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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영 Mar 11. 2021

엄마는 잘 자라고 있습니다

“혜미, 잘 자.”

“그래, 진우도 잘 자.”

“엄마, 엄마는 엄마한테 ‘혜미, 잘 자’라는 말 들어본 적 있어?”

“아니~ 그런 말 들어본 적 없는 것 같아.”

“그래? 그럼 내가 해줄게. 혜미, 잘 자~”

“고마워. 진우도 잘 자~”     


얼마 전 침대에 누워 잘 준비를 하면서 아이 내 이름을 부르며 잘 자라고 말해주었다. 그 말을 듣고 뭔가 알 수 없는 감정이 마음속에서 휘몰아쳤다. 아이는 가끔 어른처럼 말한다. 그때마다 어린 녀석이 무슨 말을 저렇게 어른스럽게 하나 싶었는데 되돌아보면 그 말들이 나에게 많은 힘이 되고 있다. 곱씹고 다시 생각해보고 그때를 상상하며 그 말들을 마음속에 잘 담아둔다.      


한 번은 아침에 일어나 부엌에서 아침 준비를 하는데 아이가 투덜거리며 부엌 불을 켜고 들어가는 것이다. 너무 갑작스러워 따라가서 왜 그러느냐고 물었다. ‘불 켜고 일해.’ 퉁명스럽지만 따뜻하고 거칠지만 속 깊은 아이의 한마디에 울컥했지만 ‘알겠어. 불 켜고 할게.’라고만 대답했다. 그날 아침 부엌의 빛나는 공기가 지금도 떠오른다.      


아빠와 함께 살지 않는다는 것이 아이를 너무 빨리 철들게 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된다. 늘 입에 달고 사는 말은 ‘엄마를 도와주고 싶어.’라는 말이다. 자기 딴에는 이제 다 컸다고 생각하는지 마트에서 장보고 돌아오는 길이면 무거운 짐은 자신이 들겠다고 고집을 부린다. 아이가 들기에는 무겁고, 아직 성장이 끝난 상태가 아니라 성장에도 문제가 생기는 것은 아닌지 걱정되어 말리지만 아이는 늘 고집을 부린다. 자신이 엄마를 돌봐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 마음이 짠하고 미안하다.      


“엄마 힘드니까 내가 할게.”

“괜찮아~ 이건 진우가 하기 힘드니까 엄마가 할게.”

“아니야! 엄마 힘들잖아. 내가 도와줄게.”

“지금은 진우가 해야 할 일을 하는 게 엄마 도와주는 거야.”  

   

아이의 마음은 늘 고맙고 사랑스럽다. 힘든 엄마를 도와주고 싶은 마음, 엄마가 힘들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예뻐서 늘 그 마음을 다 받아주고 싶다. 하지만 자신의 할 일은 뒷전인 채 나를 돕겠다고 나서는 것을 말리는 것은 여전히 힘들다. 해야 할 일을 먼저 해놓고 다른 일을 해야 한다는 나의 강박관념이 아이의 예쁜 마음과 부딪힌다. 무엇이 먼저인지 나도 매번 헷갈린다. 그리고 부딪힘은 서로 감정이 상하는 것으로 끝이 난다.     


가끔은 그런 생각이 든다. 내가 아이를 키우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나를 키우고 있는 것은 아닐까. 혼자서 하기 힘든 일은 다른 사람의 힘을 빌려도 된다고. 마음 시리게 외로울 때는 자신에게 안기라고. 할 일을 다 해야 하는 강박관념을 내려놓고 조금은 마음 편히 살아가라고. 그때그때 나에게 말해주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촉촉해진다.


아이가 속 썩이고 말을 듣지 않을 때마다 답답한 마음이 든다. 내가 정해놓은 규칙대로 계획대로 되지 않으면 화가 나서 견딜 수가 없다. 사실 아이가 말을 듣지 않는 것보다 할 일을 해놓고 놀아야 한다는 나의 규칙이 무너지는 것이 힘든 것이었다. 아이는 그때마다 짜증과 투정으로 ‘엄마, 그렇게 자신을 가두며 힘들게 살지 마.’라고 이야기하는 것 같다. 그리고 엄마 잘 자라라고 잔소리하는 것 같다. 그 덕분에 나는 조금씩 자라고 있다. 나로서, 엄마로서.     


아들~ 엄마는 오늘도 잘 자라고 있어.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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