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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함히피 Oct 27. 2024

24~27세

1981~1984

24세


집념 성실     

이상은 실현 돼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끝 없는 집념이 계속 돼야 한다.

주위의 모든 것들이 막거나 유혹한다 하더라도

그 길이 옳은 길이고 나에 길이라면

외로움도 긴 투쟁도 참고 견뎌내야 한다.

그러나 한 가지 주의할 것은 남의 피해를 의식해야 한다.

항상 성실로서 살다보면 운명도 비켜날 것이다.

운명이 나에게 어떻게 내려진 것인지 알고 싶다.

그것을 깨닫는 날 나는 흙이 될 것이다.      

81.11.1                          


1981.01.11 일

새해 들어 깨끗한 마음으로 수원에서 1500원 주고 일기장으로 이 노트를 구입했다.

81년도엔 나의 일생 중에서 중요한 한 페이지를 장식할 것은 분명한데. 이 시절을 어떻게 보내야 좋을런지. 많은 생각과 신중을 기할 것을 이렇게 연시에 계획해 본다. 우선 생각해볼 것은 나의 병역문제 일 것인데. 병역을 필하면서 아울러 가정을 생각해야 할 나에 처지라 앞이 캄캄할 뿐이다. 아뭍튼 병역을 필하면서 최대한으로 가정에 피해를 끼치지 않으려 하는데 생각대로 할런지? 아울러 방위 받는게 중요한게 아니라 그 쉬는 인생을 어떻게 뜻있게 보내야 하는데 우선 떠오르는 생각은 기능사 1급을 공부해보려 한다. 그리고 여러모로 가정에 쳐박혀 살 것을 강력히 결심해 본다. 여하튼 모든 게 순조롭게 이루어지길 기원할 뿐이다.      

오늘 청주 부모님과 형제들을 보고 올라왔다. 여행하는 기분으로 다녀왔지만 괜실히 쓸쓸함과 외로움이 몰려드는 같다. 항상 그렇듯이 집에 다녀오면 미련이 남는 것이 보통이지만, 그렇게 안 할 수 없는 것이 안닦갑기만 하구나. 아버님이 술을 과하게 드시는 것이 몹시 기분이 상하고 걱정이 된다.          


1981.01.12 월

방바닥이 갈라짐으로 인해서 잠을 설쳤다. 죽는게 겁이 나고 이러한 곳에서 개죽음 당할 순 없다는 나의 강한 생각 때문 듯 싶다. 늦잠을 잔 댓가로 라면 1봉을 먹게 됐지만, 어저께 먹은 호식 때문인지 배고푼 줄 모르고 하루를 지낸 것 같다.

자나 깨나 생각나는 것은 병역 문제인 것 같은데. 나오는 것은 바라지만 어제의 결심을 다시 한 번 음미 해본다. 그리고 내일부터는 천리길을 한 걸음 부터라고. 공부 좀 해야겠는데 우선 일기장 맨 끝 부분에 한자 5자씩만 적어 보기로 하겠다. 81년도엔 80년도완 다르게 꼭 한 번 계획한 것을 지키도록 노력해볼 것을 다짐해본다.

점점 시간은 가는구나. 오늘도 내일을 위해 푹 쉬어야겠다. 살아가는 나날을 최선에 노력을 경주하길. PM11          

1981.01.13 화 잔업

만약에 어떤 사람이던 이 일기장을 들춰 본다면 잔업이란 말이 생소할까봐 잠깐 설명을 하고자 한다. 회사 사원 중에는 사무를 보는 사원과 기능적인 일을 하는 기능사원이 있을 것이다. 잔업은 기능 사원 즉 시간 일을 하는 사람이 8시간을 제외하고 시간 외에 하는 일에 대해서 본봉에 150%를 받는 일을 말한다.

국내 경제가 원래 불경기라 우리 회사도 자연히 일거리가 없게 되자 몇 개월간 잔업이 없었다. 그러나 운이 좋은건지 우리 전기부만은 조금 일거리가 있어서 오늘 처음, 새해들어 처음 잔업을 한 것이다. 어떻게 생각하면 나는 좀 재수가 있는 놈인가 보다. 일이야 어떻든 시간 일을 말하자면 말이다. 대우 중공업 들어와서 지금까지 근무하게 되었지만 가는데마다 잔업은 다른 부서 보다 있었던 것이다. 앞으로도 계쏙 이러한 운 만이라도 나의 앞길에 따러 주었으면 하는 맘이다. 그리고 악착 같이 생을 살아보려 한다.      

오월동주 : 오나라 사람과 원나라 사람이 같은 배에 탐. 즉 서로 원수지간인 사람이 같은 처지에 있게 된 경우          

1981.01.14 수 도둑질

제목을 도둑질이라고 정해놓고 보니 매우 살벌하게 느껴지는구나. 공무과에 근무하는 정인철 씨가 나에게 은봉 2대만 달라고 부탁하는데 어쩔 수 없이 준다고 했지만 너무나 눈이 많아 힘들었다. 겨우 주머니에 꾸겨 넣었지만 그 동안 얼마나 애를 태웠는지. 내가 하는 짓은 모두가 옳다고 믿고 과감하게 행하지 못하는 것이 안닦갑다. 모든 것으로 봐서 난, 도둑질과는 거리가 먼 것 같다. 하나를 보면 열 개를 안다고, 사과 밭에 가서 오줌을 질금질금 쌀 것 같은 기분으로 부터 나에 양심은 인정 받은 것 같다. 부모님이 물려주신, 좋은 버릇인 것 일까?      

고루거각 : 높고 큰 집          


1981.01.17 토

주말이다. 돈만 있다면 멀리 여행을 떠나고 싶다. 최식 씨 송별회에 참석했었다. 대우 중공업을 떠난 것이 잘 됐다고 보고싶다. 강과장 얘기는 잘 되고 잘 못 되고는 두고 봐야 안단다. 나도 빠른 시일 내에 대우 중공업을 떠났으면 좋겠다. 돼지고기와 소주. 배가 부르도록 먹었다. 자취생활에 부족한 영양을 공급해주기 위해서 좋은 일이다. 먹다 남은 돼지고기 조금 가져왔다. 일요일 아침 맛있게 해먹어야겠다.           


1981.01.18 일

주말이면 으레 방구석에 처박혀 있는 것이 나의 생활이다. 본래는 내성적이 아닌 것 같은데 환경이 그렇게 만든다고 봐야겠다. 친구, 여자나 남자나 있다면 일요일은 쏘다닐 테지만, 집에 있는 것도 과히 싫지는 않다. 집에만 있으니까 건강에 무척 나쁜 것 같다. 허리가 1개월 전부터 아푼데 큰 병이나 아닌지 모르겠다. 다음 월급 타면 병원엘 가보리라. 날씨가 풀리니까 같은 기분이 든다. 야릇한 기분이 외로운 마음으로 변하고 그 누군가는 사랑하고 싶어진다. 사지가 멀쩡한 놈이 젊음을 발휘 못한다는 것이 안닦갑다. 단신이란 점 때문에 여자들도 사귀기 힘들 것 같다. 주위 사람들의 생활을 보면 작은 사람들도 좋은 여자 많이 사귀는 것을 보겠다. 미친 척 하고 마음에 드는 여자를 보면 데이트 신청해보겠다. 빠꾸 당하는 걸 염두에 두면서 말이다. 남자의 특권 아닌가?      

각주구검 : 배에서 칼을 떨어트리고 떨어진 자리에 표를 하였다가 배가 정박한 뒤에 칼을 찾음. 미련하고 융통성이 없음을 비유.          


1981.01.19 월

허리가 불편하다. 별 생각이 다 든다만 아마도 잠을 너무 자서 그럴 거라고 믿고 싶다. 귀찮았던 머리를 오늘 회사에서 시원스럽게 깍았다. 보기는 조금 싫고 깍기에는 미련이 남는다만은, 실용적이고 시원스러운게 좋긴 하다. 이발소에 가서 느낀 점인데 깨끗한 가운을 입은 이발사들 앞에서 나의 지저분한 모습과 그들에게 미안한 감이 든다. 앞으로는 남을 위해서라기 보다 나 자신을 위해서 깨끗이 옷을 입고, 복장도 단정히 하도록 노력해야겠다. 자취방에 오니 무엇인가 먹고 싶고, 담배 끊는다는 것이 무척 생각이 난다. 지금쯤 고향에 있다면 맛있는 밤참을 먹을텐데 그렇지 못한 것을 생의 줄거움으로 돌리려 한다. 담배는 몸에 해롭고 경제적으로도 낭비다. 꼭 이 기회에 담배를 끊도록 하겠다. 다만 일주일 만이라도 말이다.      

웅사건필 : 뛰어난 말과 굳센 붓. 즉 잘 하는 말과 힘차게 쓴 글.          


1981.01.23 금

마음이 허전하다. 줄거움이 있고 희망이 있다면 젊음 기분이 왜 이럴까? 오늘 따라 외로움과 고독감이 밀려온다. 항상 생각하는 것이지만 이 나라의 병무 행정이 잘못 됐다는 생각이 든다. 언제 입영이고 언제쯤 제대인지를 체계적으로 왜 잡지 못하는가?

회사 생활이 점점 재미 없어진다. 회사에서 너무 말이 많은 것 같다. 습관이란 무서운 것은 자신도 아는 바다. 말이 많은 나에 습관을 고쳐나가도록 해야겠다. 또한 요사이는 너무 무의미한 나날을 보내는 것 같다. 회사 생활하면서 일당만 벌며는 그만인가? 지식은 일종의 재산이고 힘인 것은 안다. 그렇다면 하루에 조금이라도 뭔가를 알아야겠다. 내일부터는 회사 내에서 한자 공부 좀 해야겠다. 계획한 대로 다 이루어진다면 세상에 못 살 놈이 어디 있겠냐마는 난 너무도 계획이 무너지는 것 같다. 담배를 끊는다는 나에 마음, 왜 이리 약할까?     

금운서성 : 거문고 뜯는 소리와 글 읽는 소리          


1981.01.24 토 친우 현인에게서 온 편지

종학이 받아 보게나.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궁금하구나. 나는 친구의 덕분에 몸 건강히 맡은 바 임무에 충실하고 있다네. 신정 때 친구가 나한테 대하여 준 것 정말 감사하네. 친구들의 염려에 무사히 이곳에 도착하여 하루하루 이 곳의 환경에 익숙하여 지기 위해서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네. 지금은 어느 정도 이 곳의 생활에 적응하여서 조금의 여유를 갖고 책도 보고 선배들과 술도 한잔씩 하고 지낸다네. 어쩌면 이 곳의 생활이 사회에 있을 때 보다 더 보람이 있을지도 모르겠지. 여하튼 열심히 할 예정이다. 군복무 하는 동안 헛되이 보내지 않고 무엇인가를 위해서 노력해야겠지. 친구! 사회생활 하는 동안 후회 없이 지내기 바란다. 등에 개나리 봇짐메고 아리따운 아가씨 데리고 방방곡곡 유랑삼아 여행이라도 떠나 멋있는 추억을 만들어 나에게 선사해 주었으면 한다네. 친구. 어떠한 풍파가 밀려 온다 하더라도 종학과 현인 우리 같이 젊은이의 시련이라 생각하고 열심히 노력하자. 그럼 추운 날씨에 건강에 유의하고 친구의 가정에 행복이 깃들길 빌면서 이만 줄이네. 다음 글 전할 때까지. 하사 정현인.     

현인이가 하사 계급장 달고 첫 번째의 편지가 왔다. 무척 반가운 주말의 선물이리라. TV연속극 MBC 안녕하세요를 볼려고 나왔지만 옆방에 사람이 없기 때문에 허무하게 무너져버린 계획이 되었다. 집에 있다면 우리 TV이니까 마음대로 볼 수 있었을텐데. 그냥 혼자서 라듸오나 듣다가 오늘도 보내야겠구나. 구정 때 쉰다니 집에 갈 궁리나 해야겠다. 내일은 수원역 가서 충북선 예매에 대해서 알아볼 예정이지.      

박람강기 : 많은 것(책)을 널리 보고 또 그것을 잘 기억함.          


