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멋대로 생각한 결론

by 새나



어렸을 때만 해도 서른쯤이 되었을 때

난 충분히 멋지게 살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왜 서른이 가까워질수록

미래, 연애, 사람과의 관계...

이 모든 것들이 불안해지는 걸까

김광석의 노랫말처럼

어쩌면 이별해야 하는 것들이 많아지는 나이

서른은 결코 편안한 나이가 아니었다

어른이라고 하기엔 아직 부족한 것 같고

마냥 젊다고 하기엔 어느덧 적지 않은 나이

그래서 때론 당황스럽기도 하고 서툴기도 한 헛어른


- 헛어른 책 내용 중에서 -




대충 정리를 끝내고 박스를 베란다 구석에 던져 놓고 들어오는데 시어머님 전화가 왔다.

집에 잘 도착했다는 전화와 꽃등심은 아이들 성장에 좋고, 자라나는 아이들은 좋은 품질의 고기를 먹어야 고기의 좋은 성분이 더 많이 몸에 흡수되어 성장에 도움이 되고 머리도 좋아진다는 이야기를 하셨다.

"네 어머니~ 감사합니다" 시어머님 말에 공감하고 오늘 우리들을 위해 먹을거리를 한가득 전해주시고 가신 시부모님께 감사하다는 표현을 하고 전화를 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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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다음날 아침 꽃등심을 불판에 구워 아이들과 아침을 먹었다.

너무나 잘 먹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니 남편과 나는 꽃등심 두 점에 만족하고 나머지는 아이들 밥그릇 위에 놓아주었다.

남은 꽃등심은 아이들 한 끼 식사에 먹을 수 있을 만큼 소분해서 냉장실과 냉동실에 넣어 두었다.


남편은 가게 청소와 소독을 위해서 잠시 가게에 나갔고 나는 미세먼지 없는 화창한 날을 확인하고 창문을 활짝 열고 청소를 시작했다.

요란한 청소기 소리 중간중간 전화벨 소리가 살짝씩 들리는 듯해서 청소기 전원을 꺼보니 아니나 다를까 시아버님 부재중 전화가 3통이나 와 있었다.

무슨 일이지?

급한 일이신가?

전화를 드리니 화상전화로 전화를 하실 테니 아이들을 바꿔 달라고 하셨다.

급한 전화는 아니었고 아이들 얼굴이 보고 싶으셨던 것이었다.

시아버지와 아이들의 화상전화를 주선하고 나는 청소기 대신 주방 개수대에 쌓여 있는 설거지를 하기 시작했다.

시아버지와 아이들의 화상통화 내용은 내 귀속으로 쏙쏙 들어 올만큼 큰 소리로 통화를 하고 있었다.


" 고기 많이 먹었나? "

"네 할아버지"

시아버님은 아마도 아이들이 고기를 잘 먹었는지 궁금하셔서 전화를 하신 듯했다.

"누구랑 먹었어?"

"엄마랑 나랑 누나요"

"아빠는 안 먹고?"

"아빠는 회사 갔어요"

시아버님은 아침 먹은 이야기에 대해서 말하는 중이었고 아이들은 지금 누구랑 있는지에 대해서 말하는 중이었다.

동문서답의 이야기가 계속되고 있었지만 내가 끼어들 적당한 타이밍을 찾지 못했기도 했고 그런 대화조차도 즐거워 보여 딱히 중재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설거지를 끝내고 믹스커피 한 모금을 마시고 두 모금째 마시려고 하는데 다시 전화벨이 울렸다.

시아버님 전화였다.

전화의 내용은 꽃등심에 관한 이야기였다

아~ 뭐지? 시어머님도 시아버님도 나에게 꽃등심이 아이들에게 좋다는 이야기를 왜 계속하시는 거지?

제법 눈치 빠르다는 소리를 듣던 나였는데 지금 상황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도저히 감이 잡히지 않았다.

몇 점 먹어보지도 못한 꽃등심에 대한 이야기를 왜 계속 들어야 하는지 조금씩 불편한 감정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다.

한 달 가까이 집안에 있으면서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미친 듯이 날뛰는 나의 감정선을 가까스로 누르고 있었다.


꽃등심이 아이들에게 좋다.

성장기인 아들에게는 좋은 품질의 고기를 먹어야 한다.


반복되는 문장을 곰곰이 생각해 보고 내린 결론은 나는 먹지 말고 좋은 품질의 고기는 아이들에게 주라는 말씀을 하시고 싶었던 것 같다는 내 멋대로 생각한 결론을 내렸다.

직접적으로 "어미야 너는 꽃등심 먹지 말고 애들 한테 줘라"라고 말할 수가 없었던 거라고 생각했다.

"아버님 아이들이 워낙 고기를 잘 먹으니 아비랑 저랑은 꽃등심 한 점씩 맛만 봤어요. 저희 먹을 새도 없이 먹더라고요"

나는 어른 같지 않은 대처를 하고 있었다.

온전치 못한 나의 감정 속에서 제멋대로 결정 내린 결말을 가지고 일방적인 생각을 내뱉고 있었다.

내 멋대로 생각한 결론 속에는 서운함이란 감정이 함께 했다.

초등학교 때 같은 반 친구가 좋아하는 친구한테만 나눠주던 미국산 초콜릿을 받지 못하고 서운해했던 그 감정이 다시금 나에게 찾아온 듯했다.

어른의 탈을 쓰고 있는 옳고 그름의 선택이 미숙한 아이와도 같았다.


의미 없이 하는 말들을 왜 이렇게 의미 있는 말로 왜곡시켜 나를 괴롭히고 있는지 모르겠다.

울다가, 웃다가, 우울하다가, 기쁘다가, 화냈다가, 칭찬하다가, 적극적이다가, 소극적이다가

누가 보면 미친 X이라고 말을 할 만큼 나의 감정선은 미쳐 날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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