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5.06.23 월 흐림
월요일 병이란 무엇인가?
일요일 날 놀대로 놀어놓고 월요일 날은 학교 가기도 싫고 학교에서 공부하기가 싫었다.
더군다나 첫 시간이 기구학이라 더욱 졸음이 왔다. 선생님들에게 졸다가 꾸중도 들었지만…
실습시간에 목형을 잘못 만들었는지 목형이 잘 빼지지를 않는다. 6월 20일 날 금요일 실습시간에는 주형을 하나도 만들지 못 했다. 오늘도 첫 번째, 두 번째는 버렸다. 성질이 무척 났다. 성현이는 잘 만드는데 내가 하면 왜 목형이 빠지지를 않을까.
빠지지 않는 이유를 분석하여 보니까 두두리는 것을 잘못 두두렸다. 손에 힘을 주지 않고 해야 하는데 내 생각이 잘못이다. 그런 것이다.
실습시간이 끝나고 선생님의 검사가 있었다. 탐구바닥을 잘못 만들어서 몽둥이 한대 맞고 이름표 떨어졌다고 배 두번 찔렀다. 남ㅎㅈ 선생님의 마음이 약간 까다롭다. 자기가 작으면서 작은 애들은 쓸모가 없다고…
1975.06.26 목
제 2의 6.25를 막기 위하여 하는 것일까?
아니면 형식적인 것일까.
내가 지금 무엇에 관해 쓰고 있지? 호국단이다.
고교생과 대학생이 대상이 되는 것이다.
학생회장, 부회장 등 학생회는 해체되고 이제는 완전히 바뀐 것이다.
우리 학교는 12중대 3대대 1연대 다.
그중 내가 10중대 3대대 이다.
만약에 전쟁이 일어난다면 우리도 나가 싸울 것이다.
어쩌면 김일성을 겁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1975.06.27 금
오늘 실습시간이다.
처음으로 코어를 만들어 보는 것이다.
만들어 보기 전에는 몰랐었는데 너무나도 어려웠다.
만들어 지지가 아니 했다.
빼지지 않고 꽉 늘어 부터서 잘 되지가 않았다.
거의 2시간 동안 겨우 1개를 만들었다.
그나마도 한 개도 못 만들은 애도 있다.
도장에서 말이다. 아니 일반활동면에서도 그렇다.
왜 자꾸 성현이와 충돌을 하지. 내가 친구로서 대해 주니까 가지고 놀라고 한다. 그럴 때마다 내가 화를 팍팍 내고 한다. 왜 그럴까?
1975.06.28 토 맑음
오늘도 별다른 일없이 매일의 일과와 같았다. 한 번 써본다면 아침 먹고 학교가고 도장에 들렀다가 집으로 오는가 말이다. 그런데 도장에서 집으로 오던 중 내가 왜 이렇게 바보 같은 짓을 했나하는 생각도 났다.
길을 건너다 차가 오길래 갈래다 말래다 했다. 그러지 말고 가기 시작했으면 가고 서기 시작했으면 시작하자. 또 하나 느낀 것은 정구장에서 교육감배 국민학교 정구대회가 열리고 있었다. 광신 대 보은 이다. 나는 광신을 마음 속으로 무척 응원했다. 광신 학생이 치면 내 손이 막 움직였다. 그러나 보은이 이기고 있다. 져도 괜찮다. 아직 희망이 있으니.
1975.06.30 월 맑음.
이 세상에서 "적당히"란 정말로 없는 것이다.
내가 이런 말을 왜 말하는지 생각해 본다면 실습시간에 말이다. 용해 작업을 2번째 하는 일이지만 그렇게 싫지가 않다. 내가 목형실에서부터 엉터리였는지 몰랐었는데 주물실에 와서 주형 제작을 해보았더니 알았다. 목형에는 라운딩과 정밀한 치수가 요구되고 있다 더구나 코어 box 제작 말이다. 실물과 아주 정확한 치수로 말들어야지 적당히 하다간 실력 향상은 물론 학과 점수도 뒤떨어질거다.
목형실에서 목형 검사 맡을 적에는 보통이었는데 내 목형이 실제는 잘못되었다. 그러나 코어 박스를 못만 드는 것은 사실이다. 즉 엉망이다. 치수도 맞질 않고 라운딩과 다듬기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 코어 박스는 주형보다 작게 하는 것이 원칙일 것이다.
1975.07.02 수 맑음.
7, 8, 9일은 학기말 시험이다.
나는 공고에 들어와서 38, 37등을 했다.
그래서 이번 학기말 시험은 3자를 없애기 위해 공부를 열심히 하기로 했다.
실천 할려고 오늘 수업이 끝나고 시립도서실에서 공부를 할려고 했는데 자리가 나질 않는다.
30분쯤 기다렸을거다. 기다리기도 질력이 나고 그래서 그대로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와서 밥을 먹고 문화 독서실에 가기로 했다. 가서 공부를 할려고 하니까 처음 2시간 동안은 잘 된다. 그러나 1시간 정도는 머리에 들어가질 않는다. 안 드러가는 글자를 억지로 넣으려고 하니 그것이 제대로 들어갈리가 없었다. 그러고 요새는 왜 11시까지 밖에 못 있게 한다. 독서실에서 잘려고 마음을 크게 먹었는데!
1975.07.03 목 맑음.
내 머리는 다른 애들보다 머리가 빨리 돌지 않는구나.
성현이는 제도 시간에 척척 해나가는데 나는 왜 자꾸 망설일까?
내일 모레 글피 그 글피가 학기말고사구나. 잘 봐야지.
잘 보기 위해서는 대비를 해야지. 대비를 하기 위해서 어제부터 피치를 올려야겠다.
오늘 저녁에 책상 앞에 앉었는데 자꾸만 잡생각만 나고 골이 띵하다. 그래서 옥상에 올라갔었다.
가로등만이 환하게 비치고 수 많은 별들 중에 무엇인가 활발히 움지기고 있다. 무엇일까. 비행기일 것이다.
조금 있더니 기차가 기적소리 울리며 청주역을 지나고 사방이 시끄럽다. 라디오소리. 마이크소리. 어린이들 떠드는 소리. 도대체 공부를 할 수가 없구나. 그러니 방에 대자로 누워서 깨울 때까지 자자!
1975.07.04 금 맑음.
교문을 나올 때였다.
