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세
1985.01.07
눈 깜짝할 사이에 해는 바뀌었다. 신정 연휴라 하여 친우도 만나보고 고향에도 다녀온다는 계획은 계획에만 그치고 말았다. 대전에서 친우들을 만났을 때 1.1 아침에 간단히 한잔하고 헤어졌어야 하는건데 술김에 현인의 처가집엘 다녀왔다. 무리한 줄은 알고 있지만 젊었을 때 한 때라고 생각하고 싶지만 그 곳에서 술 먹고 추태 부리는 것은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인 것 같다.
술은 잘 먹으면 약이 되고 잘 못 마시면 독이 된다는 옛말을 되새겨 봐야겠다. 남에게 만날 때마다 나에 성실함을 자랑하고 다니는 내가 적당히 술을 마실 줄 모르는 걸 보면 얼마나 한심스러운지 모르겠다. 술을 마시면 자연히 실수도 하는 법이다. 앞으로 술은 나에 적으로 생각하고 적당히 마시는 법을 배워야겠다.
그리고 중개사 자격증을 취득하려 계획한 내가 왜이리 망설이는지 모르겠다. 2월말까지만 학원에 다니며 열심히 공부하고 그 후에는 잔업을 해가면서 공부하리라 마음 먹는다. 애초부터 계획은 중개사 자격증을 따는 것만이 꼭 목적은 아니었으니까 상식으로만 알아두어도 뿌린 댓가는 충분히 지불한다고 생각한다. 최선을 다하길 바랄 뿐이다.
1985.06.14 금
세월은 흘러 바야흐로 신록의 계절이 되었다.
거주지를 옮겨 5일이 지났지만 아직도 전에 살던 집이 생각난다. 오랜만에 동생이 짐을 뒤지다 고교시절의 일기장을 보게 되었다. 감회가 새로워 앞으로 계속 일기를 써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었지만 그 생각이 얼마를 지속런지는 의문이다.
옥순이를 만난지가 꿰 오래 된 것 같다. 계속 만날 때 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정숙하고 여자다운데는 있지만 연애 생활의 재미가 상상과는 너무나 다른 면을 느끼는 것 같아 그렇게 기분이 좋지만은 않다. 한가지 밝히고 싶은 것은 이 다음에 결혼 생활 하다보면 원만한 가정을 이끌 사람 같기는 하다.
고압가스 기계 자격증을 취득할 때도 그랬다. 그 자격증을 취득하면 결혼 문제 및 경제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하지만 결과는 생각과는 너무나 다른 것 같다. 그렇지만 냉동을 시작했을 때는 그 점에 대해서 한 번 더 속아보기로 하고 시작한 것이다. 나이를 생각하지 말고 열심히 해보자.
1985.07.06 토
오늘은 줄거운 날이었다.
처음으로 평일에 옥순이와 date를 했다. 여의도에서 자전거를 탔을 때 비틀거리고 겁없이 달리는 옥순이를 보며 불안해 지는 이 마음. 영등포에서 대중 속에서도 사랑한다는 그 말. 조용하고 부드럽게. 침착하고 분명하게 나에게 고백하고 기대서서 어쩔 줄 모르는 옥순이 사랑스럽다.
가식이 아닌 진심으로 옥순이를 사랑한다.
6월 봉급을 받았다.
공제금이 너무 많아 얼마 받지 못했다.
한 달 지낼 일이 걱정된다.
29세
1986.02.09 일
구정이다. 고향에 다녀오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 시간이 없어서 못간다는 핑계는 변명에 불과하다. 나이가 들면서 관심이 덜한 탓일거다. 결혼 날짜를 받아놓고 보니 마음에 동요가 일기 시작한다. 옥순이를 사랑하면서도 왜 자꾸 짜증을 내는지 모르겠다.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것일까? 어짜피 천생연분이라면 최대한 생각해주고 위로해 주어야 할 것이다. 86년도엔 일기를 좀 써보자. 나이가 들어도 항상 연필을 가깝게 해야 되는 줄 알면서도 그게 제대로 되질 않는다. 인생은 낳아서 죽을 때까지 배우면서 살아가는 것이라 생각하자.
1986.06.15
정말 오랫간만에 쓰는 일기다. 이 일기장을 손 대 본지가 벌써 몇 개월이 지났는지 세어볼 수가 없다. 왜 그랬냐? 알코올 기분에 내 생각도 하는가 보다. 오늘은 줄거운 날이다. 동문 친구들과 만나고 우리 마누라에게 제일로 행복했다는 말이다. 사실, 결혼한지 3달째 되는 날인데 나는 내 부인에게 화만 냈지 정작 내 부인을 줄겁게 해줄 것은 생각한 적이 손가락에 꼽일 만 하다. 결혼 생활은 또 다시 나에 인생을 쓴다고 생각은 하지만 나도 당연히 반듯이 변해야 한다고 생각은 마음 속으로 생각해 봤었나.
