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6.03.30 화 맑음.
공허한 밤거리를 걸어본다. 왜일까? 무슨 생각이 나서일까. 봄이다. 설레인다. 억제 할려니까 잘 되질 않는다. 공부를 할려고 생각하면 자꾸만 여자 생각이 난다. 여자는 요물이다. 요물을 왜 좋아하며 공경하고 우러러 보고 신비하게 생각하는가. 동물은 다 생각한다. 고로 나도 생각하는가 보다. 공부 좀 열심히 해보자.
1976.04.12 월
일기도 오랫만에 쓰는구나. 안 쓰면 안되겠기에 써야겠다. 먼 산에는 진달래가 제 세상인냥 활짝 피였을 것이다. 다음주 일요일에 집에 가서 진달래와 키스하고 꽃밭에서 잠시만이라도 둥굴어보자. 얽매인 학교 생활에서 벗어나 마음을 가다듬자. 꽃 같이 순수하고 오직 밝은 세상을 만들어 주는 꽃같이. 잠시라도 생각하자.
인생은 일평생.
공부하는 것도 한 때고 청춘도 한 때다.
기회가 2번 돌아온다면 모든 것을 다음으로 미뤄도 되겠지만 세상을 내 마음대로 될 수 없는 거시다. 공부는 작심 3일이 되지 않도록 하고 청춘은 최대한으로 살리되 건전하게 지내자. 술 먹고 담배 먹고 애들이나 줘패는 강패는 되지 말자. 깡패를 닮으려면 김두한을 닮자. 공부 열심히 하자. 학생이라면 종준이를 닮자.
1976.04.19 월 맑음
어제 집에 갔다 와서 그런지 피로하다. 오늘은 월요일 시작하는 날이다. 애국조회를 하는가 보다. 학교에 일찍 가야지. 아침에 일어난 시간은 6시 학교에 간시간은 8시20분이다. 오늘 조회시간에 청공고가 청주기공이 되는 간판식을 가졌다. 앞으로 청주기공이란 긍지를 가지고 생활해 나가자.
작심 3일이 언제나 내 곁에서 떠나갈까. 아마도 이 몸이 없어질 때는 같이 없어질테지. 그래도 어느 정도는 지켜야지. 종학아~
1976.05.14 금 맑음.
계절이 계절이니 만큼. 화창한 날씨였다. 조금한 활동을 하드라도 땀이 펄펄 나는 무더운 날씨였다. 오늘 학교생활 마치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우암 국민학교에서 공을 찼다. 끝나기도 전에 우암국교 교사가 나가라고 한다. 나왔다. 땀이 많이 나기에 애들은 모두 가고 나와 병길이가 남아있었다. 나는 거기서 창림이를 막 비난했다. 너무했다. 창림이는 본래부터 나뿐게 아니었다. 본심은 착한데 그렇게 됐다. 어쩌면 내가 그렇게 만든지 모른다. 창림이의 마음을 내가 고쳐야 할 의무가 있다. 그리고 남을 비판한다는 것을 나는 알아야겠다. 남을 비판하기 전에 나의 자신을 보아야겠다.
1976.05.16. 일
좋은 날씨였다. 오늘 하루도 고독을 씹으며 보냈다. 아쉬운 하루였다. 너무도 말이다. 너무나 외로왔기에 상상을 많이 하고 깊은 사색에도 잠기기도 했다. 청춘이 불타는 시절에 청춘을 살리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계집애들도 어저께 보니깐 등산 도구를 장만하는 것을 보았다. 그것을 보니깐 나는 열등감, 좌절감이 북돋아 올랐다. 내가 계집애들에게 질소냐? 그러고 계집애들이 엄청나게 요사이 와서 우러러 보이는가 보다. 나보다는 여자는 생각하는 면이 낫고 모든 일에 그렇다는 자신을 가지고 과감하게 여자에게 대하자.