내가 각반을 메지 않고 오다가 규율부에게 걸렸다. 그래 메고 있는데 성현이는 기차게 빠져나오는데 저말로 농땡이 일까? 그래도 성현이가 내 맘에 제일 드는구나. 성현이와 시립도서관에 가다가 동학이를 만났다. 정말로 오래간만이다. 갑자기 "얫마" 하길래 누군가 하고 눈이 휘둥그레 졌다. 잘 몰라본 것이다. 그래서 악수도 못하고 그저 같이 집엘 걸어왔다. 나에게 많이 컸다고 한다. 내가 정말 많이 컸을까? 컸다면 얼마나 컸을까? 하는 의문을 가지고 집에 와서 키를 재보았다. 4월달에 신체 검사할 적에는 1m48cm 이었다. 지금 1m49cm 조금 크기는 컸구나 앞으로 많이 커주기를…
1975.07.05 토 맑음.
등교 길은 마음이 다른 날에 비해 훨씬 쇄락하다.
그런데 첫 시간 끝 시작하고부터는 골이 띵하다. 정말로 죽을 것만 같다.
다른 애들과 같이 엄살을 떨래도 그럴만한 용기가 없구나. 골이 더 핑핑 돌길래 국어 시간에 머리를 숙이고 가만히 있었다. 선생님이 와서 때릴려고 하니 성현이가 선생님 아프대요 했다.
하는 말에 얼른 머리를 들었더니 손을 나의 면에 바짝 드리대고 있었다. 그다음부터 나는 골이 띵하여도 끝까지 참았다. 그런데 골이 띵한 이유는 무엇일까. 갑작 공부라는 것 때문일 것이다. 갑작 공부는 되질 않는다. 다만 일시적인 뿐이다. 공부는 나의 생애에 써먹으려고 배우는 줄 알면서도 되질 않는구나.
1975.07.07 월 흐리다가 비 한때
오늘은 기말고사를 치룬다. 아침에 일어나니 기분이 매우 좋다. 마음에 거리낌 없고 상쾌하기만 하다. 동용이 형이 일어나자고 해서 억지로 일어나니 6시 20분이다. 어제 보담 일찍 일어났지만 보편적으로 느깨 일어난 것이다. 어제와 오늘 공부를 한다는 핑계로 밥 만드는데 관해서 신경을 쓰지 않는구나. 종달, 동용 형들이 애를 많이 쓰는구나. 내일부터는 가사일에 적극적으로 참가하자. 또한 오늘 기말고사 첫째 날이다. 갑작 공부를 하여 시험을 보통으로 치렀다. 언제나 나에게는 갑작 공부라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조그만 갑작 공부도 줄이기로 해야 될 것이다. 평소에 조금씩만 하면 된다. 계획이 있으면 실천할 줄 알아야 하는데 나는 바보다. 실천할 줄 모르니까.
1975.07.08 화 맑음.
오늘은 이틀째 기말고사.
정말로 아슬아슬한 순간이다.
오늘 시험은 좌우간에 잘 봤던 잘못봤던 따지지 않기로 하자. 가령 따져 봤자 골만 아프고 마음만 우울해질 것 같다. 오늘 시험 무조건 잘 봤다 치고 내일에 대비하기 위해서 공부를 열심히 해두려고 생각한 나머지 시립 도서관엘 간 것이다. 남 고교생 실은 완전히 공고생으로 찼고 일반실도 거의 찼다. 이왕 간 것을 다시 오기도 싫고 해서 일반실엘 들어 갔었다. 남고실 보다는 조용하다. 그러나 공부는 되지 않는다. 3시 쯤이다. 무척 졸리웁다. 그대로 개를 숙이고 20분 동안 잤다. 일어나니 골이 아프다. 왤까? 공부를 했다. 못하겠다. 그래서 중앙 공원 벤치에 앉아서 이런 일 저런 얘기를 주고 받으며 30여분 동안 얘기를 주고 받다 집으로 돌아왔다.
1975.07.10 목 흐림.
7, 8, 9일 동안에 그렇게 골이 아프더니 드디어 팔팔했구나.
오늘 공부 끝나서 도장에 가서 준비 운동을 다 마치고 성현이와 대련 붙다가 이단 옆차기로 내가 성현이를 차려고 하다 내 몸이 너무 많이 떴기 때문에 그대로 넘어져서 정신을 잃고 숨도 못 쉰 것이다. 정말로 죽은 것이다. 이때 관장님이 인공호흡을 하고 하니까 조금 깨어났다고 성현이는 말한다. 조금 깨나고 나서 수를 배웠는데 내가 잘한단다. 그러나 나는 아무것도 모르고 했을거다. 운동이 끝나고 성현이가 오늘 뭐했느냐고 물어본다. 그래서 나는 오늘 시험봤다고 했다. 그랬더니 성현이는 막 웃는다. 오늘 학도 호국단 조직이 있었다고 한다. 나도 생각이 난다. 일신 여고생이 군가를 부르는데 몸까지 흔들어야 되는데 궁둥이만 삐쭉삐쭉하는 모습이 대단히 우습다.
1975.07.11 금 흐림.
아침에 일어나니 골이 무척 쑤신다. 그러나 학교에는 가야되는데 도대체 갈 마음이 나질 않는구나. 억지로 참으며 교복을 입고 형과 집을 나섰다. 무심천을 보니 물이 무척 많이 흐른다. 정말로 보통 때 금강상류보다 물이 더 많다. 어젯밤에 비가 저렇게 많이 왔나도 생각난다. 나는 잠을 자느라 비오는 것은 생각지도 않았는데 학교에 갔다가 조회시간이 끝나고 선생님에게 조회를 맞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우유 한 병을 사가지고 집으로 돌아왔다. 힘 없이 터덜터덜 집으로 와서 우유를 먹으니 무척 꼬습다. 그런 맛을 예전에는 몰랐다. 그러고 잊었는데 골이 더욱 쑤신다. 그래서 3시 쯤에 감자를 쩌 먹으니 골 아픈게 약간 들 했다. 빨리 전 상태로 회복되었으면 좋겠다. 이제는 도장엘 갈 맘도 나지 않는다. 아마도 영양실조인가 보다. 앞으로 운동도 좋지만 충분한 영양을 섭취해야겠다.