1981.01.25 일

81년도의 1월 마지막 일요일이었다. 80년이나 다를 바 없는 81년이 계속되는데 어떻게 된 것일까? 구정 때 고향에 가려고 충북선 예매하러 수원역엘 갔었다. 역무원의 말에 의하면 1일에 2회 왕복이기 때문에 입석이고 좌석이고 모두 매진 됐단다. 그렇다면 고향에 갈려면 어쩔 수 없이 버스를 이용해야 한다. 영숙에게 꼭 뭔가를 선물해야겠는데 내 마음대로 하기는 곤란하다. 기차를 탄다면 영숙에게 2월4일 저녁 8시까지 음성역으로 나오라고 할려고 했었다만… 한참을 생각했지만 시계나 하나 선물해야겠다. 내 마음에 들면 영숙이 마음에도 들테지.      

무아도취 : 나라는 생각이 없이 (자신을 잊어버리고) 마음이 끌려 기뻐 취하다 시피 됨.          


1981.01.26 월

월요일이라 그런지 하루종일 일하기가 싫었다. 아마도 그 문제도 있겠지만 구정 때 집에 갈 생각을 하니 마음이 들떠 있는가 보다. 내일부터는 들떠있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현실에 충실하자. 몇 일 전, 창문 밖으로 보이던 둥근 달이 이젠 보이지 않는다. 다시 달이 보일 땐 구정이 오겠지. 몸이 시원찮다. 아마도 감기에 걸릴래는가 보다. 감기약 사논게 있길래 먹었는데 너무 과하게 먹은 느낌이 든다. 몸은 일종의 재산이고 힘이리라. PM9:45     

수불석권 : 손이 책을 놓지 아니함의 뜻으로 쉬지 않고 독서한다는 말.          


1981.01.28 수

어제 연차 수당 46000을 받았다. 너무 과한 술로 오늘 고생 좀 했다. 지금도 골이 아프고 몸이 좋질 않다. 좀 더 조심을 해야겠다. 인천으로 2월 2일 부로 발령이란다. 가기 싫은 인천으로 또 가야 하니 더럽다. 그렇다고 안갈 수도 없고. 잠이나 편히 자자.          


1981.01.31 토

81년의 1월도 무의미하게 다 흘러갔다. 생각하면 후회만 되지만 앞으로나 열심히 살아보도록 노력해야겠다. 술이 무엇인지 나의 마음을 약하게 만드는지 모르겠다. 어제 먹은 술로 밤에 실수를 했는가 보다. 좀 더 자중해야겠다. 어제 방공 교육 강연회에 참석했었다. 장소는 군포 유진 예식장에서 각개 인사 300여명 정도 되는 것 같았다. 대우 중공업에서 10명 정도 였지만 작은 부의 소속 덕으로 나도 한 몫 끼인 것 같다. 여러 사람 중에 새까만 작업복 차림은 나 혼자 였다. 챙피한 감은 있었지만 그런 것은 앞으로 잊어버리기로 하자.

사진촬영 (한일사진관) 증명사진 6매

공부를 하려면 사회와 멀어지고 외톨이가 되자.          


1981.02.01

종달 형에게 다녀왔다.

오늘은 다른 휴일보다 일찍 일어나서 세수도 하고 부지런을 떨다 종달형에게 달려간 것이다. 어쩌면 너무 누워 있으면 허리에 부담이 갈까봐 일찍 일어 났는지 모르겠다. 많은 군인 중에 크지 않은 덩치에 군생활을 하느라 고생이 많었으리라.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좀 더 활발한 행동을 부탁하고 싶다. 나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좌우지간 면회하고 나니 반갑고 또 하나 애인이 생겼다면서 결혼 걱정을 하는 걸 보면 자랑스럽기도 하다. 나도 조만간에 좋은 아가씨 사겨야 할텐데… 2월의 첫 하루도 또 지나가는구나. 책이나 좀 보자.

샘터 2월호 구입 수원에서 500원.     

계신공구 : 경계하고 삼가고 두려워 함.          

1981.02.03 화

재수 없는 날이다. 정시에 나올려다 저녁도 못 먹고 나왔다. 세금정산에 집에 오니 열쇠 때문에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동수형 약혼녀가 다녀왔기 때문에 어제는 옆방 득진치에 집 신세를 졌다. 동수형 약혼녀는 24세라곤 하지만 상당히 어려보이고 귀엽게 보인다. 착각일까? 동수형과 약혼녀 부디 행복한 생활 되기를.          

1981.02.07 토

81년의 구정도 완전히 지나갔으니 이제는 81년의 해는 전격적으로 시작된 것 같다. 언제나 그렇듯이 고향에 가봤자 술 먹는 재미밖에 없는 것 같다. 조금 조심해야겠다. 방위문제는 알아봤는데 언제 나올지 모른다니 마음 놓고 공부나 좀 해야겠다. 오늘 81년의 첫 봉급날이다. 무엇무엇 제하고 나니 70,000 밖에 남질 않는다. 바뜻한 생활을 해야겠다. 상회 딸 백일에도 들려 봐야겠고. 봉급 내역을 적어보자.

총합계 138,890 공제금 14,545 실수령액 124,355

시계값 32,000 회식비 1600 사진대 1200 회식비 2500          


1981.02.08 일

눈이 청승스럽게도 나린다. 인천에 내청이와 용구를 만나봤다. 용구에게 전화하다가 실수를 한 생각을 하면 정말 나 자신이 너무나 무능을 느낀다. 전화의 끝말에 수고하세요를 수고하십니다 라고 한 말은 너무나 긴장한 탓이리라. 앞으로 좀더 큰 배짱과 경험을 스스로 체험해야겠다.

내청이와 주물 조형 기능사 집을 사러 다녔지만 마땅한 책을 고르지 못했다. 인천으로 가게 되면 래청이와 같이 자취를 해야겠다. 그리고 같이 있게 된다면 좀 더 부지런히 해서 깨끗이 좀 살아 보려한다. 내일 회사에 가서 인천에 가리라고 강력히 얘기 해보려 한다.      

명래경각 : 목숨이 잠깐 붙어 있을 정도로 위태로움을 뜻함.          


1981.02.14 토

2월11일 대통령 선거인단 선거가 끝난 뒤 2월12일 부로 영등포 공장으로 가게 되었다. 인천으로 올려면 올수도 있었지만 안면도 있고 또한 영등포 공장에도 한번 가고 싶고 해서 영등포로 가게 되었다. 그런데 막상 와보니 직장이 너무 살벌하고 자유가 없는 느낌이 든다. 아무튼 적응해보자.          


1981.02.19 목

81년의 대보름이다. 세월 가는 줄도 모르고 지내다 매스콤에 의해서 대보름인 줄 알았다. 궨실히 외로워지고 동심이 생각이 난다. 뒷동산에 올라가서 망우리 하던 일. 새벽 같이 일어나서 더위를 팔던 일. 부모님이 머리 맡에 갖다 둔 부룸 깨물기 등등이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이 한없이 쓸쓸해진다. 요사이는 더욱 생각이 난다. 왜냐하면 래청이 방에서 영등포로 출퇴근 하려니까 무척 힘들다. 출퇴근 하는 거야 별 문제가 안되지만 시간을 너무 빼앗기는것 같아서 더욱 생각이 난다.          


1981.02.24 수

날씨가 갑자기 추워졌다. 퇴근하면서 무엇보다 걱정은 추운 방이었지만 래청이의 도움으로 따뜻하게 지나게 되었다. 2월20일이 숙진이의 백일이라 대전에 다녀왔고, 성현이가 4월28일 날 군에 입대한다니 4월 25일 PM8시에 보은 고속에서 만나기로 하고 헤어졌다. 3월1일은 덕근이의 결혼식이다. 가봐야 할지? 경제사정이 문제다. 지금은 춥지 않아서 좋다. 래청이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아울러 오늘도 무사하길. 둘 다 모두.          


1981.03.03 화

제 12대 대통령의 취임식이다. 임시 공휴일이라 하루를 쉬었다. 때는 바야흐로 봄이 섬뜻 다가온듯 하루가 따스한 햇빛과 거리의 사람들로 부터 활발한 행동, 생동의 환희가 넘쳐 흘렀던 하루였던 것 같다. 요사이 너무 꿈이 무너지는 순간 순간 들이지만 그래도 여유를 잡으려 동인천 음악실에서 3시간의 음악감상을 마치고 쓸쓸히 발길을 자췻방으로 옮겼다. 무언가 지구력을 가지고 물고 늘어져야 하는데 그 인내가 나에게는 없으니 뜻있게 살기는 틀린 몸같다. 나는 자신을 너무 비관하고 모든 일에 자신이 없는 것 같다. 미친척하고 모든 일을 대하고, 회사에서 계집애들에게 너무 약점이 잡히는 것 같다. 앞으로는 인격적으로 대해주지 않고 동생이나 어린애 다루듯 막 다뤄야겠다. 너무 순하게 노니까 이것들이 알기를 우숩게 한다.

송창식(토함산) 양희은(꼭꼭) 김정호(이름모를소녀) 이정희(그대여) 산울림(오솔길)          


1981.04.12 일

이 해도 어느 해와 마찬가지로 허무하게 끝날 것인가? 인생은 이렇게 살다가 사라져 버리는 것인지는 아닌지 모르겠다. 자신에게 자문자답 해보지만 현실에 적응하는 나에 태도가 너무나 무질서하고 영웅심리에 빠져 있는 것 같다. 덩치가 작은 만치 작은 생활을 한다는 태도로 생활의 변환기를 맞이 해보고 싶다. 보너스와 봉급으로 받은 돈을 허무하게 막 써버렸다. 물론 친구들에게 쓰여진 돈. 아니, 나 자신을 위해서 쓴 돈이겠지만 좀더 자중을 기해야 할 것 같다. 나에 장점이자 단점인 것은 술을 너무 좋아하자 많이 마시는 것 같다. 앞에서 전자는 남의 얘기일테고 후자는 나 자신의 얘기일 테지만 남은 믿을게 못된다는 것을 다시한번 재 음미해본다. 뒤의 문제에 있어선 내가 알아서 마시지 않으면 안 될 듯 하다. 좀 젊은이 답게 청춘을 불 태워보자. 이 밤도 술에 취해 있구나.          


1981.04.20 월

푸른 물결 춤추는 계절이다. 몸의 노곤함과 졸리움은 더 없이 익은 봄을 연상할 수 있을 것 같다. 활짝 폈던 진달래도 어느덧 시들고, 더욱 갈수록 돋보이는 것은 능수버들의 늘어진 가지와 가로수의 푸른 잎들이 날마다 달라지는 것이다.

요사이 일을 하면서 이런 저런 상상을 많이 해본다. 이제껏 내가 정한 일은 한 가지도 제대로 이루어 보지 못했다. 마음 속으로 다짐해 보건데 이번 고압가스 취급 기능사 2급은 최대한 노력해 보겠다. 잘 생각했건 잘못 생각했건 공부로 세월을 보낼 생각이다. 그 다음은 4급 국가 고시 공부를 좀 해 봐야겠다. 하늘에 별따기겠지만 나의 최선을 다해보리라. 우선 영어, 국사부터 시작해 보련다.      

광음여시 : 세월은 쏜 살과 같이 빠르다.          


1981.05.11 월

음력으로 4월8일이라 무종교지만 하루 잘 쉬었다. 촉촉히 내리는 비. 후덥지근한 날씨로 기성을 부리던 한차례 이상기온은 지나고 또다시 이상기온인지 날씨가 좀 쌀쌀하다. 청주에 가족들을 만나러 다녀왔다. 모두가 무고하시고 활기에 넘친 삶을 보니 마음이 한껏 가볍다. 아버님이 농사를 지셔서 얼마나 수고의 댓가가 나올지는 미지수인 것 같다. 다만 우리들에게 보탬이 된다는 사실 한가지만 가지고라도 더욱 감사의 보답에 노력을 해야 될 것을 다짐해본다. 귀가길에 차가 없어 입석직행을 타고 왔지만 등산객들 때문에 약간의 들떠 있는 기분으로 올라왔다. 모두가 주의 사람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저희들끼리 떠들고 노는 모습을 보니 현 세상이 더욱 험한 세상이란 걸 실감케 된다. 이 험한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야할지 똑바로 직시해야겠다. 그리고 마음 먹은 대로 한 번 노력을 해보자.           


1981.05.15 금

아침부터 매스콤이 시끄럽다. 경부선 경산 추돌 사건 때문이다. 사망 54명 중,경상자가 219명이란다.

정규적인 회사 신체검사에서 모든 기록이 잘못된 것 같다. 키 156 가슴둘레 83 몸무게 55kg 이다. 어찌하여 작년보다 줄어든단 말인가. 일단은 이 기록이 맞는 걸로 생각해야겠다. 156cm 라는 키는 여자 키로 따져도 적은 키인 것이다. 작은 놈이 맵다는 말을 들을 수 있도록 펜의 힘을 기르자. 무력 보다는 문력의 힘이 크다고 하지 않았는가.

