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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민맘 Jul 15. 2024

별 것도 아닌 일에.

플로팅 마켓 수상시장

플로팅 마켓은 물 위에 지어진 수상시장이다. 태국 여행 기념품을 구매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패키기 여행에서는 가이드가 안내하는 쇼핑센터 2곳을 들린다. 하나는 보석, 또 다른 하나는 건강식품이다. 사고 안 사는 것은 자유다. 패키지여행은 가이드와 함께 여행할 여행객들이 어떤 사람인가에 따라서 여행의 재미는 달라진다. 날씨도 물론 중요하지만 패키지는 이 두 가지가 우선이다. 다행히 우리는 좋은 인연을 만났다. 서로 사진을 찍어 주기도 했고, 음료를 건네고, 아이스크림을 사주기도 했다. 한국사람의 정이 느껴지는 순간이다. 한국에서는 서로 모르고 지나칠 인연들이 먼 나라 땅 태국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학창 시절 친구들이 결혼을 하고, 그 배우자들도 함께 친구가 되어 매년 여행을 다닌다고 했다. 서로의 아픔을 보듬고, 누군가의 기쁨을 나누며 그렇게 지내온 인연들이라고 했다. 참으로 좋은 인연이다. 부럽다고 말했다. 쉽지 않은 일이다. 오랜 시간 동안 한결같은 관계를 유지해 오는 건. 


인간관계는 경조사에 의해 정리가 된다는 말이 있다. 나 역시 그 말에 속하는 1인이다. 오랜 시간 알고 지낸 인연들이었다. 당연히 결혼식에 참여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잠수를 탔다. 사정이 있다고 말해 주었다면 좋았는데 그마저도 무시해 버렸다. 연락을 하지 않는 걸로. 그렇게 몇몇 인연이 정리되었다. 슬픔과 기쁨을 함께 나누는 인연은 오랜 시간 함께 한다. 나의 오랜 친구는 항상 내 옆에 있어 주었다. 아빠의 장례식에서도 몇몇의 인연이 떠나갔다. 살다 보면 사정은 항상 존재한다. 그 사정을 이해 못 하는 게 아닌데. 사람들은 설명도, 변명도 없이 조용히 사라져 버렸다. 그렇데 정리된 인연이 여럿 있다. 나도 누군가에게 정리된 인연일지도 모르겠다. 나의 호의가 불편한 간섭이 되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다른 건 모르겠고 코코넛 아이스크림은 꼭 먹어봐요."

가이드가 추천해 준 코코넛 아이스크림이다. 태국에서 맛볼 수 있는 간식이기에 눈에 보이지 마자 바로 주문했다. 태국어를 하지 못해도 물건을 사고 계산을 할 수 있다. 참으로 신기한 일이다. 손짓, 발짓, 표정으로 모든 것이 통했다. 관광지의 특권이겠지. 쫀득한 식감의 아이스크림에 코코넛의 달큼한 맛이 가미해진 맛이랄까. 특이하고 색다른 맛이었다.  

 

의무적으로 들려야 하는 쇼핑센터에서도 필요하지 않으면 구매를 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강요가 없어서 좋았다. 진주 목걸이에 한동안 눈이 머물렀다. 사고 싶었다. 진주 목걸이가 필요하기도 했고, 태국 진주가 좋다는 설명을 듣고는 안 살 수가 없었다. 진주가 담고 있는 뜻을 듣고는 마음이 거의 기울었다. 

