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길은 걸으면서 만들어진다

[나는 산티아고 신부다], 인영균 끌레멘스

by lee나무
카미노를 걷는 사람은 저마다 이유가 있다. 어떤 이는 단순히 걷는 것이 좋아서 산티아고 순례를 나선다. 지금 삶에서 멈추고 미래를 고민하기 위해서 온 사람도 있고, 자신의 일상과 책임에서 벗어나고 참된 자아를 발견하기 위하여, 처음의 모습으로 거듭나는 것을 배우기 위하여 멀리 길을 떠나온 사람도 있다. 카미노에 있는 사람은 그 동기가 무엇이든 상관없이 모두 순례자이다.(89쪽)


산티아고 순례길의 유래, 역사 그리고 순례길을 만들고 지키고 이어온, 이어오고 있는 많은 사람들, 그리고 지금을 살고 있는 우리들 자신에 관한 이야기다.


예수님의 열두 제자 중 한 명인 성 야고보에서부터 1517년 마르틴루터에서 시작된 종교개혁의 영향으로 철퇴의 위기를 맞고, 1789년 프랑스 대혁명 영향으로 많은 수도원과 순례자 숙소가 문을 닫아야 했던, 1884년 레오 13세 교황이 산티아고 대성당 무덤에 있는 유해가 1~2세기 산티아고(성 야고보 사도의 스페인식 이름이다) 사도의 것임을 의학과 과학기술을 이용한 조사로 밝힘으로써 카미노를 다시 소환했으며, 20세기 들어 점차 살아나 1993년 유네스코 인류 문화유산으로 등재되기까지, '산티아고 카미노의 긴 여정'이, 그리고 인영균 신부님이 40일간 걷고 순례하며 체험했던 카미노와 길 위에서 만났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푹 빠져들게 만든다.




산티아고.

나는 산티아고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다. 스페인 북부의 순례길 정도로, '언젠가 걸어보고 싶다'고 막연하게, 다소 낭만적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산티아고'. 이 낱말의 감각이 내 마음 언저리를 흔들기도 했다. 언어가 주는 느낌에 다소 민감한 편인 나는 '산티아고'의 의미도 모르면서, 느낌을 정확하게 말로 표현할 수도 없으면서, 마치 음계의 솔처럼 맑고 기분 좋은 운율을 좋아했다. 산티아고가 예수님의 12제자 중 한 사람인 성 야고보 사도의 스페인식 이름이라니. 부끄럽게도 나는 스페인 북부의 한 지명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다. 막연하게, 또 종종 우리는 '은퇴하면 우리도 산티아고 걸어볼까' 하며 불쑥 이야기를 꺼내곤 했다. 산티아고가 지명인지 사도의 이름인지도 모르면서 말이다. 그리고 인영균 끌레멘스 신부님의 <나는 산티아고 신부다>가 출간되었음을 알고 인터넷서점에서 미리 보기를 한 후 '여느 산티아고 순례길 이야기와 비슷하겠지' 하며 나의 좁은 편견(그때 나는 브런치 등에서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접하고 있었다.)으로 책을 사지 않았다. 가끔 책 표지가 눈에 들어왔고, 궁금함을 마음속에 넣어둔 채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 날, 내 친구 모니카에게서 책 선물이 날아들었다. 그렇게 신부님의 '산티아고 카미노'를 은총처럼 만나게 되었다.


나는 가족을 제외한 다른 사람들에게 나 자신에 대해 '나는 어떻다, 나는 이런 사람이다'와 같이 별로 정의하지 않는 유형이다. 만나는 사람에 따라 '내 안의 다양한 나' 중에서 그 사람과 맞을만한 '퍼즐 한 조각'을 용케 꺼내어 맞추어지는 유형이랄까. 하지만 요즘 들어서 나를 이렇게 소개하곤 한다. "걷기에 진심인 사람입니다." 나는 걷기가 좋다. 걸어면서 나는 내 주변의 세상을 오롯이 느낄 수 있다. 그리고 나와 만난다. 아마도 산티아고 순례길이 내 안에 자리 잡게 된 까닭도 이와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이다. 결국 걷기는 "자기 내적인 세계를 발견하는 영적 수련"이 아닐까 하는.




인영균 끌레멘스 신부님은 산티아고 카미노 중에서도 신부님께서 순례자를 돌보았던 '라바날 수도원'이 있는 프랑스 카미노 걷기를 추천한다. 프랑스 카미노에는 여러 나라에서, 여러 이유와 목적으로 걷는 많은 순례자들이 있고, '다른 순례자와의 만남 속에서 순례의 깊은 맛을 느낄 수 있다'라고 조언한다. 그리고 '은의 길'과 같이 사람이 드물고 힘든 길을 걷는 사람들에게(사람들이 많은 것이 싫다며 결국 홀로 힘들기로 이름단 '은의 길'을 걷다 중도에 포기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순례는 일부러 고행하러 가는 길이 아니라, 생명수를 마시러 가는 길이어야 한다.'고 안내한다.


그리고 신부님께서 직접 걷고 체험한 카미노를 따라 함께 걸으며 나는 어느새 '산티아고 카미노' 길 위에 있다. 흰 종이 위 검은 글자는 길이 되고, 바람이 되고, 산맥이 되고, 성당이 되고, 수도원이 되고, 사람이 되고......