1975.07.13 일
어젯밤에 병인, 재원, 나 이렇게 셋이 느깨까지 돌아다니더니 오늘 아침에 늦잠을 잤다. 더구나 아침에 느깨 일어난 이유는 밥하기 싫어서 일지도 모른다. 일어나서 쌀을 않치니 8시 반이다. 쌀을 않쳐서 곤로에 올려놓고 세수를 하니 쌀에 마악 김이 오른다. 딴날과 달리 넘쳐 오른다. 곤로에 넘친 물이 흘러 넘쳐 흐른다. 그리고 감자국에다 고추 양파 등을 썰어넣어 국을 끄렸다. 무척 맛이 있다. 왜 이렇게 맛있는지도 모른다. 정말 두리 있다가 하나가 죽어도 모르겠다. (과장) 맛잇게 먹다보니 물컹 물컹 한 맛이 있다. 마늘이다. 맛있다. 너무 많으니 맛이 없다. 몰르고 밥을 남은 남비에 모두 말었다. 동용이 형에게 꾸중도 들었다. 무식하게 거기에 다 만다고.
1975.07.15 화
점심을 먹고 나서였다. 즉 5째 시간인 교련 시간이다. 처음으로 M소총 분해 조립을 해본다고 한다.
무기고 앞에서 한 명씩 총을 받았다. 딱 받는 순간 마음이 무척 좋았다. 왜 그런지 모르겠다. 무엇이든 겨누고 싶고 방아쇠를 자꾸만 자꾸만 당기고 싶다. 또한 보기 보다는 무겁다. 분해를 하는데 방아쇠 뭉치가 빠지질 않는다. 성현이에게 물어보니 가스활대를 다시 한 번 잡아 당겨 보라고 한다. 성현이 말대로 하니까 곧잘 빠졌다. 분해하고서 기름 걸레로 닦았다. 그리고 조립을 했다. 정말 재미있다.
1975.07.16 수
"별을 보면서 산다" 소설책을 읽으면서 느꼈다.
6.25 사변이 일어나 해리의 오빠가 죽었다. 이럿듯 인생은 허무하다는 것을 말이다. 사랑하고 헤어지고 하는 것이 모두 헛것이구나. 또한 우리 식구가 영원히 같이 붙어 살 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장래는 어떻게 될까. 우리 식구가 미래에 얼마나 화목한 가정이 될지가 염려되었다. 누구는 잘 살고 누구는 못산다고 쳐보자. 그러면 못 사는 사람은 천대 받기 마려니다. 그러나 나는 그렇지 않겠다. 우리 가족이 재산이 있건 없건 화목하게 지내고 행복하게만 지내야겠다. 지금 이 시간이 얼마나 행복한가. 그 누가 머라해도 지금은 행복하다.
오늘은 행복한 아쉬움을 남겨버린 채 잠이나 자자. 이대로 밤을 새웠으면 좋겠다.
1975.07.23 수 맑음.
방학 앞두고 학교에서는 어저깨 머리 긴 학생들을 깍었다. 그 중 나도 끼여있었다.
또한 나는 스포츠를 할 수가 없다. 그래서 집에 와서 병인이가 삭발 머리를 했다. 그러케 하고 학교에를 가니 대단한 인기다. 이 기회에 반 아이들과 친해보자는 것이다. 어쩌면 삭발한 것이 더 잘댄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아마도 잘 깍였다고 생각한다.
오늘은 도에서 실시하는 시험을 치렀다. 국어는 번호 쓰는 것이다. 다 쓰고 수학은 선다형 문제만 하고 나왔다. 나머지도 모두 그렇다. 선다형 문제만 했다. 반 아이들이 전부 그렇다. 더군다나 등수에 안 들어간다니까 더욱
그런다. 시험 보는 것이 정성이 하나 섞여 있지 않다.
1975.07.24 목 맑음.
오늘은 종업식을 한다.
내일부터 27일간 8월 20일까지 한다. 1학기를 오늘로서 끝마친 것이다.
오늘 성적표를 내주었는데 나는 39등이다. 기계과 375명 중 240등이다. 2학기 때는 우리 반에서 최소한도 30등 내외. 기계과 중에서는 150등 내외로 올려야 한다.
오늘 지리 시간에 이야기 한 거 말이다. 자기가 말을 한 것은 책임을 져야 한다고 한다. 과연 나는 책임을 지면서 말을 하나. 그러나 요즘 현 시점에서 책임을 지는 사람이 이중의 몇 명이라고 손꼽기도 바쁠 것이다.
예를 들어 말하면 "너 이 새끼 죽어"라는 단어는 요즘 학생들이 흔히 쓰는 말이다.
이 말을 실천하면 살인자라는 명목의 무서운 단어가 되고 실천하지 못하면 살인 미수인 것이다. 만약에 이 말의 책임진다면은 자기가 사형을 당하든지 깜방에 들어가야 하는데 나의 마음으로서는 어느 것을 택하야 될지?
1975.08.19 화 맑음.
아버지와 어머니는 청주에 방을 구하러 일찍 떠났다. 나는 일찍 가기가 싫었다.
어쩌면 나는 이런 생각을 했을지 모른다. 청주에 가서 일이나 할까. 이삿짐이나 나를까. 그러하기 때문에 일찍 가기가 싫었을지 모른다. 6시쯤 동용이 형네 집을 들어갔다. 주인집 마당에는 세면을 깔고 TV를 놓고 방학 동안에 많이 장만을 했다. 그러나 나는 오늘부터 살림을 놨으니 모든 것이 필요 없을 것이라고 생각을 했다. 내 잘못 생각이다. 말할 나위 없는 착각이다. 내가 이 집에 와보니 모든 것이 쑥스럽다. 그래서 동훈네 집에 가서 테레비도 보고 밤 늦게 왔다. 나는 빨리 용찬네 식구들과 친해져야 한다.
1975.08.20 수 맑음.
아침을 할려고 하니 모자라는 것이 많다.
모든 것이 새롭다만 또한 부족한 것이 많다. 그리고 새 생활에 익숙하지 못하다.
모자라는 것은 칼과 도마. 수세미, 세수비누와 빨래비누 등. 아직도 있을지 모른다. 일주일 동안은 장만을 해야될 줄 안다. 오늘 한 것만 해도 옷걸이 150원 수세미 70원 세탁비누와 세수비누 150원 등이다.
새 생활이 익숙하지는 못 하지만 주인집 아주머님이 자주 살펴주고 돌봐준다. 주인집 아주머니의 마음이 영원히 변치 않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모든게 새로 왔으니 공부도 새로워야 한다. 어젯밤에 종달형이 이런 말을 했다. 앞으로 시간을 허비하지 말자고… 나는 명심하도록 해야 한다.
1975.08.21 수 맑음.