북일고와 군산상고의 대통령배 야구대회 결승전. 군산상고가 5:3으로 낙승.          


1981.05.16 토

내내 좋던 날씨가 저녁에 와서 비가 조금씩 내린다. 호연 형의 권유로 막걸리 좀 마셨는데 지금은 1시50분 17일에 있어서 어제 한 일이 별로 생각이 나질 않는다. 분명히 생각나는 것은 래청이 전세방에 언쳐사는 내가 생활비는 좀 많이 부담하고 있지만 언쳐산다는 생각 때문에 좀 마음에 부담이 가는 것 같다. 특별한 일은 술을 먹고 와서 그런 이야기를 꺼냈다는 것이다. 누가 뭐래도 술을 마시지 않을 것이지만 돈도 준비 좀 해야겠다….     

1981.05.17 일

술 먹고 난 다음 후유증으로 고전하며 바쁘게 돈을 쓰며 돌아다녔다. 무엇보다도 생각날 것은 연안부두에서 눈요기인 것 같다. 사람들이 그렇게 많으리라고 생각조차 못했는데 예상 밖이었다. 평식이 말대로 이왕에 회를 먹을려면 노상에서 파는 선술집 보다 좋은 집으로 가는 것이 다홍치마란 것이다. 결국 값은 같으면서 실수하는 결과 밖에 되질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외지에서 온 아베크 족들은 미리 겁 먹고 지저분한 곳에서 줄기는 것을 보니 세상물정은 모두 알고 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도 영어 공부는 하지 못했다. 키 작은 설움은 어떻게 이겨 낼려고 하는지 한심스럽다. 내일부터 다시 정신차리도록 노력하자.

거두 망산월이요, 저두 사고향이라.          


1981.06.07 일

경주, 해인사를 5일 밤 차로 갔다가 7일 올라왔다. 계절 답지 않게 무척 더워서 구경 다니기에 불편했지만 모처럼 다녀오는 나들이라 푸른 숲과 맑은 물이 좋았다. 결코 관광지라고 해서 좋은 것 보다 풀섶에서 앉아서 술 마시고 밥 먹고 휴식을 취하는 것이 줄거웠다. 나에 고향이 원래 시골이라서 그런가? 대구는 인천과 동일하게 직할시가 된다지만 대구보다는 오히려 인천이 더 좋은 도시 같이 느껴진다. 도시 계획은 인천 보다 낫지만 사람이 적은 것이 도시가 한적해 보인다.

예비고사를 한 번 보겠다던 나에 결심이 또 변하는가 보다. 내일부터 중앙 열관리 고압가스 기계 자격증 공부를 해야겠다. 수강료는 한달에 25,000 이란다.           


1981.06.22 월

늦잠을 잤던 것이 이렇게 힘든 하루가 될 줄을 다시 한 번 깨닫게 한 하루였다. 아침을 굶고 간 덕으로 오전 내 서 있기가 힘들도록 시간을 보냈다. 다시는 그런 일이 없도록 좀 더 근면해야겠다. 앞으로 2주일 정도 자취생활이 끝나면 이젠 평생 자취 같은 것은 안 했으면 좋겠다만 모든 것 운명에 맡길 수 밖에.

지금이 11시 30분 저녁도 먹지 않은 시각이 그러니까 저녁을 먹게 된다면 아마도 12시는 넘을 것이다. 이런 환경에서 악조건에서 공부를 한다는 것 아무리 생각해봐도 무리인 것 같다. 그렇지만 어쩔 것인가? 삶은 고달프다. 인생은 무상한 것. 남은 다 하는데. 아니 나에게 주어진 정신적 고통을 남보다 훨씬 더 강하게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나는 어떤 인간이 될 것인가. 남보다 나은 점이 무엇이 있단 말인가? 정녕 부끄러울 뿐이다. 지금이라도 열심히 생을 살자.          


1981.07.05 일 비

나그네의 인생이 참말로 고달프게만 느껴진다. 인천의 래청이와 자취생활을 청산하고 이 곳 가리봉으로 거주지를 옮겨 하숙을 하게 된 이 나의 인생 행로를 조금은 바꾸어 놓을지. 때 이르게 장마가 시작되어 너무 지루하게만 느껴진다. 빗소리가 더욱 처량하고 고독하게 만드는 것 같다. 빨리 정신의 안정을 되찾아야 할텐데. 이젠 서울인이 되었으니 뭔가 좀 달라지고 마음 먹었던 공부도 열심히 해 보겠다.

어제 김용규 치 딸 돌잔치에 갔다. 재수 없이 성환이에게 눈띵이 맞은게 아프기도 하고 챙피스럽다. 앞으로 말과 행동을 조심하고 작은 체구, 힘이 없는 나를 생각해서 생활하야겠다. 하숙집의 첫 날 밤 멋진 꿈과 설계 가득하길 자신이 바라면서… 구로구 가리봉2동 13-80 5통3반으로 거주지 옮김.          


1981.07.26 일

일요일이라 몇 주일 만에 술을 좀 마셨다. 여느 때 같으면 이까짓 술 마시고 취할리 없지만 오늘은 좀 취했다. 그래 인천에서 가리봉 오기는 친구들에게 일절 주소도 알려주지 않고 뜻한바 공부 열심히 한다고 했었다만 그것이 순조롭게 이루어지는지? 내가 한달 번 돈 당나귀 발 뛰면 남는 것 하나도 없듯이 생활을 하고 있다만, 좀 더 그런 어지러운 중에서도 뜻있는 생활을 하고 싶다.

6월부터 82년 6월까지 1년간만 모든 걸 바칠 생각이고 그 이후에 내 뜻 대로 되지 않을때는 자살을 할 각오가 돼 있는 거다. (종학 심각히 쓴 것임)          


1981.08.13 수

입추도 갔고 말복도 지났다. 24살의 해도 어느덧 저물고 있는 느낌이다. 오늘 김남석 형의 송별식이 있었다. 과장이고 본부장이고 겉으로 봐선 표가 안나듯이 남석형 마찬가지로 표는 나지 않지만 어떤대로 성품이 있는 것 같다. 나의 3년 선배라면 무언가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 나의 몇 10년 선배같이 느껴진다.

이곳에 와서 친구들에게도 일절 소식이 불통이다. 마음 먹은 1차시험 끝나는대로 친구들에게 편지 주기로 하고 오늘은 이만 좋은 꿈 많이 꾸어지길 바라겠다.          


1981.08.25 화

처서도 지났으니 이번 여름도 다 지나간 느낌이다. 밖에는 구슬프게도 비가 나리고 있다. 비오는 날이면 나에 마음이 뒤숭숭하기도 하고 마음의 안정이 되는 것도 같기에 이상 야릇하다. 자격 1차 시험이 23일날 끝났으니 이제는 합격의 판정 여부를 기다려야 할테고 2차시험 대비를 어떻게 해야 옳을지 감을 못잡겠다. 오늘 장용순치와 취급2급 원서를 접수했는데 어떻게 될런지 모르겠다. 마음으로 2가지 다 따려고 한다만 될런지 최대한으로 노력해봐서 운명에 맡기련다. 나에 병역 관계는 어떻게 된건지 궁금하기도 하지만 대한민국의 병역법이 잘못 됐다는 걸 다시 한 번 느낀다. 이제는 1차 시험도 끝났으니 밀린 편지도 써야겠구나. 앞으로도 생의 노력을 계속 할 것을 자신이 다짐해본다. 운명아 비켜라. 종학이가 간다!          


1981.09.02

신용조합 출자금 157378원          


1981.09.03

야근하기가 이렇게 피곤한지는 몇 년 만에 느껴보는 바다. 특히 큰 공장에서 밤새 혼자 일하다 보니 외로움과 고독함이 무더기로 밀려든다. 한밤 중 기계가동을 중지하고 조용히 있어보면 고요한 가운데 움직이는 것이 있으니 아마도 자연의 숨쉬는 소리리라. 이것도 생에서 별로 느끼지 못할 정도로 좋은 경험이라 생각된다.

일기가 중요한지는 어제 다시 한 번 느끼게 되었다. 나에 무슨 일이 일어났을 적에는 항상 기록하는 버릇을 들이자. 특히 돈 관계나 남과의 불쾌한 일이나 기쁜 일을 기록해야겠다. 생활하는데 많은 참고가 될 테니까?          

1981.09.07 봉급

지급합계 134601 공제합계 55855 실수령액 78746

공제내역 (소득세2225 주민세166 방위세222 재형기금600 의료보험1695 재형저축4000 노조비1187 교육보험2890 신용조합20000 대부금22473)          


1981.09.14 월

중추절이라 고향에 다녀왔다.

민혜도 잘 놀고 가정이 평화롭고 농사 작황도 좋은 편이다. 한 가지 객관적으로 생각하지만 큰 형님이 동생들에 조금 무심해지는 것 같아 마음이 좋질 않다. 영숙이 학교문제도 그렇고, 생각해 주었으면 바라고 싶다. 나에 영웅심리, 조그만 실수로 도남 할아버지 산소에 갔다가 다리를 삐었다. 추석 때면 몇 번 사고를 당해서 줄겁게 지내지 못한 것이 머리에 떠오른다마는 너무내가 옹졸한 생각을 하는 것 같다. 나에 처지를 냉정하게 생각해야겠다.

고압가스기계 필기시험이 합격되어서 실기 수수료를 납부하고 왔다. 계속 긴장을 풀지말고 실기도 합격하길. 노력할 것을 다짐해본다.          


1981.09.21 월

고압가스 필기를 합격해 놓고 그럭저럭 보내다 보니 기간이 얼마 남질 않았다. 오늘이 학원 개강일이다. 기대를 지고 학원에 갔다만 강의실 문제로 뛰각태각 다투다 결국엔 지고 허강사의 인삿말로 끝내고 내일 부터 본격적으로 하기로 했다. 오는 길에 계획을 하기 위해 맥주 500cc를 마시고 왔다. 왜이리 술이 좋은지 모르겠다. 여기서 나에 실기시험 보는 날까지 계획을 세워보자 한다.

우선 가정에서 학원에서 한 것을 그날 완전히 소화하겠다. 그리고 남는 시간에 내 나름대로 법규와 안전관리를 정리해야겠다. 노력할 수 있는 한 최대한으로 노력해 보겠다. 부디 행운이 같이 하길 바랄 뿐이다.          


1981.09.27 일

고압가스 취급 2급 필기시험을 치렀다. 오던 길에 식당에 계산기를 놓고 나왔는데 조금 있다 가보니 없어졌다. 누구 탓도 못하고 챙피하기만 하구나. 젊은 놈이 정신이 그렇게 없어서 어떡하나. 칼국수 1그릇에 25000원 짜리가 되었으니.          


1981.10.01

어떻게 된 일인지 현인이가 여기를 찾아왔다. 무척 반갑지만 내가 할 일 다 못한 것이 안닦갑다. 내가 할 모처럼 사회에 나왔는데 계집도 대해주고 해야하지만 나는 계집이 왜이리 사귀고 싶지 않는지 모르겠다. 혹시 병신이 아닌가 싶다. 현인이에게 돈을 내구 먹게 해서 미안하다. 다음에 내가 갚을게. 이해해줄테지.          


1981.10.07

시영이가 어저께 다녀갔다. 하루저녁 같이 지낸 것이 큰 일은 아니지만 고맙기 이를데 없다. 자랑스럽기도 하다. 오늘은 월급날이다. 지금은 한 푼도 남지 않았다. 하숙비 기타 내고 너무 적은 것 같다.

신용조합 20000 대부금 21600 2번 본봉 112988 시간외 10755 야간 8365 월차 5745

합계 138853 실수령 81176              


1981.11.01

좋은 계절. 아쉽게 보낸 몇 개월이 억울하기도 하지만 인생은 항상 좋은 일도 없다고 긍정적인 나름대로의 안정을 해봐야겠다. 몇 개월의 고생 끝에 오늘 기계 실기 시험을 봤다만 머리엔 왜이리 틀린 문제만 떠오르는지 모르겠다. 시험 잘못 봤다고 인생을 비관하거나 좌절하고 싶진 않다. 내일부터는 29일 취급 실기를 위하여 또 분발해야겠다. 우선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것을 노트를 준비해서 기록해야겠다. 그리고 무조건 외워 버리겠다. 운명이란 어쩔 수 없지만 항상 나에게 더러운 운명만은 없을 것이다. 성실하고 끝없는 집념에 젊음을 불태워 보자.          


