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세영 Jan 12. 2021

아빠의 편지

아빠의 자랑스러운 딸이 되어다오

“차가운 음식을 먹을 때나 찬물로 가글 할 때 이가 시려요.”

“이가 시린 것은 잇몸이 조금 파여서 그렇습니다.”

“왜 그런 건가요?”

“이를 세게 물고 있으면 그럴 수 있으니까 입 속에서 N을 발음하듯이 혀를 살짝 물고 계세요.”   

 

어려운 순간이 찾아오면 나는 이를 앙다무는 습관이 있다. 가령 학교에서 100미터 달리기 시합을 해야 한다던지, 힘든 시험이 있을 경우 또는 피하고 싶은 순간인데 피할 수 없는 경우가 그렇다. 안 그래야지 하면서도 이를 세게 다물고 있으니 잇몸에 압박이 가해서 조금씩 패이는 것 같다. 이를 앙다물도록 힘들거나 어려운 상황에 처했을 때 그 상황을 이겨내기 위해 나는 마음속으로 생각한다.    


‘자랑스러운 아빠 딸이 돼야지.’    


가끔 힘들 때, 용기가 필요할 때 꺼내 보는 것이 있다. 바로 아빠가 돌아가시기 전에 남겨 놓으신 편지다. 작성된 날짜는 1991년 3월인데 아빠가 같은 해 5월에 돌아가셨으니 언젠가 그런 날이 올 것이라는 것을 알고 계셨는지도 모르겠다.     


‘한 번 하고자 마음먹으면(마음에 결정이 되면) 그것을 이루고자 할 동안에 많은 고난과 게으름과 실망이 있어도 용기를 잃지 않고 노력하면 이룰 수가 있어. 뭐든지 용기와 희망과 노력만 있으면 되는 거야. 꼭 아빠가 바라는 그런 멋진 내 아이들이 되어다오. (중략) 그리고 무슨 일이든지 감사하는 마음으로 일을 해야 한다. 일이란 모든 행동과 말이 포함된다. 알겠지?’    


30년 전 돌아가신 아빠는 그 해 나이가 만 40세였다. 내가 올해 40살이 되니 얼추 아빠가 내 나이쯤에 돌아가셨다고 생각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아빠는 그 젊은 나이에 많은 것을 알고 계셨다. 살아 계셨다면 아빠에게 많은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을 것 같다는 생각에 아쉬운 마음이 크다.

내가 최근에 깨닫기만 하고 실천하지 못하는 것들을 아빠는 이미 30년 전에 깨닫고 우리에게 메시지를 남겨주셨다. 몇 번이고 아빠의 편지를 읽어왔지만 왜 그 시절에는 아빠의 메시지를 깨닫지 못했을까, 이런 딸을 아빠는 얼마나 안타깝게 바라보고 계셨을까 하는 생각에 효도를 하지 못한 죄스러움이 느껴졌다.    


아빠는 공부를 꽤 잘하셨다고 들었다. 아직도 기억에 남는 건 어느 겨울 아빠 방에서 아빠를 사이에 두고 언니와 아빠 옆에 누워 시간을 보냈던 것이다. 암산이 빠르셨던 아빠는 우리가 아무 숫자나 부르면 손가락을 몇 번 까딱 거리시고는 금세 답을 말씀하셨다. 진짜 정답인지 궁금해서 계산기를 누르며 숫자를 불러보아도 아빠의 계산은 늘 정답을 말씀하셨다. 그런 아빠가 우리를 두고 먼저 떠나시며 ‘아빠의 자랑스러운 딸’이 되어달라고 하셨다.     

아빠가 말씀하시는 자랑스러운 딸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아이에게만큼은 자랑스러운 엄마가 되려고 노력하고 있다. 자녀는 부모의 모습을 보고 따라 하는 그림자라는 이야기를 본 적이 있다. 비록 지금은 아이가 자랑스러워할 만큼 좋은 모습을 보이고 있지는 않지만 조금씩 노력해보려고 한다. 아빠가 말씀하신 고난과 게으름, 실망이 있어도 이겨내고 용기와 희망을 갖고 노력하면서 그리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보려고 한다. 언젠가 아이가 조금 더 크게 된다면 할아버지의 편지를 함께 읽으며 인생의 지혜를 나누고 싶다.

작가의 이전글 세상에서 가장 특별한 선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