오늘은 개학날 이다. 학교엘 갔다. 지저분하다. 그래서 첫시간을 청소로 시간을 보내고 둘째 시간부터 수업에 들어갔다. 수업을 받는데 땀이 정말로 주룩 주룩 쏟아진다. 용찬이 엄마가 말하듯이 정말로 삼복더위가 아니라 4복더위 인가 보다. 개학을 하면서 떠오르는 생각은 대학을 가보고 싶은 생각이다. 이런 것은 나중으로 미루고 당장 급한 것은 공부 뿐이다. 나도 형을 따라서 중교 완전학습을 뗘야겠다. 지금은 아니더라도 말이다. 그런 다음에 다른 걸 시작해야 될 것 같다.
1975.08.23 토 맑음.
오늘은 즐거운 토요일이다.
아침에 집엘 갈까 말까 하는 두 생각이 머리에서 다툰다. 내가 집에 가야 할 일이 없을 것 같다. 아직 누에도 두잠을 넘지 않았으니 고추 딸 사람은 있을 것 같다. 그래서 형 혼자만 집으로 가기로 했다. 그리고 형에게 1600원 가져오라고 했다. 학교에서 수업을 마치고 근수가 집에 가자고 했다. 갔더니 라면을 3봉 사다 삶는다. 조금 있더니 덕일이가 온다. 셋이서 나눠먹고서 덕일이는 집으로 갔고 근수와 나는 우리집으로 해서 장섭이네 집으로 가기로 했다. 장섭이네 집에 갔더니 아무도 없다. 다시 집에 와서 저녁을 먹고 다시 또 갔다. 있다. 이런 얘기 저런 얘기 하다가 우리집으로 와서 바둑 두고서 잠이 들었다.
1975.08.24 일 맑음.
오늘도 어제에 이어서 말하자.
아침에 일어나더니 근수와 장섭이는 오줌이 매롭다고 한다. 근수는 쌀 것 같은지 억지로 변소엘 갔다 온다. 그러나 장섭이… 어쩔 줄을 모르고 지덜 집으로 가더니 소변을 본다. 우리 집은 변소 갈려면 마루를 건너야 하니 약간 쑥스럽다. 근수와 장섭이는 오늘 포도를 2근씩 샀다. 나는 얻어 먹기만 했다. 그러나 앞으로 갚아야겠다. 내가 돈 쓸게 너무 많은 것 같다. 키타도 사고 싶고 옷도 사고 싶고 책도 사보고 싶다. 어떻게 했으면 이렇게 할까 하는 생각을 머릿속에 넣고 무심천 둑을 걸으며 생각했다. 신문을 돌리고 싶다. 다음주 일요일날 가서 아버지에게 자전차 튜브 값을 얻어와야겠다.
1975.08.26 화 맑음.
등교길에서부터 약간 마음이 짜증스럽다.
왜 그런지 내 교련복 바지는 멋이 없다. 통이 좁고 너무 길다. 그런대로 더럽히자.
나는 나에 단점을 발견 못하고서 남의 단점은 잘 찾아낸다. 나에겐 하나의 단점인 나쁜 버릇이 있다. 누가 뭐라 하면 응? 이라고 되묻는다. 그러면 형이 그러는데 기분 나쁜 것 같다. 다른 하나는 누가 무슨 얘기를 하면 그렇다고? 라고 다시 묻는다. 급우들이 나쁜 버릇이라고 말한다.
또 한 가지는 방학 숙제 건이다.
내가 왜 이런 고생을 하나. 수학 방학 숙제를 맞는게 겁나는지 아니면 성적에 들어간다는 것이 마음에 걸리는지 모르지만 오늘 저녁에 10장을 해냈다.
1975.08.29 금 흐림.
오늘은 전국적으로 격전지 행군 및 반공 학생대회를 하는 날이다. 반공 학생 궐기 대회에서 참으로 훌륭했다. 모자에 멸공이란 단어가 앞장을 섰고 그 뒤로는 장난이 반이었다. 시작하자 비가 오기 시작했다. 어쩐 일인지 모르겠다. 아마도… 시작 안 했을 적에는 안 오더니 오기 시작한다.
조금 더 있으니까. 소나기가 퍼붓기 시작한다. 비가 오니까 학생들 옷이 홀딱 젖으니까 학생들은 교육감 도지사 할 것 없이 무조건 야유다. 어떤 애드는 앞에서 크게 떠들면서 따라하라는 구호가 있었는데 그 구호는 정말로 우렁차고 씩씩했다. 그걸 듣고 애기가 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김일성을 때려잡자고 하니까 나도 그렇게 생각해 라고 말했다. 이 애들은 정말로 유우머가 풍부하다. 나도 그렇게 됐으면 좋겠다. 또한 비가 너무 많이 와서 운동장에 물이 고였는데 끝나고서 학생들이 돌아갈 무렵이었다. 옷이 너무도 흠뻑 젖어 있으니까 서로 물장난이다. 거기서 좋다고 미소를 띄우며 물장구를 이리치고 저리치고 하는 참으로 볼만한 광경이다. 이 다음에 내가 상상하기로 하고 오늘은 이만~
1975.09.02 화 맑음.
언제나 아침에 마음이 너무도 상쾌하면 학교에 가서는 무척 질력이 난다. 오늘도 그와 같은 반복이다. 학교에 가서 첫 시간 수업을 받는데 질리기만 하고 정말로 못하겠다. 그래서 무조건 잤다. 그러다가 선생님이 일어나라면 잠깐 일어난다. 5교시인 교련시간에 제초작업을 했다. 무척 더운 날씨다. 그때부터는 별로 질력을 느끼지 못했다.
수업 시간에는 난 요사이 들어서 딴생각이 자꾸만 머리에 떠오른다. 친구들과 놀러도 가고 싶고, 걸프렌드를 갖고 싶고, 신문도 돌려보고 싶고, 공부도 열심히 하고 싶다. 특히 이중에서 2번째가 자꾸만 떠오른다. 그러나 모두가 상상뿐이다. 여자들과 어떻게 말을 걸어야 할지 모른다. 나는 바보다. 산등신이다. 나는 나를 저주한다.
1975.09.05 맑음
뜻이 있으면 반드시 밀고 나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모든 일이 다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내가 신문을 돌리려고 마음을 먹었으면 한 번 해보는 거다. 신문을 돌린다고 하는 것이 그렇게 좋은 짓은 못 된다. 주위의 눈길이 나를 저주하고, 학생시절 부터 남의 밑에서 구박을 받는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 짓일지는 모르지만…
또한 친구도 정답게 사귀지 못할 것이다. 이러한 고난과 채피를 이겨내려면 보통 뜻 가지고는 어려울 것이다. 마음에 힘을 주고, 육체는 항상 성실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니! 어떨 적에는 육체를 신에게 맡길 때도 있을 것이다.