1976.06.13 일
오늘은 고등학교에 들어와서 2년만에 사진기를 빌려 사진을 찍었다. 현인이, 나, 그리고 영준, 창림, 영삼이 다섯이. 재미있었다. 우암산을 돌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지내왔다. 그런 다음 배가 고파 점심을 먹고 난생 처음 고량주 맛을 느껴보았다. 그러고 저녁 때엔 야릇한 생각이 떠올랐다.
상상 여유를 가지고 활동하라. 는 말이 자꾸만 내 머리에서 헤아린다. 그렇다고 잠만 자지 말고.
1976.07.15 목
일기를 오랫간만에 쓰는구나 너무나 안닦갑고 챙피해서 인가보다.
그래도 난 시험공부를 열심히 했다고 생각하는데 성적이 그럴 수가 있는가? 나는 믿고 싶지 않다. 하지만 그렇게 결과가 나온걸. 내 머리는 나뿌진 않다. 내가 공부를 덜한 것이다.
방학계획인 캠핑도 이젠 가기 힘들것다. 무슨 염체로 엄마에게 돈을 달래나. 하여튼간 지난 일이니깐 생각지 말고 앞으로나 잘하자. 하루 일과표를 키타 배우고 7시25분에 집에 오자. 그리고 8시30분까지 식사하고 30분부터 바둑 조금 두다가 9시30분엔 운동하고 10시엔 영어 공부를 하자. 그리고 아침엔 시간 있으면 기능사 1, 2급짜리나 보자. 그리고 난 실력으로 실습나가긴 이미 틀렷다. 시험봐서 가야지. 그럴려면 공불 열심히 해야 한다.
1976.08.25 수 흐림
입추도 지냈으니 이제 가을인가보다. 어제까지 그렇게 무더웠던 날씨가 변덕스럽게 오늘 아침은 서늘하다. 모기도 대들지 않는다. 이젠 공부할 계절인가봐.
학교에서 도시락 검사를 했다. 난 보리를 1톨도 섞지 않았다. 그렇다고 챙피를 주고 수업도 못 받게 하고 변소 청소를 시켰다. 더구나 내일 싸와서 교무실로 검사를 맡으로 오란다. 내 밥 먹고 내가 공부하는데 왜 이레 귀찮은 존재가 많냐. 세상이 그렇기 때문인가 보다. 아니 학생이라 더 그럴지 모르지. 배우는 학생이니깐 그렇게 하는가 보다. 난 지금 김ㅈㅇ 선생에게 욕을 막 하고 싶다. 하지만 참아야 한다. 국가 시책이기 때문이다. 내일부턴 철저하게 지키자.
1976.08.26 목
오늘은 공업고등학교로서 가장 중요한 자격증 실기 시험을 치렀다. 나는 아니지만도 3학년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지만 우리도 어떻게 하나를 잘 살펴 보아야 한다. 그리고 오늘 이 관계로 수업을 5시간 했다. 짧은 시간이지만 그것도 질력이 난다.
1976.08.29 일
별로 할 말은 없다.
다만 공부 열심히 하라는 말뿐~
1976.08.30 월
캠핑가서 잊어버린 전축 값을 현인이가 1000원을 학교에서 주었다. 저녁에 그 말을 창림이가 들었는지 2000원을 주었다. 그래서 난! 창림이와 친하지 않더라도 미안해서 창림이네 집에 갔었다. 가서 바둑을 둬서 창림이를 수 을 모두 이겼다.
1976.09.06 월
혁상이 애들과 싸운 것이 이제 와서 벌을 나린다. 근신이란다. 반성문 쓰기가 괴롭구나. 오늘도 써야 되고 내일도 또 써야 되니깐. 교회를 나갔었다. 아니 웬지 모르게 무어든지 한가지 믿음 쯤은 갖고 싶다. 착실한 교회인이 되자.