이상이 꿈이 될 수는 없다. 언젠가 고등학교 시절에 그런 구절을 쓴 적이 있다. 이상은 반드시 실현 시켜야 한다고. 그래 지금 생각해 보면 이상과 꿈은 반드시 규열되어야 한다고. 나에 제 2의 인생은 시작되었다. 그렇지만 형식상에 생활은 바뀌었지만 실제적으로는 나는 그 이상을 향해서 더 좋은 조건이 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그것은 생활에서 찾아야 할 과제다. 나에 이상은 과연 무엇일까? 얘기를 쓰자면 끝이 없을 것 같다. 오늘은 이만 끝내고 내일부터 반성을 하면서 살아가야겠다.
1986.06.16 월
일요일을 너무 무리하게 지내서 고생한 하루였다. 건강은 일종의 재산이라는데 빈털털이가 건강이라도 지켜야겠다. 회사에서 지부장 초대로 회의 겸 지부장 집 방문이 있었다. 어느 장소에서던지 찬성과 반대는 있기 마련이지만 지부장을 책망하는 사람들 속셈이 무엇인지 의심스럽다. 아내에게 미안하게 생각한다. 어제도 혼자만 열심히 술 마시고 놀고 오늘 또 집에 늦게 오니 미안한 맘 그지 없다. 집에 오니 냉장고가 우리 방을 채우게 되었다. 어렵게 마련한 냉장고이니 부디 오래 오래 고장나지 않고 사용되길 바람이다.
1986.06.19
결혼 생활을 시작한지 3개월이 지나갔다. 처음 동거 생활을 시작할 때 서먹서먹 하면서도 의견 충돌이 잦았던 점이 나를 우울하게 하였었는데 날이 갈수록 부부생활이 재미있어지는 것 같다. 한 가지 고민이 해결되면 또다른 고민이 생긴다는 것은 인생살이에 있어서 철칙인 것 같다. 돈이 많은 부자는 그 나름대로의 고민과 갈등과 행복을 느끼겠지만 돈이 적은 가난뱅이는 그 나름대로의 고민과 갈등이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돈이 많은 부자와 돈이 적은 가난뱅이의 고민과 행복은 대등하다고 생각하고 싶다. 그렇지만 돈이 적은 가난뱅이는 부자를 생각하면서 살아가야 할 것이다. 만약 돈이 적은 가난뱅이의 행복만에 만족해서 산다면 생이 무력해질 염려가 있기 때문이다. 현실을 이해하고 만족을 느끼려고 노력하지만, 생의 목표는 반듯이 세워서 전진할 줄 아는 생을 택해야 한다는 말이다.
하루하루를 무기력하게 보내는 것 같다. 무엇인가 목표를 정하고 힘차게 전진해야겠다. 언젠가 나에 일기장 겉장에는 이런 귀절을 쓴 적이 있다. 운명아 비켜라 내가 간다. 그러므로 젊음은 목표를 분명히 세워야 한다고. 목표는 이상이라고도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이상은 실현되어야 한다고 그 이상의 실현을 위해서는 어떤 고난도 난관도 험한 파도도 이겨야 된다고. 남들보다 노력하지 않는다면 어찌 남보다 잘 되기를 바라겠는가?
1986.12.29
한 해가 저물어 가고 있다.
누구보다도, 어느 해 보다도 나에게는 기억되어야 할 한 해인데 연말에 와서 생각해보면 좋은 기억 보다는 좋지 않은 기억이 남는 아쉬운 시간이었던 것 같다. 제 2의 탄생이 사춘기를 벗어나는 시기라면 86년 한 해가 나에게는 제 2의 탄생을 한 것 같다. 제 2의 탄생을 하려고 노력한 것 같다. 사춘기를 벗어난다는 것은 어른이 된다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어른이 된다는 논리가 단순히 나이가 들고 결혼을 하여 형식적으로 어른이 된다고들 많은 사람들은 생각하겠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질 않는다. 제 1의 인생은 부모님 밑에서 생각대로 행동하고 절제 없이 생각나는 대로 세월을 보내는 것이라고 즉 이성을 억제 하지 못하는 생활이 제 1의 생활이라고 본다. 내가 어른이 되었다면 생각 즉 이성을 억제할 줄 알아야 하는데 그러질 못하니 아쉽기 한이 없다. 사람은 평생 어른이 되지 못하고 생활 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그렇지만 자신을 달래자면 그래도 어른이 되기 위해 노력한다면 그것만으로도 족하리라 본다.
남은 86년 몇 일을 어른이 되기 위해서 86년을 뜻있게 보내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도록 노력하자. 끝이 좋으면. 모든 것을 묻을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30세
1987.07.17 금
오래간만에 책상에 앉아도 보고 일기장도 들춰본다. 삶이 바쁠수록 자신을 잊고 살기 쉬운 법이지만 이러한 논리를 알면서도 그것을 실행하지 못하는 것은 게으르기 때문일 것이다. 아무리 생이 바쁘더라도 자신을 돌아보고 반성하고 선의 삶이 어떤 것인지는 생각해보아야겠다. 오늘 회사에서 별 잘못도 없이 심한 모욕을 참아가며 솟아오르는 화를 모면했다. 싸워서 이득이 없다는 평소 나에 생각 때문인지 싸우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물론 나는 내가 이겼다고 생각한다. 상대방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겠지만 나는 나 나름대로 그런 조무래기들하고 싸워서 무얼하겠다는 거냐 라는 생각 때문에 내 나름대로 위안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결혼한지 1년 3개월이 지났다. 아내의 몸 이상이 아무래도 임신을 한 것 같다. 기분이 좋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야릇한 감을 감출 수가 없다. 부디 몸 건강히 별 사고 없이 출산까지 해주었으면 고맙겠다. 시골의 부모님 그리고 큰 집 식구들은 모두 아무 별고 없이 지내는지 궁금하다. 결혼하면서 너무 무심한 것 같다. 경제적으로 도와주지 못할 처지에 있는 나로서는 정신적으로나 부모님과 그 가족들을 생각해야겠다. 그리고 또 하나. 공인 중개사 시험 준비하는 거냐? 확실히 해주기 바란다.
