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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영 Jan 21. 2021

할머니라는 작은 세계

버리지 않고 키워주셔서 감사해요

“친구야, 우리 아버지 돌아가셨어.”

“빈소가 어디야?”

“다 정리했고, 미안해서 연락 못했어.”

“그런 일이 있으면 연락을 해야지!!”

“늦게 연락해서 미안해.”

“괜찮아? 장례 치르느라 고생 많았어.”     


어제저녁 친구로부터 오랜만에 연락이 왔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이미 삼우제까지 다 치렀다며 늦게 연락해서 미안하다고 했다. 뭐가 미안하냐고 묻고 싶었지만 미안한 이유를 알 것 같아 묻지 않았다. 재작년에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지인들에게 연락을 돌렸는데 이 친구는 그때 아무 답도 없었던 것이다. 그동안 서운한 마음이 남아 있었는데 어제 연락을 받으면서 서운한 마음보다는 ‘내가 자주 연락을 해봤어야 했는데’ 하는 미안하고 슬픈 마음이 들었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지 벌써 1년 반이 되었는데 아직도 실감 나지 않는다. 벌써 그렇게 시간이 지나버렸다는 것을 깨닫고 가끔 놀라기도 한다. 연세가 많으셨던 데다 약 한 달간 병상에 누워계시다 돌아가셔서 마음의 준비를 늘 해왔어도 할머니의 부재에 대한 슬픔은 말로 할 수 없을 만큼 컸다.     


어린 시절의 나는 할머니를 무척 사랑하는 꼬마였다. 유아원에서 간식이 나오면 먹지 않고 그대로 갖고 와서 할머니와 나눠먹었다. 잠을 잘 때면 할머니 옆에는 언니가 누웠고, 나는 할머니 발치에 누워 거친 발을 꼭 안고 잠들었다. 하지만 자라면서는 무척 속 썩이는 못된 손녀딸이 되었고, 사랑하고 감사하다는 말 한번 제대로 한 적이 없었다. 


성인이 되어서는 말씀이 다소 거칠고 사고방식이 나와 많이 달랐던 할머니로부터 도망치고 싶었다. 그래서 꿈을 이루기 위한다는 핑계로 워킹홀리데이를 신청해 일본으로 무작정 떠나기도 했다. 대화 소통이 원활하지 않은 타국에서 혼자 살아간다는 것은 무척 외로운 일이었다. 미웠던 사람들도 보고 싶을 만큼 힘들었다. 결국 첫 도주는 실패하고 말았다. 그리고 결혼을 하게 되었다. 완전히 할머니로부터 독립을 가장한 도주를 하게 된 것이다.     


그렇게 할머니와 떨어져 지내다 보니 할머니와 보낸 시간들이 종종 떠올랐다.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우리 집은 할머니가 갖고 계셨던 집에서 나오는 월세 조금과 부업으로 생계를 유지하지 않았나 싶다. 할머니가 부업거리를 가져오시면 언니와 나는 용돈벌이로 할머니 부업을 도왔다. 레이스 끝에 달린 작은 실밥을 쪽가위로 자르는 일을 자주 했고, 아이들 내복에 달려있는 택 묶는 부업도 했었다.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나서는 내가 학교 앞 문방구에서 꼬마 사탕 포장하는 일을 받아와서 온 가족이 겨울 내내 온 집안에 단내를 풍기며 사탕을 포장하기도 했다. 그렇게 해서 받은 돈으로는 같이 아이스크림도 사 먹기도 했다.      


연세가 많으셨던 할머니는 치아가 좋지 않아 연한 음식을 주로 드셨다. 특히 연시를 좋아하셨는데 매년 겨울이 시작될 때면 할머니의 첫 연시는 꼭 내가 사드렸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두 번의 겨울을 맞이했다. 시장에서, 마트에서 연시를 보게 되면 할머니 생각에 마음이 먹먹해진다. 할머니가 좋아하셨던 연시. 이제는 사드리고 싶어도 사드릴 수 없는 연시. 일부러 시선을 피해 보지만 주황색의 예쁜 빛깔을 외면할 수가 없다. 지금도 입 밖으로 꺼내 소리 내서 말하기 어렵고 부끄럽지만 그래도 꼭 말하고 싶다.      


“할머니, 정말 많이 사랑하고 또 감사해요. 제가 이렇게 자랄 수 있었던 것은 모두 할머니의 사랑 덕분이에요. 엄마가 집을 나갔을 때, 아빠가 돌아가셨을 때 우리를 버리지 않고 키워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그런데 늘 못되게 말하고 못나게 굴어서 죄송해요. 이제 그곳에서는 아프지 마시고 꼭 행복하세요. 그리고 할머니가 잘 키워주신 작은 손녀가 열심히 잘 살아가는 모습 지켜봐 주세요. 할머니,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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