1976.09.08 수
중추절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좃나게 외롭다. 친구도 나와 놀아주는 친구는 없다. 지금은 술이 취했다. 학생이 본분을 어긴 것이다. 하지만ㅡ 너무나 외롭다ㅡ
1976.09.14 화
키 작고 힘 약한 것이 슬프도다.
모든 것이 나는 세상 살아가기에 불리하다. 오늘 학교에서 영훈이한테 당했다. 장난이지만 그래도 내가 힘이 약했으니 안닦갑다. 그래서 난 두시간 동안을 고민했다. 그런끝에 합기도를 다시 하자는 결론을 내렸다.
저녁을 먹고 영화 구경을 갔다 왔다. 중앙극장에서 제목은 바람과 라이언. 세계의 명작이라는데 난 그렇게 느껴지질 않는다. 나는 원래는 극장엘 안 가기로 맘 먹었었다. 오늘만 내가 의지가 약하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그렇게 약할 줄은 미쳐 몰랐다. 자신이 자신의 결점을 발견한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난, 발견했다. 얼마나 만흔 결점을 남겼기에 그렇게 됐을까. 안닦까울 뿐이다. 또 오늘 공부 좀 할려고 하니깐 웨이리 귀찮은 존재가 많은지 못하겠다. 돈이 있어야 독서실을 가지. 불쌍하도다ㅡ
1976.09.28 화
모든 것을 비해노니 마음이 까불기를 꺼린다. 책상. 걸상. 책꽂이.
저녁 먹기 전에 45분, 저녁 먹은 후에 45분, 9시부터 10시까지
3시에 일어나 운동, 4시부터 45분.
1976.10.12 화 맑었다 흐림
나는 이상하다. 내가 나를 봐도 너무나 어색한 인간 같다. 컷으면 큰 대로 놀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것 같다. 형을 속으로는 무척 좋아하면서도 겉으로는 자꾸만 싸울려고 한다. 다른 친구들에게도 자랑을 무척 하는데…
느낀 바가 많아서 도장을 또 나가기 시작했다. 이제는 끝장을 봐라.
1976.10.22 금
오늘은 마음속으로 무척 감동이 컸다. 아시아 태권도 대회에서 우리학교 2학년 최윤기가 금메달을 땄댄다. 환영식이 대단하구나. 부교육감까지 왔으니. 출세길이 윤기는 확 뜨인 것이다. 지금 이 영광 이 전에 얼마나 피나는 노력을 했을까. 하여튼간 나도 합기도 도장에 열심히 나가보자.
1976.10.27 수 맑음.
하루 일과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보니 형이 와 있었다. 큰 형이 제대를 하고 집에 와 있으니까 종출이 형도 나온 것이다. 아마도 취직 자리를 구하러 왔나 보다. 집안 형편이 좋다면… 좌우간 고민 많이 찾아든다. 괜실히 짜증만 난다.
1976.11.1 월 맑음.
난! 2학년 2학기가 되고서야 나의 장래가 생각난다. 키가 작으니깐 우선 첫째로 나에 몸을 방어 해야겠고 둘째는 경제사정이다. 마라톤 선수가 42km를 달릴 때 그 종착점 가까이에서 얼마나 힘들까? 이 주저앉고 싶은 심정을 인내로서 이겨 나가는 그 성질을 나는 본받아야겠다. 아무가 뭐라해도 나에 갈길을 갈 뿐이다.
1976.11.13 토
하늘은 높고 말은 살찐다는 말도 이제는 옛말 인가 보다. 그 좋던 시절 다 놓치고 허송세월만 보낸 것을 생각하면 너무 안탂갑다. 그래도 청주에 나올 때 난 다른 친구들보다는 실력이 났다는 우월감과 영웅심을 가지고 희망도 가지고 왔었다. 그로 부터 2년. 짧은 세월 아니었다. 그런데 왜 이렇게 빠를까. 1초 같은데. 그리고 배운 것도 없는데. 아니 배운 건 많은데 아는게 없을테지.
