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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로시 Nov 22. 2024

사랑을 만날 때까지

시간은 지나갔고 나는 조금 더 늙어 갔다. 멈추어 있는 것은 없다. 밤은 깊어 갔고 또다시 날이 밝았고 다시 밤이 깊었다. 모든 것이 지나갔다. 나의 시간도 지나고 지금을 마주했고 지금도 지나가고 있다. 여행을 기다리는 마음이 지나고 지나 출발을 마주했고 출발은 도착을 기다렸다. 곧 허무를 만나겠지. 여행의 끝은 허무와 그리움이 있다. 허무한 여행을 또 떠나는 것은 그곳에 사랑이 있기 때문이다. 사랑이라는 단어에 익숙해지기 위해 여행을 떠났다. 


어린 나는 사랑이라는 단어가 어색했다. 많이 듣고 자라지 못해서 그럴지도 모른다. 우리 부모님도 어색했을지도 모른다. 나처럼 많이 듣고 자라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사랑은 모르는 것투성이다. 문득 사랑이 궁금해졌다. 분명 사랑하는 사람과 사랑도 하고 이별도 했다. 이별이라는 단어는 익숙하다. 이별이라는 단어 만으로 가슴이 찌릿해온다. 이별을 지나왔기에 그런 것 같다. 이별보다 먼저 한 사랑은. 사랑은 왜 이리 어색하기만 할까. 사랑이 익숙해질 때까지 떠났다. 


국제여객터미널은 여전히 사람들로 붐볐다. 떠나고자 하는 사람들과 도착하는 사람들이 지나갔다. 배를 타고 떠나는 여행에 익숙한 우리는 자주 배를 탔다. 비행기에 익숙한 우리는 어떻게 배를 타고 갈 수 있냐고 두려워했다. 망망대해 바다에서 어떤 시간을 마주할지 몰라 불안했다. 흔들리는 물 위에서 우리는 흔들렸다. 그랬던 우리가 가까운 나라 일본 후쿠오카를 갈 때면 배를 탔다. 밤에 출발한 배는 해가 떠오르는 새벽시간에 하카타항에 도착했다. 떠나온 해는 지나갔고 시작의 해가 떠올랐다. 사람들이 창문에 기대어 떠오르는 해를 바라본다. 여행을 떠나온 사람들이 사랑을 만났을까. 이미 사랑에 익숙할지도 모른다. 


즐거운 여행이 되었으면 한다고 말해주던 서울말씨를 쓰던 아저씨는 여행자의 시간을 사랑했다. 많이 준비했다며 족발을 종이컵에 나눠주던 인자한 얼굴의 아주머니는 나눔을 사랑했다. 그들이 보내온 사랑이 넉넉했다. 우리가 배를 타는 이유이기도 했다. 그렇다고 모든 것이 사랑은 아니었다. 가끔은 술에 흔들리는 사람들에 머리가 아프고 귀가 피곤했다. 눈을 어디다 두어야 할지 모르는 모습들도 배에는 있다. 보기 싫지만 보아야 하는 것들도 곳곳에 있었다. 그렇다고 배에서 내릴 수는 없다. 이미 망망대해를 항해하고 있기에. 떠나왔기에. 선택했기에. 우리는 그곳에 있어야 했다. 


해는 뜨고 여행은 시작이다. 대단한 것을 바라고 여행을 시작한 것은 아니다. 거대한 여행의 결말을 바랄수록 여행은 소소하고 사소했다. 뭐 별거 없는 여행이기도 했다. 하루종일 거리를 걷는 것이 스펙터클한 여행은 아니지 않은가. 아주 아주 작은 기대는 가지고 있지만 그것 역시 물거품이 되어 버렸다. 가볍게 떠나 보기로 한다. 그러다 마주하는 우연한 것들에 사랑을 만날 수 있도록. 굳어진 마음에 사랑할 수 있는 것들을 만나는 것만으로도 여행은 성공이다.  여행에서 조차 성공을 말하는 내가 아이러니하다가도 그것 역시 나니깐 받아들이기로 했다. 성공하겠다고 미친 듯이 달렸던 시간에 허무를 만난 나다. 


우리는 매일 함께 여행을 떠났다. 경주도 가고, 서울도 가고, 부산에도 갔다. 태국도 가고 일본도 갔다. 또다시 우리는 함께 일본으로 여행을 떠났다. 가끔은 함께 여행을 즐기다 때때로 밤거리를 혼자 걷기도 했다. 문득 혼자 걷고 싶어 호텔을 나와 걸었고 목적지는 편의점이었다. 낯선 공기가 어색했다. 가족이 있는 호텔방으로 걸었다. 혼자 있을 때는 함께 하는 다정함이 그립다. 함께 있을 때는 혼자 하는 고요함이 그립다.


 신이 나에게 둘 중 하나만 선택할 수 있다면 난 함께 하는 다정함을 선택할 거다. 호텔방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빨라졌다. 혼자 걷고 싶어 나온 거리에서 함께 걸어보고 싶어졌다. 여행은 혼자도 좋지만 함께도 좋다. 우리가 늘 함께 여행을 떠나오는 이유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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