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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함히피 Oct 27. 2024

20세, 고3

1977

1977.03.16 수     

적막한 밤이다. 새해를 맞아 드문 봄비인가 보다. 한 방울 두 방울… 뚝뚝…

텅 넓다란 공간에 작은 인간이 있다. 원래 세상이 텅 빈 것 같다. 옆에 형이라도 있으면 이렇지는 않을 텐데… 아마도 이런게 외로움인가 보다. 난생 처음 가족이 좋은 것을 느끼는가 보다. 엄마가 그리워지고 아버지가. 형이 종준이가. 귀여운 종운. 영숙이 그리고 고향이… 등등. 이러한 밤이면 궨시리 펜을 마구 휘갈기고 싶다. 내 머리에 생각하는 모든 것을 실감나게 써보고 싶다.     

종달이 형은 잘 있는지. 나와 청주에서 많이 싸웠지. 지금 생각하면 잊지 못할 비극도 있었던 것 같다.

자꾸만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형이 자랑스러워진다. 침묵을 지키고. 한다면 하는 성격… 어딘가 모르게 남자 다운 데가 있는 것 같다.      

오늘 학교 갔다 오다가 우암동사무소에 들렀었다. 주민등록 발급 카드를 얻어왔다. 빨리 어른은 되고 푼가 보다. 요사이 친구들과 어울리는게 드문 것 같다. 할 수 없이 이해를 그렇게 넘기는 것이 옳바른 지름길인지도 모른다.      

책을 많이 읽지 않은 것이 후회가 된다. 나는 돌연변이라 그런지 책이 보기 싫다. 나의 후배나 관계되는 사람들에게는 많이 권장해야겠다. 서울 신문을 볼까? 장래를 위해서.     

오후에 돈 주고 받지 못할 삶에 대한 괴로움을 받았다. 공사판에서 일을 하는 아주머니들의 노력은 정말로 가엾은 생각이 든다. 남자들은 무엇하는 것일까? 나는 그렇게 되지 않겟다고 나 자신은 믿는다.     

외롭다 하지 말라. 괴롭다 하지 말라! 삶이란 자신이 그런것이고 인생이 그런거다.

졸립다. 그러면 자야지.          


1977.04.23 토 맑음     

77학년도 처음 보는 시험이었다. 21, 22, 23일 3일간 본 기간 동안은 너무나 괴롭고 고단했던 거시다. 또한 그에 따른 우여곡절이 많다. 컨닝 치다가 들키기도 하고 독서실도 가고 … 아무튼 결과 좋도록 신에게 부탁하고 싶다.

좋은 계절이다. 푸릇푸릇 새싹이 돋고 나무가지에 파아란 희망이 빛추기 시작한다. 안닦가운 일이지만 올핸 진달래 활짝 핀 것을 보지 못했다. 이 다음에 올해 보지 못했던 자연의 신비를 행복과 명랑으로 이끌어 나가자.          


1977.04.24

집엘 갔다. 고생을 찔찔히 하면서 왔다.

3시 차를 기다리다 차가 결행했다. 5시 반까지. 비는 줄줄 내리는데.            


1977.05.16 월

졸업기념 앨범 촬영을 했다. 잘 나오기를 빈다. 사진관에서 나와 용구네들은 그집 방향으로, 나와 현인 그리고 상회는 우리집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현인이는 우리집 방향은 아니지만 내가 같이 걷고 싶어서 같이 가자고 했다. 그렇다고 강요하진 않았다. 어디까지나 현과 나는 우정의 벗이기 때문에… 청주 극장 옆을 지날 때 꺼꾸리와 장다리를 한단다. 거기서도 얄개에서 마냥 참다운 우정상이 나올까 하는 기대 속에서 영화를 관람했다. 오늘은 즐겁게 보냈다.           


1977.06.18 수

독서실에 갔다. 기용이를 만났다.

공부가 되지 않는다. 왜일까? 졸음만 올 뿐이다. 어떻게 하면 졸음은 오지 않게 하고 공부할 수 있을까?           

1977.06.23 월

쪽팔린 일이다. ㅇㅅ ㅅㅇ 개새끼들. 그때 내가 왜 병신 노릇을 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1979.05.06

햇수로 2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우연히 일기장을 들쳐보니 불쾌한 글씨가 눈에 띄는구나. 찢어버리려 하지만…

한 때의 추억이라 생각하고 간직해 보겠다.           