대가리는 커서 작은 사람만 보면 무조건 누루는 감정과 못된 짓이나 배우려고 드는 것 같다. 남을 따러하고 남이 한다고 해서 영웅심 때문에 따라서 하고 남이 가자고 하면 가서는 안 되는데도 친구 때문에 가는 것이 왠지 자꾸만 내가 불쌍해지는 것 같다. 나라는 인간을 분석해 보면 줏대 없는 인간. 주체성 없는 인간. 하질 인간. 병신 인간. 정말로 너무나 추한 인간만 나에게 맞는 것 같다. 조금이라도 내 것을 남에게 자랑 시킬 것이 하나도 없다.
1976.11.22 눈
눈 오는 날.ㅡ
기분이 무척 좋다. 밖으로 뛰어나가 사진이라도 찍고 싶다. 교실에서 급우들이 어떻게나 기분이 좋은지 유리창에 성해가 낀곳에다 낙서를 멋있게 써놨다. 결혼 치른, X마스, eve기념 등등 이다. 선생님이 보시고 좋은 때라고 말씀 하신다. 18~25세까지가 가장 좋을 때라고ㅡ
수업을 마치고 그렇게 마음 먹었던 도장에도 그만두고 시민관에 국악대잔치에 구경 가봤다. 장소팔이가 웃겼다. 인간문화재들도 나왔다. 이름은 뭔지 모르지만… 기분이 좋기에 시민관에서 나와 발길을 청주 문화원에서 대성여상 주최로 열리는 시화전을 가보았다. 여자들만 많고 남자들은 공고 학생 뿐이다.
1976.12.02 목
12일날 시험말이다. 예상 보다 어려웠다. 그중에서도 체육은 제일 어려웠다. 일시에 나의 꿈이 깨지는 것 같았다.
저녁 때 집에 와서 형하고 싸웠다. 이상.
1977.01.04 화
형은 서울대학교 간다고 원서를 사왔다. 합격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성현이가 나의 수양 누나를 사귀어 준다고 했는데 오늘 그 장본인인 여자의 집에 가보았다. 맘도 참 좋을 것 같고 인정도 많을 것 같다. 한가지 일이라면 동생이 없었으면 나에겐 좋을텐데 있단다. 있으면 어때. 진실하게 사귀면 되는거지…
1977.01.13 목 맑고 흐림.
항상 물이 되라. 는 윤병찬 선생님의 말씀. 나에게 적당한 말 같다.
바다나 강이나 개울에서 수증기로 올라갔다가 다시 지구상으로 또 떨어지는 것이 빗물이다.
이 빗물은 떨어지는 대로 아무 탈 없이 바닷물에 떨어지면 바닷물이 되고 강물에 떨어지면 강물이 된다. 어디가서나 적응 할 줄 안다는 것이다. 설탕을 타면 설탕물이 되고 당원물을 타면 당원물이 되듯이 어디 가던지 적응 할 줄 알아야 한다는 진리인가 보다. 물의 진리란?
1977.02.05 토 맑음.
종학이의 고교시절 2학년 겨울 방학이 끝나는 순간순간들이다. 초기에는 멋진 계획을 찾었는데 말기에 결과는 무로서 끝나는 것 같다. 누구의 말인가 계획 세울 적에가 즐거운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난. 계획을 세울 적에가 심각해야 되고 결과가 나타나면 슬퍼지거나 즐거울 것이라고 생각한다.
난, 방학 동안에 얻은 것은 이 진리 뿐 다른 것은 얻은 것이 없다. 나의 지식에는 조금 도움이 되었을줄 모르지만 내가 목적한 바가 한가지도 이루어지질 않았다. 앞으로 멋진 계획 아래 멋진 결과가 나왔을때 난, 이러한 과거가 있었노라고 사람들에게 말할 것이다.
생활해 나가는데는,
너무 부끄러워 눈물을 흘릴뻔 할 때는,
참고 웃을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1977.02.06 일 맑음.
