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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민맘 Jun 10. 2020

할 건 하면서 생각하자

따로 생각할 시간을 갖는다고 딱히 해결책이 나오진 않는다.

한동안 글이 잘 쓰이지 않았다. 글쓰기 능력 부족도 있었지만 노트북 전원을 on 할 시간이 없기도 했다. 다른 이들처럼 너무 일이 바빠서. 새로운 무엇인가를 시작하게 되어서. 글 쓰는 일보다 더 중요한 일이 생겨서. 등의 일이 생긴 것이 아니었다. 나의 일상은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몸이 바빠 시간이 없어 글을 쓰지 못하는 이들과는 다르게 나는 정신이 바빠 글을 쓰지 못했다. 여러 가지 생각들로 머릿속이 바빴고. 마음이 바빴다. 나의 앞날이 걱정이 되기도 하고. 아이들의 미래가 걱정되기도 하고. 남편의 영업장이 걱정되기도 하고. 우리나라의 경제가 걱정되기도 하고. 그냥저냥 걱정거리들이 많았다.


그렇게 한동안 걱정거리들로 생각이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자니 해야 할 것들을 놓치고 지나가는 일들이 생겼다. "내일 하면 되지 뭐!" " 조금만 더 생각 좀 해보고.." " 좀 자다가 일어나서 해야지!" 그렇게 하나둘 미루고 나니 서평을 작성할 책들이 4권이나 쌓였다. 우리 집 방바닥에는 일본 애니 토토로에 나오는 마 쿠로 쿠로스케가 여러 명 살아가고 있었다.


서평 책부터 먼저 읽어 내야 했다. 머릿속은 여전히 이런저런 생각들로 바쁘고 책은 읽고 있지만 어떤 내용인지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렇게 100페이지 정도의 책을 읽고 난 뒤부터 조금씩 글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바쁜 생각들로 분주했던 나의 머릿속도 잠시 고요를 찾은 듯했다.


자신의 귀찮음을 모두에게 n분의 1의 불편함으로 전가하면서. 

서울의 내방 하나  책 속의 문장이다. 나의 귀찮음을 다른 이들의 불편함과 나눠 가지고 있다는 책 속의 문장에 소란스럽게 움직여 대던 생각들이 잠시 멈춰졌고. 그때부터 온전히 책 속과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갑자기 모든 것이 무기력해지고 '나는 누구지?'라는 의문을 가지게 되는 그런 알 수 없는 시간이 나에게 찾아올 때가 있다. 그때마다 나는 생각 속의 바쁨에 빠져 아무 일도 하지 않으려 하고 나에게 생각할 시간이 필요함을. 나에게 잠시 조용히 쉴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함을 소극적으로나 적극적으로나 표현한다. 청소를 하지 않거나. 반찬의 개수가 줄어들거나. 침대에 누워 있는 시간이 늘어나거나.




바쁜 생각을 멈추게 해 주었던 책 읽기. 이번에도 책을 통해서 답을 찾게 되었다. 답을 찾고자 읽었던 책이 아니라 서평 작성을 위해 읽었던 책이었지만 바쁜 생각에 빠져 아무것도 하지 않던 나에게 " 너 그렇게 하면 안 돼!"라고 말을 건네는 문장에 편안한 마음이 허락되었다. 그렇게 쌓여 있던 책들을 읽고 서평을 작성하면서 보이지 않던 아이들의 반찬이 보이고, 꼬질 해진 아이들의 얼굴이 보이기 시작했다. 두 권의 서평작성을 마치고 아이들이 좋아하는 계란찜과 멸치볶음을 후딱 만들어 놓은 뒤 욕조에 물을 받아 아이들이 물놀이를 하게 해 주었다. 물놀이가 끝난 뒤 때타월에 거품 젤을 듬뿍 짠 다음 구석구석 아이들 몸을 씻기고, 땀냄새로 범벅되었던 머리도 목화향이 나는 샴푸로 깨끗이 씻겨 주었다.


목욕을 끝내고 계란찜과 멸치볶음 시금치무침으로 차려진 아이들 밥상에 갖 지어낸 흰 쌀 발을 적당량 그릇에 퍼내어 놓았다. 깔끔해진 아이들의 모습과 적당히 차려진 아이들의 저녁밥상을 보고 있으니 마음이 편안해지고 이것이 행복이지 별거 있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티슈를 뽑아 손에 들고 방 바박에 굴려 다니는 마 쿠로 쿠로스케(먼지)를 하나둘 잡아 휴지통에 집어넣고 정신없이 어질러진 아이들 방을 정리했다. 옷가지를 금방이라도 토해 낼 것 같은 세탁기의 빨래도 끝마쳤다.


주기 적적으로 찾아오는 무기력함을 이제는 그냥 살아내 보기로 했다. 청소를 하면서 생각을 하고. 빨래를 하면서 생각을 하고. 책을 읽으면서 생각하기로 했다. 따로 생각할 시간을 갖지 않고. 생각할 장소를 찾지 않기로 했다. 그냥 살아가면 살아진다는 말처럼 무기력하면 무기력한 대로 그냥 할 것은 하면서 살아가기로 했다. 뭐 딱히 생각할 시간을 갖는 다고 좋은 해결책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기에 그냥 살아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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