1977.06.27 월

달이 가고 해가 가고 세월이 흘러 나에 인생살이는 시작되는가 보다. 오늘은 의무검정 일이다. 시험문제가 별로 어려운 것 같지 않지만 전기, 화공과 애들은 무척 어렵단다. 앞날에 행운이 있길 자신이 빌뿐이다. 그리고 홍수한 염동균 타이틀전은 홍수한이 이겼다. KO로 이겼으면 더 좋았을텐데~          


1977.07.03 일

휴일 맞아 집엘 찾아갔다. 제초제 소독 줌 했더니 무척 힘들다. 농사일이라는게 다 그런가 보다. 그리고 농촌은 가난하다. 우리집도 농촌이다. 새로이 농가라는 말을 꺼낼 이유는 없지만 느낀 점이 있어서다. 부유한 집과 가난한 집의 차이가 있는 것이 민주주의 국가다. 그러나. 가난한 집 아들이라고 해서 해보고 싶지 않은 것은 아니다. 형편을 봐서 참을 뿐이지… 나는 어떤 놈일까. 불효!...

내가 어떻게 엄마에게 잘못보였길래 나를 의심하는가. 한 두 가지 거짓말은 했지만 나는 19년 동안 살아오는 동안 나를 의심하는 엄마를 처음 보았다. 담배를 피고 술을 먹고 남이 하는 것은 골구루 이제껏 해왔다. 너무나 나의 행동이 본성과는 아주 달라진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옷을 사달라고 한 것이 의심의 근거가 되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고시절 3년 동안 사복 한 번 해보고 외출을 하지 못했다. 그리고 집에서도 입을 옷이 없어서 교련복과 학생복 그리고 메리야쓰 뿐이다. 이것이 가난의 설움인지도 모른다. 어떤 철학가가 말하길 가난은 죄가 아니다. 다만 생활하기에 불편할 뿐이다 라고 말하였다. 하지만 가난도 각기 생각하는 면에서 다른 것 같다. 어떨 적에는 눈물이 나오도록 서러울 때도 있다.

굳센 의지와 굳센 정신력 그리고 성실한 마음으로 현실을 바로 보면서 생활해 나가면 앞길은 훤한 것이다. 그리고 반면에 부모에게 효도해야 한다. 나도 누구만큼 부모 생각을 하는 놈이라고 나 자신은 자부하고 싶다. 자식을 돈 주기 싫어하는 부모가 어디 있을까? 그런데 우리 어머닌… 너무나 고달프고 뼈가 닳도록 고생하며 번 돈을 마음대로 갖다 쓰는 나를 한탄하도록 불쌍해진다.

앞으로 열심히 노력하면서 열심히 생각하면서 현실을 똑바로 보며 살아가자.           


1977.07.04 월

실기를 대비하여 학교에서 무척 노력이다. 실습시간에 비가 나리더니 이내 장마 전선이 들이 닥쳤단다. 흐릿한 날씨에 흐릿한 기분으로 집에 왔을 때 썩는 남새가 악취를 내는 내 방을 들어가기를 망설이게 했다. 방에서도 썩고 부엌에서도 썩고 등등…

여름은 모든 것이 썩는 계절인가 보다. 이래서 그런지 난 세상이 귀찮다는 말이 입에서 자꾸만 반이 되여 나왔다. 거지 방 가튼 이 방을 누가 이렇게 만들어 놓았나. 생각해 볼 문제다. 무심코 연필을 돌려본다.          


1977.07.17 일

화창한 날씨였다. 한 때 소낙비가 나렸지만 청춘은 오지 않았단다. 줄겁게 여행을 하며 집을 다녀왔건만 오직 한 가지 열등의식을 오늘 또 한 번 느꼈다. 자취 집에 왔더니 출형이 반긴다. 줄거운 나날들이다.     

저녁 때 성현네 집을 찾았다. 성현이 누나가 반긴다. 성현이와 영훈, 나, 얘기를 나눴다. 모두가 괴로운 얘기 뿐이다. 우리 8인조에 금이 갔나 보다. 이것은 다시 뭉쳐지게 할 일이 나의 과제인 것 같다. 이제껏 줄겁게 지내왔지만 3학년 중순부터 금이 가기 시작한다. 난 친구들 때문에 울어 본 적도 있지만 지금 생각은 다르다.

앞으로의 장래를 생각하고 토론하는 일도 좋은 현상이라고 볼 수 있지만 진실한 친구에서 진실한 마음으로 진실하게 대해 주는 거시 더욱 중요한 것 같다. 너무나 무의미한 마음으로 무의미하게 얘기한 것이 웬지 후회스럽다. 앞으로 좋은 친구 잘 사귀어 보자.           


1977.07.28 목

생의 나날을 보내면서.