1975.09.08 월
나는 요사이 마음을 잡질 못하고 있다. 내가 왜 나를 저주하고 막 욕을 했던가? 왜 신문을 돌리려 했던가? 왜 공부한다고 마음만 먹고 있는가? 사춘기라 그런지 지지배 생각은 더욱 난다. 까불고도 싶다. 담배도 피우고 싶다. 술도. 어느 친구 집을 가든지 흡연과 음주를 안하는 친구가 드물다.
공부를 해야 겠다. 철저한 계획이 있어야 한다. 오늘 계획이 완성되면 나는 공부해야 한다. 첫째로 영어 문법책 5page씩 하기로 하고 두째로 아침에 일찍이러나야 할텐데 큰일이다. 죽도록 노력해보도록. 염라대왕 말하실 거다. 건투를 빈다. 하느님이.
1975.09.09 화 맑음.
오늘 난생처음 수영장을 다녀왔다.
좋다. 하여튼간 좋다.
수영 좀 배워야겠다.
저녁 때 였다.
왜 자꾸 밥이 먹고 싶다.
왜 그런지 모르겠다. 키 크느냐고 그럴는지 아니면 영양부족일지 말이다.
또한 술이 먹고 싶다. 술 먹을 친구가 없다. 나 혼자 사다 놓고 먹을까?
1975.09.16 화 흐림
비가 이틀째 계속 내리고 있다.
장마철도 다 지나고 가을이 오는가 했는데 소나기가 내린다. 농촌에서는 야단들이다. 풍년된 벼가 여물어간다. 뽕을 따야 한다. 이런 모든 추수의 계절 가을. 정말 가을비는 너무 인정이 메마르다.
1975.09.28 일 맑흐
일기를 매일 쓰는 건데 약 2주일간 중단했다. 그러나 오늘만은 꼭 써야 하겠기에 이렇게 써야겠다.
오늘은 난생처음 하이킹 해보는 날이다. 성현, 강식, 우원 그리고 나 넷이서 속리산을 아침 일찍 떠났다.
밤 4시의 찬바람을 가슴에 안고 쉬지 않고 달렸다. 미원까지 가다 보니 날이 동이 트기 시작한다. 미원서 빵 3개와 우유 한 병 먹고서 속리산을 간 것을 생각하면 지금도 웃음이 나온다. 우리들의 미숙한 계획 때문에 속리산에서 고민을 했다. 사진기. 사진기가 무엇이길래 우리의 마음을 우울하게 했는가. 그래. 좋은 경치에서 사진 한 방 찰칵 하는 것이 보통 예의 인지는 아나 원래 깡통짓을 해서…
약 두 시경에 속리산을 떠나 청주를 향했다. 오다 속리산 약간 벗어나 말티재 정상에 도착하기 전 밤나무 서너 그루가 있었다. 우리 앞 팀들이 밤을 따가지고 간다. 우리도 그냥 갈 수 없어 갔다. 그런데 조금 더 있으니까 우리 학교 3학년 학생들이 와서 더욱 흥미가 있었다. 말티재를 넘을 땐 항상 걸어서 오도록.
보은서 점심을 먹고 미원까지 오르막길을 단숨에 올랐다. 기분은 매우 상쾌하다. 특히 내리막길이다. 미원부터 비가 축축히 내리고 있다. 궁둥이 신발 할 것 없이 모조리 젖어버린다. 농담도 안 해보진 않았지만 사실은 싸이클은 비오면 나뿌다. (모든게 다그렇지만 특히)
100일 대작전
10일 소작전
10권 대작전 독서 주간을 즈음하여.
경제 사정이 좋지 않은 나에게는 건전한 정신력만이 자본이다. 예를 들면.
1975.10.17 금 맑음.
수업 시간 자꾸만 지나간 일들이 생각난다.
벼를 베면 논이 빈다. 이곳에서 미꾸리 잡는 것도 생각이 난다.
그런데 더욱더 생각나는 것은 햇볏이 이상 야릇하게 따스하게 비춰주는 것이다.
수업 시간에 잡념이 있으면 공부가 안 된다고 선생님들은 말한다. 나는 그것을 모르겠다.
집에도 가고 싶고, 학교에도 가기 싫다.
1975.10.24 금 흐림
내가 신문을 돌리려고 따라 다닌지도 4일이 지났다.
그런데 아직도 다 알지 못한다.
내 머리가 나쁜가 보다.
1975.10.26 일 맑음.
올해의 가을도 아무 뜻 없이 보내려나. 일요일인 오늘인데 빈둥거리기만 하니.
공부를 할려면 열심히 하고 놀려면 마음대로 뛰어 놀 것이지 오늘 같이 낮잠이나 자고 밥하는 연습하러 청주에 온 것인가? 놀려고 그래도 요새는 자금이 없으며 모두가 이루어 지지가 않으니까 그러는지도 모르겠지만?
내가 이런 생각 끝에 생각해낸 것이 모든 것 다 잊고 올해 가을은 바보가 되는 것이다. 어쩌면 현명한 생각일지는 두고 봐야 아는 일이겠지만. 우선 시작이나 해봐야지.
신문을 돌리려고 한다. 그리고 공부를 하려고 한다.
이것만은 죽는 한이 있더라도 꼭 지켜야겠다. 방학 때도 집에 가지 않을 것이다. 신문을 돌리려 하는 것은 청춘을 살리려고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키타. 스케이트. 등등 말이다. 내년 3월까지만 어떻게든 해보자.
내 꿈이 이루어질 적엔...
1975.11.15 토 비
가을의 차거운 빗방울은 무정하게 뿌리고 있구나.
일기예보는 맑다고 했는데 주룩주룩 소리가 나도록 뿌리고 있으니 세상은 믿고 살 수가 없는 것 같다.
자신이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 비가 오면 나는 걱정거리가 생긴다. 신문 말이다.
1975.11.22 토 맑음
비가 지나간 뒤 날씨가 훈훈하다.
그러나 잠시뿐 비가 온 것은 추위를 몰고 올 것이다.
오늘은 토요일이라 일찍 끝났다.
현인이와 신문사를 가는 길에 추위를 느꼈다. 현인이가 신문사 가서 너 우리하고 같이 친목 단체를 만들자고 다. 그래서 나는 그렇게 하자고 그랬다. 그전부터 나에게 하는 말이지만 오늘에 와서는 나에게 직접 물어본다.
나 현인 여훈 창림 영삼 5인. 모두가 겐찮은 놈 뿐이다. 여기서 내가 제일 빠지는게 아닐까?