개학하고 나면 공부나 열심히 하자. 멋 부릴 생각도 말고 챙피한 생각도 하지 말자.
나 자신을 알라, 고 누가 말했다. 나는 나를 위해 사는 것이지. 누굴 위해서 사는 것은 아니다. 그러기 때문에 남은 날 도와주지도 않을 것이고 생각지도 않을 것이다. 어떤 슬푼 이유로 불쌍하게 되었을 때 순간적인 충격으로 눈물을 흘려 줄건지는 모른다. 왜냐하면 첫째가 나고 둘째도 나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남을 모방해서도 안 되고 나의 생활을 남에게 가르칠려고 해서도 안 된다. 하지만 주위 사람들이 된 사람이라고 인정할 때는 난 이 말을 부정한다. (술을 조금 마시고 이발소에서 이발하다가)
일기장이 증명하듯이 나는 줏대가 없는 놈이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분통이 터진다. 술이라도 먹고 기분 전환이라도 할까? 관두지 뭐. 고교시절을 뜻있게 보낸다는 얘기도 이제는 이년을 두고 하는 말이니? 더이상 나를 바보로 만들지 말자.
진리: 가난이란? 나에게 맡겨진 운명이다.
가난은 슬픔도 기쁨도 아니다. 다만 생활하기가 불편할 뿐이지 수치도 자랑도 아니다.
1977.02.13 일
길동이란 시골. 아름다운 곳이다. 너무나 아름다웠다. 언젠가 나도 시골에 가서 살고 싶다. 지금은 청주에 와서 자취를 하며 학교엘 다니고 있지만 시골에서 앞으로 살길. 힘들 것 같다. 오늘 집에가니 벌써부터 시골에서 농사준비 하느라고 무척 바쁘다.
염동균 : 호세 세르반테스.
판정승으로 염동균이 이겼다. 1차 방어전은 무난히 넘겼지만 2차 방어전은 어떨지?
1977.02.14 월
정신이 맹롱하다. 약주를 좀 먹었더니 기분이 좋아지고 뱅글뱅글 도는데 고민만 떠오른다.
오늘도 이 일로 하루의 일과를 좀 먹게 했으니 어쩌면 좋을까. 15일이 있다. 내일 아침 일찍 일어나서 오늘 일과 좀 먹은 것을 채우자. 그렇지 않으면 할 수 없이 난 낙오자가 되는 것이다.
1977.02.18 금 맑음.
구정이다.
아침부터 학교엘 나가야 되는 것이 오늘의 나의 일과다.
조상들에게 제사도 지내지 못하고 고향을 떠나기가 아쉬웠다. 떡국을 한 그릇 먹었다만 그것 가지고 20살이란 대명사가 또 나에게 붙여지는 것 같다. 지난 세월을 생각해보면. 오늘은…
아니 20살이 된 난! 이제는 어떻게 해야 되는가.
1977.02.19 토 중간
뜻대로 일이 되지 않는구나!
공부도 안 되고 그렇다고 친구들도 없고 정말 미칠 지경이다. 몸이 되어서 그런지 마음은 설레이고 몸은 노곤하기만 하다. 누굴 사랑하고 싶은 맘도 있고. 언제나 즐거운 시간을 만들어 줄 친구도 그리워진다. 해가 저물 무렵 난! 너무나 내가 서글퍼지길래 무심천 둑을 자전거로 돌았다. 저버린 잎새가 사람들의 발에 밟이고 저버린 나뭇가지엔 너무나 서러움이 엿보인다. 다시 난. 청도극장을 갔었다. "말해 버릴까." 너무나 나의 심금을 울려주고 마음을 설레게 한다. 내가 서글퍼지는 건 여기서 다시 한 번 느꼈다. 극장문을 나와 정신없이 비틀비틀 걸었다. 조금 걷다가 난 뛰었다. 무심코ㅡ. 발에 돌이 차였다. 다시. 여기서 나를 서글프게 한다. 키가 작은 것이 나의 숙명인가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