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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영 Mar 09. 2021

엄마가 있었다면 듣고 싶은 말

잔소리

“코피가 자꾸 나니까 비타민 좀 먹어.”

“알겠어.”

“알겠다고만 하지 말고 지금 먹어.”

“알겠어. 지금 먹으면 되잖아.”     


하루에 두 번씩 아이와 실랑이를 한다. 비타민을 먹이려는 나와 내 눈을 피해 비타민을 숨기는 아이. 코피가 자주 나는 아이는 밤이고 낮이고 하루에 몇 번씩도 코에 휴지를 돌돌 말아 넣고 있었다. 피아노 학원에서 코피가 마스크에 묻어 곤란했던 적도 있고, 새벽에 코피 묻은 이불이며 베갯잇을 애벌빨래하기도 했다. 그러다 약사 선생님의 추천으로 비타민을 먹기 시작했는데 그것을 먹고 나서는 밥도 잘 먹고 어지럽지도 않다고 하고 무엇보다 코피를 흘리지 않아 잔소리를 해서라도 먹이고 있는 것이다.     


나와 아이의 하루는 잔소리로 시작해서 잔소리로 끝이 난다. 일어나라, 밥 먹어라, 학교 갈 준비 해라, 양치해라, 숙제해라, 좀 치워라, 씻어라, 얼른 밥 먹어라... 아이의 독서토론 수업에서 엄마에게 부탁하고 싶은 말이 잔소리를 하지 말아 달라는 것일 정도니 내가 얼마나 잔소리를 심하게 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냥 두기에 아이는 너무 한가롭다. 이렇게 잔소리를 해도 겨우 10퍼센트 정도만 하는 상황이다.     


아빠가 살아계실 때 나는 아빠에게 많이 혼나기도 혼났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오금과 팔꿈치 안쪽을 긁어서 피딱지가 잔뜩 생긴 것이다. 그것을 긁지 말라고 많이 혼났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계속 긁어 피딱지를 만들었던 것 같다. 그리고 구구단을 외우느라 많이 혼났다. 구구단을 시켰는데 못 외우는 날에는 손바닥이나 종아리를 맞았다. 할머니께도 잔소리를 많이 들었다. 일찍 들어와라, 치워라, 이거 해라, 저거 해라. 왜 그렇게 잔소리가 듣기 싫었는지 모르겠다. 잔소리를 하는 할머니에게 맞서 싸워보기도 했지만 할머니는 늘 같은 잔소리를 하셨다.      


할머니의 잔소리는 결혼하고 나서야 끝이 났지만, 그렇게 잔소리가 끝나고 나니 그리워지기 시작했다. 꼭 할머니의 잔소리가 아니더라도 누군가 아이 말고 너부터 챙기라고 말해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네 건강 좀 챙기고, 행복하게 살라고 말해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에게는 늘 건강에 좋지 않으니 과자나 초콜릿은 먹지 말고 과일 먹으라고 하면서 정작 나는 맥주를 끊지 못하고 있다. 일찍 자고 운동을 열심히 해야 건강하다고 하면서 나는 아이 시간에 맞추느라 운동조차 제대로 못하고 혼자 쉬고 싶어 밤늦도록 잠 잘 생각을 하지 않는다. 꼭 누가 나에게 잔소리라도 해달라고 반항하는 듯 말이다.      


나에게 엄마가 있다면 다른 말 다 필요 없이 잔소리만 해주면 좋겠다. 골고루 안 먹는다고 타박하면서도 밥 잘 챙겨 먹으라며 따뜻한 된장찌개를 끓여주고, 늦게까지 안 잔다고 등을 때리면서도 무슨 일 있냐고 물어봐주면 좋겠다. 무슨 맥주를 그렇게 마시냐고 소리를 지르면서도 술친구가 되어주고, 성가시다고 하면서도 생선가시를 발라 내 밥숟가락 위에 얹어주면 좋겠다.     


아이는 내 잔소리가 참 듣기 싫을 것이다. 나도 아이에게 잔소리하는 것이 싫다. 하지만 오늘도, 내일도 나는 아이 옆에 붙어서 잔소리를 할 것이다. 잔소리는 미움이 아니라 사랑하는 마음에서 시작되는 것을 이제야 알았기 때문이다. 다만 아직 어린아이니까 잔소리를 좀 줄이긴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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