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이라는 직업을 갖게 되면서, 세상에 정말 다양한 사람이 있다는 것을 다시금 알게 됐다. 한 동네에서 수십 년을 살았어도, 동사무소 한 번 들른 적 없던 내가 하루에도 수백 명이 드나드는 동사무소에서 근무를 하게 된 이후 진짜 별의별 사람들을 만나게 됐다.
신분증을 가져오지 않고 일방적으로 서류를 떼 달라는 사람은 양반이고, 술에 거나하게 취해 동사무소에 들어와 먹을 것을 달라는 사람 등 살면서 그들이 세운 기준에 따라 특별하게 살아가는 이들의 모습에 참으로 애석함을 느꼈다.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은 정말 상식적이다.
공무원 그리고 민원인이라는 관계를 떠나 사람 간의 대화를 한다는 느낌을 받을 땐 그렇게나 기분 좋을 수 없다. 참고로 나는 사람 냄새를 풍기는 민원인일수록 그들에게 더욱더 진심을 담은 민원서비스를 제공한다. 왜일까. 그들의 상식적이고 배려하는 모습에 나 또한 그저 기계일만 할 순 없었기 때문이랄까.
공무원인 나도 사람인지라, 말투가 꼬일 대로 꼬인 사람이라던가, 버럭버럭 화를 내는 사람들에게는 진심이 담긴 민원서비스를 제공하기는 쉽지 않다. 처음에는 그들의 횡포에 겁을 먹었다. '이렇게 되면 어쩌지?' 수백만 가지의 경우의 수를 떠올리면서, 전전긍긍했다. 시간이 지나니 그러한 막무가내 같은 민원도 덤덤해지긴 하더라.
동사무소에서 청소 업무 하던 시절이 있었다. 청소 담당의 주 업무는 직접 관용차량을 타고 다니며 동네 쓰레기를 치워주는 것, 공공근로자를 관리하는 일 등 다양한 업무가 있었다. 그 수많은 일 가운데 내가 기피하는 업무가 딱 하나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쓰레기 무단투기자에 대해 과태료를 부과하는 일이었다.
무단투기 단속원들이 보내온 자료를 근거로 무단투기자들에게 과태료를 부과하는 업무. 어떠리라 생각하는가? 주민들에게 과태료 사전통지서를 보내면 그들이 '네네' 하면서 쉽게 납부를 할까? 절대 아니다. 가정 한번 해보자. 운전 중 우리가 의도치 않게 과속해서 단속에 걸렸다고 가정해 보겠다. 처음 드는 생각은 무엇인가? '아니, 대체 왜?'라는 생각부터 들지 않는가?
아마 바로 납부하는 사람은 손에 꼽을 것이라 본다. 내 업무도 그러했다. 과태료 사전통지서를 보내면 대부분은 십중팔구 전화를 걸어와 이런 말을 내게 뱉곤 했다.
"제가 왜 과태료 내야 하죠?"
"저 과태료 못 내요."
"다른 증거 가지고 오세요."
사람에게 말 한마디 제대로 못 붙이던 내성적인 9급 공무원인 나는 어떻게 대응했을까? 그저 감정 쓰레기통으로 처참히 그들의 말을 듣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사건이 벌어진다.
쉴 새 없이 울려대는 사무실 전화 벨소리를 진정시키고자 수화기를 들었다.
"감사합니다. 자향자입니다."
"너 뭐야. 내가 무슨 과태료야?"
"과태료 사전통지서 받으셨나요?"
"내가 왜 과태료를 내야 하냐고."
"아. 선생님. 아직 과태료가 나온 건 아닙니다."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가 답했다.
"너, 딱 기다려." 뚝.
내가 경험한 특별한 사람들은 항상 그러했다. 왜 공무원의 말은 들으려 하지 않는지, 왜 자기주장만 내세우는지 아마 이 부분은 평생 풀 수없는 숙제가 될 듯하다. 얼마 후, 아저씨 하나가 손에 쓰레기봉투를 들고 와서 소리를 질러댔다.
"나한테 과태료 부과한 애. 누구야. 나와."
순식간에 동사무소 분위기는 싸늘해졌다. 이럴 때, 필요한 건 무엇일까? 맞서 싸우는 게 능사일까? 내 기준에선 아니다. 민원을 달래는 게 먼저다.
"선생님, 나가서 말씀하시죠."
"나가긴 뭘 나가, 나 과태료 절대 못 내. 안 그래도 요즘 장사 안 돼 죽겠는데, 여기에 쓰레기봉투 다 찢어
버릴까?"
"아직 과태료 부과된 거 아니에요. 나가서 말씀하세요."
흥분한 민원인을 달래 밖으로 나왔다. 과태료는 아직 확정된 것이 아니며, 이를 사전에 통지하는 절차가 진행 중이라고 의견을 진술하면 적극 반영해 주겠다고 그를 달랬다.
내 나름의 상세한 설명에 설득력이 있었던 걸까 아니면 그저 운이 좋았던 건지는 몰라도 다행스럽게 그는 내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래서 나는 어떻게 했을까? 그를 면제해 줬을까? 아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감경사유를 달아서 과태료를 최대한 깎아주는 것으로 마무리지었다.
이따금 이러한 손님이 찾아올 때가 있었다. 타 업무도 마찬가지였지만, 유독 과태료를 수시로 부과하는 나의 업무에 격한 민원이 집중됐었다. 민원인으로부터 욕을 한 바가지 먹은 날은 집으로 돌아가는 길, 버스 또는 지하철에서 멍 때리는 날이 많았다. 나는 이을 불멍, 물멍도 아닌 욕멍이라 일컫는다.
겉으로 보기에 별 것 아닌 것 같아 보이는 공무원의 업무는 사실 속을 드러내보면, 깊은 사연이 있다. 법에 근거해 업무를 행하는 우리네 공무원의 특성상, 법을 제대로 해석해 업무에 적용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는 게 첫 번째 사연이 될 수 있겠고, 최대한 민원인의 저항을 덜 받는 선에서 더 완만하게 끝낼 방법은 없는지 매일 궁리하는 게 공무원들이 갖고 있는 두 번째 사연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다.
대부분의 공무원들은 민원인을 최대한 배려한다. 그렇게 하는 것이 본인이나 상대방에게 윈윈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리보고 저리 봐도 도저히 답이 안 나오는 경우, 어쩔 수 없이 과태료 등을 요구하는 것이니 공무원의 마음을 아주 조금이라도 십분 이해해 주길 바란다. 중국의 춘추시대 사상가 공자도 타인을 위한 배려는 좋은 삶, 좋은 사회의 기본이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눈물이 많은 편은 아니다. 성년 이후 대성통곡 해봤던 건 친할머니 돌아가실 때 정도였으니까. 그런 나도 욕을 한 바가지 먹고 집으로 귀가하는 날은, 마음으로 정말 많은 눈물을 흘렸다. 억울하고 서글펐던 어느 날, 지하철 한 구석에 몸을 실은 공무원 하나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