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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결국 사람이었다

by lee나무


동료 경비원들이나 관람객들과 나눈 짧은 소통에서 찾기 시작한 의미들은 나를 놀라게 한다. 부탁을 하고, 답을 하고, 감사 인사를 건네고, 환영의 뜻을 전하고... 그 모든 소통에는 내가 세상의 흐름에 다시 발맞출 수 있도록 돕는 격려의 리듬이 깃들어 있다.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191쪽.





사람이 참 어려워서, 자주 숨어들었다. 상처받고 생채기 난 마음은 사람이라고는 없는 곳에 두어야만 조금씩 새 살이 돋아났다. 나 또한 마찬가지면서, 철저히 자기중심적이면서, 타인이 자기중심적으로 말하고 감정을 쏟아내는 것이 힘들었다. 궁금하지도 않은데 자신의 가정사를 시시콜콜하게 늘어놓는 결혼한 여성들을 이해할 수 없었고, 묻지도 않았는데 자식 자랑을 떠벌리는 엄마들도 이상해 보였다. 그래서 나는 자주 도피했다. 도피처는 책인 경우가 많았다. 책 속의 인물은 상대방이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감정을 쏟아내지 않았고, 듣고 싶지 않은 말을 뱉어내지도 않았다. 선택할 수 있었고 생각할 시간도 주었다. 젊은 날 나는 혼자 자주 중얼거렸다. '혼자 있는 시간이 좋다고.' '사람은 피곤하다고.' 소심해서 사람들에게 말이나 행동으로 표현하지 않았지만 나는 늘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지금도 어렵긴 마찬가지다. 젊은 날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달라서 좋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같아서 느끼는 안도감과 편안함도 좋지만 다름에서 오는 긴장감과 새로움도 좋아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각자 다른 인생과 각기 다른 생각이 너무나 자연스러운 것임을 이해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누구나 부단히 애쓰며 오늘도 고군분투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 모두 위로가 필요한 나약한 인간임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 그렇지. 그럴 수 있지' 하며 스쳐갈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나 또한 마찬가진 걸' 하며 미소 지을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다만 자신의 이기적인 이익을 위해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는 것이 전제된다면 말이다.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의 작가는 세상 누구보다 사랑했고 자랑이었던, 자신의 영웅이었던 형이 세상을 떠난 뒤 '있지만 없는 듯' 존재할 수 있는 '미술관 경비원'이 된다. 이해할 수 없는, 받아들일 수 없는 세상으로부터 도망쳐 선택한 도피처였다. 하지만 작가는 그 도피처에서 세상으로 다시 나아가는 출구, 세상의 운율을 찾게 된다. 그것은 결국 사람이었다. 무의미하다고 생각했던 사람들과의 일상적인 교류가 '삶을 지속하게 하는 기적'임을 깨닫게 된다. '부탁을 하고, 답을 하고, 감사 인사를 건네고, 환영의 뜻을 전하고...'이 모든, 무덤덤해 보이는 사람들과의 연결이 구원임을 알게 된다.


아침에 눈떠서 '잘 잤어' 하며 서로의 밤이 무사했는지 나누는 짧은 인사, 출근 후 아이들과 눈 맞추며 아이들의 좋은 하루를 응원하는 것, 동료들과 주고받는 미소, 하루 중 어느 때의 주제도 없고 맥락도 없는 수다... '이 모든 소통에는 내가 세상의 흐름에 발맞출 수 있도록 돕는 격려의 리듬이 깃들어 있다.' 사람은 사람의 에너지를 먹어야 살아갈 수 있다. 세월이 흐를수록 절감하고 있다. 나 또한, 오늘도 나를 둘러싼 모든 사람들이 고맙고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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