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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육남이 Nov 30. 2024

하늘에서 쓰레기가 내리는 날

공무원은 빗자루를 손에 쥔다

  2024년 11월 27일, 올해 첫눈이 내리며 세상을 하얗게 뒤덮었다. 이틀 내 40cm의 눈이 내리며 서울은 역대 3위의 적설량을 기록하며 도로는 마비되었으며 이런저런 사건사고도 꽤 많았다. 한편, 이날은 눈이 소복이 내리며 부모와 아이가 눈사람을 만들거나 눈썰매를 태워주는 등의 추억 쌓기에 여념이 없는 모습도 보면서 본격적인 겨울이 시작됨을 알린 날이기도 했다.



  첫눈에 대해 공무원은 어떤 생각을 할까? 일반화시키기는 어렵고 9년 차 공무원이 갖고 있는 마음은 다음과 같다. 찰나의 설렘이 찾아옴과 동시에 당분간 일거리가 하나 늘어났구나 싶은 딱 그 정도의 생각이다. 이와 비슷한 생각을 한 시절이 한 차례 더 있긴 했었다. 바로 군대에서 말이다. 2007년 군에 입대하며 처음으로 넉가래를 쥐고 제설 작업을 해봤다. 땀 흘리며 눈을 밀어낸 자리를 돌아보면 나를 놀리기라도 하듯 다시금 펑펑 쏟아내며 소복이 쌓여있던 눈. 마치 하늘에서 쓰레기가 내리는 것 같았다고나 할까?



  군 전역을 하며 지긋지긋한 제설작업에 작별을 고한 줄로만 알았지만, '공무원'이라는 직업을 갖게 되며 제 발로 평생 제설작업을 해야 하는 숙명을 맞이하게 됐다. 내 첫 공직 생활의 시작은 동사무소(요즘은 동 주민센터 또는 행정복지센터라고 불린다.)였다. 동사무소는 지역 내 주민에게 다양한 행정 서비스를 제공함과 동시에 동네의 환경이나 안전 등을 관리하는 역할 또한 도맡고 있다. 제설작업은 그중에 하나이다.



  입사 첫해 한겨울에 시작된 나의 제설작업은 어떠했을까? 대빗자루로 한참을 쓸어내도 또다시 쌓이는 눈을 보며 군시절이 절로 떠올랐다. (이거 하려고 내가 들어왔나 이런 말 하려는 의도는 절대 아님을 미리 말해둔다.) 눈이 많이 오는 날에는 행정차량(1톤 트럭) 뒤에 제설제를 싣고 동네 이곳저곳을 다니며 제설제를 채워주기도 하고 어느 날에는 차량 짐칸에 올라타 바가지로 제설제를 한 움큼 퍼서 도로에 뿌려주기도 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같이 근무했던 한 주임은 입사 당일, 양복을 입은 채로 제설작업을 하다 구두굽이 나가버리는

웃지 못할 이야기도 있었다. (염화칼슘(제설제)이 구두나 옷에 묻으면 워낙 독해 굽이 벌어지기도 하고 옷에 묻으면 잘 지워지지도 않는다.)



  쌍팔년도의 이야기가 아니고 2016년부터 내가 경험한 이야기이다. 소설 쓰는 거 아니냐고? 주요 간선도로와 같은 경우 제설차를 이용해 작업이 가능하지만 골목길과 같은 이면도로까지는 제설차가 웬만하면 잘 들어오지 않는다. 그렇다고 한다면 골목길은 모두 직원인 인간의 몫인 셈이다. 사실 큰 불만은 없다. 고용주가 하라고 하니까 하는 일이니 고되긴 하나 크게 어렵게 느껴지진 않는다. 미화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종일 눈을 치우고 일과 후 근처 중국집에서 짜장면 곱빼기에 빼갈 한잔 마시며 직원들과 담소 나눈 즐거운 추억도 있고 비상대기로 동사무소에서 홀로 밤을 새우는 날에는 선잠을 자거나 직원들과 늦게까지 대기하던 추억도 있었으니까.



  공무원의 대부분은 눈이 내리는 걸 당연히 좋아하지 않는다. 주 업무가 아닌 계절성 보조업무가 추가로 생기기 때문이며, 본인의 업무를 뒤로 밀어 두고 제설작업을 해야 하기에 당연히 부담이 된다. (눈을 달가워하는 공무원은 아마 손에 꼽을 것이라 본다.) 그럼 동사무소에 근무하는 직원만 제설작업을 하는 걸까? 그렇진 않다. 이번 첫눈과 같이 긴급한 상황이 되면 구청에서도 동으로 지원을 나가 제설작업에 힘을 보태기도 한다.



  눈 소식이 들리면 우리네 공무원들은 다소 긴장할 수밖에 없다. 눈으로 인해 발생하는 사건 사고가 어떤 식으로 일어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주민 불편을 최소화하기 위해 그리고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동네 곳곳을 다니며 바가지로 제설제를 직접 뿌리러 다니고 폭설에도 눈을 맞으며 업무를 수행한다. (너무 미화 됐나 싶기도 한데, 이 부분은 사실이다.)



  폭설이 오는 날, 동사무소 전화기는 불이 난다. 여기가 미끄럽다 제설해 달라, 제설제 구할 수 있느냐, 배 달해 달라까지 온갖 민원이 쉴 새 없이 몰아친다.(몇몇 미꾸라지가 물을 흐린다.) 민원인 입장이라면 이거 하나는 알아뒀으면 한다. 담당 공무원도 아마 최선으로 준비한 결과일 것이다. (일부러 욕먹으려고 아무것도 안 하는 근로자가 세상 어디에도 없다.) 공무원도 사람인지라 당연히 욕먹기 싫어한다. 준비를 했는데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생길 수도 있다는 부분은 감안해주었으면 한다. (송구하지만 이해를 바란다.)



  하늘에서 쓰레기가 내리는 날, 공무원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지역의 정상화를 위해 분명히 무언가 하고 있을 것이다. 담당 직원은 그전부터 방침을 세우고 물자를 확보하는 등의 노력을 했을 것이며 다른 직원들은 새벽부터 출근해 쌓인 눈을 걷어가며 때로는 본인의 업무를 미뤄두면서 여러분의 안녕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사실은 알아두었으면 한다. 놀고먹는 공무원보다 열심히 일하는 공무원이 훨씬 많다는 사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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