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따금 아내 그리고 아이와 함께 집 앞 공원으로 마실을 나간다. 딸아이는 부리나케 좋아하는 킥보드를 챙기고, 인도 위에서 그 작은 발을 연신 구르며 빠르게 내달린다. (이제는 따라잡을 수도 없다. 포기했다.)
그렇게 다다른 공원에서 인간 vs 킥보드의 시합이라는 익숙한 대결이 펼쳐진다. 시시하다 싶은 날엔 내게 달리기 시합을 제안하며 두 주먹을 불끈 쥔다. 승자는 언제나 딸아이다. 그리고 나는 변함없는 꼴찌를 맡는다.
멀찌감치 뒤따라오는 아내는 핸드폰을 들고 우리의 모든 순간을 기록한다. 여느 날과 같이 신나게 놀고 집으로 돌아오던 어느 날, 우리는 횡단보도 앞에 멈춰 섰다. 아이가 불쑥 혼잣말을 했다.
"누가 이걸 여기 두고 갔지?"
"응? 뭐가?"
"이거, 이거."
아이가 가리킨 곳을 바라보니, 작은 막대사탕 껍질 하나가 바닥에 덩그러니 놓여 있다. 그냥 쓰레기다. 어른이었으면 분명 그냥 지나쳤을 장면이다. 하지만 아이의 관점에서는 단순한 쓰레기가 아닌, 누군가가 ‘두고 간 물건’이었다. 아이의 관점과 말 한마디가 너무 순수해 부부는 그 자리에서 한참을 웃었다.
"그러게, 이걸 누가 여기에 두고 갔을까?"
"우리가 찾아줄까?"
"아니야, 그럴 필요까진 없어."
짧은 대화를 나누고, 초록불이 켜진 횡단보도 불빛에 우리는 다시 발걸음을 내디뎠다. 아이들은 단순하고 직관적이다. 그들은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본다.
월트 디즈니는 "아이들은 단순히 현재를 살아간다."라고 말했다. 아이들의 말 한마디는 어른의 관점을 이따금 송두리째 흔들어 놓곤 한다. 가끔은 그 시선을 닮고 싶다. 사소한 것에서 새로움을 발견하고, 긍정의 관점의 본능인 아이들의 능력.
그 마음이 흐려지지 않도록, 상상력이 꺾이지 않도록, 아이만의 특별한 관점이 오래 지속되도록 옆에서 보살펴줄 요량이다. 행동과 말 한마디에 신중해지려 한다. 복사 붙여 넣기를 할 만큼 부모를 바로 따라 하는 아이가 되었으니 말이다.
우리도 언젠가 이처럼 티 없이 맑고 순수하며 창의력을 무장한 시절이 있었다. 긍정력과 창의력을 다시 되찾을 수 있다면, 세상에 맞서 싸울 끊임없는 용기와 단단한 배짱도 다시 샘솟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