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딸아이, 생애 첫 달팽이

by 자향자

얼마 전, 늦은 밤 산책을 나갔던 아내가 생각보다 이른 시간에 집으로 돌아왔다. 딸아이에게 보여줄 무언가가 있었나 보다. 그 주인공은 다름 아닌 달팽이였다.



아내가 굳이 달팽이를 집으로 데려온 이유는 뭐였을까? 단순했다. 책에서만 주야장천 보던 달팽이를 아이에게 직접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호떡아, 엄마가 뭐 보여줄까?"

"뭔데?"

"달팽이 데리고 왔어"

"달팽이? 보여줘!"


딸아이는 태어나서 처음 보는 달팽이를 보고 흠칫 놀라는 눈치였다. 손가락 한 마디도 안 되는 작은 몸집의 달팽이가 꾸물대는 모습이 낯설었던 모양이다. 그것도 잠시, 아이는 달팽이에게 흥미를 느꼈는지 녀석의 움직임을 뚫어지게 바라봤다.



책에서만 보던 존재가 눈앞으로 훅 다가온 순간이었다. 딸아이가 즐겨 읽던 한 동화책 중 『누구의 똥일까?』라는 책이 있었다. 똥을 싼 범인을 찾는 내용의 동화였는데, 결론적으로 달팽이가 범인이었다.


책기둥이 찢겨나갈 정도로 많이 본 책인지라 사실 달팽이는 아이 머릿속에 이미 깊이 자리 잡고 있었다. 상상 속의 달팽이를 아이는 이제 직접 눈으로 보게 됐다. 아내가 말했다.


"우리 달팽이 토마토 줘볼까?"

"응! 내가 줄게"


달팽이는 소화기관이 없어 먹은 그대로 배출한다. 보라색 양배추를 먹으면 보라색 똥을, 토마토를 먹으면 붉은 똥을 싼다. 동화책에서 본 내용이 맞는지 확인하고 싶었을 게다.



책에서 읽은 내용을 직접 눈으로 확인해 보기로 했다. 느릿느릿 다가와 아주 조금씩 먹이를 먹는 달팽이를 아이는 숨죽여 바라봤다. 작디작은 생명체가 조용히 토마토를 씹어먹는 모습에 사실 나도 신기했다.

이렇게 무언가를 셀제로 먹는 모습은 본 적 없었으니까.



아이와 함께하는 찰나의 순간 나를 되돌아보는 일이 많다. '부모의 사랑은 내려갈 뿐이고, 올라오는 법이 없다.'라는 말이 있다. 아이를 통해 부모는 스스로 성찰한다.


내가 아이를 잘 지도하고 있는지, 무엇을 요구하기 전에 나 자신은 실천하고 있는지를 끊임없이 고민한다는 것. 그리고 조금씩 개선해 나가는 것. 대부분의 부모가 그러하지 않을까.



내가 글을 쓰고, 책을 읽고, 러닝을 하게 된 이유는 간단하다. 딸아이 앞에서 떳떳한 부모가 되기 위해서다. 아이가 "우리 아빠야." 라며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그런 아빠가 되고 싶다. 여러분은 어떤 부모가 되고 싶은가? 답은 정해져 있지 않은가. 우리가 생각한 그대로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딸아이의 시선은 아름다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