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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함히피 Oct 27. 2024

21~23세

1978~1980

21세


1978.04.05 수

식목요일이자 청명이다. 이 날의 뜻과는 달리 나의 처지 때문에 공장에서 하루를 보냈다. 오후에 라듸오에서 흘러나온 소리에 느낀 점이 있었다. 1년의 보람을 느낄려면 곡식을 심고 10년의 뒤에 보람을 느낄려면 식수를 하고 일생의 보람을 찾을려며는 인생을 키우라는 말이다. 축하 받는 날이나 뜻이 있는 날에는 기념 식수라도 하는 것도 좋을 듯 하다.      

나에 사생활을 돌이켜 봐야겠다. 미적지근한 생활일랑 청산하고 이제부터는 새로운 삶을 구하자. 신문과 책과 그리고 근면함이 나에 현 시점에 어울리는 것 같구나.           


1978.04.06 목

하루 피곤함을 느낄 지금쯤, 다시 한 번 향수에 젖어본다. 형, 그리고 재옥에게 온 편지가 더욱 더 고향 생각을 하게 한다. 답장을 쓸려고 했건만 몇 일 있으면 집에 가야 한다고 마음 먹고 있기 때문에 망설여진다. 고향을 그리워하며.          


1978.04.07 금 맑음.

화창한 봄 날씨다. 점심 시간 땐 너무나 따스하고 더운 기가 있어 차가운 물로 씻어본다고 마음도 먹었었다. 하지만 아직은 차가운 물로 몸을 씻기에는 무리인 것 같다. 집에 오면 외로워진다. 혼자 자취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닌 것 같다. 하루 빨리 홀로 직장생활에 적응해야겠다.           


1978.05.05 금

어린이 날이다. 메스콤에서 관심 있게 어린이들을 보고 있는 것 같다. 어제 홀로에서 셋으로 방을 옮겨 왔다. 처음 시작하는 생각으로 착실한 자취 생활, 청춘을 살려 봐야겠다. 졸립지만 조금 더 참고, 고달프지만 조금 더 견디고, 귀찮지만 근면으로 생활에 임해야겠다.           


1978.05.22 월     

고민과 번민 그리고 방황과 갈등이 연속되는 하루하루 속에 어느덧 사회 생활의 몇 개월이 뜻 없이 보내진 것 같다. 어제는 모처럼만의 낭만과 줄거움 속에 인천에서 친구들을 보면서 하루를 지냈다. 모두의 모습은 그대로지만 면 어딘가에 고민과 살겠다는 뜻이 보이는 것 같았다. 행복 속의 학창시절을 그리워 하듯, 아쉬워 하듯 아니 후회라는 단어가 담겨진 것 같았다. 생각지 않았던 사회의 둥글둥글한 테두리 안에서 조금씩이나마 적응하겠다고 몸부림 치는 것 같기도 했다. 정말 허무한게 세월인가 보다. 아니, 세월은 무서움과 냉철함이 돌고 도는 것 같았다. 일하는 대로 보수를 받는다는 흙의 진리를 다시 한 번 생각케 하는 것이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것, 학창 때는 무엇인가 의미를 잘 모른 것 같다. 오늘 내가 또다시 학창시절과 사회의 이견을 발견한 것 같다.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 다시 한 번 부끄러워진다. 성실한 생활의 연속되면 줄거움이 결코 없지는 않는다는 말을 되새기면서 성실한 생활을 그대로 보내보련다. 노력도 하련다. 그러면 후회 같은 것은 않겠지.          


1978.08.15 화

광복 33주년에 정부수립 30주년이다. 인간들의 모든 입에 오르내리듯이 세월은 빠른가 보다. 나도 예외가 될 수 없듯이 벌써 이렇게 컸다고 어머니는 말하신다. 물론 나 자신은 그렇게 말하는 어른들의 말에 동감이다. 살려고 발버둥치는 꼴이 생각하면 우숩기도 하고 때로는 자랑스러워 지기도 한다.

대우중공업에 취업된지도 벌써 5일째. 그동안에 방황은 정말로 설레임이었다. 이젠 하숙방을 구한지도 몇 일 지났고 대충 준비도 끝났으니 지난 날에 대전에서와 마찬가지로 터전을 마련할 때가 된 것 같다. 이방인의 슬품을 생각하면서 인천 생활에 적응해 나가기로 하자.          


1978.08.20 일 PM10:30

줄거움을 만끽한 하루였다. 계획에 차질은 왔건만 인생 행로에서 성장했다는 증거가 될 수 있는 것도 있었다. 고고장에 난생처음 가봤지만 기대가 원래 커서인지 그렇게 줄겁지마는 않았다. 차라리 나무가 우거지고 새들이 지저귀는 산이 좋은 느낌이 든다. 그 많은 사람이 무엇을 하고 살아가는지 어떻게 의식주를 해결하는지가 궁굼했다. 모두가 재주꾼들 같이만 보여진다. 우물 안의 개구리인 난. 나 자신이 너무나 초라하고 불쌍해진다. 그 많은 사람 중에 나보다 못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는 것 같다. 그러나? 돈은 많이 벌어 많이 쓰는 것 보다는 적게 벌어서 알맞게 조리 있게 쓰는 것이 났다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귓가를 때린다. 한 인간이 일생을 바치는 데는 수많은 고통을 겪으면서 살아갈테지만 수많은 고통을 얼마는 순조롭게 당하느냐에 따라서 인생 행로는 정해지는 것 같다. 그렇게 되기 위해선 명석한 두뇌를 가지고 있는 난, 그 명석한 두뇌로 충분한 생각을 해야겠다.           


1978.08.22 화

오늘도 무사한 하루였다. 날이 가면 갈수록 삶의 어려움을 느끼는 것 같다. 장난을 심하게 치면 싸움이 된다는 것, 오늘은 내가 완전히 잘못한 것 같다. 하지만 난 장난을 친다는 것, 남이 볼까 아쉬웠다는 것, 그러나 청의 말대로 내가 조금만 소심했다면 그러한 일은 일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래청이가 성질 부린 것은 이해한다. 왜냐하면 나도 그럴 때가 있었으니까, 남이 뭐래든 내가 갈길만 가면 된다는 말이 청에겐 머리 깁숙히 박혀 있는 것 같은데 나에겐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아직도 뚝하면 챙피하다는 말을 쓰는데 그것이 그렇게 쉽게 고쳐지지는 않는다. 챙피하는 말이 나오지 않도록 최소한의 예의만 지키면 되는 것 같다. 22일을 보내는 막바지에서 PM9:10          


1978.08.27 일

인천 생활에 벌써 몇 주일이 지났다. 소사 생활에 적응한다는 것이 촌놈인 나는 무척 힘이 드는 것 같다. 세상에는 어려운 일 괴로운 일이 많겠지만 그 중 누가 더 슬기롭게 극복하느냐에 따라 인생의 길이 좌우되는 것 같다. 이미 우리 또래의 친구들 중에서 출세한 사람도 있겠지만, 그러한 사람 중에는 특별한 특기나 재질들을 발휘해서 이루어진 것이 많은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하면 지구상의 현실은 인간이 만든 것이니까 누구던지 특기나 재질은 한가지씩은 있다고 믿고 싶다. 하지만 나같은 경우는 그 특기나 재질의 발견이 좀 어렵다고 생각이 든다. 어딘가 있을텐데 그것을 찾기가 무척 어려운 것 같다. 앞으로 살아가면서 좀 더 사색하고 사고해서 그 발견을 찾어야 하겠다.          