1987.08.21
부인이 우리를 위해서 몸이 불편하다. 송파동에 가 있는 동안 편안히 지내는지 궁금하다. 나에게 전화라도 주었으면 더욱 마음이 편하겠다. 매일 먹고 자고 출근하고 하는 꼴이 곰곰히 생각하면 너무나 무의미 하다. 나와 상관 없는 시대적 시끄러움에 감상에 젖지말고 현실에 분명히 직시하여 미래를 향한 꿈의 설계를 해야겠다. 결혼이 인생의 전부는 아닐 것이다. 결혼했다고 해서 게을러 져서는 안 된다. 매일 매일을 반성하고 인생 항로를 향하여 질주를 해야겠다. 내 나이 30이다. 자고로 인생의 반이 지나온 셈이다. 내 나름대로의 생활 철학이 있어야 하겠고 나 나름대로의 주관이 있어야 하는 것 같다. 이제부터는 매일 자신을 반성하는 시간을 가져야겠다.
1987.09.15 화
천고마비의 계절이 다가왔다. 아침 저녁으로 싸늘은 기온을 대할 때 야릇한 기분이 든다. 이렇게 책상에서 유행가를 듣고 있노라면 괜실히 우울해지기도 하고 서글퍼지기도 한다. 나에게 무엇이 잘못 되었다고 생각질 않는다. 다만 계절 탓으로 미루고 싶다. 가을이란 원래 인간을 감상에 젖어들게 하는 마력이 있는가 보다. 잠자고 있는 나에 아내를 바라보니 미안감이 들기도 하고 안돼 보인다. 보잘 것 없는 나에게 시집와서 고생하느라 고생이 많을 줄 안다. 저녁에 식사를 빨리 하라고 성화를 하길래 몇 마디 했더니 저녁도 안 먹고 잠을 잔다. 홀몸도 아닌데 저렇게 고집부리면 정말로 내 마음이 아프다. 좀 더 큰 마음과 이해가 서로에게 필요할 것 같다. 여자란 원래 소견이 좁은 법인데 나도 따라서 왜 똑같이 행동하려 드는지 모르겠다. 감상에 젖어 있노라니 시골 생각이 난다. 추석이 다가오면 밤도 따고 감도 맛 볼 것이다. 어서 빨리 추석이 다가와라.
"사랑"
사랑은 모든 것을 믿으며 참고 견디니라. - 해운대에서 신혼여행.
"아내에게"
한 때는 많은 날을
당신 생각에
밤까지 새운 일도
없지 않지만 아직도
때마다는 당신 생각에… - 해운대에서 신혼여행
-나 몰래 혼자 생각에 두고 있는 마음은 무엇일까? 내가 너무 고무적인 까닭일까?
31세
1988.01.20 수
초라한 나날들이다. 내 나이 이제 서른 한 살이다. 결혼도 했고 이제 곳 나의 2세도 태어난다. 서른 한 살에 나이에 다 똑같이 생각하고 똑같이 생활하고 있을까? 오늘 대우그룹에서 실시하는 산업교육원 입학 시험을 치렀다. 중학교 실력으로 출제 되었건만 영어, 수학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영어 수학이 사회에서 꼭 필요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필요는 하겠지만 지금 이 나이에 그것이 꼭 필요한 건 아니다. 특히 가장 자존심 상하는 일은 나와 비슷한 나이의 사람들이 나를 감독한다는 것이 무엇보다도 쓸쓸하다.
나는 내가 있고 내 부모가 있고 내 처자가 있을 것이다. 나는 왜 흔들리는지 모르겠다. 삶이 무의미하게 느껴지는 것은 그만큼 비관하기 때문이리라. 좀 더 생각하자. 그리고 진보하도록 노력하자. 현실은 언제까지나 남에게 배우며 살 수는 없는 것이리라. 내가 남을 가리킬 수 있어야 되리라. 서두르지 말자.
1988.01.22 목
인명은 재천이라는 말이 생각난다. 경비실 정문에 서무를 보던 김시종 씨 께서 세상을 떴다. 아침에 출근을 하려고 일어나다 쓰러졌다는 것이다.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으니 사람의 목숨이 얼마나 부질 없는 것인지 안닦갑지 않을 수 없다. 이제 나이 34살이니 그의 아내와 그의 자식들은 어떻게 살아나가야 하는 건지 대책이 서질 않는다. 하루 종일 그 생각이 내 머리를 스치면서 죽음과 삶을 생각해본다.
김시종씨는 평소 나와 친했지만 술자리 한 번 마련하지는 못했다. 그 분은 술, 담배를 모두 하지 않고 세상을 옳바르고 성실하게 살려고 노력한 사람이다. 왜 그런 사람이 일찍 세상과 등을 돌려야 하는 것인지 불공평한 세상을 원망하지 않을 수 없다. 극락과 천국에 가길 바란다.
