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카자쇼 관람
편견 없는 시선에 자유로워지고 싶은 사람들. 이미 자유를 누리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나와 다름을 인정한다고는 하지만 백 프로 그들을 이해하지는 못했다. 그들의 삶을 존중할 뿐이다. 각자 사정이 있으니깐. 그 사정을 일일이 알지 못하니깐. 화려한 조명이 꺼진 뒤 무대뒤의 그들의 삶은 어떨까. 여전히 사람들의 시선에 베이고 상처받는 것은 아닐까. 세상이 많이 변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편견은 존재하니깐. 사회가 만들어 놓은 틀에서 자유롭지는 못한 것이 현실이니깐. 조명이 꺼진 그들의 삶을 생각하니 마음이 싱숭생숭했다. 한 번도 보지 못한 그들에게 이런 생각을 품는 내가 웃기기도 하다. 남 걱정 말고 니 걱정이나 하라는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어쩌면 그들은 자신들의 삶에 최선을 다해 살아가고 있는 건지도 모르니깐. 쓸데없는 생각일지도 모르는 생각들이 머릿속을 헤집고 있을 때 옆 사람이 말을 걸어왔다.
"하기로 했어요?"
"네. 그렇게 됐어요."
패키지여행 단체모임 팀 중 한 명이었다. 우리의 선택관광이 코끼리쇼 참여만이었다는 것을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곳곳에 아이들의 모습이 보였다. 가족들과 함께 온 각국의 어린이들이 쇼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나에게 어디에서, 어떻게, 무슨 일로 여행을 왔느냐고 물었다. 대구에서 가족여행을 왔다고 했다. 아이들 학교는 안 가도 되느냐는 말에 요즘은 가족체험학습기간이 인정되어 출석인정 처리가 되어 괜찮다고 말했다. 상대방의 일방적인 질문이 끝나고 나의 일방적인 질문이 시작되었다. 어디에서, 어떻게, 무슨 일로 왔느냐 질문에 경북에서 살고 있고 친구들과 매년 여행을 떠나는데 이번 여름은 태국 방콕으로 정했다고. 남편들 우정이 부인들의 우정까지 만들었다고 했다. 끈끈한 실타래를 이어오며 수십 년을 함께 해온 우정이라고 했다. 그렇게 잘 맞기도 힘든데 부럽다고 말했다. 다들 그렇게 말한고 했다. 한두 번 들어본 말이 아니었나 보다. 부러운 건 부러운 거니깐.
관계를 오랫동안 이어오는 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수많은 시간을 지나다 보면 별별일을 다 겪는 것이 인생이다. 그들의 삶도 그렇지 않았을까. 희로애락을 함께 하며 지내온 시간들이 단단히 굳어져 있었다. 짓궂은 장난에도 허허허 웃음을 내어 보일 수 있는 그들의 여유로움이 좋았다. 사람들을 편안하게 해주는 다정한 말들이 고마웠다. 빙그레 내보이는 미소가 따뜻했다. 스치듯 지나가는 인연일지 몰라도 그 순간 그들과 함께 할 수 있어 행복했다. 여행이 조금 더 즐거워지는 순간이었다.
그들이 보여주는 유쾌한 성격 덕분에 아이들은 배꼽 빠지도록 웃었다. 너무 많이 웃어서 배가 아프다고 말하며 또 웃었다. 라면 줄까. 김치 줄까. 콜라 줄까를 연신 물으며 아이들을 챙기는 그분들의 다정함이 좋았다. 패키지여행의 또 다른 묘미가 아닐까. 좋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품고 있다는 게.
객석 조명이 꺼지고 음악이 흘러나왔다. 무대 조명이 켜지고 화려한 옷을 입은 연기자들이 무대 위로 걸어 나왔다. 아이들 시선이 무대에서 떠나지 않았다. 잠들어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아이들의 눈은 빛나고 있었다. 한 편의 뮤지컬을 본 것 같았다. 안 봤으면 어쩔 뻔했어. 정말. 나도. 남편도. 아이들도 모두가 만족하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찾는 이유를 알았다. 태국 여행 중 어디에 가야 할지 모른다면 사람들이 많이 가는 곳을 선택해도 괜찮을 것 같다. 많은 선택을 받는 곳은 다 그만한 이유가 있으니깐.
무대 조명이 꺼지고 객석 조명이 켜졌다. 사람들이 밖으로 하나둘 나갔다. 화려한 의상을 입은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있었다. 지금 막 무대에서 공연을 마친 연기자들이었다. 조명이 꺼진 그들의 모습은 사뭇 달랐다. 사진을 찍자고 사람들을 불러 세우는 그들의 목소리가 낯설었다. 화려했던 그들의 모습 뒤에 씁쓸한 삶의 그림자가 있었다. 먹고살기 위한 그들의 삶이 곳곳에 묻어 있었다. 북적거리는 거리를 지나 조용한 버스 안으로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