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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 Good Jul 17. 2018

아이, 낳으시겠어요?

아이를 낳아야 할 이유가 아이에겐 없다

세 아들의 아빠, 마흔살 넘은 나이지만, 아직도 나이를 초월하여 아이들과 신경전 벌이는 철없는 아빠. 아이들을 키우는 현재 진행형 아빠로서, 사실 아이를 낳아야 하는 이유에 대한 통념들은 나에게 그저 남의 이야기다.


사실, 나는 아이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아니 싫어한다는 표현이 더 맞을지 모른다. 일반적인 성인 남자가 얼굴 붉히지 않고 아이들의 장난을 받아주고, 게다가 그 아이가 자신의 자녀도 아닌 친척이나 다른 사람의 자녀라면 더욱 쉽지 않을 것이다. 쉬운 분들은 정말 존경스러울 따름이다.


아이들의 천진난만함과 장난기 가득한 그 얼굴이 귀엽고 이쁘다는 아내의 머릿속 지도와는 전혀 다른 지도를 가지고 태어난 나. 결혼하기 전에도 식당에 들어서 다른 테이블에 아이들을 보고 있노라면 자연스레 'No kids zone'을 외치고 싶은 1인이었다. 도무지 정신도 없고, 왜 이렇게 민폐인지....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아이를 갖는다는 것에는 매우 부정적인 생각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내 자식으로 낳은 아이라면 과연 내 맘에 들것인가? 외모며, 가진 성격이 어떻게 딱 내 입맛에  딱 맞을 수 있다고 확신할 수 있냐는 말이다. 단지 내가 낳았다는 이유만으로(지금 절절히 깨닫고 있는 현실이지만).


그럼 내 아이든 다른 사람의 아이든 어차피 꼴 보기 싫을 것 같은 불안감이 몰려오니 아이를 가져야겠다는 확신이 서지 않았다. 물론 요즘 같은 시대에 아이를 낳아 키우는 여러 가지 부담과 고민, 그 뻔히 보이는 고통 아닌 고통까지 생각한다면 말이다.


나와 반대로 아이들만 보면 바로 하트가 날아가는 아내는 아이를 매우 갖고 싶어 했고, 게다가 많이 낳아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이었다. 정말 나와는 정반대이다. 아이는 어차피 하나님이 키워주신다는 신념. 뭐 요즘 같아선 틀린 말은 아닌 듯하다(인간이 아이 셋을 키울 수 없는 건 맞다).


우여곡절 끝에 첫 애를 드라마틱하게 출산하고(얘기하자면 긴 이야기이다), 아내는 바로 산후풍으로 6개월을 걷지도 못하고, 무더운 7월 여름에 비닐막으로 창문을 꽁꽁 닫은 채 지내야 했다. 아이의 콧바람에도 몸이 시려온다는 아내. 그래도 아이 모유수유를 하겠다며 온갖 노력을 하는 모습을 보니, 아이에 대한 나의 마음이 왠지 미안하기도 하고, 너무 철없다는 생각마저 드는 순간.


아이는 예상대로(?) 못생겼다. 시도 때도 없이 막 울어대는 걸 보니 성격도 별로다. 물론, 이제야 알았지만 신생하는 다 그렇다고 한다. 울어대는 정도는 좀 다를 수 있다고 하지만...


첫 아이를 키우면서 정말 한동안은 하루하루가 나의 한계였고, 매 순간이 포기하고 싶은 순간들이었다. 산후풍인 아내와 막 태어난 아이 사이에서 갈팡질팡 아이에 대한 사랑이 뭔지도 모르는 초보 아빠의 서투름과 헛발질은 결국 큰 자 앞에 너무나도 작은 나를 새삼 깨닫게 하는 순간들이었다. 어린아이를 데리고 산책하는 사람들의 미소는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지 알길 없는 육아의 첫 시작이었다.


아이를 낳아야 하는지 고민하는 사람들은 낳거나 그렇지 않거나 선택 앞에 있다. 망설이고 우유부단해도 결국 선택하지 않으면 변하는 것도 없는 게 사실이다.


아이를 낳아 그 작은 핏덩이를 보듬어 안아보려고 갖은 동작을 다 취해봐도 내 큰 팔과 몸뚱이의 무기력함을 느끼고, 내가 도대체 뭘 하고 있는지 원망스러울 때, 나는 지금 사람답게 성장하고 있는 것이다. 아이는 부모가 키워서 자라는 게 아니다. 사실 자라나는 과정에 부모가 관여하고 있는 것일 뿐. 그 과정에서 부모는 '내'가 아이를 키우는 기쁨보다는 '나'를 키워주는 뭔가에 가슴 찡 함을 느낀다.


육아는 때로 고통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 '고통'은 아이를 키우는 힘듦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함께 커가고 있는 부모의 '성장통'이다. 그리고 육아의 시간이 지남에 따라 함께 오는 '행복'은 사실, 아이의 자람 속에서 함께 성장하고 있는 내 '큰 가슴'이 주는 작은 여유 때문 이리라.


아이를 낳는 것, 혹은 낳으려고 시도하면서 좌절하기도 하는 많은 이 땅의 부모님들을 볼 때, 그것은 이 세상에 태어나는 고귀한 생명의 중요함도 있지만, 부모의 길로 가기 위한 노력과 몸부림으로 성장해 가는 많은 어른들이 선택한 아름다은 '길'의 초입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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