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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원섭섭한 밤, 아이 없는 집에서

by 자향자

회식이 있던 늦은 밤, 조용히 현관문을 열었다. 평소 같았으면 문이 열리는 소리에 반응해 아이가 제일 먼저 달려 나왔을 텐데, 그날은 아무도 없었다. 아이가 없는 집은 낯설었다. 사방팔방 뛰어다니던 익숙한 풍경이 사라진 공간은 너무나 조용했고, 그 조용함은 곧 허전함으로 다가왔다.



조금 이른 퇴근을 한 아내의 말에 따르면, 그날 아이는 스스로 할머니집에 간다는 말을 꺼냈다고 한다. '그저 귀여운 아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어느새 이렇게 커버린 건가.' 막상 아이가 없는 집에 들어서니 마음 한편이 텅 빈 듯했다.



아내는 오랜만에 푹 쉬었다며 침대에 누워 말을 건넸다. 그런 그녀의 옆에 누워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문득 말했다. “뭔가 좀 허전하다.” 아내도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러게 말이야.” 우리는 그렇게 우리 둘의 이야기 대신, 아이에 대한 이야기를 도란도란 나눴다. 이제 우리도 부모가 다됐나 보다.



“시원섭섭하네.” “호떡이 보고 싶다.”를 외치는 내게 아내는 그간 제대로 듣지 못했던 아이에 얽힌 에피소드 하나하나를 들려주며 내게 잔잔한 웃음을 선사했다. 아이가 없는 틈을 타 부부만의 시간을 보내는 것도 좋았지만, 어쨌든 그 빈자리는 생각보다 이제 크게 느껴졌다.



다음 날, 부모님 댁으로 향했다. 과연 아이는 부모 없는 하룻밤을 어떻게 보냈을까? 아이에겐 별일 하나 없었다. 집안에 들어서니, 짜파게티를 야무지게 입에 묻히며 먹는 모습에 절로 웃음이 나더라. 할아버지, 할머니가 공주 옷을 사줬다며 자랑하는 아이를 보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제 부모 없이도 1박 2일쯤은 무리가 없어 보인다. 한편으로는 아쉽지만, 이 또한 아이가 성장하는 과정 중 하나일 테니 인정하기로 했다. 인정하지 않는다고 해서 아이가 성장을 멈추는 일도 아니니 말이다. 아이의 새로운 행보 덕분에 조부모님도 아이와 조금 더 시간을 함께할 수 있고, 우리 부부도 둘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날이 조금은 더 많아질 듯하다.



아이는 사랑을 배우기 전에 사랑을 준다는 말처럼, 어쩌면 고생하는 부모를 위해 하루라도 쉬어가라며 아이는 우리에게 짐을 덜어주고 싶었던 건지 아니면 정말 할머니와 시간을 더 길게 보내고 싶었던 건지 마음을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그 선택은 분명 사랑과 신뢰가 바탕이 된 행동이었을 것이다.



그 어느 날, 폭풍처럼 성장하는 나를 보며 나의 부모도 이런 마음이었을까. “내 품에서 이제 조금씩 떠날 채비를 하는구나. 벌써 이만큼이나 컸네.” 이런 생각했을 것이다. 아이는 그렇게 조금씩 부모의 품을 벗어나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딸아이의 성장을 있는 그대로 지켜보며, 때로는 시원하고 때로는 섭섭한 마음으로 그 여정을 함께하려 한다.



"언제 이렇게 큰 거야. 우리 딸, 너무 멋지고 용감해. 앞으로 또 어떤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줄 거니? 사랑한다. 내 딸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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