1981.11.04

가을이 아닌 이제는 가울이다. 겨울과 가을의 중간이란 말이다. 아마도 내일은 첫 얼음이 얼지 않을까 생각된다. 오늘 완식이와 종달형이 찾아왔다. 오늘 얘기한 것이 내가 좀 과한 느낌이 들지만 그런 얘기는 꼭 하고 싶었던 것이다. 좀 아쉬운 것은 종달 형 혼자 왔으면 좀 더 할 얘기를 마음 놓고 할 수 있었을텐데… 우리 가정의 현실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것인지 골치만 아프다.

영숙인 꼭 고등학교는 보내야 하는 것이 내 생각이고 의무이다. 집에서 못 간다면 내가 굶어죽는 한이 있어도 내가 데려 갈테다. 그리고 내일 형이 자리를 잡는다면 같이 있을 생각이다. 혈육이 얼마나 좋은건가. 이 때를 내가 얼마나 갈구하고 원했던가. 꼭 같이 있었으면 좋겠다. 어쩌면 내 젊음 생활이 이렇게 복잡해지는지 모르겠다. 운명은 태어날 때 생겨나는 거다. 항상 나에게 나쁜 운명만은 없을거다. 결코 절망이나 비관 같은 건 하지 않겠다.

이상은 찾아야 한다. 현실이 아무리 고달프고 외롭다 하더라도 이상을 향한 길은 끊임이 없어야 한다. 내가 생각하는 바가 옳고 내 길이 그 길이라면 무엇이라도 말리거나 유혹한다하더라도 끊임없는 투쟁과 노력이 계속돼야 하는 것이다. 부디 내가 생각하는 그곳에 가로막길이 덜 했으면 한다. 참, 열심히 살아볼 생각이다.          

1981.11.07 토

서세원의 별이 빛나는 밤이 계속 되었다. 술이 취해서 그런지 생각하는 바로 글씨가 제대로 되지 않는구나.     

봉급 내역을 좀 적어보자

본봉 118318 수당 무 공제합계 56932

결근(월차) 5745 조퇴4시간 1900 소득세 1224 바위세 122 재형기금 600 의료보험 1695 재형저축 4000 노조사우회비 1110 교육보험 2890 신용조합 20000 매점(계산기) 4000 대부금 21200      

마음은 항상 외길이다.          


1981.11.13 금

남자가 웃음을 남발하지 말자. 실소를 하지 말라는 이야기다.

비상금을 좀 가지고 생활하자. 최소한도 20만원 정도는 은행에 저금한 상태에서 생활해야겠다.          


1981.11.14 토

우울한 주말이다.

인간이 산다는 것은 분명 생각하는 동물임에 틀림없다. 경제적으로 부족하다 보니 마음이 울적해 지지만 그렇다고 마음까지 변해서는 안되리라고 다짐해본다. 돈이야 있을 때도 있고 없을 때도 있는 것이다. 인간의 흥망성쇠는 순간에 달려 있다고 하지만 아직까지 나에게는 그러한 생활이 한번도 당해보지 않은 것 같다. 가난이 죄는 아니라고 하지만 생활하기는 분명히 불편할 것이다. 언제까지나 불편하게만 살 수는 없는 문제 아닌가.

빈털터리가 요란한 소리를 낸다고 하지만, 아주 없는 그릇은 소리가 나지 않는 법이다. 조금은 달그락거리지만 소리가 나지 않도록 꽉 차도록 노력은 해야겠다. 그렇다고 삶을 그곳에만 맡겨서도 안되리라. 서러움이 복받쳐 오르지만 참자. 인생은 한 번 사는 법. 좋던 싫던 한 번 가면 그만이다. 젊음을 아깝다 생각지 말고 빈 깡통이 되지 않도록 노력해보자. 주위의 환경이나 유혹에 물들지 말자. 내가 생각한 그 길이 옳은 길이고 운명이 그 길이라면 그 길을 택하자. 결코 외롭거나 너무 길다고 해서 중단하지 말자. 분명히 비관하거나 좌절하지는 않기로 하자.

종달 형에게 미안한 감을 감추지 못하겠다. 사회는 얼굴이 두 개여야 한다지만 형제지간에 우애는 있어야 하는 법이다. 혈육을 배반한다는 것은 차라리 죽는 길을 택하는 것이 옳으리라. 마음이야 당장이라도 방을 구하고 싶지만 주머니가 비다 보니 어쩔 수 없구나. 마음만 괴로울 뿐이다. 당분간만 눈치 보다 조그만 방이라도 우리 형제가 자취할 곳을 찾도록 하자.          


1981.11.25 수

거주지가 옮겨졌다. 종달형의 도움으로 하숙방에서 자취방으로 생활하게 되었다. 하숙할 때 보다 오히려 편한 마음은 어째서일까. 한가지 불안하다면 옆방 사람들과 잘 모르다보니 도둑이 염려된다. 뭐, 가져갈것이라곤 없다지만, 그래도 마음만은 불안하다. 방값이 보증금 20만원에 월세 4만원이라서 아깝긴 하지만 할 수 없구나. 내년 5~6월달엔 어떻게 전세를 살아야겠는데 어떻게 될런지 모르겠다.

종달형과 고교 때 자취 생활을 해본 경험이 있지만 다시 자취를 한다니 서먹서먹 하기는 하다. 아무튼 굳세게 살리라. 인생을 뜻있게 살았다고 자타가 인정하도록 살겠다. 인생을 헛되이 보내지 않겠다.

봉급내역 총액 147174 공제액 63156 실수령액 84018          


1981.12.15 화

양력으로 나에 탄생일이다. 생일 중에 가장 기뻤던 날인 것 같다. 아마도 81년도 12월은 나에 행운에 달인지도 모르겠다. 오늘 고압가스 기계2급 자격증 발급과 함께 시영이도 검정공단에서 우연히 만났다. 또한 기다리던 재형저축도 나와서 방세를 모두 지불하게 되었다. 때가 때인지라 복권 4장을 샀다. 아마 1등이 당첨되지 않을까? 더욱 생에 분발할 것을 다짐한다. 그리고 한진그룹의 한일 개발에 이력서를 제출해본다. 잘하면 외국에 나갈 기회가 있을지도 모른다.           


1981.12.20 일

어제 과음한 탓으로 고생한 하루였다. 한 해의 말에 가서 계획했던 것이 달성되었다는데 기분이 너무 좋아하는 것 같다. 항상 그렇게 들뜬 기분으로 생각하다가는 김치국부터 마시는 격이 될까 두렵다. 오늘 이 후 부터 술은 많이 마시지 않겠다.

오늘 컴프레서 조원. 영조 월상 남수 기봉이와 오후에 만남을 가졌었다. 어제 많이 내린 눈 탓으로 길거리가 지저하고 매우 미끄러웠다. 모두들 비슷한 환경인데도 생을 노력하는 것을 보면 종준이가 더욱 생각난다. 떨어진 구두에 눈이 들어와 마음에도 없이 구둣방에 들어가 8000원 주고 한켤레 준비했다. 돈을 너무 허무하게 쓰는 느낌이다. 모든 걸 생각에 생각을 해서 생활하자. 그리고 희망은 분명히 정하자. 남자 나이 30 이전에 뜻은 세운다는 것은 큰 의미가 있는 것이다.



25세


1982.01.03

신정 연휴 동안의 여행을 무사히 마치고 자취방에 돌아왔다. 1일 날은 수원에서 상희 용구 상희처 용구애인과 같이 모임을 가졌었다. 친구 중 유일하게 일찍 결혼하게 된 상희 그리고 그의 딸 숙진이 부럽도록 재미있게 사는 것 같다. 용구도 아무튼 행복하게 살아주길 바랄 뿐이다. 1일 날 저녁에 청주에 내려갔지만 아버지께서는 술에 취하신 채 잠이 들으셨다. 곧 깨어나서 반겨주긴 하셨지만 자식된 도리로서 술에 젖어 사시는 아버님의 건강이 걱정이 된다. 또 하나는 경제사정이 좋지 못한 우리집을 생각하면 마음이 편하질 못하다. 차라리 모든 일 생각 말고 서울 자취방에 와있으면 마음이 편해진다. 아무튼 열심히 생활하여 우리 가정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 종운이와 영숙이가 있었지만 둘이 얼마나 정다운 남매인지 정말 기분이 좋았다. 오후에 종운, 영숙이와 탁구장에 가서 탁구를 쳐봤다. 종운이는 지금까지 국민학교 시절 선수생활 한 실력이 있는 것 같다. 오후에 시골집에 가니 밤 9시가 넘었다. 민혜도 많이 크고 형수가 또한 분만일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다. 이번에는 아들이 태어났으면 좋겠다.     

82년도 나에 생활을 시작해야겠다.

새해 벽두에 계획해서 그것을 꼭 밀고 나가야겠다. 해결할 수 있 것으로 3가지만 정하겠다.

 1. 나에 실력을 키우는 일이다. 고압가스 1급을 위해 최대한 노력해보겠다.

 2. 우리 가정의 경제사정을 생각하겠다. 적어도 영숙이 학비 정도는 내가 마련 하겠다.

 3. 82년도 안에는 내가 전세방을 마련할 수 있는 돈을 모아야겠다.          


1982.01.05

검은 볼펜이 없어 검은 볼펜을 사야겠구먼 형은 이미 회사가서 집에는 나밖에 남질 않았으니 하고 싶은 이야기 모두 못한 것이 아쉽구먼. 모든 이야기 다음에 꼭 드리기로 약속하면서 오늘은 이만 줄여야겠네 종학ㅡ

본봉 116818 시간외수당15057 월차수당5745 지급계 137620 공제 후 실수령액 74237          


1982.01.17

주말의 여행 약간은 고달펐던 것 같다. 어제 양희가 면회를 와서 술 한 잔 하고 청주가느라 무척 바쁘게 움직였다. 차창에 비친 나에 모습이 자신이 보기에도 계집애 같이 예쁜 것도 같고 깁은 수심에 잠겨 있는 것 같아 마음은 서글퍼 지더군. 웬 젊은 분이 술이 취해 담배를 권하는 모습이 꿰나 우서워 보이고, 따라서 내가 술이 취하면 저럴거라고 자신이 부끄러워지기도 하더군. 언제나 느끼는 거지만 집에만 가면 경제적 사정 때문에 마음이 편치 못하니, 운명을 원망할 수 밖에 없군. 결코 현실을 비관하거나 좌절하지 않고 열심히 생을 개척해 나갈 것이지만 운명이란 그 자식은 죽여버려야 돼. 이것은 꼭 복수가 되어야만 되는 문제일거다. 그래도 우리집 자매들의 우애를 보면 그것이 참 행복이란 것을 느끼지만 항상 그렇게 지내다보니 참 행복을 가끔은 잊어 버릴 때도 있는 것 같더군. 종준이 2학년 1학기 등록금을 준비한다고 큰 소리 쳤는데, 어떻게 될런지 종운이 이제 고3이고 영숙이 이제 연합고사 발표나고 2월8일이 추첨이라니 영숙이 또한 고1 참 줄줄이구나. 종출형 나이가 이제 27이니 결혼을 해야 되지만. 그렇게 되면 집안의 경제적 사정이 더욱 어려워 질테지?  

아버지 어머님의 힘으로는 종준 종운 영숙 교육을 담당할 자신이 없는 것 같아. 종준 종운이는 꼭 장학생이 되어야 학업을 계속하기가 수월하게 될 것 같군. 그렇지 못할 경우 종달형이나 나나 어쩌면 둘다 30이 넘어야 결혼이란 문제를 생각해야 될 것 같군. 어쨌던 동생들은 동생들이고 난 또 내 길을 개척해야 할텐데 올해 목표 기능사 1급은 어떻게 잘 돼가는지 한번쯤은 점검해야 할 문제이군. 우선은 기능사 1급을 취득하고 다음으로 기능대학 원서를 내는 것이 나의 첫째 꿈이지? 집념의 사나이라고 아니 덩치는 작은 것이 대단히 맵다는 소리를 들어야겠어. 허리가 가끔 아푼데 그까짓거 디스크가 걸릴라면 걸리라고 허리가 끈허질라면 끊어지라고 하지 뭐. 모든건 운명이니까…          


1982.01.30 토

1월의 마지막 주말이다. 갈데 없이 집에서 TV나 줄겼지만 꿈이 이뤄질려면 어쩔 수 없는 고통이라 생각하면서도 일이 제대로 되지 않는 걸 보면 선천적인 의지의 약한 탓인지 후천적으로 내가 너무 게으른 탓인지는 모르겠네. 무엇이 어떻든간에 작은 토막이 매운 것을 보여 주어야 할 텐데 어떻게 보여줄려고 TV나 보고 있는지 모르겠어. 기능대학 시험과목을 잘 모르니 안닦갑구먼. 그전에 서울신문에 광고란 것을 왜 내가 안 적어 놨는지 후회가 되는구먼. 앞으로는 후회 되는 일이 없도록 일기장을 최대한으로 이용해 줄 것을 마음속으로 다짐해보네.          


