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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우가 내리는 밤, 아내는 출근합니다

by 자향자

어느 우중충한 주말의 오후, 러닝을 마치고 돌아온 제게 아내가 말을 건넵니다.


“오늘 비상 걸린대.”

“어휴. 몇 시에?”

“모르겠어. 한 오후 8시?”


불길한 기운은 언제나 빗나가지 않습니다. '잘하면 비상 걸리겠는데?'라는 독백이 현실이 됐습니다. 그 말을 속으로 뱉지 않았더라면 무사히 넘어갔을까요?



저도 모르게 한숨을 쉽니다. 비가 오는 날, 공무원 부부는 늘 긴장합니다. 왜 그럴까요? 지방 공무원에게 폭우는 남다른 의미로 다가옵니다. 이건 ‘출근’이라는 신호가 되기 때문입니다.



아내는 동사무소에 근무하고 있습니다. 폭우 비상 대기조에 편성되어 있던 그녀가 지난 폭우 소식에 출근할 차례가 된 거죠. 지방 공무원의 숙명이고 그저 받아들이는 게 최선입니다.



비가 내리는 주말이면 집안 분위기는 늘 불안합니다. 언제 연락이 올지 몰라 핸드폰을 손에서 놓을 수 없습니다. 그날의 일요일이 저희 부부에게 그러했습니다.



아내는 딸아이에게 사정을 설명하고, 밤 9시 출근길에 올랐습니다. 이제 제법 말을 알아듣는 딸은 엄마의 부재를 담담히 받아들입니다. 씁쓸하고 미안하며, 한편으로 고마운 일이기도 합니다.



“아빠도 있고, 할머니도 있어.” 라며 씩씩하게 말하지만, 제가 채울 수 없는 빈구석이 분명히 있었겠죠.

어둠이 짙게 내린 그날 밤, 주황색 조명 하나를 켜고 딸이 좋아하는 동화책을 읽어줬습니다. 족히 열 권은 넘게 읽어 준 것 같네요.



눈을 꿈뻑이며 밀려오는 잠을 애써 쫓아봅니다. 눈을 비비며 엄마가 오기 전까지 안 자겠다는 아이를 위해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엄마!"

“엄마 잘 도착했어. 아빠랑 코오- 자.”


엄마의 목소리를 듣게 된 덕일까요? 아이는 이내 마음을 가라앉힙니다. 그날 밤 우리 부녀는 오랜만에 단둘이 잠을 청했습니다.



현직에 있는 수많은 지방 공무원들 덕분에 우리는 조금 더 편히 잠들 수 있습니다. 여름엔 호우경보, 겨울엔 폭설경보. 지방 공무원에게는 반복되는 일상이지만, 그 속엔 묵묵한 책임감이 깃들어 있습니다.



저희 같은 공무원 부부의 평생이 과업이기도 하겠죠. 뭐 어쩌겠습니까. 해야죠. 폭우가 쏟아지는 그 어느 날, 아내도 저도 빗속을 뚫고 회사로 출근할 겁니다. 무탈한 밤을 기원하면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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