1978.09.08 금

직장은 내 집 처럼 될 수가 없다. 가정과 같이 평화가 이루어질 수 없으며 서로가 믿질 못한다. 그것이야말로 속과 겉이 다른 것 같다.          


1978.10.23 월

가을 날씨 치고는 좋지 않은 날이다. 하루 종일 구름이 해를 갈아 막았다. 그래서인지 공장에서 김에게 한 방 먹었다. 내일부터 잔업은 하지 말까? 망설여진다. 돈 때문도 있겠지만 김에게 혼난 것이 너무나 자존심 상하는 일 같다. 사내자식이 마음이 약해서 큰 일이야? 그리고 결단력이 부족해서도 그렇고. 공부를 한다 한다 머리에 새기고만 있지 실천력이 없으니 어쩔 생각인지 자신도 모르겠구나.

우선 공부를 하던 안 하던 계획이나 한 번 짜보자. 한문 공부 3개월만 죽어라 파보자. 다음 일은 한문 공부 끝난 다음 생각하자. 조금만 열심히 하자. 마음만은 변치 않길.           


1978.11.16 목

인생 무상이 다시 한 번 느끼는 지금이다. 지금 시각은 오후 4시 31분 15초이다. 물론 이 시각이 정확 할런지는 모른다. 하지만 잠들 시각도 잠깰 시각도 아닌 것만은 분명하다. 왜 무엇 때문에 이렇게 생활을 해야 하는가 왜? 이런 시각에 일기를 써야 하는지 그 동기가 아쉬운 것이다. 제한된 생활 속에서 활동하다 보니 내가 원하던 뜻대로 모든 일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렇게 하여 인생은 삶에 좌절하지 않고 살아가는 것이 아닌가 싶다. 항상 인간은, 아니 모든 동물은 불만족에서 만족으로 이끌다 보면 인생은 가는 것이 아닌가 싶다.

오늘이 고달프면 내일은 행복하겠지 하는 관념 속에서 오늘은 사는 것 같다. 하지만 이러한 생활 속에서도 주의해야 할 것은 건강이다. 의심할 여지가 없는 것이다.

나의 인천 생활 신조라 하면 첫째는 부모에 효도하고 둘째는 형제들과 우애와 사랑으로 생활하고 셋째는 우정관계로 생각 했지만 거기에는 큰 잘못이 있었던 것 같다. 위에 말한 생활 신조가 이루어지려면 어느 정도의 금전관계가 원활히 이루어져야 할테고 금전관계가 원활하게 될려면 그만한 노력과 노동이 필요한 것이다. 노력과 노동을 하기 이전에 자기 몸을 생각해야 하는데 나는 그걸 잊고 있었기 때문에 생활신조에 미스가 생겼고 또 작으나마 인생경쟁에서 뒤지지 않았나 생각이 드는 것이다. 현대는 과거와는 틀려서.

비가 오면 비를 맞지 말아야 양반이고 배가 고프면 배가 불러야 양반이고 날씨가 추우면 춥지 않아야 양반이란 등등의 말이 있지만 나도 그 말에는 어덴가 이기주의적 사고방식이 섞여 있는 듯하지만 동감이 가는 바이다. 무엇보다 먼저 해야 할 것은 자기가 제일 먼저란 말이다. 그래야 모든 일이 이루어지리라 믿고 싶다. 겉으로 사는 사람 보다는 겉이 중요하겠지만 내면적 생활은 더욱 중시해야겠다.                                      



22세


1979.01.07 일

새해 들어 첫 번째로 드는 일기의 펜이라. 무어라 형용할 수 없이 수많은 생각과 계획이 떠오르지만 무엇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모르겠구나. 청춘의 의미도 모르고 무조건 젊다는 생각만 가지고 죽도 밥도 되지 않는 생활을 하고 있으니 날이 갈수록 생존경쟁에서 뒤떨어지는 것만 같고 비관 같은 것이 침범하는 것 같구나.

새해도 새해인 만큼. 아니 어물정한 현 생활에서 1초라도 빨리 벗어나야겠구나. 79년도 목표가 직업전향이건만 이렇게 방구석에 앉아 고독이니 외로움이니 찾지말고 어디론가 아는 집이든 아닌 길을. 모르는 길도 한없는 나그네가 되어야만 나에 79년은 뜻대로 될 것 같구나.

저녁에 집에 오면 장기니 바둑이니 그런 것은 뒤로 제쳐놓고 펜과 대화를 해야겠구나. 되도록이면 친구와의 접촉을 피하라는 얘기인 것 같구나. 그렇다고 그것을 잘못 생각하지는 말아라. 나에 목표가 달성되면 그때는 친구들 부모들 그리고 모든 주의 선생들에게 감사를 드리고 재 계획으로 나의 앞날에 진전있도록 노력해야 겠구나. 젊음의 상징이 펄펄 뛰는 심장이구나. 열심히 뛰고 무엇엔가 부딧쳐보고 그렇게 해서 안 되면 재시도하라는 듯이 뜻을 잘 생각해서 절망이나 방종 따위는 집어 치우고 항상 근면. 활동 그리고 노력이 필요한 것 같구나.          


1979.01.28

나의 생애에 21번째 맞는 구정이다. 서부식의 제도를 모방하기 위해 정부에선 신정을 권하지만. 그래도 민족의 전통 얼이 담긴 구정은 우리 서민 사회에서 진짜 설인 것 같은 기분이다. 거리를 거닐 때 한복으로 부터 시작해서 윷놀이 등등으로 정말 구정 설날을 생각케 하지만 한 가지 마음 속에서 괜히 쓸쓸하고 고독함에 젖는 것 같았다. 이러한 절을 고향에서 보냈으면 얼마나 좋을까.

세상이 너무나 안닦갑구나! 고향에 내려가지 않은 대신으로 마음으로나마 부모님께 새배 드리고 우리 가정에 새해 복 많이 받길 바라면서 하루를 줄겁게 인천에서 보내려 했건만 영화관을 찾어도. 친구들과 모여도. 술자리를 마련해도 마음 한 구석에 향수를 그리는 것은 왜 그럴까? 내가 마음이 약한 탓일까? 아니면 아직 내가 어려서인가? 현재의 나의 생각으로 그러한 생활에서 하루빨리 나의 정신 자세를 고쳐나가야겠다.          


1979.02.19 월

아침에 자고 일어나 무엇인가 쓰고 싶어 펜을 들어본다. 봄이라 그런지 어디론가 떠나고 싶고 누구에겐가 편지를 쓰고 싶은 마음이 가득한가 보다. 신정 때 내 친구들의 모임이 이내 마음에 남기에 2달이 지난 뒤 지금에서야 글로써나마 기억하려 한다. 1978.12.30을 고향에 내려가 고향 친구들과 망년회를 가졌다. 꿈과 희망을 가득 안고 친구들을 초대 했기 때문에 망년회를 진행하는 가운데도 청심회의 모임이 마음 한구석에 도사리고 있었다. 뜻밖에도 망년회 중에 사고가 있었는데 내가 생각하기엔 경찰에까지는 넘어가지 않은 일로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한 생각이었다. 양녁 1979.1.1을 친구들과 맞을 준비를 하고 긴장과 기대감을 가득 안고 있는데 사고 당한 상대자의 고약한 마음 때문에 경찰에서 친구들이 모두 지서에 갔다는 얘기다. 우선 나에 뇌리에 스치는 것은 친구들에게 미안함이고 둘째는 청심회 친우들이 찾는다고 했는데 경찰이 나까지 불러가면 어떻하나 하는 걱정과 두려움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그일로 그치고 난 경찰이 부르질 않았다. 정말 다행한 일인 것 같았다. 그렇게 긴장과 두려움으로 가득참으로 아침을 끝내고 어머니가 친구들 마중나가라고 하길래 좀 있다 가겠다고 괴으름을 피우고 있는데 밖에서 종학아 하는 소리가 들리지 않던가? 난, 갑작히 멍하니 경찰이 왔나보다 이젠 일이 터졌구나 생각하는데 그것은 너무 긴장한 탓인지 현인이와 상희가 집으로 찾아온 것을 그렇게 놀랬던 것이다. 현인이와 상희와 나 셋이서 아침을 또 한 차례 하고 술상을 한 다음 우리는 줄거운 얘기도 2시간 정도 보내고 나서 음성으로 친구들을 마중나오기로 했었다.          


