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다리 때문에 이혼한 여자들이 있습니다
언젠가 TV 프로그램에 출연한 남성 연예인이 닭다리 때문에 곤욕을 치른 적이 있다. 음식을 만들어 출연자들끼리 나눠 먹는 장면이 문제였다. 그날의 식재료는 닭이었으며, 문제의 장본인은 이미 자상하고 요리 잘하는 사람으로 호감을 얻은 사람이다. 시청자들에게 호감을 받던 그가 닭다리를 먹는 장면이 나간 후, 인터넷에는 그에 대한 비난이 쏟아졌다. 요리를 해서 먹는 과정에 그는 두 개의 닭다리를 먹었다. 출연자가 여럿이었는데, 혼자 닭다리를 두 개나 먹다니, 흥분한 댓글들이 마구 달렸다. 마침내 그 남성 연예인이 직접 나서서 해명 글을 올렸다. 재촬영을 반복해야 하는 방송 특성상, 요리에 쓰일 닭은 넉넉히 준비되어 있었고, 편집과정의 문제로 하필 그가 닭다리를 먹는 장면이 두 번 방송에 나온 것이라고 했다. 그의 해명으로 닭다리 논란은 흐지부지 되었다. 그러면 그렇지, 시청자들은 곧바로 수긍했다. 그를 비난하는 글도 사라졌다.
오래 산 부부가 있다. 자녀들은 결혼하여 집을 떠났고, 은퇴한 남편과 아내, 둘이 살았다. 어느 날, 그들은 튀긴 닭 한 마리를 배달시켜 먹기로 했다. 주문한 닭이 도착했을 때, 마침 아내에게 급히 해야 할 일이 생겼다. 오래 걸리는 일은 아니었다. 일을 마무리하고 닭을 먹기 위해 식탁으로 갔다. 남편은 아내를 기다리지 않고 닭을 먼저 먹고 있었다. 닭은 아직 따뜻했다. 그런데 아내가 보니 닭다리가 보이지 않았다. 아내가 딴 일을 하는 동안, 남편은 닭다리 두 개를 다 먹어 치운 것이다. 그 순간 아내는 이혼을 결심했다. 실화이다.
내 이야기는 아니다.
또 다른 오래 산 부부가 있다. 남편은 육류 요리를 좋아한다. 특히 닭을 좋아해서 아내는 닭을 이용한 요리를 많이 한다. 볶음과 백숙을 주기적으로 했고, 남편의 요청으로 튀긴 닭을 시장에서 사 온다.
닭은 한 마리. 닭다리는 두 개. 식구는 처음에는 두 명이었다가 늘어서 다섯 명이다. 닭 한 마리를 어떻게 먹어야 공평한가. 합리적인가.
남편은 닭다리 두 개를 혼자 먹어 치웠다. 당연하다는 듯이.
그 가족은 한 달에 최소한 두 번은 닭을 먹었으니 일 년이면 스물네 마리의 닭을 먹었다. 십 년이면 이백 사십 마리 이상의 닭을 소비했다. 이십오 년 동안, 남편은 대략 천 백 개의 닭다리를 먹었다. 어리고 눈치 없는 아들에게 닭다리 하나를 뺏기기도 했지만, 딸들은 학습이 되어서 함께 먹는 자리에서 닭다리에는 손을 대지 않았다. 퍽퍽한 가슴살만 먹었다. 고작 혼인기간 중 남편이 먹어 치운 닭다리가 과연 몇 개인가 따위를 계산하며 흥분하는 자신이 좀스럽고 한심해서 아내는 이혼을 결심했다. 이것 역시 실화이다. 내 이야기이다.
다른 가정의 경우도 그러한가, 조사를 시작했다. 먼저 그의 형제의 경우를 알아보았다. 너의 집에서는 닭을 먹을 때 닭다리는 누가 먹느냐, 묻자 동서가 답했다. 그 집은 자녀가 둘이었는데, 닭다리는 자녀들에게 각각 주고 닭가슴살은 부모가 먹는다고 했다. 그렇다면 닭다리는 가장인 남자 어른만 먹는다는 암묵적인 규칙이 남편의 집안에 대대로 전승된 유구한 전통은 아니다.
여든이 넘은 연세에도 마주치기만 하면 싸워서 이젠 손자들도 그러려니 하는 내 부모님의 경우를 알아보자. 나는 부모님의 다툼을 보며 자랐고, 지금도 자주 목격한다. 그렇게 지치지도 않고 싸움을 반복하는 부모님이 닭 요리를 드실 때, 닭다리만큼은 어머니 차지다. 그것도 두 개 다. 이유가 있다. 아버지는 특별히 가리는 부위 없이 다 맛있게 드시는데, 어머니는 오직 닭다리만 드신다. 그러니 아버지는 닭다리 두 개는 어머니 몫으로 미리 챙기고 나머지를 드신다. 누구도 그것에 불만을 갖지 않는다.
닭다리만 먹는 어머니의 식습관은 그대로 유전되어 육류를 좋아하지 않는 내 여동생이 유일하게 먹는 닭의 부위가 있었으니 바로 닭다리. 그래서 여동생의 집에서 닭을 먹을 때 역시 닭다리는 여동생 몫이다. 자녀와 함께, 또는 친족과 먹을 때도 있지만, 그때도 닭다리 한 개는 여동생이 먹는다.