1988.02.21 일
구정이라 4일을 원없이 쉬었다. 내가 대우중공업에 입사한 이래 처음으로 많이 쉬어 보는 것 같다. 학창시절 학을 맞은 만큼이나 기쁜 휴일이었다.
17일 저녁에 시골에 가서 18일 날 귀경했다. 복잡할 줄 알았던 귀향길은 구정 전야 즉 너무 늦은 탓인지 그렇게 복잡하지는 않았다. 옛날 생각으로 시골에 가면 구정 전야에 밤새 고향 친구들과 고스톱도 치고 막걸리도 마시며 재미 있을 거라고 생각하며 시골에 갔지만 여지없이 잘못된 생각이었던 것이었다. 나이가 좀 먹어서인지 저녁에 사랑방에 모이는 일이 없이 모두가 가족과 함께 지내는 것이었다. 나도 할 수 없이 가족과 지내게 되었지만 그것이 얼마나 다행스런 일이었던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감상적인 나에 어리석음이 웃읍다.
무엇보다도 명절에 고향을 찾는 것은 떨어져 살던 가족들과 모여서 그 동안의 휘포를 풀고 또한 조상들에게 성묘하는 것이 가장 큰 뜻이리라. 물론 친구들과 재미있게 노는 일도 무시할 수는 없는 뜻일 것이다. 내 나이 이제 30이 넘어섰다. 옳고 그름을 확실하게 파악하고 행동거지를 확실히 하는 생활자세가 필요할 것이다. 종준이 대학 졸업이 26일이다. 형으로서 무엇인가 축하의 뜻을 전해야 되는데 시간이 나질 않을 것 같다. 귀경하면서 종준이에게 축하인사를 미리 했어도 되었겠지만 어쩐지 미안한 감이 앞선다. 종연이 나이 이제 24이다. 시집이란 걸 생각 할 나이다. 오빠로서 아니 하나 밖에 없는 여동생을 생각 좀 하며 생활해야겠다. 아무리 시간이 바쁘고 생활에 쪼달린다 해도 주위 사람이나 친척들에게 사람 노릇 좀 하면서 살고싶다.
18일날 귀경해서 집에서 쭉 쉬었다. 앉았다 누웠다 방을 생활 공간으로 완전히 게으름의 연습이었다. 산월이 가까워 온 처의 힘들어 하는 모습을 볼 때 불안한 마음 그지 할 길 없지만 부디 몸 건강히 순산해주었으면 고맙겠다. 남자로 태어나 애기를 가져보지 못하는 인간이 어찌 배부른 임신부의 고생을 알 수 있으랴. 좀 더 이해하고 사랑하며 생활하는 생활자세를 가져야겠다. 집에서 쉬는 3일이 왜 이리 지루하게 지나가는지 모르겠다. 더욱더 한심스러운 것은 마음 속으로 생각하는 것을 실천하지 못하는 나에 결단력을 지탄하지 않을 수 없다. 몸의 건강이 좋지 않으면서도 아니 몸에서 받지 못하는 담배를 끈지 못하고 나에 결단력으로 무슨 일을 하려나 의심스럽다. 또 한 가지. 공인중개사의 확실한 자격을 갖추기 위한 한문 공부도 그렇게 흐지부지해서 무슨 큰 일 하려는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어짜피 인생은 잘 살던 못 살던 열심히 공부하여 조금 고생하며 살던 편안하고 무난하게 즉 안일 무사 주의로 살던 한 평생 사는 건 마찬가지 즉 땅에서 나서 땅으로 묻히는 것도 마찬가지일텐데 좀더 뜻있는 과정과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며 생활 할 수는 없는 것일까? 항상 희망적이고 건설적인 마음으로 미래를 향해 오늘의 고달픈 하루를 달콤하게 생각하면서 열심히 살자.
이제 몇 일 안 있으면 나에 2세가 태어날 것이다. 태어나는 아기를 위해서도 열심히 사는 생활자세를 할 것이며 태어나는 아기가 건전하고 건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해 나가며 생활해야겠다. 열심히 사는 것을 생활 철학으로 즉 그것을 취미 삼아 세상을 살아보자.
1988.03.20 일
며칠간 바쁜 나날이면서 기쁨도 가득한 순간들이었다. 내가 태어난지 31년 만에 우리 부부가 결혼한지 2주년 2일만에 아기가 태어난 것이다. 산모도 건강하고 아기도 건강하니 무엇보다도 다행이다.
양력 1988년 무진년 3월 18일 9시 28분. 음력으로 2월1일 출생한 우리 아기는 2.9kg의 약간 적은 몸무게로 태어났으나 초롱초롱한 눈초리 확실한 윤각으로 생긴 얼굴 생김새. 엄마의 젖을 힘차게 빨아대는 내 자식이 귀엽고 내 처가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다. 한엇는 기쁨으로 가득찬 가슴이지만 이 애기와 처를 아니 우리 가정을 위해 좀 더 열심히 생을 노력해야 될 것 같다.