1982.02.02

우라만 화장품 밀크로션 1개구입 1920원 (처음 구입한 건가?)     


1982.02.06 토

82년 1월 급여명세서 본봉 118730 시간외수당 10755 지급금계 135230 공제금계 33552 실수령액 101678     

82년 들어서 벌써 2월이 됐다. 내가 25살이 되었다는 것이 사실이지만 마음만은 아직까지 18세 고2년생 같으니 어쩌란 말이야. 오늘 나에게 더러운 일이 발생했으니 그것 또한 자존심 상하게 하는 일이다. 두번째이긴 하지만 정식으로 포근포근한 이성이 약속을 깨고 바람을 맞추었으니 별 생각이 다 든다. 하지만 어쩌면 잘 된 일인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그 아가씨가 나와 사귄다 해도 경제적 사정이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내가 생각하기엔 내가 너무 키가 작고 볼품 없지만 난 내가 자부하기에 성질하고 굳세게 살려고 하는 의지 하나는 누구에게 지지 않는다고 자부하고 싶다. 하기는 키작고 더러운 세상 보기 싫어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말야. 다시 한 번 시도 해서 안 될 적엔 얘라 얘 이년아 잘살아라. 너 같은 건 나하고 맞지 않아 하고 차버릴테니까?

한 가지 미련이 가는 건 그 아가씨가 키가 크고 성실하게 생긴 그 인상은 인정할 만 하더군. 그렇지만 내가 사랑한다는 것은 그런 사람 뿐이니 어쩌란 말인가. 내가 잘못하는 것일까. 차라리 희는 어떨까. 희는 나에게 잘 대해주지만 한 직장에 있으니 눈에 거슬리는 일이 많은 걸. 애이 더러운 세상. 좌우지간 열심히 살아 작은 구추의 매운 맛을 보여주겠다.           


1982.02.07 일

완식과 독산동 갔다오다 토정비결을 봤다. 내용이 좋은 것만 있기에 기록해보련다.

해왈 : 용마가 나자 장군이 나서 시세를 얻어 마음대로 활동하다 관재를 조심하라 대인은 반드시 성공할 괘.          

1982.02.14

공부를 할려고 하나 책이 손에 잡히지 않으니 어떡했으면 좋을지? 마음만으로 되지 않는 것이 세상이고 보면 손해를 보는 한이 있다 하더라도 열심히 해보자. 내일부터는 마음 꼭 먹고 최선을 다해 보겠다.

종준이가 상경했다.          


1982.02.23 화

사진을 찍고 돈이 없어 형이 저금해논 돈을 찾아 고기1급 원서 접수차 검정 공단을 갔으나 청천 벽력과 같이 법이 바뀌어서 원서를 제출치 못하게 되었으니 억울하기 짝이 없구나. 전에 고졸자는 해당분야 4년 경력이면 2급이 없어도 직접 1급을 볼 수 있었던 것이 지금은 2급 자격증 취득 후 3년이 경과된 후에 볼 수 있다니 나로서는 안닦갑기 짝이 없다. 앞으로 어떻게 생을 살아가야 할지 모르겠다. 그 대비책을 생각해 봤다만 떠오르는 것이 추상적인 것이라 안닦갑기만 하다.

 1. 고압가스 보다 다른 자격증을 따볼까?

 2. 영어 학원을 다닐까?

 3. 키타를 배울까? (잉 갑자기?ㅋㅋㅋㅋㅋ 이게 하고 싶은거... )

 4. 한문이나 서예를 배울까? (이게 배우고 싶은 거네… )

위와 같은 4가지가 머리를 맴도는구나. 몇 일 두고 생각 해봐서 결정해야겠다.          


1982.02.28 일

82년 들어서 이미 두 달이 지났다. 겨울이 언제 지나갔는지 기억이 새롭지는 않지만 날씨가 따뜻하고 몸이 나른한게 봄은 어김없이 찾아왔나 보다. 고기1급을 따겠다는 나에 욕심은 너무 과한 탓인지 사실상 꿈이 깨진지 몇 일 됐지만 나에 머리에서 미련이 남는 것은 잘못된 탓일까? 년초에 가리봉 육교에서 토정비결을 본적이 있다만 그 사실을 믿고 안 믿고를 떠나서 82년 나에 운수가 좋은 것으로 나타났던 것이다. 나는 그것을 미끼로 무엇이든지 도전해볼 생각이었는데 이렇게 시험 볼 자격마저 박탈당하고 보니 토종비결도 역시 미신이란 점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구나. 한 때는 고압가스 취급 2급 자격증을 1급으로 고칠까 마음 먹었었지만 실행이 어려워 때가 될 때까지 기다릴 것을 마음 속으로 다짐했지만 한 가지 분명히 생각해야 될 것은 왜 자격증을 가지고 활용을 못하느냐가 의문이다. 빠른 시일 내로 서울 시내 개스 취급점 전화번호를 찾아서 문의해보아야겠다.

난 내가 생각해도 서울인, 현대적 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하고 졸장부로 노는 것 같다.          


1982.03.01 월

달이 바뀌어 어느덧 82년의 3월이 시작되었다. 3.1절의 깁은 뜻도 모르면서 2틀간의 연휴를 지루하게 지낸 것 같다. 무엇인가를 연구하고 바쁘게 뛰어야 할 나에 처사인데도 불과하고 지루하게 보냈다는게 문제인 것 같다. 아무리 무엇을 해볼려고 생각해봐도 이 닭대가리에는 마땅한게 생각나질 않는다.

경제적 여유가 있었다면 청주에 가 부모님도 뵙고 종준, 종운, 영숙이도 보았을 것이다. 특히 고향에 민혜와 민혜동생이 무척 보고싶다. 시간적 여유가 없어 여름 휴가 때나 볼까 하는데 그동안 무럭 무럭 자라주길 바란다. 민혜와 이렇게 떠러져 있으니 지금 보면 삼춘인지도 모르고 낯을 가릴 생각을 하니 우습기도 하다.          


1982.03.02 화 공장이전

이틀 동안 연휴를 무사히 마치고 3월의 첫 출근을 한 날이었다. 가전공장에서 오래되지 않은 생활이지만 공장을 1층 노조사무실 옆으로 옮긴다니 조금은 서운한 감이 있다. 기계를 옮기기 전에는 3층 보다는 나을지 알았는데 막상 내려와보니 장소가 조금은 협소한 듯 싶다. 또 한가지 라인 설치한 거슬 왜 노조사무실 옆이 A/C test bench 가 설치되었는지 의문이다. 어쨌던 노조사무실이 앞으로는 시끄러울 것 같다. 아마도 사원들이 사무실이 그곳에 있었다면 그렇게 라인 설치를 하지 않았을것이다.

노조 사무실에 있는 전화번호부에서 서울시내 고가취급점 전화번호를 찾아보려 했었다만 인명부라서 상가는 나오지 않는다. 공중전화에 설치되어있는 전화번호부를 찾아볼려니 사람들이 너무 붐빈다. 공중전화에 설치된 전화번호부를 떼어올까도 생각해본다만 공중도덕이 너무 문제가 되는 것 같아 망설여진다.          


1982.03.03 수

공장 정리하느라 바쁜 하루였다. 비좁긴 하지만 하나하나 정리해 가니까 공장 같은 느낌이 든다. 오늘부터 생산에 들어가겠지. 회사에서 수형을 만났다. 어쨌던 똑똑하다고는 소문이 났지만 위선자임에는 틀림없는것 같다. 직급시험 본 것 발표난 것을 보았더니 내 이름이 있다는군. 그런데 그 뒷 얘기가 거창하게 아무에게도 말하지마!

완식이 이사를 왔다. 서울 운송사업조합 직업훈련생이란다.

가스 취급점 전화번호를 하루빨리 정리해야 하는데...          


1982.03.08 월

특근 보고를 올려놓고 출근하지 못한 댓가로 하루종일 꼼짝 못하고 욕만 먹었다. 토요일 저녁에 영훈이를 오래간만에 만나 술을 마시다보니 너무 과했던 모양이다. 어제 외국어학원 영어과목을 수강 신청했다. 이제 시작했으니 끝을 봐야겠다. 열심히 해 볼 생각이다. 회사에서 잔업하랴 학원에 나가랴 일기 쓸 시간까지 없는 것 같다. 난, 여러가지 조건 면에서 보통 사람의 1.5배는 더 노력해야 목적이 달성될까 싶다. 학원에서 영어 공부를 하는 것은 없는 시간이지만 쓸모있는 계획을 짜서 공부를 해야겠다.

우선 강의를 받고 그 자리에서 조금 늦게 남아서 노트 정리를 하고 연습장에 다시 한 번 적어야겠다. 그리고 회사에 가서 연습장에 쓴 것을 다시 한 번 복습하겠다. 집에 와서 아침에 배운 것을 다시 한 번 보고 다음 날 할 것을 예습 조금만 해야겠다.

강의 ㅡ 노트정리 단어장정리 ㅡ 회사 복습 ㅡ 집 복습 예습          


1982.03.13

토요일이다. 남들은 줄거운 주말이라 할 것이지만 나는 아직 그럴 때가 되지 않은 것 같다. 이제 영어 공부를 시작했으니 작심3일이 되지 않도록 노력하자. 인생은 일생이듯이 두 가지의 길이 있는 것 같다. 젊어서 놀지 못하고 고달프게 지낸다고 서글퍼 생각하거나 비관하지는 말자. 언제까지나 흐지브지 일생을 보낼 수 없는 일이다. 젊어서 고생하면 중년이나 장년에는 한 번 멋지게 놀아볼 수 있을테지. 어짜피 인생은 한 번 사는 것이니까?          


1982.03.28 일

화창한 봄 날씨였다. 집구석에서 나가고 싶은 마음은 없었지만 날씨가 뒤숭숭해서 였는지 하루종일 거리를 방황한 것 같다. 하기야 젊은 놈이 어디 방 안에 처박혀 있고 싶어 하는 놈이 있겠냐마는 정상적인 참작은 해야 순서가 아닐까. 아마도 정신상태가 썩어빠진 탓일테지. 할 때는 화끈하게 한 번 해보길…

저녁에 집에 오니 어머니와 종준이가 올라왔다. 낮에 서울 국제 마라톤 대회 구경 때 자신과의 싸움이 너무 처절하게 보였던 탓인지 반가움도 별로 표시하지 못한채 우울한 마음만을 보인 자신의 모습에 안닦갑기 그지없다. 좀더 여유가 있게 세상을 보아야 할 나의 시야의 좁은 범위를 탓해 보기도 한다. 누구의 잘못도 없다고 생각하고 있끼 때문에 자신의 노력을 더욱더 탓해 보는거다. 열심히 살아보자.          


1982.04.05 월

이틀간의 연휴를 무의미하게 보냈다. 현인에게 면회간다는 것이 나의 부실로 깨지고 말았다만 이틀간 집에서 겪은 일을 생각하면 신경질만 난다. 서울에 올라와 형이랑 자취를 하니까 여러 사람이 찾아와 생각지 않았던 생활비가 자꾸만 축이 난다. 사람 사는 집에 사람 찾아온다는 것이 나쁜 일이 아니듯이 모든 일을 긍정적으로 생각할려고 한다만, 만약, 이 다음에 그들이 나보다 잘 살고, 지위가 높게 되었을 때 나를 뒤돌아 볼까도 의심이다. 동용이 형도 오늘 다녀갔다. 용돈이 무척 궁한 것 같다만 조금 밖에 주지 못한 것이 미안스럽지만 능력이 없는 걸 어떡해. 나의 마음이 키가 작듯이 좁은 건지는 몰라도 앞으로는 좀 냉정을 찾아야겠다. 내 나이 이제 25살. 나에 앞길도 걱정해야 되지 않겠나.          


