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연휴의 시작, 아침부터 비가 내렸다. 어린이날을 맞아 야외로 나갈 기대감이 한창이었던 우리 가족의 계획은 물거품이 될 위기에 처했다.
사실 비가 온다는 예보에 전날부터 실내 활동 장소를 찾아봤지만, 마뜩잖았다. 급하게 일정을 변경하는 일은 언제나 어렵다. 그리고 연휴를 맞이한 당일 역시나 하늘은 우중충하고 비는 부슬부슬 내렸다.
"어떡하지? 비가 오네."
"괜찮아, 실내에서 놀면 되지."
셋이 둘러앉아 아침을 먹으며 고민했다. 이런 고민을 아는지 마는지 딸아이는 혼자 동요를 부르기에 바쁘다. 사실 전날 공룡 박물관을 방문하면 좋을 것 같아, 휘뚜루마뚜루 봤던 화성서 비봉면 어디쯤에 있다고 생각한 박물관이 알고 보니 전라남도 비봉면 어딘가에 있다는 소식은 청천벽력이었다.
맞다. 지역 이름만 같았던 것이다. 마음 한편이 불편했다. 그러고 결심이 섰다.
"그냥 파주 가자. 비 오면 어때. 나름 재밌을 거 같아."
"그래, 일단 가자."
운전석 옆자리에 저가 커피 하나를 꽂고, 목적지인 파주로 향했다. 한동안 딸아이와 야외활동을 하지 못했던 터라, 이번 연휴만큼은 아주 제대로 놀아주고 싶었다.
동네의 익숙한 풍경을 지나 낯선 풍경이 나타날 즈음, 비가 그치기 시작했다. 간혹 반짝 새파란 하늘이 얼굴을 내밀며 모습을 드러내기도 했다. 햇볕까지 내리쬐는 날씨에 우리 부부는 반색했다.
"나오길 잘했다."
"그러게, 아쉬울 뻔했네"
그날 우리는 오덕산 통일전망대를 시작으로 헤이리 마을, 출판 단지 내 '지혜의 숲'까지 방문했다. 마지막엔 아웃렛 한 곳에 들러 선물 받은 신발까지 교환하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차 트렁크에 싣고 간 씽씽카를 타고 아이는 묘기를 부렸고, 아이가 낮잠 자는 동안 아내와 마주 앉아 커피 한잔에 오랜만에 독서도 즐겼다. (전망대에서 망원경 너머로 보이는 북한 사람들의 모습 신기하더라)
하마터면, 일을 그르칠 뻔했다. 비가 온다는 변수 하나에 우리 가족의 특별한 날을 망칠 뻔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아이의 특별한 날이었겠지. 해보지도 않고 포기할 뻔한 것. 그 자체가 문제였다.
그날 우리의 선택은 성공적이었다. 물론, 때로는 실패할 수도 있다. 하지만 실패 또한 추억이 되고, 그날의 기억은 머릿속에 남는다.
불안은 미래에서 온다.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해 미리 걱정할 필요는 없다. 현재의 삶에서 최선을 다할수록 우리가 생각하는 불안은 빠르게 사라진다. 그 순간에 할 수 있는 만큼 최고의 것을 만들어내자. 그게 인생을 멋지게 사는 방법이다.
그렇게 우리 가족은 2025년 특별한 어린이날을 만들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