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들어 종종 아니 자주 초과근무를 하고 있다. 업무는 끝이 없다는 걸 알게 된 10년 차 직장인이 된 지금에도 조금 이른 퇴근은 항상 머뭇거려지기 마련이다.
주중 딸아이를 봐주는 엄마가 있어서인지 요즘의 뒤늦은 퇴근은 일상이 되어가고 있다. 아내 그리고 나는 자연스레 이 사실을 알면서도 묵인한다.
내 그럴 줄 알았다. 사람의 마음이라는 건 늘 변하게 마련이다. '아이를 봐줘서 감사하다며 자주 일찍 퇴근하겠다'라는 말을 뱉은 나 자신이 초라해질 뿐이다.
복직을 앞두고 딸아이를 냉큼 당신이 봐주겠다는 말을 건넨 엄마는 당시에 뱉은 말을 지금 후회하고 있지는 않을까.
오후 8시 반이나 돼서 집으로 돌아오는 부모를 보며 딸아이는 여전히 빵끗 웃으며 반겨준다. 다 너를 위해 돈을 벌고 있는 것이라며 애써 호도하지만,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은 늘 그렇듯 쉽게 지우질 못한다.
할머니와 양치까지 끝냈다는 아이 앞에서 굳이 맛있는 걸 먹어 보이며, 유혹하는 철부지 아빠는 하루의 끝이 저문 시간을 딸아이와 조금이라도 함께 보내고 싶어 한다.
분명 그 녀석도 먹고 싶었을 게다. "나 다시 양치하면 돼." 하면서 아빠와의 의리(?)를 지키는 녀석의 행동에 미안하고 고맙다.
30여분을 놀고, 서둘러 샤워를 마치고 "아빠, 공부하고 올게."라는 말을 아이에게 건네며 밤거리를 나선다. '가지 말라'라고 졸라대던 아이는 이제 엘리베이터 앞에서 나를 배웅해주기까지 한다.
나는 무엇을 위해 졸린 눈을 비비며 다시 무엇을 하겠다며 밤거리를 나오는 것일까? 정확히 말하면 나 스스로와의 약속이겠지만, 아내와 약속한 게 하나 있다.
딸아이가 초등학교 갈 때쯤, 아이의 손을 잡고 입학식에 참여하겠다는 당찬 포부를 뱉은 것. 누가 봐도 웃기는 소리다. 직장에 연연하지 않는 삶을 살겠다고 다짐한 것.
단 5년 내에 삶의 변화를 이끌어내 보겠다니 웃기는 소리다. 남자라면 한 번쯤 꿈꾸는 그 포부를 나 또한 품게 됐다. (꿈은 꾸어볼 수 있지 않은가.)
여전히 도드라지진 달란트를 가진 건 아니다. 하나, 성공했다는 모든 이들은 하나같이 '꾸준함'을 무기로 꼽았다고 한다.
예전보다는 인내심의 깊이가 깊어진 내게 이번 인생의 과제는 한 번쯤 도전할 만한 일이다. 특출 나게 잘하는 건 없지만, 꾸준하게 무언가를 할 자신은 어느 정도 생겼다.
설령 실패하더라도 인생에 또 다른 가지치기를 할 수 있는 기회가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제발 그랬으면 좋겠다.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도 내 삶의 발전을 위해 생산적인 일을 하나라도 더 해보려 한다. 딸아이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궁극적으로 나의 찬란한 삶을 위해 오늘도 나는 눈을 비비며 밤거리를 나선다.
인간은 꿈을 먹고사는 동물이다. 꿈이 없다면 우리의 삶은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 말도 안 되는, 평생 이룰 수 없을 것 같은 꿈 하나를 가슴에 품자. 그리고 전진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