앞으로 성심성의껏 대하여야겠다.
1975.11.23 일 맑음
벽의 차거운 공기를 마시며 집을 나와 본집을 향해 떠났다.
집을 바로 나와 역전까지 가는데 귀가 따겁고 볼이 따겁다.
새벽공기가 이렇게 매정할지는 상상조차 해보지 않았다. 오늘은 특히 올들어 최고의 추위.
청주에서는 특히 올들어 처음 얼음을 보는 것이다. 기차를 탔을 때에도 마찬가지로 다리가 지탱을 하지 못하고 움직이고 있구나. 그런 추위 속에서도 졸음이 오니 어찌 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보천서 내려서 집에까지 걸어가려고 하니까 까마득하다. 마음을 모질게 먹고 떠나왔긴 하지만 정말로 속마음은 울며 울며 참으면서 집엘 왔다. 집에 오니 어머니의 놀라시는 심정 아버지의 환한 안면…
나의 일일 일과는 계획-실천-반성-재계획
1975.11.30 일 맑음
오늘은 11월의 마지막 날. 신문 수금하러 나가는 날. 재미있는 하루다.
그리고 오늘 2시에 영훈이와 만나기로 했다. 영훈이네 집에 갔더니 영훈이는 잔다.
내일 혁상이 패 죽이지 개새끼 정말. 내가 개를 패지 않으면 사람이 아니다.
1975.12.01 월
아침에 볼이 띵하다. 앞으로 술 조심해서 먹기로 하자.
혁상이에게 내가 시비를 했다. 한 대 맞었지만 혁상이와는 사이좋게 지내야겠다.
1975.12.05 금
나는 오늘 용꿈을 꿨을 거다.
오늘 수업을 마치고 신문사로 오는 도중에
뒤에 차를 보지 않고 그냥 길을 횡단하려 하는데 무엇인가 뒤에서 끽- 하더니 자전거 꽁딩이를 쳐 박는다.
신문을 돌리고 집에 오면 어딘가 모르게 피로하다. 졸음이 오고 먹고만 싶다. 알고 보니 신문 돌리는 것도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나에겐 단단한 각오가 있으니 겐찮다.
1975.12.14 일
잡념을 생각지 말고 현실에 충실하라! 이 길이 내가 살 길이다.
나는 요사이 여자들에 대해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어서 그런지 여자들에 대해서 의심나는 점이 더욱 많고 여자들이 더욱 위대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 어느 날인지 수업 시간에 어느 선생님이 하시던 말씀. 너희들 나이엔 누구나 여자들 위대하게 생각할 것이다. 결코 이 것이 틀린 말이 아니다. 내 나이 애들이 누가 여자가 따르기만 기다리고 맡은 일에 충실하는 학생이 있는가? 또한 내 나이 애들이 누구든지 극장 빵집 등등에서 여자가 옆에 앉는다든지 또는 말을 붙여 오면 가슴이 뛰지 않는 학생이 얼마나 되겠는가? 이렇듯 나는 내 자신을 알지 못하고 살아왔다. 그러나 이대로 계속 밀고 나가야만 하겠는가? 아니면 다른 길을 택해야 하겠는가.
원래 인생이란 어머니 뱃속에서 나와서 먹고 자라면서 이성이란 것이 일생을 좌우하는 경우가 많다고 나는 알고 있으나 그것이 실현되지 않고 있다. 또한 인생의 황금 시기라고 할 만큼 중요한 시기인 고등시절이다. 더욱이 나는 공업계 고등학생이다. 이렇듯, 나는 나 자신을 너무도 무관심했다. 앞으로 여자들을 우대하거나 여자들을 생각지 않기로 하자. 여자들이 따르거나 하면은 놀자. 그리고 여자들을 놀리자. 여자들을 보면 가슴이 뛰는 것을 방지하자! 여자들 밑으로 보자. 그렇다고 너무 무시하지는 말자.
1975.12.17 수
일주일을 쉬었다. 오늘 학교엘 나갔다.
오늘부터 4일만 나가면 동계 휴가다. 뜻있게 보낼 꿈을 꾸어야겠다.
1975.12.21 일
근로청소년 위안회란 신문배달들의 모임인가보다.
오늘 충북 적십자에서 우리들을 위안해주기 위해 이런 자리가 마련된 것이다. 신문사에서 가니까 혈육의 정이란 영화를 감상하고 점심을 먹으며 도청 구내 식당으로 갔다. 몇 백 명 되겠다. 그러나 떡국을 마음대로 먹게 주는 것이다. 내 마음이 흐뭇했다. 더욱이 우리를 위로해주는 식장에서 눈물이 나도록 기뻤다.
어려서 고생이 결코 헛된 것이 아니라고. 자기도 9년 배달 생활을 하고 40년을 언론기관에 있었더니 알만하다. 다 끝난 뒤 현인이와 자유극장 용호문과 마지막 포옹을 감상했다. 현인이는 맘이 좋다. 나와는 영훈이가 제일 친하다고 하지만 현인이도 맘에 든다. 어쩌면 현인이가 더 친할지도 모른다.
1975.12.30 화
75년의 한 해도 저물어가는 이 시각에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남들은 망년회다 뭐다 뭐다 하면서 연말을 보내려 하는데…
오늘이 30일 내일이 31일 내일 모레가 76년 아닌가?
신문 신문 신문이 무엇이길래 나를 붙드는가. 하지만 결코 신문이 나를 붙드는게 아니다. 내가 신문에게 붙들리는 거다. 혹 신문 돌리는 것이 현명한 생각인지 모르긴 하지만 돈을 벌기 위해 하는 것이니 만큼 너무 까먹어서는 안 되는 일이건만 매일 100원의 빵을 먹으니 바보짓도 상 바보짓 같다. 그렇지만 할 수 없는 짓일지도 모르겠다. 신문을 돌리면 배도 고푸니까.
그건 그렇다치고 오늘은 내가 학교에 가는 날이었다. 그러나 나는 잘못 알고 내일 학교에 가는 줄만 알고 있었다. 나는 기억력 판단력이 빠가다. 그렇기 때문에 조심해서 생활해야 하겠다.
1976.01.07 수 맑음
신문을 돌리며 생각했었다. 신문을 돌리기 시작한 지난 날들을…
오늘 계산해보니 7800원이라는 돈이 필요하다. 신문을 돌리는 것이 남들 모르게 나는 손해가 되는 것 같다. 하기는 신문 돌리며 배우는 점도 많다.
