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노래나 일단 틀어
아무거나 신나는 걸로
아무렇게나 춤춰
아무렇지 않아 보이게
아무 생각하기 싫어
아무개로 살래 잠시
- 지코 아무 노래 중에서 -
딸아이가 유튜브로 지코의 아무 노래 춤을 따라 하고 있었다.
작년까지만 해도 만화 주제곡 노래만 듣던 딸아이가 이제는 가요를 따라 부르고 그들의 춤을 따라 하고 있다.
8년 동안 만화 주제곡만 들리던 나의 귀도 새로운 가요 노래에 반응한다.
나의 두 눈은 딸아이의 손끝과 발끝이 요리조리 움직이는 몸짓 발짓에 빠져 있었고, 나의 두 귀는 지코의 아무 노래 가사에 집중하고 있었다.
아무 노래나 일단 틀어
아무렇게나 춤춰
아무 생각하기 싫어
아무개로 살래 잠시
지코의 아무 노래 가사들이 정해진 틀 안에서 허둥지둥 살아가고 있는 나에게 무엇인가 메시지를 보내는 것 같았다.
"뭘 그렇게 아등바등 살라 그래?"
"아무렇게나 해"
나는 내가 좋아하는 노래를 듣기보다는 음원차트 상위권에 있는 노래들을 먼저 듣는다.
요즘 인기 있는 노래를 모르고 있으면 왠지 유행에 뒤쳐지는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노래니깐 좋은 노래 겠지라고 생각한다.
나의 취향과는 상관없이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노래가 좋은 노래라고 생각했다.
내 귓가에 들리는 노래에 귀가 아프고 정신이 혼란스러워도 일단 많은 사람들이 선택한 노래니깐 그냥 듣는다.
지코의 노래는 다수가 정해놓은 틀에 나를 맞추고 살아가고 있는 나의 생각을 잠시 멈춰 서게 했다.
인간관계에서 상처 받은 마음, 인정받고 싶은 욕구를 채우지 못한 허탈함, 육아와 집안일로 얻게 된 스트레스를 내보낼 출구를 찾지 못한 답답함. 부동산 재테크에 필요했던 나를 믿어주는 자존감. 이 모든 나의 서툰 감정을 위한 마음공부를 시작했었다.
아이와의 관계에서 생겨나는 감정 문제는 여러 권의 육아 심리책으로 감정 공부를 시작했고,
인간관계 상처로 지쳐있던 감정 문제는 여러 권의 인간관계 심리책, 자존감을 높이기 위해서는 자존감을 높여주는 여러 권의 마음의 책을 읽으면서 마음공부를 시작했다.
책 속에서 알려주는 감정코칭 방법, 마음 다스리기, 마음습관 바꾸기, 나의 마음 알아채기 등등...
마음공부를 위해서 필요한 많은 감정에 대한 설루션이 있었다.
여러 책 속에서 배운 마음공부를 힘들어하는 나의 마음에게 가르쳐 주기 시작했다.
꽁꽁 숨겨둔 어릴 적 아픈 기억들까지 모조리 꺼내 그 감정들까지 달래주고 공감해줘야 된다는 말에 나는 아픈 상처들을 하나둘 꺼내 그때의 힘들었던 기억 속에서 상처 받은 나의 마음을 달래주기 시작했다.
하지만 상처 받은 기억 속에서 내 마음을 달래주기는 쉽지 않았다.
더욱더 선명하게 떠오르는 아픈 기억들에 잠시 잊고 지냈던 꽁꽁 숨겨둔 기억하고 싶지 않았던 나의 기억들이 하나둘 소환되기 시작했다.
감당하기 힘든 감정 폭풍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며칠 동안 우울한 기분 속에서 나는 살아가야 했다.
나를 자책하기 시작했고, 몇십 년이 지난 아픈 기억들 속에서 다시 살아가고 있었다.
마음 근육을 단단히 하기 위한 나의 마음공부가 나를 더욱 힘들게 하고 있다는 사실에 나는 더 이상 마음공부를 위한 책을 읽고 싶지 않았다.
또다시 나는 스스로 아픈 기억들, 생각하고 싶지 않은 기억들을 꽁꽁 숨기기 시작했다.
나는 지금 현실을 살아가야 하는데 지나온 과거의 기억들이 나의 현실과 미래의 길목을 떡하니 막고 서 있어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만들어 놓았다.
"쓰레기야 지금 내 머릿속에 떠 다니는 나쁜 생각들은 모두 쓰레기야! 쓰레기통에 쳐 넣어버려!"라고 매일 소리치고 외쳤다.
그렇게 몇십 년 전의 아픈 기억들은 쓰레기통에 넣어 버렸고 더 이상 그것은 나의 기억이 아닌 쓰레기일 뿐이라고 생각해 버렸다.
심리학 책 속의 모든 내용이 나의 마음공부에 필요하지는 않았다.
그 후 나는 지코의 노랫말처럼 아무렇게 마음공부를 시작하기로 했다.
내 마음이 원하는 마음공부를 선택했고, 책에서 아무리 좋은 마음공부라고 소개를 한다 해도 나와 맞지 않는 것은 철저히 거부했다.
내 맘대로 마음공부는 나의 마음의 근육을 점점 단단히 만들어주고 있었다.
인간관계에서도 나를 이해해 달라고 하기보다는 내가 먼저 상대방을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아이들과의 관계에서도 아이들 입장에서 생각하기로 했다.
나의 기준이 아닌 아이들 기준에서 옳고 그름에 따라 아이들의 마음을 보려고 노력했다.
투자에 있어 미리 걱정하고, 만약에 / 혹시라는 가정법을 무분별하게 사용하는 나의 생각을 나를 믿어주는 자존감을 높여 주는 노력을 하고 있다.
내가 만든 나의 틀에 맞추어 아무렇게 마음공부를 하고 있다.
남들이 만들어 놓은 틀 안에서 나를 맞추어 가는 행동은 더 이상 하지 않는다.
참고는 될 수는 있지만 정답은 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