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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로시 Jul 18. 2024

계획이 다 무슨 소용이야

인생은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다고 하지만 뭐 이건 작정이라도 한 것처럼 계획한 일들만 살살 피해 다닌다. 차라리 계획 없이 살고 싶지만 생긴 게 이 모양 이 꼴이라. 그러지도 못하고. 계획형 삶을 살아온 나로서는 계획 없이는 행동도 없다. 패키지여행은 미리 여행지와 식사 숙소 비행 편 모든 것들을 계획해 놓는다. 순서대로 버스에서 내리고 관광하고 밥 먹고 또다시 버스를 타고 호텔에서 하루를 마무리하면 끝이 난다. 어쩌면 계획형 인간인 나에게 패키지여행은 어울리는 한쌍일지도. 



"지금 제가 하는 말은 선택사항입니다. 해도 되고 안 해도 돼요. 어떤 선택이든 존중합니다."

다음 여행지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가이드가 마이크를 들었다. 올 것이 왔구나. 그래. 패키지여행에서 추가 선택관광은 필수였다. 가이드 말대로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말 그대로 선택 관광이었지만 그건 그날의 분위기에 따라 반강제적으로 더 강한 쪽으로 흡수되어 버린다. 화끈한 성격의 계모임 친구팀은 '갑시다'를 외쳤고 모녀팀은 '우리도'를 말했고 부부팀은 여론의 기울기에 따라가는 듯해 보였다. 여고 동창팀은 추가금액에 대해 가이드와 이야기를 나눴고 우리는 코끼리 투어만을 하고 싶다는 의견을 살짝 흘러 보냈다. 선택 관광은 이랬다.

  알카자쇼+아시아티크 크루즈관광+코끼리투어+아로마 전신마사지 2시간+과일바구니증정+야시장투어 =150불(약 200,000) 100불(약 130,000) 추가금액은 환화로 약 20만 원이었다. 이번 3박 5일 태국 여행상품 금액은 308,000원이다. 여기서 20만 원을 더하면 508,000원의 여행 상품으로 업그레이드된다. 



이왕 여행 온 거 많이 보고, 듣고, 느끼고, 먹는 여행을 하다가 가는 것도 좋지만. 초등 아이들이 있는 우리에게 알카자쇼나 맥주 먹고 노는 크루즈 관광이나 아로마 전신마사지는 불필요한 사항이었다. 아이들에게 필요한 건 코끼리 투어 하나였다. 고민 한 끝에 우리는 코끼리 투어만 참여하겠다고 말했다. 가이드는 우리의 상황을 백번 이해 한다고 말했다. 다른 팀들이 관광할 때 우리는 버스에서 기다려야 했고, 마지막날 아시아티크 크루즈 관광을 하지 않으면 공항을 혼자 가거나 다섯 시간 일찍 먼저 공항으로 가야 한다고 했다. 

고민이다. 이걸 어쩐다. 분위기에 흡수되어 버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함께 온 여행에서 우리만 쏙 빠지는 꼴도 우스워 보였다. 

가이드는 코끼리 투어시 무료 사진 촬영 및 액자 증정을 한다고 했다, 나무에서 바로 딴 코코넛도 무료로 나눠 준다고 했다. 여행일정을 마치고 호텔로 돌아갈 때마다 양손 무겁게 과일을 들어 보내 준다고 했다. 모두가 선택관광을 기분 좋게 '갑시다'를 외친 사람들에 대한 배려였을까. 고마움이었을까. 가이드는 여행객들에게 땡모반(수박주스)을 한잔씩 돌렸다. 그중에는 우리 가족도 있었다. 우리는 코끼리 투어만을 선택했는데 가이드는 과일바구니는 물론 땡모반도 주었다. 아. 마음이 불편했다. 

"우리도 할게요." 

가이드 표정에 알 수 없는 미소가 담겼다. 세계 3대 쇼라고 불리는 알카자쇼를 보기 위해 우리는 가이드 뒤를 따라갔다. 

계획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아. 의미 없다. 계획이 무슨 소용이야. 상황에 따라. 분위기에 따라 변화할지도 모른다는 것을 받아들이기에는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우리의 눈앞에서 펼쳐지는 화려한 쇼에 이거 안 보고 돌아갔으면 어쩔 뻔했을까. 가끔은 더 나은 계획으로 방향을 틀어 보는 것도 괜찮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우리의 시선은 무대를 향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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