1979.04.04 수

고향에 다녀온지 3일째다. 신검에서 3급을 받고 보니 모든 면에서 자신을 잃어가는 느낌이다. 급할 때일수록 침착하라는 말을 되새기면서 좀 더 밉은 생각과 옳은 길을 찾아서 차근차근히 생활해 나가야 겠다. 앞으로의 당분간은 나에 생활 방향을 잡아봐야겠다.

첫째는 가정문제이다. 동생들의 공부도 그렇고 나에 앞날의 생각도 그렇다. 둘 중의 하나를 생각해야겠지만 난 내 일은 그렇게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러나, 사람이란 감정의 동물인데 아무, 뎃가 없는 노력은 아니, 보람 없는 노력은 시간이 짧아질 것 같다. 노력하는 사람에게 말로나마 위로를 해주어야 하겠구나. 일을 할 수 없게 되도 양심의 심장을 두드려 죽지 않는한, 움직이게 만들어야 하는 사람이 있어야 할 것 같은 기분이다.

둘째는 방위훈련을 받느냐 아니면 특례 보충역을 받느냐 하는 문제이겠지만 현재 나로선 특례 보충역 훈련 신청을 냈으니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좀 더 넓은 지식과 좀 더 깊은 생각으로 최대한의 나에 대한 모든 것을 키워야 할 것이다.                      


1979.04.05 목

청명이자, 식목일이다. 뜻과는 어긋나게 행동한 것이 이내 마음 한 구석을 차지하지만 새러리맨의 바쁜 생활 속을 지루하게 보내다 잠시나마의 오락으로 여유와 사는 재미를 아는 것도 아울러 중요한 것 같은 기분이다. 지금 나에 몸은 무척 피곤하지만 잠은 청하지 않고 싶다. 하지만 눈알이 아프고 눈 껍데기가 짜꾸만 까막거리니 잠시 후엔 잠을 청해야겠구나.

송도 유원지의 모든 오락시설은 나에 눈으로 도시인의 낭비로만 보인다. 물론 사람들은 잘못된 생각이라 할지 몰라도, 그렇지 않으면 아직 내가 세상물정을 모르는 탓인지, 감정이 있기 때문인지는 모른다. 그런데, 난 너무나 고집도 세고 바보 같아서 끝까지 우기는 성질이 있는 것 같다. 그것이 장점인지 단점인지는 모르지만, 지금 단계에선 모두가 장점이었으면 좋겠다만… 해서 난, 앞에 열거한 것들이 모두 틀리다고 생각 하고 싶고 나에 경제성이나 지위상으로는 낭비 또는 허식으로만 생각하고 싶어진다. 열관리 공부를 한다고 하고 술만 먹고 놀러나 다니고 잘 한다. 임마! 자신이 생각해도 한심하다. 내일 부터는 금주. 방에서 금출도 해야겠구나. 그렇다고 아주 마시지 말라는 얘기는 아니다. 또 아주 외출을 하지 않는다는 얘기는 될 수 없을 것 같다.

자신을 가지랬지만 이것만 확실히 해둬야 할 문제인 것 같구나. 꿈은 공상으로 생각하길. 조금 전에 잠을 청하기로 했으니 뜻대로 하자.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는 법이니까.          


1979.04.12 목

자존심에 관한 얘기를 다시 한 번 꺼내야겠구나. 한가한 작업시간에 떠오르는 얘기지만 모든 것이 돈이 있어야 된다는 얘기가 등장한 것 같다. 이번만의 생각은 아니지만 좀 더 지금보다 독해져야 해야겠구나. 키가 적다고 해서, 모든 사람들은 무시하고 우습게 보는 것이 있는데 그런 것을 난 떨쳐버려야겠구나. 돈을 벌 때 까지는 꾹 참고 견뎌야겠구나. 돈을 버는 방법이나 열심히 생각해야겠구나. 그리고 좀 더 심각해져야겠구? 돈의 가치를 생각하면서.          


1979.05.06 일

어제의 여행에 대한 피로가 한꺼번에 풀려 버렸다. 재미는 있었지만 수많은 사람들 중에 최고의 초라함이 나인 것 같은 기분이 영- 마음에 걸리는구나. 앞으로 등산장비도 좀 구하고 등산도 자꾸 다녀야겠구나. 일주일에 한 번 있는 휴식이라 도회지를 떠나 산을 찾는다는 것 참 좋은 일인 것 같다. 명인의 말에 도시인은 항상 휴식을 많이 취하라 했다고 해서 내가 따라가는 것이 아니고 나 자신이 점점 갈수록 느껴져서 하는 말이다.

주성이와 상옥이가 연복이와 같이 자취한단다. 나와 생활한지 얼마 되지 않지만 모두를 기뿜으로 생각하겠다. 아울러 줄거운 자취생활을 바라고 상옥인 좀 더 건강을 생각했으면 한다. 나도 건강에 자신을 갖지 말고 항상 건강을 생각하자.           


1979.05.18 금

모든 일을 침착하게 하라는 말이 있다. 난 누굴 닮아서 그런지 왜 이래 성질이 급한지 모르겠다. 아니 성질이 급한이 아니라 마음이 좁은 것인지도 모른다. 남들보다 더 빨리 일을 끝내려는 나의 욕심 때문인 것 같다. 앞으로 일은 되는대로 천천히 하고 남의 일하는 데는 일체 상관을 금해야겠구나.          


1979.05.28 월

어제의 야근 특근은 정말 힘이 든 하루였다. 계절이 계절이니 만큼, 외로워지고 나가 돌아다니고 싶은 계절이지만 경제적과 인간관계가 넓지 못하다 보니 일은 엉뚱한데로 계획도 없이 이루어지는가 보다. 토요일 날 술을 많이 마신 까닭으로 지금까지 힘이 없지만 이것을 계기로 주량껏 마셔야겠다. 그리고 취미 생활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느끼게 한다.          