너무나 늦은 감이 있으나 지금에라도 작은 희망이랄까 포부 같은 것을 느낀 것은 반가운 일이다. 주물공… 힘들은 일이다. 하지만. 주어진 운명인가 보다. 운명은 자기가 생을 보내면서 만든다고는 하지만 한 번 시작한 일을 다시다 른 것으로 바꾼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 같다. 해서 안 되면 할 수 없지만 한 번 해보는 것이다. 자신이 능력이 없어 나자뻐질 때까진 해봐야 하는 것 같다.           


1977.08.03 수

생지옥!

낭만 찾아 아니 자유를 찾아 운희가 해주는 아침을 먹고 우암산을 올랐다. 정말로 좋은 길이다. 이런데서 한 번 살었으면 하는 감탄사가 저절로 나온다. 집에 내려왔을 땐 웬지 마음이 우울해지고 고민이 생긴다.

손! 너무나 야속하다. 부모가 옆에 계신다면 병환이라도 돌봐 줄 테지만 지금은 그렇질 못해 괴롭다. 중요한 때 손을 다쳤으니 너무나 야속하다. 또 무좀. 우습지도 않다. 생지옥을 벗어나자.           


1977.10.07 금 흐림.

침침한 공장 안에서 또 하루의 해를 보냈다. 자취 방에를 찾아 왔건만 반겨주는 사람은 없다. 너무나 우수운 나의 사회 첫 발은 고생길의 환한 길이다. 규환이는 옆방에서 줄겁다고 생각할 테지만 나와는 생각하는 면이 다른 것 같다. 내가 상관할 바는 아니지만 야속한 것 같다. 미안해 하는 꼴이 웃읍다. 하지만. 난. 공부를 해야겠다. 언제까지나 새까만 실습복 신세를 질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아니 나의 인생을 그렇게 헛되게 보낼 순 없는 일이다. 어렵게 태어나서 어렵게 배워온 이때까지의 발길은 헛된 것이라 치드라도 이제부터라도 좋은 길로 나아가야겠다.           


1977.10.12 수

오늘 첫 월급을 받았다. 지금은 정신이 어지러울 정도로 술이 취했다. 11000이란 금액이 머리를 되뇌인다. 사회 생활. 정말 까마득하다. 나야말로 생존경쟁에서 뒤진 놈이다. 앞으로나 공부나 싹 다 하자. 그래서 먼훗날~ 공돌이의 한심한…          

1977.10.19 목

저 지난 일기장을 들쳐 보았다. 모두가 헛되게 돌아가고 지금 이 자리에 와 있는 내가 우습기만 하다. 오늘도 다른 날과 다름 없이 새까만 실습장 안에서 작업을 하고 집에 와서 이렇게 비관만 하고 있다. 인생살이ㅡ 정말 이렇게 어려운 줄은 몰랐다. 오늘 쌀을 팔았다. 정말 아찔했다. 너무나 야속하다.          


1977.11.09 목

여느 날과 같이 창가에는 어둠이 깔리었다. 갈피를 못 잡고 왔다 갔다 하는 마음을 어떻게 중심 잡아야 할지 모르겠다. 이제껏 주물을 해온 것을 다시 다른 것으로 바꿀 수도 없는 일이고 그렇다고 힘들은 주물 일을 계속 하기도 어려운 일이다. 하여튼간 하루 빨리 중심을 잡아야 한다.          


1977.11.19 토 흐림

지금은 배부름과 동시에 술이 약간 취해있다. 그 이유를 하나 하나 늘어 놓자면, 오늘이 난선기공 사장 회갑이란다. 돼지고기 먹는 광경은 일대 장관을 이루었다. 나도 반 근은 해치운 것 같다. 그리고 집에도 싸가지고 와 금환이와 먹고서 비개 덩어리는 장국에 끓여먹을 계획이다. 참 고마운 일이다. 그리고 축하해줘야 한다. 오늘 받은 선물은 수건, 과자 2봉, 콜라, 귤, 사과다.           


1977.12.31 토

한 해의 해는 저물었다. 조용한 가운데 움직임이 있다. 일찍이 정중동이란 단어를 이러한 시간을 두고 한 말인가 싶듯이 침묵에 잠긴다. 초라한 나이지만 한 인간이기에 아니 한 생명체이기 때문에 감정은 메마르지 않는가 보다. 라듸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과 대화. 너무나 나를 서글프게 하고 허무감과 초라함을 느끼게 한다. 나에게 칠 일이기 때문인가 보다. 졸업식이 몇칠 남지 않아서 인지, 아니 학교시절을 이것으로 끝낸다는 단어 때문인지 슬픔이 가숨 깁숙히 찾아드는 것인가 보다.


1977년 12월 31일, 나 자신으로 느끼는 것 보다는 주위 환경에서 느끼게 되는 것인가 보다.

