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이 연기처럼 사라질 수 있다면 1

by 함지연

나는 눌린 두부와 대파 한 단과 치자를 샀어요. 어머님이 사 오라고 하신 모든 것을 이미 샀어요. 오늘은 운이 좋았죠. 명절 전날이면 어머님이 늘 가는 단골 두부 가게에 사람들이 한꺼번에 몰리거든요. 가게에서 직접 콩을 삶아 만드는 두부는 맛이 좋아요. 다른 동네로 이사 간 어떤 사람이 일부러 와서 두부를 몇 모씩 사간다고 두부 가게 여자가 떠드는 말을 들은 적도 있어요. 막 나온 두부는 썰어서 그냥 부치기만 해도 고소하고 담백하죠. 입 짧은 민이도 이 집 두부로 찌개를 끓이거나 조림을 하면 밥을 아주 잘 먹어요.


언젠가 설에는 낮에 가서 기껏 기다렸는데 준비된 재료가 동나는 바람에 결국 두부를 사지 못했고, 저녁 설거지를 끝낸 후, 다시 가서 줄을 서야 했잖아요. 새치기라도 당할까 봐 서로를 날카롭게 쏘아보거나 노골적인 적의를 드러내는 여자들 틈에서요. 나 역시 아이고, 허리야 아이고, 무릎이야 하는 늙은 여자들의 앓는 소리를 들은 척도 안 했죠. 하긴 차례상에도 올려야 하고 만두나 동그랑땡도 빚고 탕국도 끓여야 하니 두부가 없으면 여러 집이 낭패를 보긴 하지요.


두부 가게부터 갔는데 마침 몇 판을 한꺼번에 판매대에 늘어놓던 참이더라고요. 기다리는 줄도 길지 않아 금방 두부를 살 수 있었어요. 그다음에 대파를 한 단 샀고, 건어물 가게에 가서 말린 치자도 잊지 않고 샀어요.

어머님이 심부름을 시킬 때는 두부를 사기 위해 줄을 서야 할 거라 계산했을 거예요. 오전에 시장에 다녀와야 점심상을 물린 뒤 바로 녹두전을 부칠 테니까요. 지금도 두부 가게 주인 부부, 명절에만 나와 일하는 그들의 딸과 아들이 콩물을 끓이고 두부를 자르고 젖은 거스름돈을 건네느라 분주한 그 앞에 있으려니 짐작하고 있을 테지요. 그렇지만 숨이 가쁠 정도로 잰걸음으로 시장에 갔고, 어느 가게에서도 시간을 오래 끌지 않았기에 내게는 약간의 여유 시간이 생겼어요.


나는 이 카페에서 잠깐만 쉬었다 갈 거예요. 어머님 집에서도 멀지 않아요. 1층엔 뼈해장국 식당이 있고 2층이 카페인 3층짜리 건물인데 어머님도 그 앞을 종종 지나쳤을 거예요. 그렇지만 생전 어디 나가 국수 한 그릇, 차 한 잔 사 드시지 않으니, 어머님은 오래된 이 카페를 아마도 모르실 거예요.

문을 열고 들어서니 카페 주인이 알은체를 해요. 주인은 내 또래로 보이는 중년 여자죠. 두 번째 오던 날, 나를 알아보고 반갑게 맞더라고요. 나를 아느냐 물으니 지난번에 와서 저쪽 창가 자리에 앉아 커피를 마시지 않았느냐 하고 정확히 기억하는 거예요. 놀랍고 고마웠죠. 내가 딱히 인상적인 얼굴은 아니잖아요. 지나치게 평범해서 지나고 나면 주위에 그런 이가 있었던가 고개를 갸웃할 정도이죠.


민이 초등학교 다닐 때 학부형으로 만난 한 명이 고등학교 동창이었어요. 같은 반이었던 적도 두 번이나 되고요. 나는 바로 알아보겠는데 그쪽에서는 날 모르더라고요. 민이 초등학교 졸업하기 전까지 학교행사나 모임에서 더러 봤는데 나를 민이 엄마 이상으로는 기억 못 하는 거 같아 쭉 모른 척했어요. 2년이나 한 교실 안에 있던 동창도 몰라보는 나를 잊지 않고 맞아주는 카페 주인에게 호감이 갔죠.


이렇게 손님이 없으면 곧 장사를 접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카페 안은 한산해요. 그래도 문을 닫지 않고 여전히 영업하는 걸 볼 때마다 이 건물 소유주인가 건물주의 딸인가 아니면 부인? 그래서 고정적이고 꾸준한 수입 따위는 개의치 않나, 그냥 무료한 시간을 때우기 위한 부업 정도인가 그런 쓸데없는 걱정을 하곤 해요. 어디 나가 십 원 한 장 벌어본 일 없는 내가 카페 주인을 걱정하고 있으니 어처구니없지요.


나는 창가 자리에 앉을 거예요. 탁자 아래 대파와 치자와 두부가 든 장바구니를 넘어지지 않게 기대놓아요. 아주 잠시만 머물다 갈게요. 그 잠깐 동안 대파는 시들지 않고 두부도 상하지 않을 거예요. 막 쪄낸 두부는 아직 뜨거워요.

추석 전날이라 더 한가한가 봐요. 1층 식당에서 뼈해장국을 먹은 사람들이 차를 마시러 더러 올라오기도 할 테지만, 지금은 추석 전날이고 이른 시간이기도 해서인지 카페 안에는 주인과 나, 이렇게 둘 뿐이에요.