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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 Good Jul 23. 2018

육아의 바이블은 바로 당신입니다

육아에 지친 나를 위로하기

아이를 낳아 기르는 그 첫 시작. 아이가 뱃속에서 꿈틀 되는 시기부터 부모는 궁금하다.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하는지, 뱃속에 있는 아이에게 무엇을 들려주고 무엇을 보여줘야 하는지 말이다. 바로 육아가 벌써 시작되고 있다. 그렇게 궁금함과 호기심으로 시작한 육아에 대한 관심, 육아서. 다들 한 번쯤은 읽어 봤을 법하다. 아니 육아서라는 육아서는 모조리 모아놓고 참고하고 또 찾아보면서 무언가를 찾고 있던 시절도 분명 있었으리라 생각된다.     


그러나, 나에게는 그 멋들어진 방법과 해답들은 그림의 떡과 같았다. 현재의 육아의 태도는 나의 초자아로부터 시작한다는 사실에서부터, 즉 나의 성장배경까지 다시 떠올려 아이들을 위해 나의 생각과 감정조차도 바꾸려고 했던 그 많은 시도들은 쉴 새 없이 난간에 부딪히기 일쑤였다. 괜스레, 엄하신 아버지와의 유년 기억들이 뭔가 지금의 나를 만든 것 같은 원망 비슷한 감정들의 실타래만 더 꼬여가는 느낌. 하루하루 집에 들어가기 전 오늘은 잘해보자고 다짐해 보지만, 맞닥뜨리는 현실에서 나는 어제와 별반 다를 바 없는 제자리다.     


사실,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이야 모두 똑같을 것이다. 육아가 어느덧 그 사랑의 둘레에서 함께 성장해 나가야 한다는 걸 잊은 채, 스킬이 되고 요령이 되고 남보다 잘해야 하는 방법론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아이를 키우면서 자주 들었던 소리가 ‘변해야 한다’였다. 그건 아마도 내가 살아온 내 인생과, 내가 아이를 키워야 하는 그 삶이 뭔가 자연스럽게 연결되고 있지 않다는 반증인 셈이다.       


계속된 자기성찰(?)의 시간이 흐를수록 뭔가 내가 간과한 것들이 있는 것 같았다. 바로 자기 자신의 감정을 인식하는 것. 아이들의 행동에 기인된 반응이라고 생각했던 나의 수많은 감정들이 사실은 아이들 때문이 아닐 때가 더 많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다. 감정의 인식은 스스로가 변화될 수 있는 시작이자, 그 시작은 바로 누구도 해줄 수 없는 스스로에 대한 ‘위로’에서 온다는 것이다.     


세상의 기준에 자신의 아이들을 맞추어 키우는 것이 옳지 않다는 이야기를 하면서도, 정작 그 육아의 주체가 되는 부모들이 세상의 육아 기준에 허덕이고 있는 현실은 외면되고 있는 것이다. ‘잘 자란 아이’가 아닌 ‘잘 키운 아이’에 초점이 맞춰진 세상의 육아 방법들 말이다.      


아이들의 양육 기준에 눈이 멀어, 아이들이 행복해질 수 있다는 달콤한 유혹에 우리는 정작 자신의 감정과 마음속 소리에 귀 기울이지 못하고 있다. 자신도 인식하지 못하고 지나치고 있는 내면 속 감정의 파도와, 요동치는 마음의 소리의 외면이 결국 ‘나’를 지치게 하고 있는지 모른다.      


지금도 난 아이들과 있다 보면 다양한 사건들에 ‘화’가 날 때가 있다. 그런데 가끔은 내가 왜 화가 났는지 모를 때가 많다. 그때 당시는 아이에게 화가 난 것 같은데, 지나고 보면 그게 원인이 아니라는 생각이 종종 들 때가 있는 것이다.       


아이들이 순수하게 던지는 말과 행동에 부딪히는 수많은 나의 감정의 부분들 속에서 내가 치유되지 못한 아픈 부분이 건드려질 때, 그저 ‘악’하고 외마디 소리친다. 아픈 건지 화가 난 건지 모르게 말이다. 

‘변화’되어야 한다는 강박 속에서, 감정 코칭에 대한, 자존감에 대한, 아이의 육아에 대한 수많은 책들과 글들에 공감하고 고개를 끄덕이는 순간에도, 난 내 감정이 무엇인지, 내 속에 어떤 이야기가 들리는지 귀 기울여 본 적이 있었던가?     


아이들은 순수하다. 그 첫 설렘으로 시작되고 있는 모든 감정의 씨앗들이 온전하게 땅속에 뿌리내리기 위한 첫 단계에 있다. 이미 세상 살아가며 부딪히고 상처받아 여기저기 쓰라린 아픔이 있는 어른들의 마음과는 또 다르다. 내 감정에 솔직해질 때, 소통하는 아이들의 감정들도 편견 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것 같다.    

  

가족임에도 불구하고, 부모라는 책임감과 무거움으로 내 감정의 소통의 문을 닫아 버린다면, 아이들의 감정은 더 이상 자라지 못한다. 자라지 못한 감정은 쉽게 무너지고, 쉽게 상처받는 것이다. 지금 아이들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것 보다 지금 이 순간 우리 부모에게 필요한 최소한의 것 바로 ‘위로’가 육아의 첫 시작이 아닌가 싶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숨 가쁘게 달려가고 있는 많은 부모님들에게 그 ‘위로’가 전달되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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