어머니가 며느리 몸조리 차 올라오셨다. 제 처가 송파동으로 몸조리를 하러 가는 것도 있겠지만 장인, 장모가 없는 가운데 내가 보낸다는 것이 도리가 아닌 것도 같고 내 자식을 내 집에서 키우지 않는다는 것도 내 자존심이 허락하질 않았다. 우리 부모님께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내 처가 그것을 이해해 주었으면 고맙겠다.
아무튼 우리 애기 예명 승혜가 무럭무럭 자라서 이 나라에 훌륭한 사람이 되어 주길 바란다.
우리 아기 예명 함승혜
1. 인자함이 정상에 이르니 만인이 공경할 것이다.
2. 조부모님,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조상들께 효도할 것이다.
3. 너의 큰 집 큰 딸 이름 끝자가 혜자이니 우리 집안 모두가 너의 이름 부르기가 수월할 것이다.
무럭 무럭 자라다오
애기야!
네 아버지는 너를 보면서 한없는 기뿜을 누렸단다.
부디 건강하고 튼튼하게, 건전하게 자라라고
마음을 부탁하고 싶구나.
33세
1990.01.08
오늘도 할 일 없는 대체적인 날과 다름 없이 술만 몇 잔 마셨다.
술을 사랑하고 절제하려고 노력하는 나이길 희망하지만 뜻과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은 교양이 부족한 탓으로 미루어야겠다. 89년 기사년 시작 전에는 내 처와 내 자식 앞에 떳떳해지리라 마음 먹고 자신에게 질문해봐도 떳떳히 살았노라 생각했었지마는 지난 오늘에 와서 생각해보면 무언가 부족하고 덧 없는 세월을 보낸 것이 안닦갑기 그지없다. 자신을 돌아보고 반성하고 새 일을 생각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고통스러운 것인지를 새삼 느끼는 시간인 것 같다.
경오년 즉 90년도 새 아침에 나는 다시 태어났다고 생각하고 하루하루를 반성해가며 나에 자서전을 메꾸어 나가려고 마음먹었었다. 그러나 그것이 무절제한 생활이 생활습관화 되고 자신을 절제할 수 있는 극기심이 부족하다 보니 마음대로 되질 않는 것 같다. 나는 무엇보다도, 한 집안의 가장이고, 떳떳한 사회인이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함종학 자신인 것이다.
주위에서 충동질하거나 유혹한다고 해서 자신을 잃어버리는 것은 주어진 인간세계에서 버림 받을 수 밖에 없다는 진리를 새삼 깨달아야 할 것 같다. 왠지 지난 24일 이후로 마음이 잡히질 않는다. 어느 해나 그랬듯이 연말연초의 환경과 정신상태가 문제가 되는 것 같다.
나는 내 자식과 내 처가 있다. 내 사랑하는 처와 내 자식이 내 남편과 아빠를 무절제한 나에 생활을 진실로 알게 된다면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그래서가 아니다. 진정으로 나를 사랑하고 내 주위의 모든 사람을 사랑한다면 자신의 처신이 어느게 최선인지를 생각해봐야 하는 것 같다.
일기란 중요한 것 같다.
과거에 써본 기억이 있지만 그렇게 중요성을 인식하고 쓰지는 않았었다.
이 노트가 종이의 질도 좋고 표지도 내가 맘에 드는 대우중공업 가족에게 맞는 것이기 때문에 나는 이 노트에 반드시 뜻있는 글이 보여지기를 희망한다. 오늘도 술을 한 잔 마시고 글을 쓰다보니 두서 없는 글이 되고, 내용 없는 글이 되지만 나는 이 순간에 다짐한다. 글이 후지고 내용 없는 글이 될지라도 나를 위하고, 동료를 위하고 가족을 위하고 나아가서는 국가사회에 모범이 될 수 있는 내 처지가 되기 위해서 이 노트를 최선을 다해 정리하기를 약속한다. 오늘은 유난히도 계절에 비해 포근한 날씨다. 편안히 잠들고 건강한 내일을 맞기를 바란다.
1990.01.09
내 나이 이제 33이다. 화투치기에서 땡을 잡은 셈이다.
오늘은 계절답지 않게 비가 내리고 있다. 1월에 비가 내린다는 것은 왠지 즐겁지마는 않다. 세상이 미친 것 같다. 오늘은 어제의 무리 탓으로 수업시간에 졸음을 참느라 고생을 많이 했다. 정신적인 고통이란 육체의 고통보다는 힘이 들다는 것을 새삼 느끼는 하루였다.
산경감사니 1월 생산불출이니 하는 회사업무가 바쁜 관계로 회사에서는 피곤을 느끼지 못했지만 자유분방한 학교생활에서는 자신을 절제하지 못하는 내가 나를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되는 것 같다. 오늘 회사에서 승혜에게 전화를 했었다. 말이 제대로 되지 않아 아빠라고 부르는 소리가 무척 감미롭고 귀엽게 들린다. 나는 행복하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내 사랑하는 식구를 생각하는 마음이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좀 더 생활을 생각하고 절제하는 내가 되어지길 노력해야겠다.