몸의 카미노: 프랑스 카미노 중 생잔피에드포르에서 부르고스까지 281.8Km가 몸의 카미노 구간. 해발 1000미터가 넘는 피레네산맥을 넘어서 부르고스까지 체력소모가 매우 큼. 우리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몸을 통해 만난다. 몸은 나의 한계, 약함과 불완전함을 상징한다. 육체의 한계를 통해 유한한 존재로서의 나를 대면하는 것. '카미노는 내 마음대로 요리할 수 없는, 내 뜻대로 되지 않는 '날것', '생것'이다. ...... 카미노는 사람을 봐주지 않는다. 비가 세차게 퍼부어도, 눈이 펑펑 쏟아져도, 바람이 심하게 불어도, 햇살이 얼굴을 태워 버릴 듯 강렬해도, 돌길투성이라도 한 걸음 한 걸음씩 내디뎌야 한다. 그 현실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며 걸어야 한다.(105쪽)


책 속에서 산티아고 카미노를 걸으며 발견하고 건져낸 '문장들'은 내 삶의 순례길에 고스란히 가져와 곁에 두고 꺼내보며 방향을 잃지 않는 지표로 삼아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메모한 내용들이다.


우아하고 고상한 멋진 순례를 꿈꿨는데 현실은 악몽이었다고
하지만 함께 유숙할 그 사람들을 내가 선택할 수 없다. 같은 길을 가는 순례자로 받아들여야 한다. 낡은 알베르게 시설을 불평해도 이 또한 부질없는 짓이다.
카미노에서는 필요만 남고 불필요는 내려놓게 된다.
NO PAIN, NO GLORY
몸이 편해지는 대가엔 자유를 팔아야 하는 잔인함이 숨어 있다.
자기 짐을 멘다는 것이 순례자의 기본
카미노가 '날것', '단순함의 연속'임을 받아들일 때 진정 카미노는 시작된다.


결국 일상의 모든 것을, 고통마저도 받아들이며 섭리에 순명하고 감사할 때 내 삶의 순례는 완성되는 것이 아닐까.

정신의 카미노: 부르고스에서 라바날델카미노 251.2Km 구간.
메세타는 여름에는 땡볕을 피할 곳도, 겨울에는 차가운 바람을 피할 곳도 없는 텅 빈 평원이다. 하늘, 땅 그리고 나밖에 없다. 앞서가는 사람이 점처럼 보였다 사라졌다 한다. 뒤에 오는 사람도 점처럼 보인다. 진정 외롭다. 부부가 같이 걸어도 외롭다고 한다. 나 자신이 철저히 혼자라는 엄중한 진리를 몸뿐 아니라 마음으로도 느낀다. 순례자는 철저히 혼자다. 이 세상에 홀로 던져진 존재임을 철저히 체험한다. (118쪽)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사람들은 참 많이 운다..... 서러워서 울고 행복해서 울고, 아파서 울고 기뻐서 울고, 미워서 울고 사랑스러워 운다. 주위에 사람이 보이지 않으면 실성한 사람처럼 하늘을 향해 소리를 지르기도 하고 큰 소리로 웃기도 한다...... 산티아고 순례자는 앞을 향해 걸어가면서 자연스럽게 지나온 길을 되돌아보게 된다. 그 과정에서 내 안에 잠재된 '기억과의 대면'이 일어난다. 그것이 생각으로 터져 나온다. 심리학에서 생각은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저절로 생겨나는 것이다. 자신이 원해서 만나는 것이 아니라 그냥 들이닥친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카미노에서는 다양한 기억과 만나게 된다.(124~125쪽)


눈물. 울었다. 나도 울었다.

공지영의 수도원 기행 2를 읽고 난 뒤 찾은 왜관 수도원에서, 2층 성당을 구경하기 위해 올라갔는데, 우연히 12시 낮기도 시간이어서, 얼떨결에 수사님께서 건네주시는 성무일도서를 받아 들고(나는 그때 비신자였다.), 기도석에 앉았는데, 눈물이 하염없이 쏟아져서 멈출 수 없었다. 내 깊은 곳의 아픔과 후회가 '들이닥친' 순간이었을까. 그렇게 쏟아내고 나면 그렇게 또 마음이 비워지고 내려놓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영혼의 카미노: 라바날델카미노에서 산티아고데콤포스텔라 244.6Km 구간
나는 순례자에게, 카미노는 무작정 걷거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아직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자신에게 베풀어진 것을 선물로 발견하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한다.(136쪽)


결국 걷고 걸으며, 내 옆에 있는 바로 그 사람이, 살아있는 이 순간이, 모든 계절이, 고통마저도 나를 성장시킨 선물임을 발견하게 되고, 삶에, 일상에 감사하며 남은 순례길도 기쁘게, 때로는 기다리며, 때로는 견디며 걸어갈 수 있는 힘을 얻게 되는 것이리라.


순례자 산티아고는 순례자에게 이렇게 속삭인다. "이상하게 들릴 수 있지만, 이 카미노는 가짜라네. 나와 함께 걷고 있는 이 순례를 다 마치고, 그대가 떠났던 삶의 자리로 돌아갔을 때 비로소 진짜 카미노가 시작된다는 것을 명심하게나. 참된 순례길을 위해 이 가짜 순례길이 존재하는 것이니 이 길이 바로 우리의 영적인 길이라네. 일상 삶이라는 진짜 카미노를 걸을 때도 그대와 함께 걸을 테니 걱정하지 마시게나!"
진짜 순례길은 산티아고 순례를 마치고 우리가 돌아가야 하는 '삶의 자리' 그곳에 있다. 집에 도착해 현관문을 여는 순간 그 안으로 지금까지는 보이지 않았던 '길'이 보일 것이다. 이 새로운 길, 곧 우리의 일상 삶이 바로 '진짜 카미노'이다. (233쪽)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