1979.07.26 목 PM11

무더운 하루였다. 이제까지 없었던 정말 더웠던 날씨다. 하루의 종점에 서서 버릇인지 습관인지는 모르지만 친구들과 오늘도 한 잔의 술을 마셨다. 며칠째인지는 몰라도 장기일 동안 계속 술을 마신 건 사실인 것 같다. 지금에 와서 나이가 차니 아니면 건강을 위해서 술을 덜 마신다는 말은 하고 싶지 않은 것 같다. 다만 좀 더 뜻있고 보람 있는 하루 하루를 보내고 아울러 부모 형제에게 효도 한다는 뜻에서 좀 더 성실하고 계획있는 나날을 보내야겠다. 그것보다는 나 자신의 앞날을 위해서 좀 더 계획있는 생활하고 좀 더 생각하고 좀 더 활동해야겠다. 내일부터는 누구의 유혹과 꼬임에 넘어가지 말고 나 자신의 뜻에 따르기로 해야겠다. 내일 열관리 2급 실기 시험일이지만 난 아는 것 하나 없는 상태에 볼려고 한다. 친구의 도움으로 실기 수수료를 냈는데 그렇게 무관심한 내가 한심스럽기 한이 없다. 지나간 일 후회해서 무엇하겠냐마는 앞으로 만이라도 그렇지 않도록 노력해야겠다는 나의 뜻을 더욱 굳건히 다져야겠다. 여기에 쓴 글이 절대로 헛되게 돌아가지 않도록 노력해야겠다. 만약 실행하지 못할 경우는 다시 한 번 굳게 맹세하겠다. 분명히 피를 보아야겠다. 기간은 최소한 한 달           

1979.08.06 월 흐림

한동안의 장마철이 되었나 보다. 여름도 다 지나갈 때가 되었으니 장마철도 거의 다 지나가겠구나. 어제의 기능검정 열관리 실기시험은 너무 허무하고 너무 초라한 기분이다. 좀 더 덜 방심하고 좀 더 사색했던들 그러지는 않았을 텐데 말야. 모든게 후회라 생각하고 다음 기회에 잘해볼 수밖에 지금에와서는 할 수 없구나. 내일부터는 단 한 자라도 공부에 열중했으면 나자신은 생각한다. 좀 더 뜻있고 좀더 생각한다면 착실한 생활을 해야지 지금 이시간 마냥으로 의미없는 일기장이 낙서장으로 변하지 않았으면 한다. 주의 환경에 구애받지 않고 현실을 좀 더 냉정하게 생각해야겠다. 그리고 오늘 인류가 멸망한다 하더라도 오늘 나는 사과나무 한 그루라도 심는 사람이 되어주길 나 자신이 자신에게 바란다.


1979.08.20 월

어제의 일. 단순히 셋방살이의 설움이라 생각되지만. 왜 그리 인생이 서글퍼지는지 모르겠다. 고향의 가족들 무척 생각나는 지금이다. 하루 빨리 부모님,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도록 노력하자.     


1979.09.28 금

앞으로 계속 일기를 써야겠구나.

골동품상의 범인을 잡았다는 소식. 출세욕 때문에 사람을 죽이고 사람으로서 갚지 못할 일을 하고 있으니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 모르겠다. 좌우지간에 어떠한 방법을 써서라도 출세를 해야겠다는 그 마음. 조금은 이해가 갈듯하다.     


1979.09.30 일

구월의 마지막 날이자 일요일이다. 특근을 할려다 몸이 피곤한 것 같아 쉬기로 했었다. 뜻밖에도 래청과 귀향 차표 사러 서울엘 다녀왔다. 아가씨들의 불안정한 행동에 대해 내가 여유 있지 못한 모습으로 신경질 낸 것을 다시 한 번 생각해야 할 문제다. 표를 2장 샀는데 누구한테 고마운 일을 할지 의문이다. 속셈은 아가씨에게 전해주려고 하는데…      


1979.10.15 월

고향에 다녀온지 일주일이 흘렀다. 부픈 마음과 설레는 가슴을 가라앉히고 돈, 오직 돈 좀 벌어 보자고 오늘도 뛰고 있는 나를 보면 좀 더 생각해야 할 것 같다. 물론, 몸이 건강하고, 무슨 일에든 견딘다면야 별 문제가 되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우선적으로 자기 몸의 한도 내에서 일도 해야 된다는 문제가 나오는 것 같다. 아직, 나는 젊다. 너무 경제적 돈에 억매이지 말고 하루의 휴식을 보약이라 생각하고 휴일을 찾아 취미생활이나 기타 인생 행로의 개척문제로 하루를 보내야겠고, 야근이란 나의 몸이 약하고 또한 남 보기에 불쌍한 느낌이 들 것 같고, 나 자신의 생각 속에 너무나 초라해 보이기 때문에 야근은 하지 않으리라 맹세한다.           


1979.10.21

줄거운 날이다. 다름 아닌 휴일이기 때문에 하루가 재미있었든 괴로웠든 나에게는 줄거운 것 같다. 아침부터 외출이라곤 군것질하러 밖에 조금 나갔을 뿐 방안에서 잠자다 독서하다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도 하루하루를 이렇게 보냈으면 하고 생각할 수 있을 것 같다.

저녁에 김성준 권투를 보았다. 유혈이 낭자한 게임이지만 정말 끈질기게 집념을 불사르고 있는 것을 보면 사람이 악이 나면 못할 일이 없을 것 같구나. 본받을 마음이다.          


1979.10.22 월

10월도 어느덧 흘러가는 가운데 또 하루가 지나고 월요일을 맞이했었다. 다른 때와 달리 월요병이란 것이 생긴 느낌이 든다. 아마도 어제 먹은 사과 몇 개와 요구르트 탓이리라 생각해본다. 오후에 집에 와보니 아줌마의 보살핌에 다시 한 번 더 고개 숙여진다. 어떻게 은혜를 갚아야 할까. 조금한 성의라도 보여야 되는데.

사방이 꼭꼭 막힌 구석에 고양이에 몰린 쥐를 생각하며 항상 살아야겠구. 인간이니까 죄보다는 좀 넣게 어려운 가운데서라도 정신을 잃지 않고 냉정을 되찾아 좀 더 생각해서 강력하게 밀고 나가야겠구먼.          


1979.10.25 목

어떻게 해서 내가 담배를 배웠는지는 희미한 기억이 있을 뿐 자세히는 모르겠다. 아마 알지 못하고 방황할 때 남이 하길래 따라서 하다보니 그렇게 되었으리라 생각된다. 그렇게 희미하게 생각된다는 것은 그만큼 오래전부터 담배를 피웠다는 얘기가 되는 것 같다. 그렇게 때문에 지금 이렇게 골통이 되었나보다. 경험이 있으니 토대로 삼아 담배를 피우지 않는 방향으로 해보자.

물론 성인이 담배를 피운다는 것을 난 좋게 생각하는 편이다. 그렇지만 그 조건이 생활이 안정되고 한 가지 일에만 열중할 때가 오면 그 시기라 믿고 싶다. 자꾸만 담배를 피우고 싶은 것이 안닦갑기만 하다. 무척 어려울 테지만 한 번 시도해 보겠다.           


1979.10.27

10월 26일 7:50 박정희 대통령 서거.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의 총탄으로 인한 사고.


1979.12.15

박정희의 서거는 온 국민의 염원 속에 이루어진 사건인지도 모른다. 중앙 정보부장이 실천에 옮기고 그 뒤에 정숭화 계엄 사령관이 관련 됐다니 혹시 미국의 관련이 아닌가 생각이 된다. 어째던 슬기로운 민주회복이 되었음 한다.      

오랜만에 일기장을 들쳐보는 일이란 무언가 생각나는 일이 있어서 일 거다. 아무리 여러 친구들 방을 찾아가 보아도 부모님이 손수 이불을 만들어 주신 것 보기 힘든 것 같다. 현대 사회에서 부모님들의 그러한 비정성 때문에 노인병 현상이 일어나지 않나 생각해본다. 하지만 나는 다르다. 부모님이 힘들여 만들어 주신 누에 이불 솜으로 손수 바느질 해주신 이 이불. 길이 정성껏 간직해보리.     

