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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민맘 Jul 11. 2024

여행의 기억

구경도 식후경이다. 여행은 그 나라의 문화를 느끼고 음식을 즐기는 일이기도 하다. 사람들마다 여행의 목적과 생각과 즐길거리가 다르다. 천천히 여행을 즐기는 사람이 있는 가 하면 한정된 시간 안에 최대한을 담고자 하는 사람이 있다. 후자에 더 걸맞은 나는 최대한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맛보고, 즐기기에 24시간이 모자랄 지경이다. 어쩌면 성격이 여행습관을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생긴 거는 차분하게 생겼는데 일처리는 후다닥 해야 하는 생긴 대로 놀지 않는 아이러니한 인간이다. 그러다 보니 뭐든지 빨리빨리다. 전기밥솥은 뜸 들이기 4분으로 넘어가면 솥뚜껑을 연다. 컵라면은 뜨거운 물을 붓고 1분도 안되어 면발을 휘젓는다. 

  빨리 일어나 조식을 먹으러 가야 했고, 가이드와 약속한 시간보다 30분 일찍 도착해 있었다. 패키지여행을 다녀 본 사람들은 알 거다. 짧은 시간 안에 많은 관광지를 둘려 보아야 하기 때문에 시간과의 싸움이다. 눈에 담기도 전에 후다닥 시간이 흘러가버리기도 하고, 생각보다 일찍 관광 시간이 끝나기도 했다. 


이번 태국여행은 가이드의 노련한 시간관리 덕에 빈틈없는 여행을 즐겼다. 하나라도 더 보여주고 싶은 가이드와 하나라도 더 보고 싶은 관광객들이 만났다. 쉬고 싶으면 시원한 에어컨 바람이 나오는 관광버스 안에서 쉬면 되었고 더 즐기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자유시간을 조금 더 내주었다. 건강할 때 많이 놀려 다녀야 한다는 말에 대해 생각했다. 재미와 체력은 비례하지 않았다. 즐기고 싶어도 체력이 따라주지 않으면 한 곳에서 오랫동안 홀로 머물러야 하기도 한다. 

여행의 묘미 중 하나는 그 나라의 음식을 맛보는 거다. 현지 음식을 맛보고 싶어 망고비빔밥을 선택했다. 색다른 조합이 아닌가. 한 번쯤은 먹어보고 싶었다. 비빔밥에 망고라니. 태국 망고는 달고 맛있다. 한국에서는 씨에 붙은 망고를 삭삭 긁어먹었는데 태국여행동안 조금 사치를 부렸다. 망고가 호텔 냉장고 방에 넘쳐났다. 가이드는 여행일정이 끝날 때마다 과일봉지를 손에 쥐어 주었다. 먹어도 먹어도 줄어들지 않는 망고였다. 한동안 한국에 돌아와 망고는 쳐다보지도 않았다. 아무리 맛있는 과일이라도 질리도록 먹으니 호감도가 떨어졌다. 


망고비빔밥에 망고가 싫으면 뺄 수도 있다. 그 나라의 음식을 먹어 보는 것도 여행의 묘미라고 생각했다. 조금 어색한 조합이지만 시도해보았다. 누가 알겠어. 천상의 맛을 느낄지. 

맛은 그냥저냥이었다. 비빔밥에 망고가 씹히는 맛. 천상의 맛은 아니었다. 한 번쯤 경험해 봐도 좋을 맛이었다. 태국 쌀국수처럼 입안에서 아른 거리지 않았다. 여행이 끝나고 한국에서 와서 한동안 아른아른했던 맛이 있다. 바로 태국 쌀국수. 두 그릇을 먹었던가. 그랬던 것 같다. 한국에서 먹었던 쌀국수와 무언가 달랐다. 습도와 공기가 달랐을지도 모르겠다. 현지인의 손맛이 가미되어서였을까. 쌀국수 때문에 다시 태국 여행을 가고 싶었다. 태국 여행을 계획한다면 쌀국수는 무조건 먹어 보는 것을 추천한다. 

한국인에게 인기가 많은 식당이라서 그런가. 아니면 한국 관광객들을 위한 식당인가. 한국 사람들뿐이었다. 여행 내내 현지인들과 식사했던 곳은 한 군데도 없었다. 호텔 조식 말고는. 사실 호텔 조식도 비율로 따지면 한국인 80%, 나머지 현지인과 다른 나라사람들이다. 어디를 가나 한국 사람들과 마주쳤다.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여행객들 코스가 따로 있으니깐. 


버스에 붙은 여행사 글자만 다를 뿐 가는 곳은 같았다. 가이드의 노련한 일정 운영 덕분에 붐비지 않는 관광을 즐기기도 했다. 비슷한 여행일정이라 여러 관광버스들이 한 번에 도착하면 관광지는 붐빈다. 각 여행사 가이들이 여행 간격을 조절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조금은 느릿느릿, 가끔은 빠릿빠릿하게 움직여달라는 가이드의 말에 우리는 속도를 맞췄다. 말 잘 듣는 여행객과 능숙한 가이드의 능력으로 여행의 질이 높아졌다. 관광버스 안에서는 그 나라의 문화와 역사 강의가 시작된다. 태국의 왕궁역사에서부터 시민들의 일상까지 하나라도 더 알려주려는 가이드의 모습에 사람들은 졸리는 눈을 가까스로 뜨고 들었다. 그러다 하나둘 잠이 들면 눈치껏 마이크를 내려놓는 가이드였다. 수많은 여행객들을 만났을 가이드다. 눈빛만 봐도 사람의 마음을 읽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오랜만에 조용한 관광버스 안이다. 고요가 가득했다. 숨소리만이 들리는 버스 안에서 한 여행객의 말이 고요를 비집고 나왔다.

"실장님 우리 트로트 좀 듣고 갑시다"

가이드는 자신을 실장님이라고 불러 달라고 했다. 가이드는 마이크를 다시 들었다. 

"사장님, 조용하고 좋은데요. 잠시 이 시간을 즐기고 싶은데요."

가이드의 말에 관광객들의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 순간의 공기를 글로 담기가 어렵다. 무미건조한 말이 그때는 왜 그렇게 웃겼을까. 여행의 추억이 하나 저장되었다. 지나고 보면 아무 의미도 없는 푸석한 말들이 그때는 왜 그렇게도 촉촉하고 부드러웠을까. 코끝을 간질 거리는 말들에 웃음이 터져 나오기도 하고, 코끝이 찡하기도 했다. 


망고 비빔밥을 먹고 나와 플로팅마켓으로 향하던 우리의 여행 기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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