니얼 드레이크의 말처럼 일상에서 조금 떨어져 보는 것, 떠났다가 다시 돌아오는 것, 모든 시간이 거추장스러운 것은 비우고 따스함으로 채워주며 회복시켜주고 있었다.


남산 돈가스와 꼬막비빔국수



서울 타워, 남산에서 내려다 본 풍경


이제 봄처럼 환한 웃음으로 일상에서 만나는

사람들을 맞을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만나는 사람에게 피어나는 계절의 기쁨을 물들일 수 있길 바라본다.     

여행도 습관이 되는지 자연스럽게 다음을 계획하게 되었다. 가고 싶은 곳, 보고 싶은 곳, 함께 나누고 싶은 곳들은 다양하고 아름다운 곳도 참 많다.

내 발걸음이 또 어디로 향할지 어떤 장소에서 어떤 기쁨을 발견하게 될지 기대된다.    


      

                      

매거진의 이전글 라면 다 너 때문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