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이 점점 높아지는 가을을 앞둔 어느 날, 오랜만에 상위기관 출장길에 올랐다. 언제나 그렇듯 달갑진 않다. 대부분 좋은 일로 가는 건 아니었으니. 어쨌든 대체 무얼 원하겠는지 모르는 그들의 요구에 수긍하며 그날도 그곳을 방문했다.
그날은 최종 심사를 받는 날이었다. 사실 그때까지 내가 한 일이란 건 크게 있진 않고, 사업을 맡아 무탈히 진행해 온 용역업체들의 힘이 실로 지대했다. 제대로 한번 내색한 적은 없다만 그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표한다.
어쨌든 그날은 그런 날이었다. 우리 차원에서 할 수 있는 최대한의 행정력을 동원하고 기술적인 면에서는 용역사의 도움을 받아 머리를 싸매고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강구해 낸 결과물을 발표하는 마지막 날.
자치구는 물론이거니와, 용역사들도 꽤 긴장이 됐을 그날, 우리는 어떤 결과를 받아들였까? 그간 상위기관과의 협업 과정을 깡그리 엎어버릴 정도의 강한 드라이브가 나왔다. 뭐랄까. 좀 허무했다.
그저 하급 공무원 나부랭이의 머리로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결과물이었다. 마치 찬물을 뒤집어 쓴 느낌이었달까.
자. 생각해 보자. 상위기관에서 어떠한 오더가 꾸준히 이어졌고, 하위기관은 용역사의 도움을 받아 대부분의 것을 모두 반영했다.
상위기관은 그간 보고를 받았고, 수긍했다. 그렇게 재수가 좋아 큰 이변이 없다면 어떤 식으로 긍정적인 결과가 나올 것으로 예상했다. 그런 당일, 현장에서는 조금 많이 다른 이야기가 쏟아져 나왔다. 난도질당하듯이. 이를 뭐라 설명할 수 있을까.
연공서열이 강한 공무원 조직에서 상관의 말은 감히 절대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만큼 수직적 체계가 뚜렷하기에 아랫사람은 웬만하면 반기를 들 수 없다. 사실 이를 체감한 어느 시점 이후부터는 나는 이제 업무에 강한 드라이브를 넣지 않는다. (그럴 용기도 이제 없다.)
심사는 그러했고, 우리는 이 결과물을 받아들여야 한다. 회사로 돌아오는 길, 짙은 아쉬움이 남았다. '과연 정답이 있긴 한 걸까?' '대체 무얼 원하는 거지?' 다시금 원점으로 돌아온 느낌이다.
'차라리 답을 정해주고 이대로 맞추라고 하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렇게 나는 조금씩 더 회사와 한 걸음 더 거리를 두게 됐다. (고맙고 미안하다.)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은 최선을 다한다. 하는 데까지 해보고 안 되면 뭐 별수 없다. 그냥 마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