79 막바지. 고향 친구들의 모임이 서울에 있다니. 그것에 참가하지 못한다는 나의 마음이 아프다. 그렇지만 결코 그것이 계획적이라는 것은 시인 하고 싶지 않은 것이 나의 마음인 것 같다.

(김재규 명분 있어 생명 구걸 안해. 피고인 최후진술 / 신문 기사 스크랩)                                      



23세


1980.01.03 목 흐림

드디어 해는 바뀌었다.

따라서 나도 한 살이 더 먹었고 또 불결한 나의 마음을 깨끗이 씻어버리고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생활을 계획할 때가 온 것 같다. 너무 환상에 젖지 말고 현실을 똑바로 살아가는 내가 되고 싶다. 79년도의 나의 계획은 직업전환이었으나 그 꿈을 이루지 못한채 또 한 해를 넘겼다. 하지만 결코 포기하지 않고 80년도에도 계속 노력할 생각이다. 그리고 오늘 새로운 계획은 80년도의 방위 생활 문제로 많은 변화가 있을텐데 그 생활에 맞는 나의 생활을 찾어야 할 것 같다.

우선 생각나는 것은 기능대학을 한 번 입학하고 싶은데 혹시 방위생활 동안에 어떻게 변할런지는 지금 현재 예측할 수 없는 것 같다. 우선적으로 해야할 일은 열관리 2급을 따는 문제일 것 같고 다음은 모든 환상을 뿌리치고 나의 앞날을 위해 모든 심신의 노력을 기대할 생각이다.          


1980.02.03 일

자꾸 79년으로 쓰려고 한다. 벌써 1달이 가고 2월로 접어든지 3일이 되었는데 어찌된 일인가? 열관리 공부는 착실히 하고 있는가? 2월 4일경에는 실기 시험이 있지 않나 생각이 든다만 지금 생각으론 자신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더욱 착실히 해 영광을 찾아보자. 우연히 철순이 얼굴을 보니 봄과 가을이 생각난다. 벌써부터 봄의 시작인가? 산과 들에 나가 열심히 놀아보자. 80년도에 가장 큰 나의 생활 비중 속엔 방위 생활이 될지… 만약에 방위 생활을 하게 된다면 81년도엔 남한 일부 하이킹 좀 떠나려 한다. 방위 생활을 안하고 병역의무를 마친다면 그 때 남한 일부라도 하이킹을 하려한다. 그 구체적인 계획은 그때 가서 하기로 하자. 어떤 생활의 변환점을 찾고 싶은 것이다. 이런 식으로 희미한 등잔 밑의 인간은 되고 싶지 않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고 했다. 결코 유명한 정치가, 영화배우, 가수들만이 이름 남기는 것은 아니다. 적어도 인간은 세상에 태어날 때 뭔가 한 가지 개성을 가질 의무를 가지고 태어났다고 보고 싶다. 언젠가 중학교 시절 때 담임 선생님께서 자기 장래 희망을 적어 보라고 했다. 난 뜻이 뭔지도 모르고 그냥 자선 사업가라고 대답한 적이 있었다. 자선 사업가?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

난, 그 모르고 쓴 일이 생각나면 지금도 웃음이 나지만 결코 그 꿈을 깨지는 않을 것이다. 현재는 어떠하더라도 말이다. 영웅은 많은 사람을 죽인다. 또한 사장은 사원들을 많이 긁어 먹는다. 그렇지만 나쁜 사람이라고 욕하지 않고 세상 사람들은 존경을 금하지 않는다. 죄와 참이 어디까지가 경계선인지 모르겠다. 난, 현재 어떠한 존재인가? 나만의 비밀이다. 나도 인간이다. 어떻게 목적을 달성하던지 남자는 목적은 달성해야 한다. 꼭 이루어지길…          


1980.02.26 화

종준이의 글대로 고민의 연속인가 보다. 직업의 이직이 이렇게 힘들 줄을 몰랐다. 방위생활을 하면서 이직을 한다는 나의 계획을 달성하려면 어쩔 수 없는 고민인가 보다. 어제 열관리 시험을 봤다만 붙었나는 의문이다. 붙었다고 보고 싶지만 그렇지 못할 때는 어떻게 할 것인가. 여하튼 위험물 취급과 열관리를 동시에 쳐볼 생각이다. 결코 인내로서 이겨낼 생각이다. 2500원이 헛되지 않다는 생각이다. 오늘 나 혼자 술을 좀 마셨지만.          

1980.03.15

주말이다. 신혼인 조상현씨 내외분을 찾아봤다. 계원 전원 5명이 참석했다. 그 중 총각인 나와 조순방 형이 갔다. 물론 나는 총각이라 해야 아직 군복무도 필하지 않은 초년생 총각이다. 내가 생각하기엔 조상현씨는 장가를 잘 갔다는 생각이 든다. 무엇보다도 종태 형이 자꾸만 떠오르는 것은 무엇때문일까? 좁게만 생각하던 나에 마음은 어딘지 모르게 무식이 탄로나는가 보다. 역시 종태형은 우리 형인가 다른 사람 보다는 훨씬 나은 것 같은 느낌이다. 좀 더 높은 수준인 느낌이 든다. 아울러 나도 장가를 간다면? 그리고 한 가지 느낀 것은 연상의 동료들과 어떻게 어울리는 것이 최상의 효과를 가져오는가는 좀 더 세월을 두고 생각해야 될 것 같다. 노래도 다양하게 한 두 가지 쯤은 알아 둬야겠다.          


1980.03.31 월

끝과 시작이 엇갈리는 순간이다. 3월 한 달도 별로 한 일 없이 4월을 맞이해야 하는 나에 마음은 다시 한 번 사색 침잠에 접어들고 싶은 것이다. 28일. 어머님이 상경하셨다. 어제 내려가셨지만 내가 얼마나 성의 있게 대해 주었나 생각하고 싶다.

항상 생각하면서 마음 아퍼하는 것이지만 더욱이 오늘은 손이 터지면서 자식들을 위해 희생하시는 어머님을 볼때 마음껏 울어보고 세상을 탓해보고 싶은 거란다. 그렇게 해봤자 아무 소용없는 일인지 알지만 경제적으로 내가 좀더 보태드리지 못한 것이 후회가 된다. 능력 있고, 돈을 많이 부쳐준다는 것이 아니라 어저께 같이 다만 몇 푼이라도 보태주는게 자식된 도리가 아닌가 한다. 현재 나의 위치로는 봉양과 양지를 함께 해야 되지 않나 생각든다.

오늘 회사에 출근해 보니 주일을 보낸 이야기가 수없이 나돌고 있다. 결코 그렇게 노는 것이 현명한 일인가? 또 한 가지 조심해야 할 것은 이제껏 펑펑거리며 동료들에게 사기 친 것이 탄로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오늘 철순이가 간단한 짐이나 싸가지고 훌쩍 나의 곁을 떠나버렸다. 집에 와보니 웬지 허전하고 쓸쓸하다. 좋으나 미우나 근 1년이라는 기간을 같이 생활한 친구니 지금에 와선 서로 좋게 되도록 빌어주고 싶구나. 결코 실패하지 말고 성공하길…

이제 또 하나의 나에 대한 실현이 시작되는가 보다. 이제껏 둘이 생활하다 혼자 생활한다는 것이 두렵고 어려울 것 같지만 혼자 생활해 보려 한다. 결코 외로워 하지 않고 살아보련다. 홀로 있는다는 글 자체가 외롭게 들리지만 어떻게든 뜻있고 보람있는 나 홀로 생활이 되게 하리라 다짐해본다.          