"진주는 자식들의 풍요를 담고 있어요. 진주를 몸에 걸치면 자식들이 잘 된다는 데 안 할 이유가 없죠"

그 말을 듣고 보석들 앞에 섰다. 제일 먼저 선 곳은 진주였다. 팔에도 걸쳐 보고 목에도 살짝 걸쳐 보았다. 영롱한 진주 빛이 눈부셨다. 금도 아니고, 실버도 아닌 것이 꽤 가격이 나갔다. 가격을 듣는 순간 기울어진 마음이 균형을 잡기 시작했다. 최저가 태국여행을 와서 비싼 진주 목걸이를 산다고. 아이러니한 선택의 순간이었다. 잠시 진주를 멀리했다. 게스트룸으로 향했다. 보석들 앞에서 멀어져야 했다. 견물생심이란 말이 있지 않은가. 눈에 보이니 사고 싶어 안달 난 마음을 진정시킬 수가 없었다. 분명 가이드는 강요하지 않았다. 내 마음이 강요하고 있을 뿐이었다. 


다행히 눈에서 멀어지니 마음에서도 멀어졌다. 보석가게 다음은 건강식품이다. 재미있는 제품 설명에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그것만 먹으면 모든 병이 싹 사라질 것만 같았다. 글을 쓰며 생기는 근육통 따위는 슥슥 한번 문지르면 게눈 감추듯 사라질 것 같은 설명에 하나 살까? 말까? 고민을 하고 있는 나를 보며 짠순이라는 말은 옛말 아닌가. 여행 경비를 아껴 쇼핑에 탕진하려는 나의 행동을 멈춘건 후끈거리는 목뒤 통증이었다. 목과 어깨가 아픈 사람 손 들어 보라는 말에 번쩍 들었다. 장시간 비행에 목과 어깨가 많이 뭉쳐 있었기에. 내 목뒤로 시원한 롤이 슥슥 지나갔다. 시원한 향이 어깨를 감쌌다. 살까? 말까?를 고민하는 사이 후끈거리는 목 통증이 불편했다. 그러더니 화상을 입은 것처럼 뜨거워졌다. 목 뒤라 볼 수도 없고 미칠 지경이었다. 다행히 제품 설명 시간이 끝나고, 제품이 있는 매장 안으로 들어갔다. 남편에게 목뒤 상태를 물었다. 벌겋게 오른 피부를 보며 괜찮냐고 나한테 물었다. 불에 타는 것 같은 느낌이라고 말하니 얼른 휴지를 꺼내 목뒤를 닦아 냈다. 그래도 여전히 뜨겁다. 좋은 제품이라도 내 몸은 거부했다. 누군가에게는 효능이 있을지 모르지만 내 몸은 그렇지 못했다. 건강식품은 구매 목록에서 삭제. 말린 과일과 코코넛 칩으로 쇼핑을 마쳤다. 


플로팅 마켓 관광은 한 시간 반이 주어졌다. 짧기도 하고 길기도 한 시간. 우리는 구석구석 시장구경을 했다. 기념품 가게도 들렸다. 몇 가지 기념품들을 구매하고 먹거리 골목으로 향했다. 관광객으로 가득한 길목에서 현지 음식을 먹어 보기로 했다. 하지만 남은 시간은 20분 남짓이었다. 복잡한 길목에서  선택의 기로에 섰다. 먹을 것인가 말 것인가에 대해. 

버스가 정차된 곳에서 얼마를 걸어왔는지 알 수 없었다.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시간에 대해 남편에게 말하니 남편이 버럭 화를 냈다. 남편은 그 나라의 로컬음식을 맛보는 여행을 좋아한다. 코코넛 아이스크림 말고는 먹어 본 것이 없어 아쉬워하던 남편의 마음에 뜨거운 물을 부은 격이었다.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여행 가면 한번 이상은 무조건 싸우게 된다는 말이 우리에게도 일어났다. 속이 상했다. 짜증과 불만을 나에게 던지는 행동을 이해하기에는 나 역시 지쳐있었다. 날 선 말들이 오가고 우리의 거리는 점점 멀어져 갔다. 저만치 앞서 걸었다. 남편은 저만치 뒤쳐져 걸었다. 


태국 여행 첫날부터 우리는 싸웠다. 별것도 아닌 일에. 여행은 별것도 아닌 일에 웃음이 나고, 별것도 아닌 것에 감탄을 하고, 별것도 아닌 것에 화를 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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