1990.01.10
어제 저녁부터 나리기 시작한 비가 아침까지 주룩주룩 나리고 있다. 30년을 살아온 나이지만 이렇게 추워야 할 달에 비가 나리는 것은 처음 보는 것 같다. 중앙관상대의 얘기로는 온실효과에 의한 현상이라 한다. 이대로 자꾸 기온이 상승한다면 결국에는 남극의 만년설이 녹아서 바다 수면이 상승한다 한다. 남극지역의 넓이가 중국대륙과 인도를 합한 면적과 같다 하니 그 곳의 만년빙이 녹는다면 바다 표면이 현재보다 30cm는 더 높아져야 한단다. 그때가 되면 세상이 거꾸로 되는 것이 아닌가. 현재의 평야가 바다가 되고 산꼭대기가 섬으로 나타나는 귀이한 현상이 나타날 것이다. 이렇듯 세상은 자꾸 거꾸로 변해가는 것 같다. 나라 안이 그렇고 나라 밖이 그렇다. 회사 안도 어지럽고 바깥세상도 어지럽다. 현장의 목소리가 커지다보니, 관리직에 종사하는 사원들이 불안해 하고 있다. 현장의 무리한 요구가 그들은 정당하다고 아니 그들 때문에 덩달아 내가 좋아지는게 아니냐는 주장을 편다. 그러나 나는 다르게 생각한다. 내가 주장하는 것은 생산성 향상이 뒷받침되고 민주의식이 우리들 가슴저변에 질서잡고, 경쟁력이 뒷받침 되는 바탕 위에 회사와 내가 공동으로 만족할 수 있는 최대 공약수를 찾는 일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 같다. 따라서 나는 무리한 요구를 주장하는 노동운동가의 주장을 믿는 것이 아니라 그들 때문에 회사가 문을 닫고 감원을 단행한다면 결국 나에게 피해가 오는 것이라 생각된다. 즉, 세상을 넓게 보고 살아가야겠다는 주장이다.
1990.01.24
내일 모레 글피면 설날이다.
내 나이가 구정으로 말하나 신정으로 말하나 설흔셋이 다가오는 날이 되는 것이다.
1990.01.29
오늘은 음력으로 90년 1월 3일이다. 고향에 다녀온지 하루가 지났다. 10년 전 아니 그 이후에도 고향을 찾을 때는 떨리는 마음과 설레는 즉 희망의 마음으로 고향을 찾았었다. 그러나 몇 년이 지난 지금에는 그 희망적인 포근하기만 했던 고향 찾는 것이 그렇게 실감나게 감격적인 것이 아니라 부담이 가는 것 같다. 내가 나이가 들고 부모님들도 따라서 나이를 먹는 것이 실감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 어머님과 아버지는 나이를 들고 늙지 않는다는 생각 때문이리라. 그러나, 내 나이 설흔 셋이고 부모님이 환갑이 다가오니 세월이 빠르다는 것은 어쩔 수 없이 당해야만 하는 설움인가 보다. 아버지의 손가락이 굽었다. 뿐만 아니라 어머니의 이빨이 모두 상했다. 엄마의 말대로라면 외할머니가 음성이모가 돈을 싸들고 다니면서 틀니를 해 넣으려고 했다만 결국 실패하고 세상을 떠나셨단다. 내가 엄마에게 틀니를 하라고 했다만 엄마는 결국 찬성을 하시지 않았다.
내가 마음에 없는 말을 한 것인가?
자식이란 무엇인가?
키울 때 재미라고?
나는 지금 승혜를 보노라면 기뿌기 한량없다. 내 딸이라 그렇겠지, 그렇다면 내 어머니 아버지는 내 부모님이다.
부디 부끄럽지 않은 젊은 30대가 되고 싶다.
나는 지금 방황하고 있다. 분명 방황이란 스스로 해결하기 어려운 일일 것이다. 현재 믿는 사람은 내 처 밖에 없는 것 같다. 급한 사람이 우물을 판다고 했던가? 내 처가 분명 나 때문에 답답하고 믿는 남편에게 실망을 할 것이라고는 생각된다. 그렇지만 나로서는 감당하기 힘든 처지에 놓인 것은 사실이다. 내가 산업교육원에 입학하게 된 동기 중 가장 크게 작용한 것은 물론 나 자신이 대학 교육을 받기 위함이다. 부수적으로 나에 자식 아들 딸들에게 모범이 되기 위함도 무시할 수는 없다. 오늘 조직행동론 시간의 강의에 예를 들어 군대를 생각하면 병은 중위까지이고 소휘로 시작한 장교는 대장이고, 공무원으로 따지자면 9급으로 시작한 공무원은 6급이 상한이고 사무관 즉 5급으로 시작한 행정고시위원은 국장 차장까지 가능하듯이 레벨이 있다고 한다. 이것을 기업체로 따진다면, 월급은 줄지만, 레벨로 따진다면 기능사원과 사원 체계는 레벨이 다르다는 것을 의미하리라. 그렇다고 현재의 경제 상황에서 사원으로 간다는 것은 가정 형편상, 또는 자존심상 너무나 불공평한 것인가? 오늘은 팔이 아프고 손도 아프고 마음도 아파서 다음에 다시 쓰기로 하자!
1990.02.01
오늘은 일기겸 내 사랑하는 처에게 편지가 쓰고 싶어진다.