신문은 착실하게 돌려야하는 것이다. 나는 조금 활동하기 싫어서 찾으라는 집도 못찾고 하였다. 그러나 오늘 나에겐 엉뚱한 말이 떠돈다. 김효태란 사람을 11월3일 찾으라고 했다는 것인데 나는 그런 기억이 없다. 신문사에서 울고 싶었다. 그렇지 않아도 신문 돌리며 기분 나뻤었는데 저 지랄 해대는 것이다. 신문사 직원들이 내가 잘못하지 않은 일을 나에게 지랄한다면 나도 덤비겠다. 불 같이 말이다. 아니 칼 같이 말이다.
어떤 잡지에서 이런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삶에서는 용감해야 하고 죽음에 대해서는 관용을 배풀어야 한다고". 옳다. 실현해야겠다.
현인이 정말 고맙다.
1976.01.12 월 맑음
소한의 강추위도 오늘은 전후로 해서 풀린단다. 어제가 올겨울 들어 최고기록의 영하 15도 9분 이었다. 어제에 비해선 오늘 날씨가 무척 푹해졌다. 날씨 이렇게 추운데 신문 돌리느라고 수고가 많지 종학아! 벌써 두달째 월급을 어저께 받다. 6700원 저금 500원이다. 기분이 좋았다. 그 돈으로 옷을 찾았다. 추리닝. 오래오래 입어라. 두 손 모아 속으로 빌겠다. 신문 돌린 기념이다. 영원히 간직해야 될 물건인가? 신문 돌리는 것도 이번을 전후로 추억으로 남겄다. 나의 일생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는 일 중에서 보람있는 일이라 할까? 아니면 일부러 경험삼아. 또 다른 목적은 용돈 마련일 것이다.
1976.01.25 일
오늘은 1월22일부터 4일간 치의 일기를 써보자.
먼저 22일부터. 아침에 일어나니까 눈이 하얗게 쌓여있다. 올들어 처음 기분 좋게 내린 눈 같다. 약 7mm의 눈이 보기 좋게 쌓여 있었다. 오늘은 눈이 왔으니 토끼 사냥을 가기로 할려고 했었다. 그러나 아버지의 말씀이 오늘은 토끼가 안 잡힌다고 했다. 그래서 그만두기로 했다. 하지만 나는 하루종일 집에 쑤셔 박혀있었다. 이리 저리 딩글며 몸을 의지하고 있었다. 개만도 못한놈 일지도 모른다. 세수도 안하고 이도 안닦고 발도 안닦았다. 모조리 안닦은 것 뿐이다.
23일. 오늘은 토끼사냥 가기로 결심한 날이다. 개를 데리고 앞산으로 올랐다. 토끼사냥 간다는 것이 토끼를 꼭 잡는다는 것보다 등산 겸 운동을 할려는데 있다. 앞산으로 올라와서 밑골까지 돌았다. 그리고 내려오는데 완식이와 만나서 다시 가기로 했다. 그런데 데리고 간 개는 집으로 쫓찼다. 개가 있으면 토끼를 못 잡는다는 것이다. 완식이와 도라다니다가 우리 산에서 토끼를 토꼈다. 계속 쫓아다니다가 결국에는 잡았다. 토끼는 정말 길이 있다. 계속 쫓아다니니까 다시 그 길로 돌아온다.
24일. 매일 빈둥빈둥 하루하루를 지내왔다. 저녁이면 뻥이나 하고 돈내기 까지 하고 있다. 제일 큰 문제는 내가 담배를 자꾸 먹는 것이다. 어떻게 해야 되겠는가. 담배를 자꾸 피우고 십으니. 지키지 못할 일이라도 일기장에 만은 정당하게 메모 해놔야 하겠지. 딱 말해서 담배를 피우지 말자 종학아-
25일. 오늘은 친구들과 나무를 하러 갔다. 나무하러 가면서 느낀 점이 있다. 농부가 보람을 어서 찾나 하고. 나무하면서 웃고 즐기고 하면서 하루를 지나는 것이 보람이겠지. 아니 봄에 씨를 뿌려 가을에 결실을 보는 것이 보람일까. 그렇다 해도 나무하기도 퍽 재미있다. 농부의 보람이란 단순하다. 아니 단순할 것이다.
1976.01.26 월 맑음
아침을 먹을 때였다. 아버지께서 말씀하신다. 너 세수했니. 갑자기 묻는 말에 대답한다는 것이 안 했어요 했다. 그러니까 아버지께서는 게으르다고 꾸지람을 주셨다. 조금 더 부지런해 보라고 하셨다.
말은 남을 웃길 수 있는 말을 하라. 행동은 남의 입을 다물 수 있는 행동을 하고…
1976.02.04 수 맑음
아침에 눈을 비비며 잠에서 깨었을 때 아버지께서는 꺼치를 치시고 계셨다. 옆에서 영숙이도 아버지를 거들어 중이었다. 아버지는 부지런하시다. 농사꾼이면 그래야 된다고 아버지께선 말씀하신다. 농사꾼만이 아니겠다고 는 생각했다. 영숙이는 아직 어리니까 잠이 없는 것일게지?
종출이 형이 오늘 너구리를 잡아 왔다. 크기는 강아지만 하다. 너구리는 가죽이 크다. 비싸단다. 가죽이 거의 15000원 간다고 하고 또 쓸개가 그렇게 간다고들 말한다. 차구에 첬단다. 그래서 그런지 다리가 부러졌다. 불쌍하다. 할 수 없다. 약육강식이 세상 철칙이니!
고1도 무의미한 한 해가 된 것 같다. 앨범 하나 마련치 못하고 공부하다 제대로 한 것 하나도 없다. 더욱이 방학 동안은 더욱 무의미한 것이다. 밥 버러지가 된 것이다. 똥 만드는 공장 뿐 아무 쓸모 없는 인간이 되었다. 2학년 때는 공부를 열심히 하자.
자만하지 말라.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공부를 하자.
1976.02.08 일
학교를 다닐려고 청주엘 나왔다. 집에서 떠나기가 이다지도 힘든지는 미처 몰랐다. 집을 나서기 싫은 것이다. 엄마가 가자고 날 데리고 나왔기 때문이지 그렇지 않으면 오늘 청주엔 못 나왔을 것이다. 내 청주 자취방에 들어왔을 때 승질 많이 났다. 왜 그럴까? 방에 드러오니 음침한 것 같다. 그리고 부엌은 먼지 투성이고 말 할 것도 없다. 내가 그 전에 이 방에 살아왔다니. 앞으로 성실하게 생활해보자. 자취 생활을 나는 아직 챙피하다고 생각하는가 보다. 그렇게 생각지 말자. 방도 씰고 방도 딱고 그리고 그릇도 열심히 닦자. 비롯하여 공부도 열심히 하자.
