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자이후텐만구
"어떻게 낙엽이 떨어지는데 슬프지 않을 수가 있어?"
남편은 떨어지는 낙엽에 슬퍼했다.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럴 수 없다는 생각도 했다. 낙엽이 떨어지는 게 슬퍼 보이지 않았던 나다. 비가 조금 내렸고 바람이 살짝 불었다. 바람에 날려 나뭇잎 하나가 바닥에 떨어졌다. 몇 개 더 떨어진 것 같기도 했다. 나뭇잎이 떨어지는 걸 바라보고 있지 않았다. 그냥 떨어진 것 같았다. 남편은 낙엽이 떨어지니 슬프다고 했다. 남편의 말을 흘러들었다. 감정을 공유할 수는 없었다. 내 마음이 그렇지 않았으니까.
남편은 낭만이 없다고 했다. 어떻게 글을 쓰는 사람이 낙엽이 떨어지는데 슬프지 않냐고 했다. 그럴 수 있다고 했다. 감정은 다양하니깐. 감정을 강요하지 말자고 했다. 각자의 감정에 충실하기로 했다. 낭만이 없는 메마른 마음이라는 남편의 말이 덜커덩 걸렸다. 그 말에 감정이 반응했다. 메마른 낭만이라. 낭만에 대하여 생각했다. 낯선 감정이다. 자주 만나지 못한 단어다. 누가 나에게 낭만에 대해 물어본 적이 있었나.
후쿠오카현 다자이후시 다자이후텐만구에서 낯선 단어를 만났다. 낭만이라.
몇백 년을 살아온 나무에서 떨어진 나뭇잎을 보며 슬픔을 말하는 낭만에 대해 생각해 본다. 흘러갔던 남편의 말들을 다시 붙잡았다.
지붕 위에 핀 자연이다. 장관이었다. 지붕 위 핀 낭만에 대해 남편에게 물었다. 남편은 거기에는 낭만이 없다고 했다. 웅장함과 놀라움이 있다는 말만 했다. 낭만은 스치듯 지나가는 작은 것에서 찾는 거라고 말했다. 그런 것에 마음을 두어 보라고 했다. 억지로 찾으려고 해서 찾아지는 게 아니었다. 억지스러운 건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니깐.
다자이후텐만구는 일본의 유명한 학자인 스가와라노 미치자네를 학문의 신으로는 모시는 곳이다. 일본 국내에서는 매년 합격이나 학업성취를 기원하는 참배객이 많이 모이는 곳으로 유명하다. 다양한 꽃이 피는데 특히 매화인 도비우메는 다른 매화보다 먼저 피는 것으로 유명하다. 남편은 매화나무에서 매화잎이 떨어지는 것을 보고 슬퍼했다.
"돈 많이 벌게 해 주세요 하지 마세요 제발"
한국말이 들렸다. 돈은 낭만적인 단어는 아니었다. 사람들은 학업의 신을 모시는 다자이후텐만구에서 돈을 많이 벌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사업 번창이라는 단어를 소원 종이에 적어 걸어 놓기도 한다. 아무리 돈에 대해 말해도 학업의 신은 들어줄 수 없다는 게 어느 한국 가이드의 말이었다. 돈에 대해 말하려고 한건 아닌데 괜스레 뜨끔했다.
"우메가에 찹쌀떡은 꼭 먹어보세요"
일부러 들으려고 한건 아니다. 단체 여행객이 모여 있는 가이드 옆을 지나가다 들은 것뿐이다. 이 떡을 먹으면 병마를 물리치고 정신이 맑아진다고 한다. 믿거나 말거나 지만 이것 또한 여행의 낭만이지 않겠나.
사진은 소리를 담을 수 없다. 풍경소리가 예뻐 사진을 찍었다. 사진은 고요하고 지나는 사람들은 지워졌다. 나도 모르게 누군가의 사진 속에 담겼다는 게 기분 좋은 일은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사진 속 사람들을 AI지우개로 지웠다. 있다가 사라진 자리에 흔적은 남았다. 흔적의 주인은 자신만 알 거다. 나도 흔적의 주인이 누구인지는 모른다. 그날 우리가 갔던 다자이후텐만궁을 기억하는 것은 어느 가이드의 말소리뿐이다.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다. 말만이 남았다.
많은 사람들이 지나갔다. 곳곳에 흔적이 있다. 저 멀리 가는 사람들은 지우지 않았다. 사람의 흔적이 모두 지워져 버리면 낭만적이지 않을 것 같아서. 여행을 즐기는 사람들을 저 멀리 남겨두고 싶었다.
언어가 다른 여행객이 사진을 부탁했다. 세계 공통언어인 영어와 손에 든 핸드폰을 건네는 것으로 사진을 부탁한다는 것을 알았다. 오케이를 말하며 핸드폰을 받았다. 여행객들 발이 멈춘 곳은 어느 호숫가 앞이었다. 그곳에서 사람들은 여행의 흔적을 카메라 속에 남겼다. 둘만의 흔적을 남기고 싶은 여행객이 핸드폰을 건넸다.
여행은 여러 흔적들을 남기고 지웠다. 사람들은 지워졌고 새로운 사람들이 그곳에 서있다. 중년의 부부를 찍어주는 중년의 아저씨가 포즈를 취해 보라고 손짓한다. 중년의 여인어깨로 중년의 남자 손이 어색하게 올려졌다. 중년의 아저씨는 만족한다는 듯 자세를 취하고 사진을 찍었다. 낭만적이다. 사람들이 지나가는 길모퉁이에 서서 연못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중년의 커플에게 낭만이 있었다. 나에게는 없던 낭만을 보았다.
우메가에 모찌 하나를 사서 반으로 잘랐다. 하나는 남편에게 하나는 나에게로. 하와 민이는 하나씩 주었다. 남편은 각자 하나씩 먹자고 했다. 반으로 나눠 먹는 게 더 낭만적이지 않냐며 말했다. 남편은 피식 웃었다. 그럴지도 모른다는 긍정의 미소다. 잘라진 모찌를 먹으며 걸었다. 사람들 틈을 걸었다. 여러 말들이 들렸다. 내 나라의 말도 들렸다. 우리는 우메가에 모찌 세 개를 더 샀다. 반으로 잘라진 모찌는 아쉬웠다. 하나를 온전히 먹어야 병마를 물리치고 정신도 맑아질 것 같았다. 딱히 병이 있거나 정신이 혼탁하지 않음에도 그리 생각했다.
다자이후텐만구에서의 여행은 생소한 단어를 마주하게 했고, 나는 낭만에 대하여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