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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영 Jan 13. 2021

둘이라서 외롭다고 생각했다

혼자 남겨지면 음식을 마구 먹어댔다

 

어릴 때부터 과자나 사탕 같은 것을 많이 먹지 않아 그렇게 먹고 싶다는 생각은 별로 없었다. 그 덕분인지 결혼하기 전까지는 마르지는 않았어도 보통 체형을 유지했고, 새벽에 수영을 다녀도 살은 빠지지 않았지만 옷을 살 때 굳이 사이즈를 재보지 않아도 될 정도였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 옷이 살이 덜 쪄 보일까, 어떤 옷이 몸에 맞을까를 궁리하며 옷을 입어야 할 정도로 몸이 불어났다. 


시작은 모유수유였을 것이다. 모유량이 많지 않은 나는 딱 내가 먹은 만큼 모유가 나왔다. 아이가 분유를 먹으려고 하지 않아서 모유를 먹어야 했는데 밥을 먹지 않으면 아이가 배부르게 먹을 수 없었다. 식사 때가 되면 밥을 먹어야 했고, 먹고 나면 아이 옆에서 잠시 눈을 붙여야 했다. 먹고 소화시킬 시간도 없이 바로 누워 잠들었던 것이다.


아이가 크면서 모유를 끊은 후부터는 맥주와 친구가 되었다. 하루 종일 아이를 키우면서 힘들었던 것을 푸느라 마셨고, 하루 종일 대화다운 대화 한마디 하지 못한 외로움을 삭이느라 마셨다. 아이를 재우고 나면 으레 치러야 하는 의식처럼 매일 그렇게 맥주로 마음을 달랬다. 그리고 아이가 어느 정도 큰 다음부터는 집에 있는 모든 음식들로 그 허전함을 채우기 시작했다. 


아이가 커서 혼자 나가서 놀거나, 아이 아빠가 와서 아이를 놀아주는 날에는 집에서 혼자 쉬거나 집안일을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아이만 없으면 뭐든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배가 고픈 것도 아닌데 마구 먹기 시작했다. 아이가 먹다 남긴 간식부터 그냥 이것저것 다. 먹을 수 있는 건 먹었던 것 같다.


지나고 보니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아이와 함께 있을 때는 그렇게 자주 배가 고프지도 않았고, 간식을 먹고 싶다는 생각이 안 들었는데 집에 혼자 있을 때면 그렇게 군것질이 하고 싶었다. 그리고 옛날 생각이 떠올랐다. 

중고등학교 시절 사이다를 자주 마셨다. 무슨 이유에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사이다를 마시면 속이 뻥 뚫릴 것 같았다. 답답한 기분이 들어 자주 사이다를 마셨는데 그래도 답답함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리고 자주 허전한 마음에 간식들을 많이 먹었다. 하지만 사이다를 마셨을 때처럼 그 허전함이 사라지지 않았다. 먹어도 배가 고프고 허전했고, 사이다를 마셔도 답답했다.


어려서 몰랐었다. 그 답답한 기분이 외로움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처음에는 아이와 둘이라서 외롭다고 생각했다. 사람 만나는 것을 좋아하는 나는 아이를 맡길 곳이 없어 친구를 만날 수 없었다. 아이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아이만 없다면 사람들을 만나며 외롭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이를 낳으면 내 편이 생기고 외롭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과거의 나를 원망하기도 했다. 


안타깝게도 그것은 나의 완전한 착각이었다. 나는 아이가 없을 때 더 외로웠던 것이다. 누구든 내 옆에 있다는 무의식이 나를 외로움에서 구해주었다. 그러다가 아이가 잠시라도 집을 비우게 되면 외로움을 참지 못하고 허전한 마음을 음식으로 채우려고 했다. 사실 그것을 조금씩 깨달으면서도 아직 기분대로 음식을 먹는 습관을 버리지 못했다. 자꾸 다른 이유를 만들고 있었다. 오늘은 아이가 나를 화나게 했으니까, 오늘은 일이 너무 힘들었으니까, 오늘은 오랜만에 이게 먹고 싶으니까. 


요즘은 일부러 간식을 사놓지 않는다. 아이가 먹고 싶은 것 중 내가 싫어하는 것만 사놓거나 고구마, 삶은 계란 등 건강한 간식을 준비해놓는다. 아이에게도 건강한 간식을 주고 싶었고, 기분대로 음식을 소모하는 내 습관을 고치고 싶었다. 오늘은 점심으로 샐러드를 먹고, 학교를 마치고 돌아온 아이에게도 샐러드를 해주었다. 간식으로 군고구마를 먹었다. 조금씩 환경을 바꿔나가다 몸도 마음도 좋아질 것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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