1980.04.08 화

공든 탑이 무너지는 날이었다. 해본다고 했는데 낙방이라니…

열관리 자격증 취득하기가 그렇게 어려운 것인가? 아무튼 나에 머리를 탓해 보련다.

내일 지구가 망한다 하더라도 나는 오늘 한 그루의 사과 나무를 심어 보련다. 내일부터~          


1980.04.13 일

봄이라곤 하지만 장마철을 실감케 할 만큼 날씨가 궂은 것은 왜일까. 언제부터인지는 모르지만 휴일만 되면 날씨가 궂다는 공통점에는 뭔가 신의 장난이나 아닌지?

경제적으로 부족하다보니 나의 할 일을 다 못하고 있는 것은 알고 있지만 이렇게 하루종일 방구석에만 앉아 있짜니 사람이 사는데는 무엇을 바라고 고생을 하면서 사는 건지 의심이 가는 거란다. 어제 먹은 술로 인해 지금도 골이 띵한 거란다. 마음 약해서… 짜란라 짠짜라 노래 가사에 비해 음악의 리듬이 너무 화려한 거란다. 여기서 나에 단점을 한 개 더 지적해 보려 한단다.

악하고 나를 깔보는 사람에겐 강한게 나라고 보면, 순하고 나를 좀 도주는 사람에겐 마음 약해서 일의 처리에 하자가 걸리는 듯 싶다. 한국 축구가 약한 팀에게는 약하고 강한 팀에게는 강하다는 말이 있다. 그것이 결코 현명한 방법인가?

박찬희의 5차 방어전 실황을 시청했다. 언제나 큰 방에 가면 느끼는 것이지만 부모 형제와 같이 생활한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것인가를 미치도록 생각나는 거란다. 객지 생활... 이가 갈리도록 지겨운 거란다.

내가 이 다음에 가정을 갖는다면 자식들에게 어떻게 교육하고 어떤 방법으로 행복을 생활화 할 것인가? 잠시 상상해 보는 거란다.           


1980.05.01

틀니.

오늘 회사의 한 선배님께서 이렇게 틀니를 하고 있다고 한탄, 하소연 비슷하게 말씀을 하시더라. 인생을 어떻게 사는 건지 도무지 알 수가 없구나. 나의 어머님께서 틀니를 하고 계시다. 얼마나 불편할까?     


1980.05.20 화

17일부터 19일까지 집에 다녀왔다. 무엇보다 생각나는 것은 우리 집안의 경제 사정이다.

국내 사정이나 국제사정을 감안 할 때 당연히 그렇게 되리라 생각하지만.     


1980.05.28

날짜는 확실히 모르겠다. 창고에 왔다가 다시 주물 2과로 가고 주물 1과로 간다는 사실.

누가 뭐래도 나 자신이 초라해 보이고 병신인 것은 틀림없다.

뭐라해도 키타나 배우고 독신이고 지랄이고 살아봤자      


1980.06.09 월

불타오르는 젊음 무엇이길래 그토록 마구 노는지 모르겠다. 어제 먹은 술로 인하여 오늘 월차 내고서 하루종일을 무의미하게 보낸 것 같다. 돈으로 따지자며는 10,000 정도는 손해 보는 듯 싶다. 12시쯤 종철이가 찾아왔었다. 옥포에서 어저께 올라왔단다. 옥포 조선소의 시설이 참 잘되어 있다는 줄거운 얘기를 주고받았다. 오늘 집으로 10만원 보냈다. 동생들 학비라도 보태줘야 종학이 할 일을 하는 것 같다. 부모 형제를 위해 최대한 노력할 거슬 다시 한 번 다짐해본다. 그리고 분명 생각할 것은 술 좀 줄이자는 것이다.           


1980.06.28 토

현인이와 영삼이가 7월7일 입대를 한단다. 남자로서 태어나서 군에 간다는 것 그만큼 컸고 그만큼 자랑스러운 일이라는 것 자명한 일인 것 같다. 그렇다면 군에 입대한다고 해서 조금도 섭섭히 생각할 게 못 되는 것 같다. 간단한 송별식과 함께 청심회 회의를 열었다. 영훈이가 군에 갔기 때문에 회장 대행으로 내가 맡게 되었다. 열심히 능력껏 뛰어볼 생각이다. 7월 6일 현인과 영삼이 고생길의 시작에서 좀더 자신있는 군인 생활을 하도록 만나서 얘기 해주도록 해야겠다.          


1980.07.07 토

현인이와 영삼이가 군에 가고 이제는 성현이와 내가 병역을 시작하면 우리 친우들도 모두 병역을 필하게 되는 것 같다. 오늘 청주에서 입영하게 된 영삼이와 현인이를 환송해주었다. 약간의 서운함이 있지만 기쁜 마음 더 하는 것 같다. 열차에 올라서 군가를 부르는 것을 볼 때 너희들을 참 행복하다 생각하면서 군인도 못 가는 내가 참 비참하도록 참혹하게 느껴진다. 차라리 죽어버리는 게 낫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내가 왜 병신이냐란 말이다. 더욱 잘 살 것을 다짐해본다. 그리고 더욱 행복한 생활을 할 것을. 그리고 친구들 모두 잘 있기를…

현인 영삼 강식 영식 필영 지근 만섭 선동 근수 세인 시영 재옥          


1980.08.05 월

어제는 너무 피곤했다. 난생 처음 서울 운동장에 야구 관람을 했다. 상옥이와 칠순이의 도움으로 그런대로 재미있었던 하루라고 생각하고 싶다. 세광고가 선린상고를 이길 때 그렇게 기뿔 수가 없었다. 고향의 정이란 어쩔 수 없는 본능인가 보다.

배문고:목포상고 10:3 으로 배문 승리

세광:선린상고 2:1로 세광 승리

전주:휘문 1:0 전주 승리          


1980.08.15 금

광복절이다. 하루 잘 쉬었지만 내일이 걱정 되는구나. 거주지가 인천에서 수원으로 옮겨야 할 생각을 하니 고민이 된다. 8월 13일자로 철차 사업본부로 발령이 났다. 이제 남은 것은 부곡 공장에 어느 자리에 떨어지느냐가 문제다. 직접 생산직이 아니었으면 좋겟다만… 내가 작년 6월 11일이 이 방으로 이사를 왔으니 만 1년이 넘은 것 같다. 막상 이사를 간다니 섭섭하다. 주인집 아주머니께서 지성으로 보살펴주신 은혜 어떻게 갑아야 할지… 지금 이사간다 하드라도 자주 들려야겠다. 순방이 형이 이 방으로 이사를 온다니 다행이다. 부디 줄겁게 웃으면서 지내기를 바랄 뿐이다.           


1980.09.01 월

전두환 대통령이 취임한 날이다. 우리 같은 처지에서 단지 하루 쉰다는게 즐거울 뿐인 것 같다. 결코 한 발 앞도 내다보지 못하는 사람들이라 그런 것이리라. 하루종일 방안에서 이리 둥글 저리 둥글 그렇게 보냈다. 한심한 일이다. 환경의 변화는 분명히 되었으니 생활의 변화도 당연히 따라야 할 것 같다. 인천에서 생활이 연속이 되어서는 안되겠다. 이제 타관 땅에 새로이 도착했으니 새로운 삶을 시작해 보자꾸나. 이제 여기에 와서 여자도 하나쯤은 사겨보면서 공부에 열중해 보자. 남이 어떻게 생각하든 용기를 내보자. 누구한테 신나게 두들겨 맞는 한이 있다 해도 덤벼 보자. 그리고 회사에선 벙어리 아닌 벙어리가 돼 보자. 작업상의 이야기 이외에는 절대 벙어리가 되자.      