지금 이 시각은 신년의 각오와 신년을 맞이할 준비를 해야겠지만… 그니까 그런 생각을 못한 건 아니지만 예부터 지켜온 구정. 아니, 우리 가정에서 지키기 때문에 그 때로 미루는 것이 나의 도리가 아닌가 생각했기 때문에 별로 모든 일을 마음에 두지 않는 것 같다.          


1978.01.10 화

나는 인생을 이렇게 생각하고 싶다. 사회에 출발하기 전을 제 1의 인생이라 하고 사회에 첫 출발하는 나를 제 2의 인생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그렇게 생각하고 보면 오늘이 제 2의 인생길에 접어드는 것이 아닌가? 돌이켜 생각하면 너무도 긴 세월이지만 나에 생각엔 너무도 짧게만 느껴진다.

굳은 일, 슬픈 일, 기쁜 일 모두가 추억으로 남고 이제는 허무감과 작으마한 나의 2인생 희망이 도사리고 있다. boys be ambitious 란 문장이 있지만 나도 거기에 대해선 동감이다. 하지만 그것은 큰 목적이고 그 이하 소제목이 있듯이 소 목적이 필요한게 아닌가란 생각하는 바이다. 지난 추억일랑 모두 추억으로 남기고 후회나 그것으로 인하여 나를 비관 따위는 하지 않아야 한다. 아울러 타에 모범이 되는 일을 할 때가 이제야 진정 돌아왔나 보다. 그렇게 되기 위해선.

 1. [성실] 하고 진실하게 살아야겠다. 누가 나에게 거짓말을 하면 그것에 넘어가지 않고 내가 도리어 상대를 거짓말에 넘어가게 할 것이다. 그리고 사람은 절대로 믿지 말아야 할 것이다. 잘못된 생각인지는 모르지만 정석 대로 사회를 살려고 하면 그것은 사회의 열등생이 될 것이다는 불안정이 나에 가슴을 사로잡기 때문이다.

 2. 술이나 담배 따위는 하기는 하되, [적당] 하게 할 것이다. 그것으로 인하여 다른 사람에게 실수를 저질러서는 안 된다.

 3. 모든 사람에게 져 줄 것이다. 키가 작다고 비관만 할 거시 아니라 키가 작은 것을 영광으로 생각하고 장점을 더욱 더 살리고 단점이 있는 것은 [지혜] 로서 해결해야 한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절대로 다른 사람을 무력으로서 이길려고는 하지 않겠다.

 4. 학교시절은 끝났다고는 하지만 [학업] 에 열중해야겠다.

 5. [우정] 관계는 생명을 주고 받을 만큼 친한 진실한 친구를 사귀겠다.      

이상은 나에 제 2인생의 생활신조다          

졸업이다. 어머니와 동생과 나. 조용한 졸업이었다. 아울러 쓸쓸함과 나에 우정이 이뿐인가 서글퍼지기도 한다. 오늘 또 불효를 느껴본다. 정말로 못난 자식이지만 그런것은 생각지 않기로 하자. 슬퍼질테니까 말야. 교가를 부를 땐 가슴이 찡하였지만 교문을 나설 땐 앞길이 깜깜했다. 이것으로 나에 인생은 정녕 시작되는가.

앞으로 몇 10년 뒤엔 내가 어떤 위치에 와 있는가 알 것이다. 그 때 잘 됐으면 기뻐서 한 잔, 잘 못 됐으면 슬퍼서 한 잔 하자. 어차피 인생은 잘 못 되지 않으면 잘 될 것, 2가지 뿐이기 때문이다.      

급우들과는 줄거운 졸업식이다. 줄겁기 보다는 성스러웠다고 할까? 아니면 슬픈 일이라고 할까. 아니면 영광된 날이라 할까. 모두 다 같다. 친구들이야 안-녕. 언젠가 또 만나겠지. 길손 통닭구이 슬픔과 아쉬움. 영원히 잊지 않고 마음으로 나마 친구들이여 소식 전해라. 작은 친구지만 우숩게만 보지 말아다오.     

3년간 무사히 돌보아 주신 은사들이여. 고맙습니다. 은혜 잊지 않고 굳세게 앞날은 개척해 나가겠읍니다. 정말로 다짐합니다. 함흥주 우리 아버지 엄마는 서혜숙. 천지신명이여 고맙도다. 보살핌 계속하시길.          


1978.01.10 화

항상 알지 못한 다음에는 못하고 행한 다음엔 불행이 찾는다. 앞으로 조심하길.

ㅈㅇ, 나에 첫사랑이었다. 불장난 일랑 그만하고 제자리를 찾자. 먼 훗날 추억이라고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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