1982.04.18

대우중공업 영등포 공장 생산 2과 야유회 날이다. 모든 것 끝났지만 마음이 유쾌하지 못해서 성질만 난다. 키가 작아서 인지 마음이 좁은 것 같은데 좀 더 깊게 생각해서 키와의 관계를 무관하게 생각하도록 만들자. 솔직히 내 심정을 말한다면 여자들에게 잘 보이려고 하는 내 깊은 곳에 생각이 있는 것 같은데, 그렇다면 왜 평소에 여자를 대하지 않는단 말인가. 결국 난 위선자? 그러하지 않도록 최선에 노력을 경주하고 작은 고추의 매운 맛을 보일 수 있도록 노력해 보자꾸나.          


1982.04.24 토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는 것이다."     

몇 십 일을 생각해봤지만 여전히 머리속에 남는 것은 역시 인생은 길지도 않고 결코 모든 걸 다 할 수는 없는 것 같다. 그래서 한 가지 계획을 세워서 그것으로 인생의 일생을 마쳐야 마땅한 것 같다. 그 뜻에 따라 부수적인 것은 마땅히 따라야 할 것이리라. 인생의 뜻을 하루저녁에 적어본다는 것도 우숩지만 망상이라 생각되지만 적어보련다. 난, 언젠가도 말했듯이 중학교 때 우연히 담임 선생의 희망 물음에 자선사업가라고 대답한 적이 있다. 그래서 인지는 몰라도 나는 지금도 그 뜻을 머리속으로 부터 멀리하지 못하는게 사실이다.

꼭 노후에 장학재단을 설립하고 육영사업을 해보고 싶다. 그렇다면 그것을 하기 위한 과정을 적어보기로 한다. 1차가 끝나는 대로 짧은 여행이나마 하면서 다시 시작해 보련다.     

1차 : 기능대학 가는 자격 취득

2차 : 기능대학 입학

3차 : 기능 대학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과 동시 취업.

4차 :  결혼

5차 : 개인사업으로 자금 조성

6차 :  육영사업 (장학 협회 설립?)      

다음은 땅으로…..          


1982.06.04

회사 45주년 창립기념이라 보너스도 받았고 특식도 먹었다. 종달형이 야유회 갔다 과음을 하고 왔다. 술이 몹시 취하는 모양인데 어떨런지 모르겠다. 술 깨는 약을 사줬는데 내일은 지장 없을런지. 회사 생활하기가 몹시 힘들다. 공무과 기계수리로 간지 얼마 안 되지만 안 대리의 오만함과 건방짐은 정말 봐줄수 없다. 사람을 무시해도 유분수지 나를 저의 종으로 밖에 생각지 않는 것이 좃같다. 기계 안전기사 접수도 못하고 이렇게 고민만 하고 있을게 아니라 고압기계1급을 위해서 최선을 다해보자.

벽지에 써 붙이겠다. 누구든지 나의 마음을 이해해 달라고. 결코 그렇게 하고 싶어서 그렇게 하는 것은 아니라고.          


1982.06.30

오늘부터 고압기계1급 공부를 본격적으로 하고자 한다. 종달형의 도움으로 독서실비를 마련했다. 공부하는 환이 마련해졌으니 열심히 하자. 3개월간의 고생 끝에 1급을 취득한다면… 결과를 보자.          


1982.07.07

오늘 술을 한 잔 마셨다. 공부가 되질 않는다.

1잔의 술이 6개월을 뒤로 인생을 뒷걸음 친다는 것을 생각해야겠다.           


1982.07.24 토

주말이자 토요일이다. 공부를 한답시고 책을 펴들었지만 기집 생각만 나고 술 생각 나고 어디 정신이 제대로 잡히질 않는다. 주위 사람들에게서 나는 목석이라 하지만 이렇게 외롭고 고독하게 느껴보기는 드문 것 같다. 굳세게 마음 먹고 형제들간에 우애를 존중하고 나에 살 길을 찾도록 하자. 젊은 놈이 벌써 삶을 비관해서는 안 되지? 운명이라면 할 수 없지만 세상에는 무명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이 많은 것 같더군. 그렇지 않길 자신은 노력하겠지만 운명은 진정 있는 것일까? 인간의 진정한 삶의 의미를 모르겠다.

술을 한 잔 했다. 혼자 2홉1병. 오늘 모처럼 2홉들이 한 병을 했다. 전과 같지 않고 술이 취하는 걸 보면 무언가 달라진 것이 있는 것 같다. 안닦갑다…. 그 시절이 점점 그리워질 뿐이다. 나도 남자다. 마음 속으론 분명 목석 아니라고 자부하고 싶다ㅡ          


1982.08.26 목

고기 1급 이론 시험도 끝나고 실기시험 준비를 차근히 준비해야 될 때다. 어제 성현이가 고생 끝에 찾아왔다. 그런데 우연히도 현인이 마저 찾아온 것은 우리끼리의 텔레파시가 통한 것일까? 모두들 얘기 가운데는 그동안 많이 변했고 어른스러워진 것이 눈에 보인다. 빨리 군생활이 끝나고 사회에 나와 훨훨 하늘을 날아 보길 바란다. 부디 나아가는 앞날의 행복이 함께 하길 바란다.          


1982.09.10

오늘 8월분 방세를 지불했다. 주인집 아주머니가 없어서 몇 번을 허탕친 다음 오늘은 그냥 주인집 고등학생 아들에게 전해주었다. PM5:30           


1982.09.13

김경안 씨가 결근하는 바람에 내가 대신 응원을 갔었다. 3시간 동안 헤메다 보니 골치가 띵하구나. 마포 검정공단에 가보았더니 고압가스 기계1급 이론이 합격되었다. 이제 실기 합격하는 것이 나에 지상 과제인데 어떻게 해야될지. 중앙 열관리 학원을 나가기는 하겠지만 굳게 맘 먹고 죽지 않을 정도로 노력을 기울여야겠다. 먼저 중앙에서 한 문제와 이번에 새로 하는 문제를 집중적으로 공부해야겠다. 기능대학 가는 길은 차츰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나이가 드니까 그렇겠지만 목적달성을 위해서 최선을 다하는 인간이 되도록 노력하자.           

1982.09.14

오늘 고압가스 기계 실기 접수를 마쳤다. 시험일이 10월31일이니까 내일부터 손을 대면 실기시험을 무사히 치르리라고 믿고 있다. 얼마나 열심히 하느냐가 문제지만 나도 이젠 실수 할 대로 했고 고생도 했으니 제자리 걸음 하는 짓은 고만하고 차근차근이 걸음마를 해야겠다. 그러기 위해서는 욕심 갖지 말고 10월 31일까지는 고압가스 기계 1급 실기에 정열을 쏟자. 주위 누가 뭐라 해도 자신을 지키자. 내일부터 취침 밤 1시 10분이다. 명심하길.

중앙학원 끝 시간 9시30분

10시 30분 귀가 완료 ~ 1시 공부 1시10분 취침          


1982.10.16 토

82년 10월의 셋째주 주말이다. 작년 10월은 어쨌는지는 모르지만 폭온하던 날씨가 갑자기 오늘은 찬바람이 부니 마음은 더욱 황량하군. 고압가스 기계 1급 기능사를 따려는 나에 노력은 좋다만 너무 마음이 모질질 못한 것 같다. 오늘 운희가 자취방에 놀러온다는 약속 날짜 지연 지켜지질 않았고 따라서 공부도 하기 싫다. 좀 더 집중력과 놀 때와 공부할 때 그리고 일할 때를 구별해야겠다. 앞으로 2주일만 참으면 나의 인생 목표인 1차 목표가 달성되리라 믿는다. 작년 이맘때도 이랬지만 할려면 화끈하게 하고 싶은 마음은 변함없다. 나에 2차 목표인 기능대학을 갈 수 있는 자격을 하루 빨리 앞당길 수 있도록 노력하자.          


1982.10.23 토

인간이란 참으로 야비하고 간사스러운 마음을 품고 있나보다. 그리고 한 치 앞도 내다보지 못한다는 진리가 꼭 평범한 사람들에게만 적용되는 것일까? 11월 초부터 연탄불을 넣는다는 것이 날씨가 좀 쌀쌀하다고 오늘부터 넣기로 했다. 퇴근 후에 연탄을 60장 들여 놓고 석유곤로를 정리하고 연탄불 피기로 돌입했다. 1장에 158원 한 달이면 9500원 난방비가 별로 많이 드는 것 같지는 않는다만 날씨가 따뜻하다면 난방비에서 6000원은 절약되지 않을까?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더 소비를 줄여 6000원 정도를 절약하도록 노력해야겠다.

앞으로 고압가스 기계 실기 시험일이 1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1주일만 열심히 한다면 합격의 영광은 무난할 것 같으니까 열심하도록 하자. 1주일 때문에 8개월이란 세월을 낭비하는 바보같은 짓을 않기로 하자. 결코 후회 없는 세월이 되길…          


1982.10.28 목     

날이 갈수록 좁은 생각이 가슴깊이 파고드는가 보다. 자취생활을 오래하다보니 권태가 나는걸까? 사람이 사람 구실을 못하다보니 신경만이 날카로워진다. 종달형이 감기 때문에 몇일 고생을 했다. 아픈 사람에게 왜 내가 밝은 얼굴을 보여주지 못했는지. 도와주지는 못할 망정. 정신적 위로라도 해줘야지 옳은 도리가 아닐까.

난. 내가 아프지 않으면 남이 어때도 그 고통을 잘 모르는 놈이다. 어떻게 보면 인간 살이가 서글퍼지기도 하고 우리들의 생활이 부끄러워진다. 애써 마음을 위로한다면 이전 것이 행복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난, 종달형이 무척이나 건강하고 모든 면에서 자랑스러웠다. 하지만 지금 형은 몸이 상당히 약해져 있는 것 같다. 솔직히 병이란 정신적인 것이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 같은데 아마도 내가 가장이 되고 애기 아빠가 된다면 정신적으로 살아야겠다는 의욕이 더욱 날 것이다. 어렵게 벌어서 동생들에게 보태준다는 것은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어떡하나. 현실이 가져다 준 운명이니? 나는 결심이 서 있는 것이다. 우리 가정의 행복을 위해서. 아니, 내 자신의 지위 향상을 위해서 꾸준히 노력할 것을….          


1982.11.08 월

기계 1급 시험을 치르고 나니 홀가분하기도 하지만 속에 99% 알콜이 들어간 것이 허탈하기만 하다. 목표를 향해 열심히 뛰다가 목표가 달성되면 꼭 이런 기분일까. 아직 결과야 나봐야 알겠지만 지금 기분은 사글세 방 사는 젊은 부부가 집을 사려고 은행에 맡겨 놓았던 돈을 찾아온 기분이다. 언제까지나 설레임과 방황 속에 살지 말고 인생 목표 1차는 1차고 이제 2차에 도전할 생각을 서서히 진행해야겠다. 우선 항상 착실하고 시간을 TV에 맡기지 않고 최대한으로 시간을 이용하는 현명한 현대인이 되도록 노력하련다. 그리고 몇 일 두고 생각을 해봐서 2차 목표 대비에 준비하련다. 갑자기 우연히 생각나는 것이 2차 목표의 준비가 아닐까?          


1982.11.09 화

어제 기상일보가 오늘 오후에는 곳에 따라 비가 온다고 했다. 오전엔 안개가 자욱히 깔려 비는 무슨 비 했지만 퇴근 무렵에서야 비가 나리기 시작했다. 때가 때인지라 차갑게는 느껴지지만 우산도 준비가 된게 없고 해서 어쩔 수 없이 비를 맞아야 했다. 어쩌면 82년에 나리는 비도 마지막으로 맞어보지 않나 생각이 들 정도로 세월은 빨리 흘러갔다. 생각했던 시험이 끝나서인지 마음에 갈등은 계속 자리잡는다. 우선 15일부터 고압가스 취급 공부를 서서히 해보겠다. 돈내서 원서 접수 한 것, 아니, 자격증이 필요 있고 없고 따지기 이전에 본전이라도 찾도록 노력하라. 합격이라는 기분만 가지고라도 그 돈에 댓가는 충분히 대신하리라 믿는다.           


1982.11.20 토

주말이면 항상 마음이 고독해진다. 나이 25세면 청년이라고 누가 말하지 않을 수 없다만 마음은 사춘기 28청춘 소녀 같으니 어쩌란 말이냐. 술을 좀 먹어서 글씨가 엉망이 되는가 보다. 안닦갑다.