내가 이사 다닌 집이 가만히 누워서 생각하니 이 방이 꼭 11번째 나의 자취방이다. 한 많은 청춘이라 해도 좋을까? 결코 남은 게 무엇이던가? 약해지는 이 몸을 생각해야 할 텐데. 큰 일이다. 언제든지 자살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지고 생활하자. 인간은 아니 모든 동물은 끝에 가서는 원점으로 돌아가게 되리라. 함종학.          


1980.09.05

80년 9월 들어 벌써 5일이 지났다. 오늘 일기를 쓰자면 주제가 단연 세탁소에 옷 맺긴 사건일 것이다. 세탁하고 지퍼 다는데 1700원이라니 나에 일당이 무려 반 이상이 드는 것이다. 앞으로 비는 것을 생각해서 좀 더 알뜰한 생활을 해보자. 저녁 때 느낀 점이 있어 소주 2홉들이 한 병을 마셨다. 좀 취하지만 오늘을 계기로 좀 더 알뜰한 생활을 해보자.          


1980.09.07 일

뜰 앞의 국화가 만발하였다. 빨간 국화와 자주색 들국화. 아침 저녁으로 쌀쌀한 날씨가 완연한 가을을 알려준다. 무엇보다도 걱정이 되는 것은 이 나라의 농사일 것이다. 공업에 종사하고 있는 나로서는 어떤지 상황은 모르지만 매스콤에서 걱정들이다. 추석도 얼마 남지 않았다. 벌써 부터 마음 설렌다. 오늘 종달이 형 처음 면회 갔다 왔다. 많은 면회자들 속에 종달형과 종배 그리고 등등 전우들. 나로선 부러울 뿐이다. 세월이 약이리라 다짐해본다. 군에서 돈이 많이 필요한가 본데 종달이 형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작으나마 보태줘야겠다. 집에 내려가기전까지라도 말이다.           


1980.09.14 일

지금도 넙적 다리 부분의 근육이 땡기고 쑤신다. 이러한 일은 일기장에 적지 않으려다 다시는 이런 일을 당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에서 적어본다. 나 보다 한 해 인천기공 학교를 늦게 졸업하고 나이도 1살 적은 놈이 옛마젓마 하는데는 감정이 퍽 상했었다. 그러한데서 감정이 생긴 것 사회생활 하는 나로서는 큰 잘못이라는 걸 알았다. 9.11 낮에 윤회하고 다투는데 동기라는  녀석이 같이 대들었다. 조금있다 사과는 받았지만 저녁 때 다시 그네들 집에 가서 사과하리라 갔었지만 그 자리에서 술을 내가 너무 했나보다. 이성보다는 감정이 너무 앞선 듯 싶다. 어떻게 된 것인지 그 자리에서 나에 갱판으로 나는 맞었지만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다음부터는 대들지 못할 테니까… 그리고 앞으로 또 그리한 일이 있을 때는 끝장을 보리라 다짐한다.

객지 생활 하는 내가 요사이 궨한 스트레스가 쌓이는 것 같다. 특히 이성 문제에 있어서 많은 자제를 해봤지만 자꾸만 생각이 난다. 성공하도록 노력해 보련다ㅡ          


1980.09.15 월

아침 대신으로 사과 2개를 먹고 출근했다. 별로 배고프지 않았다. 저녁에 신문을 보는데 어려움이 많았다. 한문을 너무 모르고 있는 것 같다. 한문 공부 좀 해야겠다. 회사에서 벌써부터 추석 귀향 문제 때문에 말이 나돌고 있다. 멀리 가는 사람들은 예매할 문제 때문에 걱정들이 있다. 난 수원서 청주 가는 시외버스 타고 가야겠다.          


1980.09.27 토 맑음.

청량한 가을 날씨였다. 한 낮의 오후는 노곤함과 졸리움이 엇갈리는 순간이었다.

추석 때 집에 가서 5일간 피곤하게 쉬었다. 일을 할려니 일이 손에 잘 잡히질 않는다. 추석 때 집에 가서 행동한 걸 날짜별로 적어보련다.

20일. 저녁 청주에 도착해 종준이와 종운이 그리고 종출이 형과 하룻밤을 보냈고

21일. 청주집을 나와 종운이와 청주 극장 매스맥스영화 관람한 다음 음성으로 왔다. 별로 많지 않은 추석 귀성객으로 음성까지는 편하게 왔다. 언제나와 마찬가지로 음성에서 집까지 가는 보통이 불편해. 4시에서 7시까지 기다려야 할 때 였다. 택시를 탈까 하다 우연히 동숙이를 만나 음성 이모댁을 찾았다. 자진해서 간 것이 아니라 차 시간과 동숙이를 만나 이모댁을 찾은 것이 꿰림직 하다. 저녁에 완식이네 새 집에서 돌이 짖구땡이를 해서 1700원을 잃었다. 재옥 나 완식 인수 운희 창룡이 있었다. 모처럼 만나 하투를 한다는 것이 무척 안닦까웠다.

22일. 친구들과 앞개울에서 고기를 잡았다. 창룡이네 앞에서 사발 정도의 중투리를 잡았다. 재옥이는 재미없다고 투덜거렷다. 집안의 간단한 심부름을 한다음, 저녁에 중투리를 끓여먹었다. 그 전에 국교 동창회 회람을 돌리는 친구들을 피한적이 있었다. 순간적으로 귀찮은 존재라고 느꼈지만 그렇게 꼭 피하는 것이 올바른 행동인지는 나 자신이 판단이 좀 어려워지는것 같다. 어제도 마찬가지로 친구들은 또 화투를 한다. 장소는 여전히 식이네 새 집이다. 나와 재옥이는 술을 마시기만 옆에서 구경을 했었다.

오후 두 시경 집에 와서 잠자리에 들려고 하는데 사랑방에서 형수님의 대단한 고통의 신음소리가 귀를 때린다. 엄마에게 가보시라고 하고 이내 잠을 설쳤다. 23일 새벽까지도 형수님은 몸을 풀지 못하고 애를 쓰신다. 집은 비상이 걸렸고 분주하게 아침 차사를 마쳤다. 다른 때 같으면 창수네 집을 선두지내고 우리집은 4번째 지냈었다. 그렇지만 오늘은 형수님의 몸을 풀기 전에 지내야 한다고 일찍 차사를 끝냈다. 형수님이 너무 고생을 하신다. 추석날 조상님들의 성묘도 다녀오지 못하고 차사로서 대신한 것이 이내 마음에 걸린다. 동네 이집 저집을 돌아다니면서 술을 마신게 저녁때는 상당히 체었다. 저녁엔 술을 마시고 토골을 올라가 싸움도 했고 집에 내려와서 24일 새벽 2시에 구판장에 나 승규 운희와 술을 사러 갔었다. 밤늦게 다닌다고 창선이 아빠에게 운희 승규 신나게 맞고 다음 날 우리 셋이는 욕 신나게 얻어 먹었다. 집에 가서 챙피 톡톡히 당했다. 통에 아가씨들과도 놀고 싶었지만 체면을 유지 하느라 무척 참았다.