닭다리는 맛있다.
나도 닭다리는 맛있다.
출산하고 산후조리를 친정에서 했다. 오랜만에 끼니때마다 챙겨주는 밥상을 앉아서 받았다. 한 날은 어머니가 토종닭을 푹 삶았다. 산모 음식이라고 따로 하는 것은 아니고, 국이든 탕이든 한 솥 끓이면 가족들이 다 함께 먹던 중이었다. 잠든 아기 옆에 누워 나른하게 졸던 내게 나와서 밥을 먹으라 어머니가 불렀다. 국을 푸며 내 국그릇에 닭다리 두 개를 담아 주었다.
집에 돌아가면 이렇게 못 먹을 테니까.
내가 가족 여럿이 식사하는 자리에서 닭다리를 두 개 먹은 것은 그때가 처음이고 또 마지막이다. 집으로 돌아와서 나는 한 번도 닭다리를 먹은 일이 없다. 결혼 생활 내내 그랬다.
나는 지금도 어머니와 종종 언쟁을 벌이고 퉁명스럽게 굴기도 하지만, 그때 닭다리 두 개가 담긴 국그릇은 잊히지 않고 두고두고 고맙다. 고마워서 눈물이 날 지경이다.
그렇다고 내가 30년 동안, 닭다리를 먹어보지는 못하고 눈앞에 있는 닭다리를 구경만 한 것은 아니다. 남편이 회식으로 늦거나 출장을 가거나 해서 자녀들과만 밥을 먹는 날이 가끔 있었다.
그런 날, 나는 닭을 시켰다.
시장에서 튀긴 것 말고 비싼 브랜드 닭으로. 그리고 닭다리 두 개와 닭날개 두 개를 자녀들과 나누어 먹었다.
너희는 쫄깃하고 맛있는 닭다리를 먹어라. 이 어미는 퍽퍽하고 맛없는 닭가슴살을 먹겠으니, 이런 마인드의 엄마 캐릭터는 절대 아니었고, 안타깝게도 나는 어머니의 닭 부위 취향을 물려받아 닭다리 말고는 먹지 않는다.
그러다 닭다리로만 구성된 신제품이 출시되었다. 오호 쾌재라. 이제 더는 나눠 먹지 않고 온전한 닭다리를 들고 뜯을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여전히 남편이 없을 경우의 일이다. 남편은 비싼 브랜드 닭은 절대 시켜 먹지 않는다. 저렴한 가격의 재래시장이나 트럭에서 파는 닭을 주문한다.)
그즈음, 어린이집에서는 생일을 맞은 어린이의 부모가 음식과 케이크, 친구들에게 줄 작은 선물꾸러미 같은 것을 준비해서 보냈는데, 닭다리에 한이 맺힐 대로 맺힌 나는 공평하게 먹으라고 닭다리로만 튀겨달라고 주문해서 선생님들 몫까지 싹 챙겨 보냈다. 닭 한 마리를 주문할 때와 닭다리로만 주문을 할 때 가격은 당연히 차이가 있었지만, 그때의 나는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닭다리를 못 먹는 상황까지 견디기 힘들 만큼 심각하게 감정이입을 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닭을 한 마리 보내면, 누구는 닭다리를 누구는 닭날개를 또 누구는 가슴살이나 살이 전혀 없이 튀김옷만 있는 갈비뼈를 먹어야 한다. 너무 불공평하지 않은가. 나는 닭다리를 플렉스 했다. 생일파티가 끝나고, 탐구반 선생님의 감동 어린 문자가 도착했다.
역시 닭다리는 누구나 좋아한다.
심리상담을 다닐 때, 상담 선생님께 불쑥 질문했다.
선생님 집에서는 닭다리 누가 먹어요?
이런 걸 묻는 내담자는 아마 처음이었겠지. 선생님은 당황해서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그럴 테지. 고작 닭 한 마리를 먹으면서 누가 어느 부위를 먹느냐에 이렇게 민감하겠느냐고요.
이혼소송을 시작하고 맞은 첫 생일에 여동생이 치킨 기프티콘을 보냈다. 닭다리만 튀긴 콤보세트. 축하 카드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닭다리 실컷 먹어.’
닭다리에 얽힌 나의 구구절절한 서사를 가장 잘 아는 여동생이기에 낄낄낄 웃고 닭다리를 주문했다. 역시 한 개가 제일 맛있고, 두 개 이상은 못 먹겠다.
겨우 닭다리 한 개를 맛있게 먹는데, 그걸 눈치 보며 살았다. 남편도 당연하게 여기고 나도 그것을 당연하게 여겼다. 돈 벌어 와서 가족을 먹여 살리는 가장은 가장 중요한 사람이니까. 살림하고 자녀를 양육하는 전업주부는 덜 중요한 사람이니까. 그렇게 오랜 시간, 다 함께 당연하다고 받아들이며 살아온 것이 전혀 당연하지 않은 것임이 퍼뜩 깨달아졌다. 나는 덜 중요한 사람이 절대 아니었다.
내가 했던 일들이 덜 중요한 일이 아니었다 그 말을 끄집어내는데 너무 오래 걸렸다. 그래도 아주 늦지는 않았다.
네, 그렇습니다. 나는 숨어서 몰래 먹지 않고, 당당하게 닭다리를 뜯기 위해 이혼을 결심했습니다. 닭다리가 맛있어서 이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