고압가스 기계1급 시험은 봤다고 해서 마음의 동요가 이렇게 있다니 인간의 심정 알다가도 모르는 것이다. 한 없이 흔들리고 감정의 파도와 종준이 편지에 센치한 마음과 허황된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본다만 이렇게 인생을 사는 것이 옳은 일인지, 어쩌면 부를 꿈꾸다 간 김득구 선수가 부러울 정도다. 나이 25세에 죽는다는 것은 흔한 이름이지만 세상에 그만큼 이름을 남기고 간다는 것은 부러울 정도로 얘기하고 싶은 사건이다. 어쩌면 나에 이기적인 생각일지도 모르나 아무튼. 남보다 좀 더 세상을 열심히 처다보고 사색해서 지금보다 좀 더 나아질 수 있는 생활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길 다짐해 본다. 주말의 밤에.          


1982.11.28 일

많은 것을 느낀 하루였다. 항상 그렇듯이 느낄 때만 아니라 항상 그 마음이 간직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남들보다 연애도 못하고 신체적으로 남보다 적다보니 더욱더 내성적인 성격으로 변하는 것 같다. 과연 남과 같이 연애라고 청춘을 남발하는 것을 나에게 반문하고 싶다. 할 일 다하면서 남과 같이 생활한다는 것도 어디까지 용기와 근면이 자리 잡아야 된다고 생각한다. 내일부터 TV일절근절하고 일주일만 고압가스 공부해서 취급1급도 취득하련다. 열심히 해보도록 하자.          


1982.12.15 수

82년의 한 해도 저물어 가고 있다. 해마다 이맘때면 술이 생각나지만 올해는  조심은 해야겠다. 82년은 내 뜻대로 이루어지는 일이 거의 없는 것 같다. 그렇게 자신했고 확신했던 가스기계1급 실기가 보기 좋게 빗나가고 말았다. 너무나 자만했고 허황된 내 자신을 비웃기나 하듯이 말이다. 실망 말고 83년에 다시 시도할 것을 다짐한다. 앞으로 자격증이 내 손에 들어오기전에는 헛소리는 하지 않것다.          


1982.12.20 월

일기를 쓰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왜냐하면 오늘은 나에 탄생일이기 때문이다. 달력에다 표시만 하지 않았어도 그냥 지나칠 것을 종달형의 남다른 성격 때문에 생일을 찾아 먹게 되었다. 어제는 생일 이브라 생각하고 종래에게 가서 난생 처음으로 베리나인 골드란 고급술을 마셨다. 돈주고 마시라면 기절할 것이다. 판매가격이 병당 6만원이란다. 82년도를 별 한 일도 없이 생일이 다가오니까 기다려지기도 했다. 굳이 감추고 혼자만 알고 있을려고 했는데 종달형의 도움으로 닭고기로 포식하게 되었다. 확실히 난 불쌍한 놈 같다.

어떻게 보면 극과 극이 만나면 달라붙는 걸 보면, 극한적으로 불상한 놈과 극단적으로 행복한 놈은 거의 같은 처지라고 생각하고 싶다. 왜냐하면 만족하면 생이 재미없어질테고. 어렵다보면 생을 노력하다보니 바로 그것이 행복이 아닐까 굳이 변명해 보는거다. 앞으로 82년도 열흘 밖에 남질 않았다. 83년도의 계획을 차근히 생각해 보아야겠다. 열심히 살다보면 낙이 오겠지….                                      



26세


1983.01.04 화

신정 연휴를 무사히 치렀다. 82년 한 해 씁쓸하게 남지만 그래도 잊으려고 노력은 했다. 지금서 조용히 생각해보면 좀 더 노력하지 않은 탓인 것 같다. 계획 항상 빗나가니 혹시 난 허수아비 인간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올해는 되도록이면 계획이 달성 될 수 있도록 조그만하게 설계를 해보려 한다. 우선 고압가스 기계 1급 기능사. 고압가스 화학이나 취급기능사1급 그리고 다른 종목 한가지를 해보려 한다. 물론 목표달성을 위해서는 수단 방법을 가리지 말고 열심히 하는 수 밖에 없다고 믿고 싶다.

이제까지 살아온 것이 가만히 생각하면 고독이고 외로움이었다. 고독이 무엇이고 외로움이 무엇인지 확실히 모르기 때문에 내 일기장에 쓰기를 꺼려 했었다. 그러나 나이도 한 살 먹고 보니 그런 걸 느끼고 싶다. 한 번 더 느껴보기로 하자. 여자에게 신경쓰지 말자. 어짜피 화려한 연애하기는 틀렸다고 생각하고 싶다. 바보상자TV와 씨름하지 말자. 말 못하는 물건 어떻게 하면 못 이기랴.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데 게으름 피지 말자. 어짜피 잠이란 많이 자면 많을 수록 느는 것이고 근면하면 근면할수록 인생의 길은 길은 것이다. 또 하나. 자만하지 말자. 나같이 작고 빈 놈 무슨 자만이겠냐마는 그래도 모든 일에 겸손하도록 노력하자. 그랬다고 자신까지 버리진 않겠다.

그리고 꼭 한 가지 바라고 싶은 소원은 우리집 식구들 모두가 건강하고, 뜻하고 바라는 일이 모두 이루어지길 바란다. 우리 청심회 친우들도 상과 동이지만 모두들 돼지해에 살이 2배로 줄어들도록 노력해줬으면 좋겠다. 살찌는 것도 일종의 게으름과 상동한다고 믿고 싶다. 아무튼 내일부터 종학이의 83년은 시작된다. 부디 오늘 좋은 꿈 꿀 것을 믿는다. 내일부터 고압가스 화학 이론 공부 카운트 다운     

신정휴가 일정. 결과.     

 1. 31일 서울서 21시5분 고속버스 대전행 출발. 강남고속터미널서 3시간이나 기다렸다. 아까운 시간이다. 상희에게 미리 연락한 전화였는데 전화기 고장으로 전화요금을 내지 않았다.

 2. 31일 대전 23시 도착. 상희와 상희처 그리고 상희처남과 숙진이 5명이 고스텁으로 밤을 새웠다.

 3. 1일 8시 대전 출발. 피곤한 몸으로 용구네 집으로 향했다.

 4. 1일 11시 중소골 도착. 용구 아버님 생신과 청심회 모임. 줄거웠다.

 5. 1일 17시 중소골 출발. 숙진이 엄마, 내 애인이 없어 보기 안 좋단다.

 6. 1일 20시 청주 도착. 종운이가 예비고사 250점 정도 맞았단다. 충북서 국어교육과 지망예정이란다.

 7. 2일 14시 청주 출발. 17시 우리 고향 도착. 볼품은 없지만 괜시리 정이 가는 곳. 종준이가 열심히 일한다.

 8. 3일 형수님이 삼을 끓여주셨다. 보약보다도 성의가 무엇보다도 감사하다.

 9. 4일 PM10:45 서울 전사장이 별장과 이 다음 저승 살림을 예정한단다. 종태형과 형수님 장남으로서 고생이 많으신 줄 안다. 민혜와 윤수의 재롱이 눈에 아롱거린다. 부디 건강하게 자라다오.          


1983.01.13 수

내 나이 이제 26세다. 결코 이팔 청춘의 감상적이거나 방황해서는 안 될 나이일 것이다. 그렇게 다짐했던 화투도 겨우 15일이 지나서 또다시 쳤다. 물론 돈 잃은 것은 당연합니다. 왜냐하면 나와 화투와는 근본적으로 체질이 맞질 않기 때문이다. 공부를 한다는 마음. 마음에서 그칠 일인가. 계집애들이 심중에 들었고 꽁무니나 따라다니고 있으니 한심스럽기 그지 없다. 결혼이 문제가 된다면 좀 더 확실히 해두자. 남자 나이 26세면 물론 그러한 것을 생각하지 않을 수도 없다. 하지만 현실을 똑바로 직시하자. 미래를 바라보도록 접자.          


1983.01.24 월

대학 후기 원서접수가 시작되는 날이다. 내가 관심이 있을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내가 학교에 가지 못했다는 아쉬움과 종운이의 문제 때문이다. 충북대를 떨어졌으니 야단도 치고 싶지만 업지러진 물을 어떻게 담으랴. 멀리 퍼지지나 않도록 둑을 높이 쌓아 올려야겠다. 내 생각엔 철도전문학교라도 갔으면 좋겠는데 종운이 꿈은 그게 아닌가 보다. 할 수 없이 재수를 해야하는 안닦까움이다. 다시 한 번 종운이에게 당부하고 싶은 것은 너에겐 다른 애들과는 달리 대학 문이 한 층 더 좁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다.          


1983.03.01. 화

2월도 아무 보람 없이 지나갔다. 그러나 아무 일 없는 것이 아니다. 2월 27일 수원 중앙 예식장에서 상희의 결혼식이 있었고 2월27일 용산공고에서 고압가스 화학 1급 기능사 시험이 있었다. 모든 일이 뜻대로 이루어지진 않은 것 같지만 무사하게 지난 것이 다행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상희에게 미안함은 제시간에 참석하지 못하고 사진 한 장 찍어주지 못했다는 점이다. 앞으로 친우들이 결혼할 경우 이번을 경험으로 후회하지 않는 축하연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 오늘이 3월이니까 바야흐로 생동의 계절은 다가왔다. 양지바른 언덕에 푸른 생명들이 꿈틀거리고 있다. 긴 시간 동안 숨을 쉬지 못한 탓인지 숨소리가 더욱 거칠어지는 것 같다. 6월 12일이 나의 1차 목표 D day인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오늘부터 분발하여야겠다. 2월부터 생각해온 문제다. 앞으로 TV는 보지 않겠다. 다만 아침 뉴스는 제외하고 싶다. TV는 저녁에 30분 정도 머리를 식힐 겸 노력하겠다. 만들어 놓은 달력에 공부를 했으면 볼펜으로 동그라미를 치겠다. 그렇지 못한 날엔 X표를 해야겠다. 오늘 벌써 X표 하나가 지나갔다.          


1983.04.10 일

일요일이라고 젊은 놈이 하루종일 방에만 처박혀 있었다. 어디 야유회 나간다고 큰 돈 들어가는 것도 아닌데 왜 성격이 그렇게 문제가 돼 가는지 이상하기만 하다. 어제 종달형 형수감이 다녀갔다. 조카를 배에 두고 있다니 동생들을 위해서 2세의 생을 소홀히 할 병신은 이 세상에 어디 있을까. 오직 잘 살기를 부탁할 뿐이다.

일기가 왜이렇게 쓰기 싫은지 모르겠다. 뜻하는 대로 공부도 되질 않고 땀만 비질비질 흘리고 있다니.          


1983.06.26 일

오래간만에 일기장을 대하는가 보다. 형수님과 같이 생활한지도 벌써 1달이 지나갔다. 내가 너무 게을러지고 무언가 방황하고 있는 것 같다. 친구들에게도 무관심해졌고 시험공부도 하지 않는다. 좀 더 분발해야겠다. 지나간 시간은 돌아오지 않는다. 인생 60 이란 정해진 자연의 섭리다. 인생을 좀 보람차고 길게 하려면 잠을 줄이는 수밖에 없다. 12시 전에는 취침하지 않도록 노력 해야겠다.          


1983.07.24

중앙 치과 골목에서 권영일 서동환에게 1500원 갈취 당했음. 두 놈 주소는 성 요셉병원 앞이라 하였고 부천 놈이다. 만 20세.           

1983.09.25 일

아버지의 생신 날이다. 쓰기 싫은 일기를 억지로 써본다. 형수님(상섭씨)가 집에 갔다. 오기를 기다려지다. 엄마가 눈이 나쁘다. 나도 건강이 좋지 않다. 하지만 엄마는 나이가 많다. 내 건강 보다도 엄마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 자식을 위해 온갓 고통을 짊어지는 엄마. 불쌍하다. 다음 달엔 엄마의 진찰을 받도록 해야되겠다. 물론 나도. 내가 내 몸을 생각해야 한다.          


1983.11.11 금

이 일기장을 산지가 꽤 오래 됐다. 매일 일기를 쓴다고 생각만 하다가 그냥 지나가 버렸다. 그만큼 의지가 약하다는 결론이 내려진다. 83년의 한 해도 기울었다. 어떻게 인생을 보내는건지 자신이 생각해도 까마득득하다. 이대로 가다간 죽도 밥도 안 되는데 무언가 변화를 찾아야겠다. 요즈음은 괜실히 외로워진다. 난 아직까지 진정한 사랑 진실로 연가를 나눠볼 사랑을 느껴 보지 못했다.

