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사람을 듣고, 공부한다는 것의 의미. 은유, <아무튼 인터뷰>
나는 내가 만난 사람의 총합이다. - 193쪽
오십 고개 중턱을 넘으며, 내 삶을 되돌아볼 때 후회되는 것이 무엇인지 스스로 질문해 본 적이 있다. 그리고 가까운 타인에게 종종 입 밖으로 내뱉기도 했던 나의 후회는 '사람 공부에 소홀했던 것'이다.
나는 사람이 어려웠다. '감정이 팔딱팔딱 살아 뛰는 사람들'과 관계 맺기가 쉽지 않았다. (겉으로 보기에는 그렇지 않다고들 한다. 아무튼 스스로는 그랬다.) 관계에서 쉽게 피로감을 느꼈고, 에너지가 소진되는 경험이 잦아지면서 '사람과의 만남'을 의도적으로 피한 적이 많았다. 직장에서 어쩔 수 없이 만나야만 하는 사람들과도 피상적인 관계 이상으로 나아가지 않았다. 나에게는 오랜, 깊은 대화가 가능한 극소수의 긴밀한 사람이면 충분하다고 스스로를 정의했다.
오십 고개에 이르러서야 겨우 '사람의 아름다움'에 대해 다소 진지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젊은 날엔 '나'가 중요했고, 자기애가 강했으며, 타인의 다름을 안을 품이 부족했다. 뒤 늦게, 나는, 시시콜콜한(?) 삶의 이야기가 '소중함'을, '삶을 지속하게 하는 근원적 까닭'임을 깨닫게 되었다. 은유 작가 말처럼 "사람이 사람에게 주는 이로움과 대단함"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그리고, "독서만으로 메워지지 않는 영역이 있고, 한 사람의 삶에 잠겨 있다가 나올 때만 몸에 배는 가르침이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아무튼 인터뷰>에는 '오늘도 살아있음'이라는 삶의 과제를 수행하는 사람들을 인터뷰하고 글로 전달한 경험, 인터뷰에 대한 관점과 방법, 사람과 삶에 대한 사유가 담겼다.
은유 작가는 미등록 이주아동과 청소년, 자립준비청년, 산재유가족, 급식노동자, 비정규직 노동자로 일하던 천금 같은 아들을 잃은 어머니와 같은 '사회적 약자'를 만나 인터뷰한다. 그들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운반하여 가공하고 다시 세상에 내보낸다. 이런 인터뷰 과정을 통해 "약자를 양산하는 사회의 구조적 불평등과 부조리를 밝혀 내고" 더 살기 좋은 세상을 꿈꾼다.
내가 만난 인터뷰이들은 자신과 같은 고통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더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드는 일에 자기 고통이 거름으로 쓰이길 바라는 마음으로 공적 말하기를 결심한 큰 사람들이다. 그러니까 그들은 사회적 약자이면서 동시에 이타심으로 무장한 사회적 강자다. 남들에게 나눠줄 지혜를 가진 경험 부자다. - 149쪽
작가가 만나는 인터뷰이에 대한 애정, 사람에 대한 단단한 철학이 담긴 문장이다. 대중의 관심이 덜 미치는, 아픔을 안고 사는, 고난과 고통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우리 사회의 그늘을 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를 듣는 일은 소위 유명한, 잘나가는, 관심의 중심에 있는 사람들을 인터뷰하는 것보다 몇 배는 조심스럽고 힘든 작업일 것이다. 반면에 함께 사는 더 좋은 세상을 만드는 '거름'이 되고, '지혜'를 나누는 힘들지만 가야할 길이다.
나는 작가의 인터뷰 대상에 대한 애정과 진심, 사람과의 만남에 대한 진정성이 좋았다. 만날 사람과 관련된 기사나 책을 독파하는 것은 기본이다. 인터뷰이와 연결될 만한 영화를 챙겨 보고 현장을 방문하며 철저히 준비한다. 인터뷰이가 안고 들어오는 삶의 보따리가 실타래 풀리듯 잘 풀리도록 질문지 작성과 질문의 순서에 심혈을 기울인다.
그 사람만의 고유한 삶과 사고가 존중되고 서로의 삶에 좋은 파장을 일으키는 잘 준비된 만남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 그리고 몇 시간에 걸쳐 주고 받은 이야기가 인터뷰어의 손을 거쳐 세상 밖으로 나와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는 일. 인터뷰는 두 사람을 너머 세상 밖으로 걸어나가 '살 만한 세상'을 만드는 큰 힘으로 이어진다.
▲책표지 은유, <아무튼 인터뷰>
'사람이란 얼마나 아름다운가' 또는 '사람 공부가 소홀했다는 자각'을 한 후, 나는 가끔 친구를 만날 때도 미리 질문을 생각해 보는 습관이 생겼다. 어떤 질문을 던지는가에 따라 대화의 내용도 만남의 질도 달라지는 경험을 하고 있다. 사람을 만나기 전에 그 사람의 취향, 관심사를 떠올리고 어떤 대화를 나누면 좋을지 미리 질문을 만들어 본다면, 최소한 스스로가 소비되는 느낌으로부터 자유로워질 것 같다. 어떤 질문을 주고 받느냐 따라 만남의 질과 결은 달라지는 법이다.
작가는 20년에 걸쳐 인터뷰어로 일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인간은 얼마나 아름다운가'와 '별 사람 없다니까'의 시소 타기를 즐기게 되었다고 한다. 사람을 만나는 경험이 누적되면서 사람에 대한 존중은 커졌지만 소위 전문가에 대한 추앙을 버리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리 대단한 사람은 없다. 그렇다고 그냥 사는 사람도 없다. 모순 없는 두 문장을 잇는다. -51쪽
핵심은 사람에 대해 알고자 하는 마음이고, "사람이 보이는가"에 방점을 찍고 "자신이 가진 편견의 귀퉁이라도 허물어질 계기를 얻는" 인터뷰로 세상을 연결하고 있다. 작가의 말을 빌려 '나는 내가 만난 사람의 총합'이라면, 은유 작가는 내 부러움의 대상이다. 나는 고작 핏줄 몇, 절친 둘, 정기적으로 연락하는 특별한 지인 몇으로 부끄러운 총합이다.(얼굴과 이름을 연결할 정도의 스쳐간 인연을 '만남'이란 낱말과 이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인터뷰이의 말이 몸에 스미고 깃들어 궁극적으로 내가 변하니까. 그리고 나를 변화시켜주는 사람을 만나는 건 인생에서 누구나 누리기 어려운 선택받은 축복이다. - 152쪽
정현종 <방문객>의 시구처럼 "사람이 온다는 것은 실로 어마어마한 일이다." 한 사람은 여기 그의 일생으로 있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데, 늦깎이지만 사람 공부에 애정을 담아보려 한다. 사람은 사람을 통해 자신을 발견하고 이해하며 성장하는 존재이다. 그것이 책이든, 영화든, 여행이든, SNS든 사람을 이해하고 사람과 더 잘 연결되기 위한 '치열한(?) 공부'가 아닐까.
작가의 말을 '나의 하루는 내가 들은 사람의 총합'으로 환언해 본다. (인터뷰까지는 아닐지라도)시간을 들여 천천히 사람을 듣는 일을 소중히 하며, 소홀했던 지난 날의 틈을 메우며 나이 들어 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