1976.01.09 월
놀을 대로 놀았으니 이제는 공부를 해야지. 하지만 노는 것 끝이 없는 모양이다. 모든 것이 다 마찬가지겠지? 2학년 때는 정말 공부 열심히 하자. 공부 열심히 하자.
오늘 담배를 피웠다. 어지럽다. 잠만 자고 싶다. 하여튼간 공부 열심히 하자.
공부 열심히 하자. 자꾸 반복하면 공부에 공자라도 이뤄질 테니까. 알것냐. 미친놈.
1976.02.14 토
대보름 날 아침이라고 흐리다. 사방은 침침하고 대지 위는 울렁울렁 거린다. 한동네에서 나와 세계적인 나라는 존재를 생각해보자. 나의 직업은 학생이다. 학생이 할 행동을 다 하고 있는가. 아버지의 말씀이 험한 길과 나쁜 길도 가지 말으란다. 생각해볼 문제다. 대보름 날이니 달도 구경해야지. 달은 제일 먼저 보면 그 해가 잘 된다니깐. 어제는 동네고사를 치렀다.
1976.02.15 흐림 비
봄비가 나리는가 보다. 겨우내 얼어붙었던 모든 쓰래기를 싣고 나려가는가 보다. 깨끗한 비가 더러운 세상을 깨끗하게 만드는구나. 겨울에 이제 가는구나. 앞또랑 보니 물이 철렁철렁 하며 떠러지는 소리가 난다. 이제 곳 나도 2년에 올라가겠지.
1976.02.17 화 비
그래도 무서워 숙제를 하는 것 보니 처량하구나. 하구 싶은 것은 정작 못하고 맞지 않을려고 노력을 하는구나. 방학숙제를 방학 때 않고서 지금서 하는 나의 심정은? 관두겠다. 맞으면 맞는거구.
유재두와 와지마의 결전
1라운드부터 불꽃 튀기는 열전였다. 와지마의 개구리 같이 펄떡펄떡 뛰며 공격하는 모습. 정말로 유재두 힘없이 깨이는구나. 디기 모냥으로 떨어질 모르고 대드는 집념의 사나이 와지마! 일본의 영웅. 유재두에게 KO로 졌다가 다시 유재두를 KO 시킨 와지마.
1976.02.22 토 맑음.
자꾸만 마음이 설레이는구나. 학기 말이라 그런가보지. 3월이면 2학년에 오를테지. 그러면 내가 갈 길은 자꾸만 가깝게 가깝게 정해지는 것 같다. 대학을 가느냐 그렇지 않으면 취직을 하느냐. 집안 형편으로서 취직을 해야 되겠지만 신체적인 면이나 우리나라 현실로서는 대학을 가야겠다. 대학에만 붙는다면 부모들에겐 학비를 부담치 못하게 해야 될 나다. 아르바이트를 해서 대학 학비를 댈 자신을 본다. 모든 잡지나 학교의 선생님들 그리고 일반 사회 선배님들의 말씀이 모두 대학 얘기다. 특히 학생 중앙 기사에 낙방의 서러움과 붙음의 기쁨 같은 거 말이다. 취직 하는 사람에겐 느낄 수 없는 감정이 아닌가. 그걸 느끼는 사람은 얼마나 서러울까. 하여튼간 나의 고교시절을 헛되이 보내진 말자. 2학년 때 제도 2급 기능사 자격증은 따야겠다. 따지 못한다면 어떻게 할까? 3학년 때 주물, 목형 2급 기능사 자격증을 따내고 대학을 시험을 보자. 만약시 대학엘 떨어진다면 5급 공무원 시험공부를 하자. 5급 공무원 시험이 붙는다면 취직을 해서 공부를 하고 대학엘 가보는 것이 나의 꿈이다. 나의 최종 목표의 꿈은 우리나라의 주물의 일대 혁신을 일으키는 것이다. 그럴려면 대학엘 금속과를 나와서 외국엘 다녀오는 것이다. 하여튼간 공부 열심히 하기를. 꿈 속에서.
1976.02.23 일 맑음.
밤의 찬 공기를 마시며 우암 놀이터를 향한다. 어둠이 깔린 밤의 빈 공허 속에 무언가 빛이 판을 치는 것 같다. 별빛, 전등빛, 가로등빛… 모두들 조용하다. 이런 밤에 나 혼자만의 세상인 것 같다. 조용한 가운데 한 움직임이 있는 것이다. 나만이 아닐테지? 또다른 사람이 있겠지. 하지만 나도 해보는 대로 해보자. 평행봉에서 몇 번 떨어지고 지어박아도 칠전 팔기로 일어나라. 그 다음엔 그 댓가가 올 것이다.
1976.02.24 화 맑음.
1학년의 마지막 날… 복잡한 하루였다. 호준이와 싸우고 자전거를 타고 집에 와서 저녁 때 담배 내기를 했다. 안 할려고 했었다. 그러나 친우들이 하자고 해서 억지로 했다. 단어 공부도 이제서야 하게 되었다. 할건지 안할건지는 모르나 해야 한다. 약속한대로 겨울 방학 모냥으로 마음 먹은대로 하지 못하고 어벙벙이 하다 가는 한 겨울을 보내지 말고 지금이라도 공부 좀 하자.
1976.02.26 목 맑음.
지루한 하루였다. 작심 3초의 나의 마음은 도대체 무엇 생각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친구들이 나와 어울려 노는 것이 나에게는 해가 온다는 것을 알면서도 친구들이 올 때를 기다려지는가 보다. 그렇지 않고서는 친구들이 없고 조용할 때 공부를 해야 되는데 빈둥거리기만 하고 밥 벌어지 밖에 되질 않는다.
나에게 특히 지루한 하루라는 생각을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이대로 나가단 앞날이 훤할 것이다. 동네 친구들과 어울려 놀 때는 지루한지를 모르는데 혼자 있을 땐 생각나는 거라곤 여자들 뿐이다. 다시 작심 3초가 되도라도 공부를 해보자. 그리고 작심 3초가 되지 않도록 노력 해보자.
재수 없다고 할까 아니면 나의 운이 나쁜지 하여튼간 기분 나쁜 일이 많이 생겼다.
승규와 권투를 하다 눈뚱이 한대맞고 눈이 피가 빨갛게 맺혔다. 한 달이나 있어야 나겠다. 챙피한 일이다.
돈을 6700원 타왔다. 2000 제도기. 1500 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