사랑하는 옥순씨
내가 산업교육원에 입학한지 어느새 1년이 지났소. 오늘 그 기념으로 교수님들을 모시고 사은회라는 것을 갖었는데 우리가 국민학교 중학교 졸업할 때와는 상황이 많이 다르다는 것을 느꼈던 시간이 된 것 같소.
지난 날을 회상해 본다면, 가난하고 찌들었던 생활에 하고 싶던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이렇게 나이가 먹어서 기회가 주어진다고 해서 내 사랑하는 처와 내 딸을 멀리 두고 나만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생활한다는 것이 항상 부담스러웠소. 내가 당신 곁에 있을 적엔 신경질도 많이 내고, 당신 마음에 들지 않는 행동을 많이 했을지언정, 지금 같이 객지에 나와 있으니 당신과 승혜가 그렇게 그리울 수가 없다오. 오늘 1차로 사은회 끝나고 2차로 우리 기계과 1년차 단합대회가 있었다오. 이렇게 혼자 나와서 대학 교정에서 사진 찍고 마음 놓고 술을 마시고 춤을 추다보니 마치 사춘기 시절로 돌아간 것 같은 느낌에 잠시 생각해보면 당신에게 미안한 마음 가눌 길이 없다오.
나는 처와 자식을 둔 남편으로서 요즈음 한심스런 인간 함종학을 발견할 수 있었소. 나는 요즈음 상당한 정신적인 고통과 다시 태어나는 고통을 참아야 하는 생활을 했다오. 당신에게 보이고 싶지 않았던 남편의 약한 부분과 방황하는 나를 보여준 것 같소. 가만히 생각해보면 내 인간 밑바닥에는 진솔한 양심의 밑천이 아직은 남아 있다는 것을 느꼈다오. 어쩔 수 없이 내가 손해를 보면서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다시 갖게 되었다오. 당신에게 부탁하고 싶은 것은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나를 널리 이해해주었으면 좋겠소. 내가 방황하고 있을 때 당신이 이 세상이 돈이 아니라 진실과 노력과 인생이 중요하다는 충고는 내가 당신에게 다시 한 번 고맙게 생각하는 계기가 된 것 같아 대단히 고마웠소. 사노라면 슬픈 일 기쁜 일 언짢은 일이 있겟지만 부부란 모든 걸, 아니 서로가 부족한 점을 이해해 준다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 신의 은총이 우리 부부에게 있다는 것을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오. 얼마 있으면 우리 둘째 우리 사랑의 둘째 열매가 탄생될 것이오. 그 날이 무척 기다려 지지만 당신 건강과 우리 아들의 성장이 두렵기만 하다오. 오늘은 꿍탕거리는 음악과 운치 있는 설경이 나의 마음을 당신 곁으로 가게 하는 날이 된 것 같소. 당신에게 두서없는 글이지만 이렇게 글을 쓰니 한결 마음이 가볍다오. 당신과 나에게 그리고 우리 가정에 영원한 희망과 행복과 평안이 있기를 기원합니다.
1990.09.18
날씨가 갑자기 차가워졌다.
한 식구인 세용이가 어제 밤새워 몸살에 시달리며 오늘 시험을 망쳤을 거라고 생각이 든다.
하루 아침에 변하는 변덕스런 날씨가 내 마음에 쓸쓸함과 고요함 그리고 마음의 충동을 느끼게 한다. 가을은 외로움의 계절 또는 남자의 계절이라고 하던가.
이 일기장을 들춰본 지가 어언 9개월이 지났나보다. 확실히 가을이라는 계절은 연상케하는 계절인가 보다. 일기장의 앞장을 들춰보니 현재의 방황이나 갈등과 같이 내 처와 내 자식이 일이 가장 시급한 눈 앞의 과제인 것 같다. 내 둘째 놈이 세상에 나오기 전 나는 마누라의 고통과 걱정을 받아들이면서 외면하려 대처했던 것과 지금은 영 다른 세상을 갖고 있는 것 같아 더욱 쓸쓸해지는 것은 인지상정인가보다.
오는 21일 산교원에 축제가 열린다. 나는 반가운게 하나도 없다. 왜냐하면 단적으로 말해서 내세울게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괜시리 자존심만 상하고 누구엔가 피해를 모는 것 같아 기분만 나쁠 뿐이다. 주위에 있는 경호에게 억지를 부려 보았다만 실제는 부지없는 부덕의 소치라는 것을 깨닫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내가 산교원에 입학하게 된 것은 내 나름대로의 뜻이 있고 내가 가야할 길이 따로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물론 서민이고 평범한 민주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게 민주적이고 합리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능력과 주위의 환경과 적응할 줄 알 것으로 믿는다.
모든 동물은 환경의 지배를 받는 거란다. 인간이라고 해서 예외가 될 수는 없을거다. 나는 요즈음 공부를 한답시고 사랑하는 내 처 옥순이와 승혜 우리 둘째인 승용이를 등지고 산교원에 있으려니 가슴이 아프다. 옥순씨가 이러한 나의 심정을 알아주었으면 좋겠다만 그렇지 못하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치니 안닦갑기 그지 없다.
귀뜨라미 우는 계절, 남성의 계절, 어두워지고 세상이 뒤바뀌다보니 과거가 그리운 시절이다. 이 시점에서 다시 한 번 인생을 생각해보고 진정한 인간 즉 내세우지 않고 묵묵히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를 생각해야겠다.
