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여울은 <내가 사랑한 유럽>에서 터키에 가면 피에르 로티 언덕 카페에 앉아 골든 혼 양옆으로 펼쳐지는 이스탄불을 굽어보며 터키 커피를 맛보라고 했다. 피에르 로티. 처음 들었을 때 낭만적인 지명으로 생각했다. 알고 보니 프랑스 해군 장교 이름이다. 바다를 누비며 세계 곳곳을 다니던 그는 터키에서 한 미앙인 여인을 만나 사랑에 빠졌다. 프랑스 해군 장교와 이슬람 미망인의 사랑은 이후 소설이 되어 세상의 관심을 받게 되었고 이곳 피에르 로티 언덕은 여행자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고. 역시나 스토리의 힘은 세다. 사람들은 로맨틱한, 이루어질 수 없는 애절한 사랑을 이야기하며 잠시나마 낭만에 젖는다.
"이곳이라면 글이 절로 쓰이겠는걸."
사랑과 문학은 인간의 영원한 갈망이다. 프랑스로 돌아간 그는 여인을 잊지 못해 10년 후 다시 터키를 찾았지만 사랑하는 그녀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사이프러스 나무, 묘지, 언덕, 푸른 바다, 그리고 숱한 이야기를 간직한 도시 이스탄불. 사랑과 문학이 숙명적으로 탄생할 것 같은 곳이다. 그가 그녀를 그리워하며 글을 썼던 곳은 현재 카페로 운영되고 있다. 카페 안으로 들어서면 그 시절 그의 모습이 담긴 사진들이 벽면을 채우고 있다. 잘 생긴, 로맨틱한 프랑스 장교를 상상했는데 역시나 스토리의 힘은 현실을 초월해 우위에 있다.
피에르 로티 사진들
도시가 품은 수많은 인생을 그려내듯 주황색 지붕 사이 드문드문 솟은 미나레과 이슬람사원 돔이 어우러진 이스탄불은 기도를 알리는 아잔 소리처럼 오묘하고 신비로운 느낌이 가득했다.
언덕 위 야외 테이블에 앉아 홍차를 마셨다. 시간이 느리게 흐르도록 머물고 싶었지만 돌아가서 되돌아보며 이 순간을 떠올릴 수밖에. 안녕.
보스포르스 해협
발랏지구로 이동해 불가리아 정교 교회에 잠시 들렀다. 철로 만들어진 백색의 깔끔한 외형이 단아해 보였다. 내부는 작지만 여느 유럽의 성당처럼 화려하고 정교했다. 잠시 두 손을 모으고 나를 비롯한 일행의 건강하고 안전한 여행을 기원했다.
발랏지구는 아기자기하고 고풍스러운 가게들이 좁고 가파른 언덕길에 기대어 있는 모습이다. 사진 찍기 좋은 곳곳에 여행객들이 인생샷을 남기는 모습이 이곳의 고유한 풍경이 된 듯 했다. 붉은 벽돌색의 독특한 그리스 정교회 신학교 건물을 배경으로 사진도 찍고 언덕길 끝에 위치한 소박한 카페에서 터키 커피를 맛보았다.
베이 파자르는 오스만 터키 전통가옥이 밀집해 있는 마을이다. 작고 소박한 시골 시장에는 각종 말린 과일, 야채, 빵, 쥬스 등 생필품을 사고 파는 이곳 사람들로 북적였다. 어딜 가나 신기한 건 이곳 사람들은 별로 바빠보이지 않는다. 손님이 오든 말든 만들고 기다리고 그 와중에 수다를 떨고 여유가 있다. 가이드님이 당근 쥬스를 꼭 마셔보라고 해서 사먹었는데 달콤하고 깔끔했다.
솥뚜껑에 얇게 핀 도우를 굽고 있는 맑고 귀여운 할머니, 서툰 실력이지만 당당하게 바이올린 연주를 즐기는 멋진 할아버지. 지속하고 이어가고 반복하는 것의 위대함에 대해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