23일 저녁 형수님은 집에서 몸을 풀지 못하고 민영이가 끌고온 자가용을 종출형이 운전하여 괴산 영세 병원으로 입원하게 되었다. 23일이 다가고 24일이 가도 형수님은 몸을 풀지 못했다. 나는 24일 올라와야 했지만 형수님도 궁금했고 올라오기도 실어서 24일 하루 더 집에서 쉬었다. 24일 하루 종일 운희와 술을 마시다 곤도레 만드레가 되어서 둑방에 가서 몇 시간을 자고 왔다. 25일 아침 형수님은 몸을 풀었다는 소식이 왔다.

아들 봤다고 아버지는 좋아하신다. 늦게나 안 사실이지만 형수님은 고생 무척 하시고 아들이 아니라 딸이라고 했다. 3일만 속이면 아기가 장수한다고 어머님은 거짓말을 시킨다고 한다. 나는 형에게 아기의 이름이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아직 짓지 않았다고 한다. 이젠 나에게도 조카가 생겼고 나도 이제 삼촌이 된 셈이다. 많이 성장했고 세월도 많이 변했다. 그리고 이번 추석은 알콜에 5일간 젖어있었다는 것과 집안의 어수선함 즉 형수님의 고생으로 마음이 긴장했으나 좋은 추석 명절을 보냈다고 쓰고 싶다. 조카의 건강한 성장을 바란다. 신의 은총이 있길 빈다. 조카생일 (8.16 일 음력 밤 10시)          


1980.10.09 목

오늘이 무슨 요일인가 한참을 생각해서 알았다. 벽에 걸린 달력도 없지만 세월 흐름에 너무 무감각 한가 보다. 어저께가 한로 라니 이제 이 가을도 시작이라기 보다 끝이라는 느낌이 든다. 이 가을이 다 가기 전에 뭔가를 남기고 떠나야 하는데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 물론 독서의 계절이라고들 하지만 꼭 책을 읽어야 하는건지? 지식은 마음의 양식이고 마음의 양식은 자본이라고 하지만 더욱 앞서서 지식은 책으로 통해서 많이 좌우된다고 해도 과언은 아닌듯 싶다. 또 책은 남의 것을 빌려 보기보다는 자기 책이라야 한단다. 왜냐하면 눈에 볼 때 마다 그 내용을 생각하게 된다고 전문가들은 말하고 있다. 아무튼. 나로서는 더욱 더 지식을 쌓아야 할 것 같다. 독서를 안 하더라도 연필과 종이와 책을 놓지 말자. 잠시라도 단 1초라도 좋고 치사한 낙서라도 하자. 결코 알콜로 친해지지 말기를 마음으로 약속한다만 어떻게 될지.

8일 저녁에 영훈네 집을 찾았다. 사실은 돈 얼마 안 되는 것 받으러 갔는지 모른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영란이가 자꾸만 마음에 쏠린다. 이제 겨우 고1년생이지만 동생같기도 하고 좌우간 무척 귀엽고 착한 애 같다.

오늘은 인천에서 친구 덕선 상옥 재형과 즐기다 형에게로 면회 갔다. 그런데 인천서 3:30 차로 출발해서 비행기장에 도착하니 4시28분이었다. 문제는 경비들이 면회시간이 끝났다고 면회시켜주지 않기에 사정사정해서 겨우 면회했다. 만나서 별 얘기는 없었지만 두서없는 이야기 하다 왔다. 무엇보다도 기쁜 일은 돈 2만원을 형에게 건네 주었다. 지금 기분은 여발통치의 기쁨이리라. 이 행복 영원히 간직하길~          


1980.10.22 수 맑음.

제 5 공화국을 탄생시킬 헌법을 개정하는 국민투표일이다. 나에겐 난생 처음 얻어진 투표권이지만 기권한 것이 무척 마음에 걸린다. 시골로 갈려고 했다만 손의 상처 때문에 가지를 못했다. 10월12일 일요일이었다. 모처럼 돼지고기를 사다가 진수성찬을 만들어 먹다가 날벼락을 맞은 것이다. 벽에 있던 거울이 바람에 떨어지면서 나에 머리와 손들을 쳤는데 다행히 손만 다쳤다. 바로 한일의원 가서 10바늘 꼬매었다. 정말 괴로웠다. 회사에 나가 눈치보기도 그렇고 조석으로 끼니도 그랬다. 동수형에게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이 신세 좀 져야겠다.

이제껏 글씨도 쓸 수 없어서 쓰지 못했지만 이제 조금은 쓸 수 있으니까 일기도 좀 써보자. 앞으로 3~4일 지나면 완쾌 될 것 같으니 그 때가면 밀린 빨래도 좀 하자. 상처가 빨리 아물길.

흘러간 팝송. 영화. 음악.          


1980.11.15 일

11월8일 일을 오늘 쓰려 한다. 너무나 한심하기 때문이리라. 천안서 용구 친한 형 결혼식 장에서 술을 너무 한 까닭으로 실수를 많이 했다. 천안서 1시 38분차를 타고 성현 상희를 만나러 갔다. 하지만 저녁 8시30분에 도착한 곳은 청주 종준이 집이었다. 그동안 어데서 무얼 했는지 죽지 않았길 다행이다. 주머니에는 조치원역에서 벌금 2660원의 영수증이 찍혀있다. 그것도 생각나질 않는다. 항상 술을 조심해야겠다. 맹세한다ㅡ          


1980.12.06 토

대우 공돌이의 봉급일이 오늘이다. 7일이 일요일이기 때문에 하루 앞당겨 준 것이다. 친구라도 있다면 월급날이라고 한 잔 하겠지만, 이 곳 부곡에 와서 친구도 없고 해서 혼자 고량주 1병을 억지로 마셨다. 언제부터인지 객지에 나와서 생긴 버릇인가 보다. 월급 타서 카메라를 살까 했는데 그것보다는 어머니 반지라도 해드리는 것과 좀 더 돈을 저축하는 것이 현명한 생각이 든다. 내일은 종달이 형 면회가고 되도록이면 시영이 면회까지 가기로 하겠다. 그리고 여자도 되도록이면 사겨 보도록 하겠다.          


1980.12.26 금

성탄절도 조용히 보냈다. 보너스 탄 것으로 카메라를 샀다. 105,000 중고품 야시카다. 가족 것으로 쓰기로 하겠다. 오늘 민혜 백일 선물로 금반지 반 돈을 준비했다. 기분이 매우 좋다.          




강나루 건너서

밀밭길을     

구름에 달 가듯

가는 나그네     

길은 외줄기

남도 삼백리     

술 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놀     

구름에 달 가듯

가는 나그네                    

갈 수 없는 나라 (조해일)     

사랑 없는 세상에

사랑을 주러 왔던 너.

너의 작은 가슴.

그러나 큰 마음.     

평화 없는 세상에

평화를 살러 왔던 너.

너의 작은 가슴.

그러나 큰 마음.     

정의 없는 세상에

몸 다쳐 쓰러진 너

너의 작은 손

그러나 큰 슬픔     

네가 헤메어 찾던 나라

맑은 햇빛과

나무와 풀과

꽃들이 있는 나라.

그리고 사랑과 평화가

있는 나라.

그러나 그 곳은

갈 수 없는 나라.     

네가 가버린

갈 수 없는 나라.     


80.3.19 PM8     

너무나 조용하고 적막한 밤에

홀로 있기가 서러운 맘이 들어

외로운 시와 함께 마음을 달래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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