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자 협상

by 새나


만화가 이현세 씨도 보통사람이 천재와 싸워서 이기는 방법은 매일 조금씩 어떤 일을 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미로 다음과 같은 말을 하였다.

"천재를 먼저 보내 놓고 10년이든, 20년이든 자신이 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꾸준히 걷다 보면 어느 날 멈춰버린 그 천재를 추월해서 지나가는 자신을 보게 된다"라고 했다.

그도 천재라서 유명한 만화가가 된 것이 아니라 매일 만화를 한 장, 한 장 그려 나가다 보니 한 분야에서 인정받게 되었음을 비유한 것이다.

매일 한 글자 한 글자 글을 쓰다 보면 천재 작가들을 추월해서 지나가는 나 자신을 보게 될까?



집에서 아이들과 갇혀 지내온 시간도 한 달이 다 되어간다.

처음에는 이해할 수 있었다.

치사하게 눈에 보이지 않게 찾아와 우리의 일상을 혼돈에 빠트린 코로나 19라는 고약한 녀석

나의 일상에 잠깐 스쳐 지나가는 치사한 손님이라고만 생각했다.

금방 자기 집으로 돌아가겠지?

금방 나의 일상을 찾을 수 있겠지?

긍정의 힘으로 2주를 버티고 또 버티면서 지내왔다.

하지만 2주가 지나도 3주가 지나도 집으로 돌아갈 생각이 없는 고약한 녀석이 무섭고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두려움을 이겨내는 방법으로 나 이외의 모든 것들에 대한 탓을 하기 시작했다.


너 때문이야

이것도 너 때문이야

이것도 저것도

다 너 때문이야!


하지만 남을 탓한다고 두려움이 사라지지는 않았다

오히려 1+1 되어 다시 나에게 돌아왔다.

두려움과 또 다른 걱정을 안고서 말이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부정적인 감정들은 벗어나고 싶다고 소리치고 발버둥 치면 칠수록 더 나의 감정 속에 착 달라붙어서 떨어지려고 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 들의 절친들까지 데리고 와서 나의 감정을 쉽게 헤어 나오지 못하는 저 깊은 소용돌이 속에 처박아 놓는다.





며칠 전 시부모님께서 집에 만 있는 아이들이 안 쓰러 보이기도 하고 아이들이 보고 싶기도 하셔서 아이들이 좋아하는 과자와 과일 그리고 A++++++한우 꽃등심을 사 가지고 우리 집으로 오셨다.

최대한 아이들과 접촉을 피하고 현관에 마련되어 있는 손소독제로 손을 소독하고 분무기에 넣어둔 소독제를 시부모님 옷에 구석구석 뿌려진 후 그때서야 거실 안으로 들어오실 수 있었다.

정말 이게 뭐하는 짓인지

과자는 어떤 과자를 구매했고, 과일은 어떤 과일이 있고, 꽃등심은 몸보신 좀 하라고 사 오셨다는 말을 랩을 하시듯 쏟아내고는 바로 다시 현관문을 여시고 "우리 간다"하시고 나가셨다.

시부모님께서 남기고 가신 박스에 물건들을 하나둘 정리하고 내 옆에 있는 과자 주위를 맴돌고 있는 아이들에게 제일 먹고 싶은 과자 하나씩을 고르라는 선택권을 주고 하나씩 고르게 했다.

첫째와 둘째가 소곤소곤 거리며 말을 하더니 각자 다른 종류의 과자를 골라 거실 테이블에 앉아 과자봉지를 뜯어서 첫째 과자봉지 한쪽에 둘째 과자를 부어 놓고 같이 나눠서 먹고 있었다.

내 옆에서 소곤소곤 이야기했던 것이 첫째와 둘째의 과자 협상이었다.

내 과자 이만큼 줄게 너 과자도 이만큼 줘 서로 나눠 먹으면 두 가지 과자를 한 번에 먹을 수 있으니 너도 좋고 나도 좋은 일이라는 것이었다.


자기 밥그릇 지키겠다고 열렬히 서로의 단점을 파헤치고, 다 차려진 밥상에 숟가락만 살짝 얹는 못난 어른들과는 너무 대조되는 모습이었다.


꺼는 주기 싫고 니 꺼는 내 것 하고 싶은 욕심이 언제 가는 내 꺼 까지 잃게 되는 그런 날이 올지도 모른다.

아끼다 똥 된다는 말도 있듯이 아끼지 말고 내 꺼만 주기 그러면 너꺼랑 바꾸자는 물물교환도 있다.

꽁꽁 잠겨 있는 나의 생각이란 대문을 조금만 오픈해서 다른 생각들도 들어보고 그 생각과 나의 생각에 대한 협상이라는 것도 해볼 시도라도 해 본다면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베란다 창문으로 보이는 노란 산수유 꽃을 보니 한 달 전 평범했던 나의 일상이 더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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