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은 여행을 부른다. 파란 하늘이, 기분 좋게 산들거리는 바람이 어릴 적 대문 앞에서 '누구야, 놀~자'며 놀 친구를 불러내듯 밖으로 나오라고 한다. 친구와 노는 것은 언제나 즐거웠듯이 가을을 따라 어느 곳을 여행하든 넉넉하고 기분 좋다.
추석 연휴에 노고단에 다녀온 후로 아들이 산에 오르는 기쁨을 조금씩 알아가는 중이다.
"상근예비역 복무 중에 엄마 아빠와 함께 산행을 더 해보고 싶네요."
"10월 둘째 주나 셋째 주 주말에 화왕산에 갈까?"
"작년에 관룡사에서 출발하여 용산대를 보고, 관룡산 찍고 화왕산까지 등반했잖아. 하루에 두 산에 오르고 나니 얼마나 뿌듯하던지."
산 정상까지 오르는 일이 거의 없기 때문에 지난해 관룡산, 화왕산 산행은 나의 큰 자랑거리 중 하나가 되어 있었다. 두 산 모두 750M 남짓 낮은 산이라 누구나 쉽게 즐길 수 있지만, 용산대를 거쳐 경사가 가파른 길을 올라 관룡산 정상을 거쳐 화왕산에 이르는 코스는 제법 난도가 있다. 둘이서 했던 산행을 올해는 셋이서 그 경로를 따라 그대로 해보기로 했다.
용산대를 지나 경사가 가파른 산길을 오르면 숨도 차고 심장박동도 거세어진다. 그런데 기분은 더욱 상쾌해지고 기쁨으로 가득해진다. 아들과 똑같이 나는 오십 고개를 넘어서야 산행의 즐거움을 알아가고 있다. 오십 고개에 해보지 않으면 나중에 해보고 싶어도 못할 것 같아서 나의 수준에 맞는 산을 찾아 산 맛을 즐겨보자고 생각하고 있다.
관룡산 정상을 향해 오르다 오른쪽으로 화강암 바위가 우뚝 솟은 곳에 이르면 등산객이 쉬어갈 수 있는 넙적 바위가 있다. 그곳에서 산이 굽이굽이 흐르며 그려내는 풍경을 보면 너무나 아름답다. 소나무가 많아서 더욱 푸른 산, 송이버섯, 능이버섯 등 버섯류를 길러내는 산, 높지 않아 더욱 가깝고 친근한 산. 산에 대해 무지하지만 관룡산과 화왕산은 산행의 맛과 멋을 동시에 갖추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관룡산 오르는 중 화강암 바위에 서서 바라본 산과 하늘
관룡산 정상을 지나면 이제부터는 쉬운 길이다. 화왕산까지 평탄한 임도를 따라 셋이서 이야기 나누며 걸을 수 있는 길이다. 여러 지역에서 온 산행객들의 각기 다른 말투가 정겹다. 억새가 유명한 곳이라 산악회나 동우회에서는 가을이면 화왕산을 찾는 것 같다. 다양한 사람들이 산을 찾고 즐기는 모습을 바라보는 일도 재미있다. 활기가 있고 경쾌한 에너지가 느껴진다. 그 계절의 고유한 아름다움을 찾아 떠나고 만끽할 줄 아는 삶은 행복하다.
관룡산까지의 푸르름은 온 데 간 데 없고 갈빛 억새 평원이 펼쳐진다. 돌로 쌓은 화왕산성은 억새와 어우러져 아름다움을 더한다. 화왕산성은 임진왜란 때 곽재우 장군과 의병이 활동했던 곳이기도 하다. 역사적으로도 의미가 있는 곳이라, 한편으로는 이 억새들이 치열하게, 슬프게 느껴지기도 한다. 아름다움이란 슬픔마저 간직한 것이다.
2009년 억새 태우기 화재 참사도 화왕산을 찾는 사람들에게는 잊을 수 없는 안타깝고 슬픈 이야기이다.
아슬아슬 배바위(화강암) 위에서 바라본 하늘과 산이 그려내는 풍경은 정말 아름다웠다.
산행을 시작하기 전 관룡사 마당에서 산을 올려다보면 화강암이 병풍처럼 둘러져있다. 큼직하고 하얀 바위가 소나무가 많아 더욱 푸른 산 사이사이 멋들어지게 자리 잡은 모습이다. 그래서 병풍 바위라고 한다. 관룡산과 화왕산은 숨찬 등산의 맛도,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며 걷는 둘레길 맛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산성과 바위, 억새와 이야기가 어우러져 산은 더욱 아름답고 사람들은 자주, 편안하게 이곳을 찾게 되는 것 같다. 산행 후 부곡 온천의 매끄러운 온천물에서 온천욕까지 즐긴다면, 이것은 HEAVEN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