1990.11.12
일기장을 들춰본지가 꽤 오래 된 것 같다.
언제나 그랫듯이 연초에 세웠던 계획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것은 이번뿐이 아니다. 나에 의지력을 단적으로 증명하는 일면이 아닐 수 없다. 1년을 넘어서 내가 산교원에 입학하게 된 동기는 순수하고 진실하고 건전한 뜻에서 출발했었다. 빛바랜 옛 얘기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이 시점에서 새삼 그 뜻을 되세겨 보고자 함은 현재의 나의 생활이 헛되고 무질서하고 안일하다고 판단되기 때문에 더 이상 방치하다가는 어떤 위험수위에 도달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이제까지 나는 이러한 생각이 내 자신을 지켜왔는지도 모른다. 인간이 동물과 구별된다는 것은 다른 여러 요인들이 있겠지만 내가 거론하는 것이 그 중에 끼일지 모르겠다. 그 중에서 성실한 인간이란, 또 다른 면이 생활 중에 나타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문란해져가는 나 자신을 지적하여 새로운 삶을 시도하자는데 그 의의를 찾고자 한다.
첫째 나는 산교원에 공부하려고 왔다. 결코 등수나 학점을 따려고 온 것이 아니다. 더군다나 학부와는 달리 등수나 학점 큰 의미를 갖지는 못한다. 그러나 공부를 열심히 하다보면 이는 부수적으로 나타나는 결과다. 또하나의 의미를 찾자면 나는 애기 아버지이고 남편이다. 자랑스런 아버지와 남편이 무엇인가 되새겨보아야 할 것이다. 나는 내 집사람에게 내세울 거라고는 성실함과 자상함이라고 자부한다. 따라서 나는 우리집에 가장으로서 자랑스러워야 하고 믿음직스러워야 한다. 그렇다면 굳건한 정신자세와 실천하는 모범을 보여주어야 한다.
둘재로 지적하고 싶은 것은 나의 요즈음 가정 생활과 자녀 교육 문제다. 물론 내 처와는 행복하게 잘 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승혜가 너무 귀엽다보니 어리광이 늘어만가고 정신적으로 더 어려지는 것 같고 나만 매달려 내가 집에 가서 학업하기가 곤란하게 되었다. 승혜를 슬기롭게 잘 키우는 방법을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 고슴도치도 자기 자식이 예쁘고 귀엽다는데 하물며 인간으로서 자기 자식이 귀엽지 않은 사람이 어디에 있을까.
3째로 지적하고 싶은 것은 나에 기숙사 생활이다. 처에게 공부를 핑계 대고 기숙사 남아서 한 일이 무엇인가. 과가 나온 현실에서 무어라 변명의 여지가 없는 것이다. 술, 담배, 고스돕 등 제 3자가 보아서 좋지 못하다는 것은 모두 포함된다고 볼 수 있다. 요즈음은 알코올 중독의 초기 증세라고나 할까 술을 먹지 않으면 괜시리 우울해지고, 쓸쓸함을 감출 수가 없다. 물론 계절의 탓도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나의 정신자세 즉 의지력이라고 볼 수 밖에 없다. 마지막으로 지적해두고 싶은 것은 내 마음 속에 우쭐해 하고 싶은 마음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이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평범한 진리를 알지 못한다는 것일까. 왜 잘 알지도 못하면서 남 앞에서 아는체를 하려는 것일까. 아마 이는 예부터, 내가 자라온 환경에서부터 나를 벗어나려는 노력의 일환이라고 밖에 볼 수 없을 것 같다. 나는 이것을 타파하여야 한다.
현대는 정보화 사회이고 따라서 본인만의 비밀 즉 노우하우가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아는 것도 모르는체 모르는 것도 아는체하는 지혜를 길러야 할 것 같다. 어떻게 보면 비인간적이고 냉정한 것 같지만 그것이 현실의 올바른 사실인 것 같다. 인간의 사상은 시시때때로 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살펴볼 때 나는 지금 산교원의 생활이 무질서, 방탕, 오만 등 나쁜 단어가 나의 심신 모두가 기생하는 것 같다. 따라서 나는 이 모든 것을 타파하기 위해서 정신을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
35세
1992.09.08
올해는 열음이 무척 길은 것 같다.
여느 해와는 달리 장마도 늦었다. 그렇지만 추석은 무척 빠른 것 같다. 날짜가 추석이라 마음은 고향에 가 있기 때문에 더욱 더 마음이 설레이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나는 9일 월차 휴가를 냈다. 우리 가족 (옥순, 승혜, 승용)이 고생을 할까봐 미리 휴가를 내서 고향에 가려는 생각에서 그랬던 것이다. 그러나 오늘은 승용이가 몸에 이상현상(하루에 설사 17번)이 생겨서 도저히 시골에 갈 수 없는 상황이다.
오늘 승용이를 광명병원에 입원시켰지만 마음은 고향을 향하고 있으니 안닦갑기 짝이 없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인간의 마음일 것이라 생각한다. 우리는 언제나 인간적이고 인위적일 수 있다. 승혜에게 9월9일에 시골에 간다고 미리 이야기 한 것이 후회가 된다. 승혜는 시골에 간다는 것이 그렇게 좋은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