이제껏 불장난을 해보았다고 하지만 이것이 사랑이구나 느껴보지는 못했다. 하지만 내 나이 이제 26 사랑을 느껴볼 때도 되었다. 이제껏 처럼 스쳐가는 것이 사랑이라고 믿고 싶다. 이제 외로움도 알았다. 나도 외로움을 극복하도록 하자. 혼자만의 외로움이 있다면 난 누구보다도 나에 취미를 찾아 나섰다고 생각하고 싶다. 하지만 연인이란 연정을 느껴 보지 못했다고 생각하니 내 자신의 처지가 불쌍하다. 잘 생각하자.          


1983.12.09 금

주민등록 갱신차 시골에 다녀왔다. 생각보다 줄거운 여행은 아니지만 그리던 곳을 다녀왔다는 것이 무엇보다도 기쁘다. 청주엘 들렸었지만 괜실히 짜증만 나고 조금씩 청주가 싫어진다. 왜일까? 오늘이 내 생일이란 것을 영숙일 통해서 처음 들었다. 생일이란 것을 꼭 바라고 싶지는 않지만 집안 식구들이 알아주지 않는 것이 섭섭하다. 물론 나도 집안 식구들의 생일 같은 것 신경 밖이니까 그럴까? 일기장을 오래간만에 잡아본다. 83년의 마무리도 해야겠고 아울러 84년의 설계도 서둘러야겠다. 시골에서 부천집으로 오는데 궨실히 쓸쓸해지고 자신이 초라해보인다. 술이라도 한잔 걸치고 싶었지만 전철에서 내리고부터 죽 포장마차라도 없었다. 시작했으면 과음했었을텐데… 가장 편한 곳은 부천 내 집 뿐이다.

선입견이란 중요한 것이다. 사람을 사귀고 대인 관계서 특히 중요하다. 일시적으로 인간을 판단한다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최소한 상대방을 평가하지만 충분한 시간을 갖어야 될게 아닌가. 인연이란.          


1983.12.19 금

이재건이란 사람하고 술 한잔 하면서 퇴근했다. 사람도 사람 나름이겠지만 생각하는게 확실히 어린 것 같은 느낌이다. 종출 형이 행복하게 살려나. 행복하게 살기를 간절히 바랄뿐이다.

어쩔 수 없어 일기장을 들쩍인다. 딴 사람들이야 어떻든 나만의 생각이 있는 법인데 큰 실수를 한 것 같다. 화투를 만지지 않는다는 약속이 몇 시간이 되지 않아 다시 시작했다니 나에 정신력이 안닦갑다.

오늘 17000원을 화투로 날렸다. 본전을 생각하지말고 앞으로나 조심하자ㅡ                                      



27세


1984.01.23 월

21일 저녁 용구 딸 미희 백일 축하겸 청심회의 모임이 있었다. 무척 줄거웠고 반가웠지만 애인 없다고 친우들에게 꾸중들었다. 세월이 가면 생기겠지만 마냥 기다릴 수도 없을 것 같으니 어떻게 해야 좋을지. 송도에서 겨울 바다도 구경하면서 소주도 한 잔 했는데 필주씨의 부끄러워하는 행동 무척이나 귀여웠다. 노래를 못해 친우들에게 미안하다. 18번지 하나 정도는 준비해야지!          


1984.02.20 월

일요일도 없이 바쁜 나날들이다. 바쁘다는 말에도 여러가지의 의미가 있을 것 같지만 나에게는 회사에 출근하는 것이 바쁜 것 뿐이다. 단순히 부모에 효도하고 동생들을 위해서 시간을 낭비한다는 것이 결코 헛된 일인지? 2월11일 경 청주에 다녀왔지만 몇 년 전보다 달라진 건 한 가지도 없는 것 같다. 경제적으로 빈약한 우리 가정을 보면 세상이 그렇게 미울 수가 없다. 우리는 항상 빈약할 수 밖에 없을까? 새해 들어 벌써 몇 달이 지났건만 아직껏 갈 길 못잡고 어영부영 하는 이 꼴 우습기만 하다. 종달형 내외분께 미안함 감출수 없다. 어쩌면 이상스럽게 생각할지 모른다. 나는 아직 총각이니까? 술이 좋아서 술을 마시니까.          


1984.02.27

84년 새해 들어 벌써 두달이 다 지나고 있다. 노총 주관으로 APT 주택조합 가입용 서류를 준비했다. 준비된 돈이 없이 집을 마련한다는 것이 마음이 떨리고 부담스럽다. 550만 입주금에 융자금 730만이면 19평 APT치고는 상당히 싼 편이다. 서류 접수비 2만원을 드리고 접수를 해보지만 여의치 않을 땐 2만원 정도는 떼일 생각이다. 올 11월 말경 일단 회사를 그만두는 걸로 하고 일을 벌려 놓는 것이다. 주택조합 가입용 서류는 주민등록등본2통 인감증명서2통 건물가옥대장2통 인감 등이다. 아무튼 계획대로 일이 순조롭게 되길 바랄 뿐이다.          


1984.03.10 토

오늘은 노동절이다. 모처럼에 맞는 연휴지만 훗날을 위해 쉬지 않고 일을 하기로 했다. 사람들은 비웃음을 할지라도 내 삶은 내가 사는 것이니까 주체성을 잃지말고 내 주관대로 인생을 개척하자. 형수가 해산을 한지 1주일이 되었다. 산간 해주려 올라오신 어머님이 오늘 청주로 내려가셨다. 멀리 떨어져 있으면 그립고 곁에 계시면 좋은 줄도 모르고 나는 참 바보 같은 놈이다. 왜 엄마에게 줄겁게 해드리지 못하고 걱정만 끼쳐 드릴까? 앞으로 조심해야겠다. 연초에 세웠던 계획이 날로 깨져가는 것 같다. 심기일전하여 열심히 하자. 종준이에게 편지 받고 20일이 지나도록 답장을 쓰지 못했다. 내일은 답장을 하리라 다짐하면서 오늘은 일찌감치 잠을 청해야겠다.          


1984.03.11 일

바람이 몹시 기승을 부린 하루였다. 날짜가 바뀌어선지 싸늘한 바람이 아니라 시원한 남풍이고 보면 계절은 어김없이 바뀌는가 보다. 계획했던 편지 한 통을 썼다. 종준이가 건강하게 군생활 영위하길 바랄 뿐이다. 종준이에게 이렇게 썼다. 부유하지 못한 탓에 육체적인 고통이 따를지언정 정신적으로 건강한 우리 형제들이고 보면 축복받은 인간이 아닐 수 없다. 건강한 몸과 건강하고 풍요로운 정신을 고수하자고. 청주집의 걱정은 부모님과 형에게 맡기고 우리는 우리가 처해 있는 현실에 충실하자. 그리고 연초에 계획했던 모든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는가를 점해 보라고. PM11          


1984.03.12 월

83년도 신용조합 배당금 70,477          


1984.04.07

83년도 호봉 4개와 직급이 올랐다. 노력한 댓가라고는 하지만 이것에 만족하지는 못한다. 현실을 외면하지는 말고 불평도 하지말고 좀 더 노력하자.     

84년도 3월분 명세서  본봉 157972 시간외 50200 월차 8033 휴업휴일 32128 교사운동 10000

지급금계 258,333 공제금계 61228 실수령액 197105          


1984.05.13 일

하루종일 빈둥거렸다. 보충역 훈련을 받기 시작한 것이 어저께 같은데 벌써 3주일이 지나갔다. 평생에 병영 생활이 3주로 지나간다니 챙피하기도 하지만 자의 아니게 된 걸 어떡하냐. 이것을 계기로 삼아 인생에서나 낙오자가 되지 말아야겠다. 오늘 아침 신문 보고 대성산업에 이력서 제출해봤다. 입사가 된다면 직장을 옮겨볼 생각이다. 주인 할머니가 10일까지 방세 밀린 것을 달란다. 나는 다음 달에 계산하려 했는데. 그런 것이 다 집 없는 설움인가보다.           


1984.06.10 일

청주에 다녀왔다. 실록이 우거진 산천을 감상하니 다시 한 번 세월이 흐름을 느끼겠다. 내 나이 이제 27세 장가갈 나이도 된 것 같다. 부모님의 주선으로 분평동 아가씨와 선이라는 것을 보게 됐다. 물론 남에게 평가 받거나 부모님을 통해서 배우자를 선택한다는 것이 그리 기분 좋은 일은 못 되는 것 같다. 이상에 맞지 않아 성사되지는 않을 것 같지만 또 한 가지의 죄를 범하는 것 같다. 내일은 뜻하는 사람에게 고백이라는 것을 해볼 생각이다. 그리고 날이 갈수록 계획했던 것에 차질이 생기는 것 같다. 생에 좀 더 분투해야겠다.           


1984.06.14 목

늦은 밤이기 보다는 쓸쓸한 밤이 되는 것 같다. 사랑이라는 것은 일찍이 느껴본 적이 없다. 왜일까? 한 여자를 사랑다는 것은 결코 죄가 아니라고 단정하고 싶다. 그렇지 못하면서 그러한 오해를 받는다면 얼마나 슬픈 일인가. 내가 저지른 일을 어떻게 수습해야 될지 대책이 스질 않는다. 어떻게 해야 될까?          


1984.06.27 수

어렵게 고압가스기계 1급 기능사 실기 접수를 마쳤다. 전문대학이나 대학을 졸업했다면 그러한 어려움은 없었을 것이다. 세상이 전부 인내를 가지고 노력한다면 안 될 것이 없는 것 같다. 이제 남은 것은 실기시험에 합격하는 일인데 그것 역시 그리 쉽지는 않을 것 같다. 계획 대로 차근히 해 나간다면 가능성은 있다. 학원비를 아까워하거나 나에 시간이 아까워하지는 않겠다. 단 1달간이라도 나에 봄이 죽을지언정 노력하겠다. 몸이 약해지면 그때 가서 회복하자. 계획서에는 취침시간이 12시까지로 되어 있지만 최소한 2시까지는 잠 자지 않겠다. 내일부터 시작하자ㅡ          


1984.08.14 금

김경안이 송별식이라고 명칭하여 하루의 마지막을 장식하였다. 요사이 하루를 정식한다고 한대짜 겨우 10시 정도인데 육체는 물론 정신까지도 피로한 까닭을 모르겠다. 아무리 정신을 찾으려 해도 그렇게 생각 드는 것은 무엇때문인지 모르겠다. 수일 내로 병원을 알아보기로 하자. 그리고 친구들에게도 소식이 뜸한 것 같다. 노력하겠다.          


1984.12.25 화

세상 사람들이 다 좋아하는 성탄절이다. 수둘장 신세를 지면서 한 가지 배운게 있다면 "나는 신을 믿지 않지만 세상 사람들이 다 좋아하는 날은 나도 같이 좋아할 줄 알자" 라는 글이 되겠지만 나와는 상관 없는 날이라고 외롭게 방구석에서만 지내서는 대장부라 할 수 없을 것 같다. 물론 나름대로의 변명은 있다. 뜻을 정한 공인 중계사 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해서라면 과연 그 뜻에 맞게 지냈는지 자신에게 반문하고 싶다. 월초에 세웠던 3대 금지사항 12시 전에는 취침 금지, TV시청금지, 과음금지 가 잘 지켜지고 있는지 들뜨기 쉬운 연말에 다시 한 번 음미하자. 그렇다고 그 계획에 꼭 얽메이지는 말자. 곰곰히 생각해보아 옳고 그름을 분며히 파악하자.

한 해가 다가는 이 마당에 카드 한 장 받지 못 했다. 물론 나도 카드 한 장 띄우지 않았다. 가는 정이 있어야 오는 정이 있는 법인가? 연초에 연하장이라도 아는 친지나 친우들에게 띄우자. 너무 냉정하게 세상을 바라보지 말자. 인간과 인간이 맺어진 사회이기에 정은 있게 마련이니까?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말을 되새기면서…          


1984.12.26 수

겨울 답게 날씨가 싸늘하다. 공인 중계사 공부를 해보겠다고 마음 먹었떤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1달이 다 지나가는 것 같다. 아직까지 머릿 속에 정리가 덜 된 것이 있다면 공인 중계사 자격증을 취득하면 얼마만큼의 수익이 보장이 될까 하는 문제이다. 왜냐하면 어떠한 목적이 있어야 공부할 의욕이 날 테니 말이다. 아무튼 시작한 것이니까 끝까지 해볼 작정이다.

오늘 연하 엽서 친우들에게 몇 장 띄우려 한다. 내가 한 장도 받지 못 하고 보니 좀 쓸쓸해진다. 다짐을 해보건데 어느 해던지 아는 사람들에게 새롭게 한 해를 시작해 보라는 뜻에서 앞으로는 연하장 보내기를 생활화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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